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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베테랑 형사가 본 ‘조폭’ 비즈니스의 변천사 

“주먹 쓰는 조폭은 지고 머리 쓰는 조폭이 대세” 

‘삥 뜯는 양아치’서 IT·금융회사 CEO로 … 시대적 상황에 따라 돈 버는 방법도 제각각 ‘돈 냄새 맡는 귀신’

▎뒷골목에서 상인들의 돈을 뜯어내던 조폭의 시대는 갔다. 대신 탈세·횡령·주가 조작 등 화이트칼라 범죄를 저지르는 조폭이 대세다. 갈취형에서 합법을 위장한 기업형 조폭까지 돈을 좇아서 조폭은 진화한다. 사진은 3세대 조폭들의 세계를 다룬 영화 <신세계>의 한 장면.
“돈이 모이는 곳에 조폭이 있다.” 돈의 흐름이 변하면 조직폭력배들의 사업도 변한다는 뜻이다. 뒷골목에서 상인들의 돈을 뜯어내던 ‘고전적’ 수법은 이제 옛말이다. 반면 탈세·횡령·기업탈취·주가조작 등 신종을 넘어선 첨단 수법이 등장한다. 이들이 주무르는 돈의 규모도 천문학적이다. 조폭 전문 수사관들은 그 돈이 100조원대를 넘을 것으로 짐작한다. 합법으로 위장하지만 폭력과 협박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이 분야의 베테랑 형사들을 통해 돈 냄새를 좇아 진화하는 조폭 세계를 해부했다.

영화 <신세계>는 기업형 조직폭력배(조폭)의 세계를 그렸다. 번듯한 대기업의 허울을 갖춘 폭력조직 ‘골드문’ 그룹의 기업 운영권을 둘러싼 이권 다툼이 기본 플롯이다. ‘골드문’은 폭력조직이지만 겉으로는 건설·유통·엔터테인먼트·제2금융권 등을 계열사로 거느린 거대 그룹이다. 조직원들은 말끔한 슈트 정장을 차려입고,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사업 지식을 갖추고 변호사를 대동하는 등 ‘사업가’로 위장한다. 그러나 이권을 쟁탈하기 위해선 잔인한 칼부림은 물론 각종 불법행위도 마다하지 않는다. 영화 속 지능화된 조폭의 모습이 현실과 다르지 않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김진태 검찰총장이 2014년 2월 21일 오후 서울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 조폭전담 부장·검사·수사관 전체회의’에서 인사말이 끝난 뒤 일선 강력부장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김 총장은 “합법을 위장한 3세대 조폭들의 지하경제 총력단속”을 일선 검찰에 당부했다.
‘신세계 조폭’은 국내 조폭 흐름에서 3세대 조폭으로 분류된다. 3세대 조폭은 ‘합법 위장 기업형’ 조폭이다. 3월 24일 검찰에 검거된 고 김태촌(범서방파 두목) 씨의 양아들 김 모(42) 씨의 사례는 ‘신세계 조폭’의 전형을 보여준다. 김씨는 2012년 11월 기업 인수합병(M&A) 전문브로커 최모 씨 등과 위조지폐 감별기를 생산하는 S사를 인수했다. S사는 2012년 매출 278억원, 영업이익 73억원을 달성한 우량 중소기업이었다. 김씨가 S사 인수를 위해 사용한 수법은 ‘무자본 인수합병’이다. 기업 주식을 담보로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린 뒤 최대주주에게 인수대금을 주고 경영권을 넘겨받는 방식이다.

주가조작·기업탈취 등 ‘신세계 조폭’


▎1. 수사기관은 1990년 노태우 정권의 ‘범죄와의 전쟁’을 계기로 조폭들의 기업화가 빠르게 추진됐다고 판단한다. 노태우 정권이 ‘범죄와의 전쟁’ 선포 이후 육교에 붙여놓은 표어. / 2. 2003년 11월 30일 오전 청계천 8가에서 서울시의 노점상 철거에 반대하는 한 노점상인이 용역원들에게 끌려 가고 있다. 사진은 이 기사의 특정내용과 관련 없음.
김씨는 인수한 S사에서 209억원 상당의 양도성예금증서(CD)를 빼돌려 회사 인수대금으로 빌린 사채를 갚았다. 영업이익률 30%짜리 알짜 회사였던 S사가 순식간에 거덜나면서 상장 폐지됐다. 이 밖에 김씨는 다른 코스닥 상장사인 C사의 실질적 대표 자격으로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회사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이고 37억5천만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황홍락(54)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조직폭력팀장은 “최근 조폭들의 범죄 행태 중 하나가 기업사냥”이라며 “김씨가 사용한 ‘무자본 인수합병’은 전주(사채업자)와 기술자(브로커)가 공모해 우량기업을 빼앗은 수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우량기업을 회사 대표가 팔려고 했겠냐”며 “인수과정에서 협박 등이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황 팀장은 지난 30여 년간 강력·마약·조직폭력 부서에서만 근무한 베테랑 형사다. 특히 20여 년간 조폭 수사만을 전담하며 국내 조폭 계보는 물론 조폭 내부사정까지 꿰뚫고 있는 ‘조폭 수사통’으로 손꼽힌다. 지난해에는 2400억 원대 불법 도박사이트를 운영한 조폭들을 대거 검거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 조폭들이 사업 대상은 다각화하고 있지만 사업 방식에서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고 분석한다. 다음은 그의 설명이다. “조폭들은 상장회사를 인수한 뒤 소위 ‘알 빼먹기’로 회사 자금을 횡령하고, 주가조작으로 수백억 원대의 부당 이득을 챙기는 수법을 주로 사용한다. 그런데 ‘알 빼먹기’는 예전부터 사용되던 방식이다. 예를 들어 과거 유흥업소를 빼앗을 때 일정 금액의 돈을 빌려준다. 일정 기간 배당금만 받아 챙기지만 장사가 잘되면 업주에게 최초 투자금을 주면서 쫓아내고 업소를 빼앗는다. 장사가 안 될 경우라도 걱정은 없다. 빌려준 돈에 고리의 이자율을 붙여 돈을 받아낸다. 이 과정에서 폭력이나 협박을 일삼는다. 회사를 강취할 때도 마찬가지 수법을 사용하는 셈이다. 어떤 대상이든 ‘돈은 절대 잃지 않는다’는 게 그들의 철칙이다.”

금융시장에도 진출 “우린 경제사범이라니깐”


▎황홍락 서울경찰청 조폭팀장은 7월 8일 인터뷰에서 “최근 조폭이 합법을 위장하지만 폭력과 협박이라는 조폭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구의 한 폭력조직 두목은 상장사 A사 대표와 간부 등과 공모해 주식대금 84억원을 가장납입한 후 회사 자금 160억원을 횡령하고 주가작전세력에게 시세조정을 위탁했다가 실패하자 7억원을 갈취하다 수사기관에 적발됐다. 또 전북 전주의 유명 폭력조직 두목 출신인 김모(46) 씨는 국내 유명 속옷회사 B사를 인수한 뒤 회장으로 행세하면서 주가조작으로 수백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기다 지난해 5월 검찰에 구속됐다. 김씨는 2010년 B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호남의 한 폭력조직과 공모해 가장매매, 고가 매수, 물량소진 매수, 허수매수 주문 등을 통해 시세를 조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시세조종으로 당시 B사의 주가는 주당 6120원에서 1만3500원까지 뛰었고 김씨 일당은 350억원가량의 부당 이득을 챙겼다. 김씨는 2007~2012년 대부업 등록도 하지 않고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사채 사무실을 차려놓고 월 10~20%의 이자를 받는 조건으로 주가작전세력 등에게 51회에 걸쳐 300억여 원을 대여해 20억여 원의 이득을 취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조폭들이 기업탈취·주가조작 등 금융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부터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황 팀장은 “조폭은 의리나 명분은 없다. 단지 돈을 따라 움직인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조폭들이 금융시장까지 사업영역을 넓힌 데는 사회적 환경이 자양분 역할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2000년대 초반 금융시장 활성화, 부동산 폭등, 벤처투자 열풍 등으로 기업 인수합병, 주가조작 등에서 막대한 이익을 거둘 수 있었다. 당시 지방 조폭들도 서울 등 수도권으로 많이 올라왔는데 먹거리가 많았기 때문이다. 모든 금융산업이 서울에 집중돼 있지 않나. 기술자나 전주를 구하기도 지방보다는 서울의 여건이 좋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활동 중인 조폭 가운데 ‘신세계 조폭’으로 분류할 수 있는 조폭은 얼마나 될까? 검찰에 따르면 국내 폭력조직은 사업 유형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한다. 룸살롱·오락실 등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자릿세를 뜯어내는 1세대 ‘갈취형’과 부동산 재개발·재건축 현장 등의 이권에 개입하는 2세대 ‘혼합형’, 3세대 ‘합법 위장 기업형’이 그것이다.

김영철(51) 부산경찰청 조폭팀장은 “현재는 2세대에서 3세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라고 분석했다. 김 팀장은 부산 경찰청에 강력수사대가 출범한 1997년부터 조폭 수사만을 전담하며 지역 조폭들의 밑바닥 정보까지 훤히 내다보고 있어 ‘조폭 정보통’으로 불린다. 특히 지역 폭력조직과 전국구급 폭력조직, 해외 폭력조직 간의 연관성 등 고급 정보도 꿰뚫고 있을 만큼 정보력이 뛰어나다. 2003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부산 영도 러시아 마피아 총격사건을 담당하며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푼 것도 김 팀장의 정보력 덕분이었다.


김 팀장의 분석은 수치로도 증명이 된다. 검찰이 지난해 2월 발표한 ‘조폭의 동향 변화와 새로운 수사의 패러다임’이라는 자료에 따르면 조사대상 107개 폭력조직 가운데 혼합형(갈취·기업 중간형)은 54개로 전체의 50.5%를 차지했다. 합법위장 기업형은 27.1%(29개), 갈취형 22.4%(24개)였다. 하지만 갈취형 조폭 단속 추이는 2001년 1136건에서 2013년 171건으로 84.9%나 감소했다. 반면 영리형 범죄는 2001년 13건에서 2013년 307건으로 2261%의 급격한 증가세를 보였다.<그래프 및 표 참조>

‘신세계 조폭’이 증가 추세이지만 아직까지 국내 조폭들은 수입의 대부분을 성매매·도박장·사채금융·마약 등 고전적 사업에 의존한다. 검찰이 2014년도 조폭 관련 업소 총 383곳을 분석한 결과 룸싸롱 등 유흥업소가 173개소(45.2%)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하지만 사업 운영 형태가 바뀌었다. 과거 ‘보호비’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거나 일정 지분을 넘겨받는 수법 대신 요즘은 조폭이 업소를 직접 경영하거나 지분을 넣는 경우가 많다.


유흥업소·사채·도박장 등 고전적 사업 비중 여전히 높아

특이한 점은 고전적 사업에 대한 의존도가 지방으로 갈수록 높아진다는 것이다.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은 금융·부동산 등 다양한 사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는 반면 부산 등 지방은 사업여건이 열악하기 때문이라고 김 팀장은 예상한다. 그의 설명이다. “부산은 제2의 도시지만 서울과 경기 등에 비해 조폭들이 먹고 살기 어렵다. 유흥업소나 도박, 성매매 등 고전적 사업에 올인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조직 간 ‘전쟁’이 벌어지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 김 팀장은 “학습효과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과거 ‘범죄와의 전쟁’ 당시 전국구급 조직들이 와해되는 것을 경험했다는 의미였다.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조폭들은 고전적 분야에서 자금조달에 나서고 있지만 예전처럼 회칼을 휘두르며 ‘나와바리(활동구역)’ 싸움을 하는 경우는 드물어졌다. 경제 규모가 커졌고, 과거 전국구 패밀리가 공권력에 의해 강제 해체되는 것을 지켜본 결과 ‘튀면 죽는다’는 사실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또한 수사기관의 감시를 따돌리기 위해 직접 나서지 않고 ‘바지사장’을 내세우거나 지분을 넣는 방식을 선호한다.”

불법사행산업, 사채 등도 조폭들이 선호하는 사업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290조원 규모인 국내 지하경제 가운데 121조원을 폭력조직이 주도하고 있다. 95조원에 이르는 불법사행산업 시장을 비롯해 사금융, 주식시장 교란, 가짜 석유 판매, 마약밀매 등의 지하경제를 폭력조직이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불법 도박사이트 등 도박 관련 사업은 해외 폭력조직과 연계된 경우가 많다고 한다. 법망을 피하기 위해 동남아 등지로 나가는 것이다. 부산지역 조폭들의 해외 진출은 대부분 도박 관련 사업이라는 게 김 팀장의 분석이다. “조폭들은 큰 수입원인 불법 도박사이트를 운영하기 위해 필리핀·중국으로 많이 나간다. 국내 수사기관의 감시망을 따돌리자는 의도다. 규모가 있는 폭력조직의 경우 롤링(도박자금) 사업도 많이 한다. 부산지역 폭력조직 대부분이 해외에 진출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국제마피아파 행동대원 K씨는 2013년 1월부터 2014년 9월까지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를 개설해 운영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이 기간 올린 매출만 382억원에 달했다. 경산인규파 소속 조직원인 S씨는 2012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필리핀에 서버를 둔 도박 사이트 ‘황금어장’을 운영하며 1580억원의 게임머니를 판매했고, ‘범서방파’의 경우 마카오 호텔 카지노와 연계해 한국인들에게 도박자금(롤링칩)을 제공한 혐의로 조직원 3명이 적발돼 두목급 조직원이 구속 되기도 했다.

황홍락 팀장은 불법 도박사이트가 조폭들의 주요 사업으로 자리 잡은 것은 ‘꼬리 자르기’가 쉽고, 적발되더라도 다시 쉽게 사업을 재개할 수 있는 ‘편리성’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황 팀장은 “조폭들은 직접 사이트를 운영하지 않는다. 조폭이다 보니 적발되면 무거운 형량을 피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지사장을 고용해 운영자(기술개발자)와 함께 해외에 나가도록 한다. 특히 ‘투자’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냥 ‘차용해줬다’고 한다. 투자는 직접 운영에 관련이 있기 때문에 수사기관에 적발될 경우 빠져나갈 수 없어서다. 돈을 빌려주고 이자 형식으로 돈을 회수하는 데 이자율이 한 달에 수천%에 달한다. 실질적 오너인 셈이다. 게다가 수사 기관에 걸려도 서버를 닫았다가 다시 열면 된다. 한 차례 투자로 서버를 압수당할 때까지 운영할 수 있다.”

사채의 경우 조폭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채업자의 청부로 채권 회수를 대신해주는 게 주업이었으나, 지금은 탄탄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직접 사채업자로 나서는 추세다. 이들은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100%가 넘는 고리에 돈을 빌려주고, 변제하지 못하면 폭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불법 사채시장은 전국구 조직보다 군소조직이 많다고 경찰은 보고 있다. 김영철 팀장은 “법정 이율을 넘어선 대부업체는 거의 조폭과 연관성이 있지만 ‘양아치’ 수준”이라며 “요즘 기업형 조폭은 법정 이율을 지키면서 합법적으로 장사한다”고 말했다.

철거에서 시행까지… 조폭 파트너 ‘건설·건축업’


건설·건축 분야 역시 조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업이다. 사업추진 과정에서 ‘어깨’들을 필요로 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원조는 철거용역이다. 널리 알려졌듯이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된 주택 재개발사업 과정에서 무허가로 주택을 짓고 살던 주민들과의 마찰에 ‘해결사’ 노릇을 한 것은 ‘철거 깡패’라 불리는 조폭들이었다. 황 팀장은 “초기의 철거 깡패는 재개발 현장에서 완력이 필요할 때마다 여기저기서 끌어오는 ‘양아치’들이었다”며 “그러나 재개발 붐과 함께 시공사와 재개발조합의 철거 인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이들은 ‘철거 용역회사’로 기업화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1990년대 중반부터 재개발 철거 용역시장을 독점한 D사는 현재 13개 이상의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그룹으로 성장했다. D그룹의 대표가 철거 깡패의 대부로 불리는 이모 씨다. 이씨는 철거 단일 업종에서 재개발·재건축, 시행·시공, 골프장까지 사업영역을 넓힌 성공한 사업가로 변신했다. 하지만 이씨는 2013년 7월 25일 1천억원의 회사 돈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황 팀장은 요즘은 재건축 시장을 놓고 대형 건설업체와 철거용역 조폭이 연계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연간 수십조 원 규모로 추정되는 재건축 시장을 놓고 치열한 수주 경쟁을 벌이는 데 경쟁이 과열되다 보니 온갖 탈법·불법 행위가 다반사로 빚어진다. 우호적 재건축추진위원회·재건축조합 설립을 위한 뇌물 공세, 반대파 추진위원회·조합 주민에 대한 폭력 행사, 총회 의사진행에 대한 물리적 방해나 진행, 시공업체 및 철거업체 선정을 둘러싼 비리 등 같은 ‘악역’을 건축회사가 맡을 수는 없지 않나. 회사와 조폭이 서로 상생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황 팀장은 “예전엔 철거용역·시공사 선정 이권개입 등 한정된 분야에서 활동했지만 지금은 아파트·상가 분양이권, 대출사기, 재건축시장 이권 개입, 기획부동산 등 부동산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직접 사업활동을 한다”며 “부동산 경기 활성화에 편승해 건축 시행 업무나 아파트·상가 분양에 진출한 조폭들은 이제 여러 개의 상장회사를 운영하며 ‘성공한’ 사업가로 비춰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국내에서 활동 중인 폭력조직은 216개파, 관리대상 조직원은 5378명이다. 2006년 최초로 5천명을 돌파한 이래 약간의 편차는 있으나 5천명 수준을 유지한다. 이들 조직과 조직원은 관리대상으로, 경찰의 상시적 감시를 받는다. 하지만 허점이 있다. 신흥 조직이나 소규모 조직원들이 관리대상 명단에서 빠지는 경우다. 김 팀장은 “기존 관리대상 조폭이 아닌 ‘OO파 추종세력’은 경찰의 감시를 받지 않는다. 소규모라서 경찰의 관심에서 벗어난 경우”라며 “이런 점을 알고 있는 신흥 조직들은 조직의 사업을 전문화·분업화해 소규모로 운영한다”고 말했다.

경찰, ‘호적’ 깨끗한 조폭 ‘관찰대상’으로 분류해 감시


▎김영철 부산경찰청 조폭팀장은 7월 9일 인터뷰에서 “3세대 조폭이 증가하는 추세이지만 대부분의 조폭은 성매매·유흥업소·도박·사채 등 고전적 사업에 의존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사채·유흥업소·오락실 등 4~5개 사업을 할 경우 사업별 5~6명씩 조직원을 배치해 운용한다는 이야기다. 일종의 별도 법인인 셈이다. 이는 조직 운영 비용을 줄이고 기동성·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한다. 조폭들이 인원감축·비용절감·인력 전문화 등 기업 구조조정 방식을 통해 조직의 효율을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부산경찰청은 이런 허점을 없애기 위해 조폭 관리를 더욱 세밀화했다. 관리대상 이외에 관심대상과 관찰대상을 신설해 조폭을 관리하는 것이다. 김 팀장의 설명이다. “관심대상은 추종세력을 의미한다. 관리대상에는 포함돼 있지 않지만 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조폭들이다. 관찰대상은 ‘호적’(경찰의 DB에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은 조폭)이 정말 깨끗한 조폭들이다. 밑바닥 정보를 통해 파악한다. 부산청에서는 200여 명 정도의 관찰대상이 있다.”

김 팀장과 황 팀장은 지난 10여 년간 조폭 수사를 하면서 조폭들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성공한 기업가로 행세하지만 도박이나 폭력 등으로 결국 본질을 드러낸다는 의미였다. 이들 조폭 수사 베테랑은 지능화하는 조폭 검거를 위해서는 “조폭 수사에서 특히 피해자 진술 확보가 가장 힘들다”며 “증인보호 프로그램 등 제보자에 대한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최재필 월간중앙 기자

201508호 (2015.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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