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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은근과 끈기의 꽃 무궁화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여름, 가을에 걸쳐 100여 일간을 무궁무진 화려하게 피어나는 일편단심의 상징… 선조들은 하늘나라의 꽃으로 여겼고, 신라는 스스로를 ‘근화향(槿花鄕)’으로 불러

▎무궁화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문헌에 나온다.
시방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순결하고 단아한 무궁화 꽃이 시끌벅적 일제히 서로 먼저 피겠다고 한창 다툼질이다. 진작 다루어야 할 나라꽃 무궁화인데 자꾸 미루다가 이제야 글을 쓰게 되니 괜스레 미안한 생각이 든다.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꽃/ 삼천리강산에 우리나라꽃/ 피었네, 피었네, 우리나라꽃” 꽃도 가까이 보아야 귀엽고 자주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한다. 사랑은 같이 있는 시간에 비례하는 법!

무궁화(無窮花)는 ‘송이송이 피고 또 피어서 영원히(eternity) 지지 않는 꽃’이란 뜻으로 오래오래, 긴긴 시간을 이어 탐스럽게 꽃피운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꽃은 이른 새벽에 피어서 저녁에 홀연히 이우는 딱 하루만 피는 꽃이다. 하여 날이 날마다 청초한 새 꽃을 보여주고는 시든 꽃잎을 모조리 깔끔하게 돌돌 말아(접어) 후다닥 땅바닥에 떨어뜨리니 지저분하지 않고 뒤끝이 깨끗하기 그지없다.

무궁화가 국화(國花)로 제정된 정확한 근거나 법령·규정은 없다지만 여러 역사적인 기록을 통해 무궁화가 나라를 상징하게 된 까닭을 유추할 수 있다.

예부터 우리 민족은 무궁화를 하늘나라의 꽃으로 귀하게 여겼고, 신라는 스스로를 ‘근화향(槿花鄕, 무궁화나라)라고 불렀다고 한다. 드디어 애국가의 뒤풀이(후렴, 後斂)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란 노랫말이 들어가게 되었고, 비로소 광복 후에 절로 나라꽃으로 자리 잡았다. 아무튼 배달겨레와 함께 빛나는 영예와 갖은 고난을 함께하며 파란만장의 세월을 보낸 나라꽃 무궁화를 더욱 애지중지(愛之重之), 아끼고 사랑하며 가꾸고 보살펴 선조들의 귀하고 소중한 정신을 길이길이 이어나가야겠다.

무궁화(Hibiscus syriacus)는 아욱과의 목본(木本)으로 아시아(한국·중국·인도)를 원산지로 치며, 세계적으로 200여 종이 있다. 분류학의 비조(鼻祖)인 스웨덴의 린네(Carl von Linn)가 학명의 종소명(種小名)을 syriacus로 한 것은 그 원산지가 시리아(Syria)일 것으로 잘못 알고 붙인 탓이라고 한다. 그런데 무궁화속 중에 열대산인 하와이무궁화(H.rosa-sinensis, chinese hibiscus)가 화훼(花卉, flowering plant)로 유명하고, 하와이의 주화(州花)다. 아욱과에는 무궁화를 비롯하여 아욱·부용·접시꽃·목화 등이 있다.

이 꽃나무는 전국에 심어 기르는 낙엽관목(갈잎떨기나무)으로 근화(槿花)라 부르며, 중국에서는 훈화초(薰華草)라 한다. 놀랍게도 한반도에 무궁화가 있었다는 가장 오래된 기록이 춘추전국시대에 저술된 지리서(地理書) <산해경(山海經)>에도 있다. ‘군자의 나라에 훈화초가 있는데,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君子之國 有薰花草 朝生暮死, 군자지국 유훈화초 조생모사)’라는 기록 말이다.

세 종류의 무궁화꽃, 배달계·단심계·아사달계

그런데 북한의 국화(國花)는? 원래 진달래였다가 목란(木蘭)으로 바꿨다고 하는데, 목란은 우리나라에서는 함박꽃나무(Magnolia sieboldii)라 부른다. 무궁화나무는 내한성(耐寒性)이 있어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줄기는 2∼4m로 곧추서며, 가지가 많이 퍼지고, 때로는 교목(큰키나무)이 되는 것도 있다. 잎은 늦게 돋고 어긋나며, 마름모꼴로 얕게 세 갈래로 갈라지고, 가장자리에 거친 톱니가 있으며, 앞뒷면에는 털이 있다.

꽃은 대체로 종(鍾, trumpet-shaped flower) 모양이다. 꽃은 지름 7.5㎝ 안팎이고, 꽃 색도 아주 다종다양(多種多樣)하여 홍자색·흰색·연분홍색·분홍색·다홍색·보라색·자주색 등이다. 수술은 끝이 노란 단체수술로 20∼40개의 수술이 생겨 암술대를 싼다. 암술대는 수술 통 중앙부를 뚫고 나오며, 암술머리는 다섯 갈래로 쪼개진다. 꽃받침조각은 통 모양으로 성모(星毛, 별모양의 털)가 있다.

꽃은 홑꽃과 여러 형태의 겹꽃이 있다. 홑꽃의 꽃잎은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으로 밑동에서는 서로 붙는다. 겹꽃은 수술과 암술이 꽃잎으로 변한 것으로 변한 정도에 따라 다양하다.

그리하여 무궁화 꽃은 크게 세 무리로 나누니, 순백색(純白色)인 배달계와 화심(花心, 꽃의 한가운데)이 붉어 단심(丹心)이라 부르는 단심계, 또 단심이 있으면서 붉은색 띠무늬를 가진 아사달계가 있다. 열매는 길쭉하고 타원형인 것이 무명열매 닮은 삭과(蒴果, 영글면 말라 쪼개지면서 씨를 퍼뜨림)로 10월에 익으며 다섯 개로 갈라지고, 편평하며 털이 있다. ‘작은 씨 하나가 정원을 만든다’고 한다. 가을에 씨앗을 받아서 저장하였다가 이듬해 봄에 뿌려 키운다. 햇빛을 많이 받아야 잘 자라는 양수(陽樹)인 까닭에 양지 바른 곳에서 잘 자란다. 또 다른 꽃나무에 비하여 병이 거의 없는 편이나 뽕나무·벚나무·매실나무·살구나무들에도 많이 끼는 목화진딧물(Aphis gossypii)이 말썽이다. 때문에 심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 진딧물까지도 사랑하면 어떨지.

무궁화는 여름과 가을에 걸쳐 무려 100여 일간을 무궁무진 화려하게 연달아 오래 피므로 무궁화란 이름을 가지게된 것이라 했다. 아무튼 많으면 헤프게 느껴지고, 오래가면 지루한 것도 당연지사다. 학교·도로변·공원 등의 조경과 분재(盆栽) 및 산울타리(산 나무를 촘촘히 심어 만든 울타리)로 널리 이용되고, 고결함과 빼어난 자태를 뽐내는 꽃나무다. 한국·싱가포르·홍콩·타이완 등은 물론이고 16세기부터 유럽에서도 잔뜩 재배돼왔다. 그렇다. 지금 생각하니 로마 어딘가에서 화단에 활짝 핀 무궁화를 보고 너무 반가워 달려간 적이 있었지! ‘까마귀도 내 땅 까마귀라면 반갑다’고 외국에 나가면 모두 다 애국자가 된다.

식용·약용으로 쓰이니 어린잎은 차나 나물로 먹고, 꽃은 차를 만들어 마신다. 잎의 추출물은 샴푸를 만들 때 첨가물로 이용되기도 하고, 잎은 이뇨 작용과 천식 해소에 효과가 있다 한다. 무궁화 꽃의 꽃말은 은근과 끈기, 아름다움과 일편단심이란다.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1510호 (2015.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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