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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의 향연(饗宴)] 메트로폴리탄, 로열 오페라의 주역 테너 이용훈 

치명적 목질환 극복하고 세계 최정상에 오르다 

런던=한정호 음악평론가
2015년 시즌 로열 오페라를 휘어잡은 최고 성악가로 ‘우뚝’… 올가을 거장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도쿄서 마린스키 오페라 <돈 카를로> 공연도

▎2015년 로열 오페라 <카르멘> 중 돈 호세 역으로 출연한 이용훈의 커튼콜 장면. / 사진제공· ⓒRoyal Opera House
2016년에도 ‘클래식의 수도’는 런던이다. 콘텐트의 질보다 클래식에 사람과 돈이 몰리는 시장으로서의 의미에서 그렇다. 런던 심포니(LSO)를 제외한 런던 필하모닉,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BBC 심포니의 경쟁력은 독일의 베를린이나 뮌헨은 물론, 파리 소재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이나 파리 오케스트라와 견줘 연주력에서 우위를 점한다고 보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영국 출신의 사이먼 래틀이 베를린 필하모닉 감독을 마치고 LSO 감독을 시작할 2017년 9월은 런던 클래식 생태계의 질적 성장을 위한 중요한 모멘텀이 될 것이다.

래틀의 등장과 함께 영국 클래식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공연장 신축이 사실상 확정됐다. 리허설 시간 확대와 회당 연주료로 정산되는 런던 주요 악단들의 단원 급여 체계에 대한 리뷰도 LSO 안팎에서 심도 있게 논의 중이다. 인물 하나로 문화 지형이 바뀔 것인가에 대해 런던은 역사를 통해 답변을 대신하고 있다. 1700년대 초반 런던에 오라토리오와 오페라 문화를 발흥시킨 인물은 헨델이었고,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영국 정부의 예술진흥 이론과 정책을 담당한 이는 경제학자 케인스였다. 현대 문화정책 이론의 근간인 ‘팔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도 이때 나왔다.

“영국 고급문화는 홈리스(homeless) 신세”


▎2015년 이용훈이 열연했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는 오랜 기간의 침체기를 벗어나 도약의 계기를 맞았다. / 사진제공·한정호
런던에서 걸출한 리더와 음악가가 공연 생태계 전반을 뒤바꾼 사례는 근래에도 있었다. 2001년부터 12년 동안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행정감독을 맡았던 토니 홀 현 BBC 사장과 2002년부터 지금까지 로열 오페라 음악감독을 수행 중인 지휘자 안토니오 파파노가 두 주역이다. 이들의 공로로 로열 오페라는 뉴욕 메트, 밀라노 스칼라, 파리 오페라, 빈-베를린-바이에른 국립 오페라와 함께 여전히 세계 최고급 메이저 오페라 극장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홀과 파파노가 등장하기 전, 뉴밀레니엄을 앞두고 로열 오페라가 처했던 현실은 음악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열악했다. 1987년 이후 2002년까지 15년간 지속된 전임 음악감독 베르나르트 하이팅크의 리더십은 언제나 “이탈리아 오페라에 미문한 지휘자”라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1980년대 대처 내각은 오페라와 발레로 대표되는 고급문화 지원을 축소하는 정책 기조를 유지했다. 1990년대 초·중반, 존 메이저 내각과 1990년대 중·후반, 토니 블레어 노동당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정부의 지침을 따르는 행정감독과 하이팅크의 불화는 1990년대 영국의 오페라 현실을 상징하는 갈등이었다.

1997년부터 1999년까지 본거지인 코벤트가든 오페라하우스의 레노베이션을 위해 산하 오페라단과 발레단은 주변 공연장을 떠돌아다녔다. 런던 주류 미디어의 힐난은 극치를 이뤘다. “영국 고급문화는 홈리스(homeless) 신세”라는 자조가 나왔다. 결국 로열 오페라 위원회가 구해온 해결사는 미국의 경영 컨설턴트 마이클 카이저였다. 로열 오페라 부임 이전에도 그는 도산 위기에 빠졌던 아메리칸 발레시어터를 재정 위기에서 건져냈다.

1998년 9월 카이저는 로열 오페라 행정감독에 취임했다. 2000년 6월 워싱턴 케네디 센터 감독으로 옮겨가지 전까지, 그는 로열 오페라의 여러 전통에 메스를 가했다. 단적으로 오페라 전막이 끝나면 무대에 던져지던 꽃다발 투척을 금지했다. 정부가 오페라하우스에 대한 지원금을 늘리면 관람료를 낮추고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여론도 그를 지지했다. 1968년 이후 영국의 고급문화 영역에선 오랫동안 사라졌던 자금 운용이었다. 정부의 지원 감소에 항의로 일관한 오페라 직원 노조도 카이저의 방식에 호응했다. 사임을 밝혔던 하이팅크도 복귀했다.

영국을 대표하는 예술기관이 실제로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정신적 충격은 자못 심각했다. 토니 홀의 취임으로 치유의 노력이 본격화됐다. 토니 홀은 1996년부터 2001년까지 BBC 보도본부장직을 수행한 적이 있었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 감독에 부임해서 조직을 정비하면서 개혁을 시작했다. 음악적 리더십을 행정감독이 존중하고 발레단과 오페라단의 의사결정 구조를 바꿨다. 조직원 사이의 갈등부터 치유를 시작했다.

트위터를 활용해 오페라 대본을 제작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에서 열연하는 이용훈. 세계 정상의 코스를 밟으며 전성기를 맞고 있다. / 사진제공· ⓒMet Carmen
조직의 말단부터 부서 수장까지 시즌 프로그램 마케팅 회의에 모두 참가시켰다. 결론을 도출할 때까지 토론을 장려하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리더십이다. 홀이 BBC에서 기자들과 함께하던 기술의 연장이었다. 민간 기업이 변화된 로열 오페라하우스 번영을 먼저 예감했다. 자연스럽게 스폰서십의 액수가 늘어났다. 2008년엔 오페라와 거리가 멀던 대중지 <선>도 활용했다. 독자들이 로열 오페라 신문광고를 보내면 추첨으로 780파운드(당시 환율 156만원) 티켓을 30파운드(약 6만 원)에 볼 수 있었다. 2009년에는 트위터를 활용해 오페라 대본을 제작했다. 140자로 글쓰기 제한된 트위터가 집단지성의 광장이 됐다. 홀 휘하의 로열 오페라가 최초로 시도한 실험이었다.

행정감독이 조직정비와 마케팅, 기금 모집에 수완을 발휘하는 동안 음악감독도 예술적 역량에 매진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로열 오페라는 완전히 재기했다. 당시를 기점으로 세계 최정상의 가수들이 로열 오페라의 섭외에 다시 응하게 된 것이 그 증거다. 음악감독 부임 초기, 파파노는 전임자들에 비하면 중량감이 떨어지는 인물이란 평가를 받았다. 그랬던 언론도 음악성과 연주력을 기준으로 파파노를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파파노는 BBC 다큐멘터리에 자주 출연하면서 인지도를 높였다. 방송에서 보여준 푸근한 인상을 오페라 극장으로 청중을 견인하는 셀리브리티 역할을 자임했다. 1970년대 앙드레 프레빈 이후 영국에서 오랫동안 사라졌던, 대중과 친근한 일류 지휘자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지금도 파파노가 지휘하는 전막 오페라는 거의 모두 매진이다. 늘 코벤트가든을 지켜온 부유층 관객 뿐 아니라 청년층 신규 관객까지 로열 오페라의 충성적 고객으로 변모했다. 그 중심에 토니 홀과 파파노가 있었다. 2013년 홀은 BBC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홀을 대신해 로열 오페라의 행정감독에 오른 알렉스 비어드 역시 홀의 운영 방식을 이어가고 있다.

서양 오페라 시즌은 매년 9월 시작해서 6월에 종료된다. 오페라 톱스타들은 한 극장에 묶이지 않고 여러 메이저 오페라를 순회하면서 현지 관객과 교감한다. 뉴욕 메트를 시작으로 영국 로열 오페라를 거쳐 독일권 1등급 극장을 돈다. 베를린, 뮌헨, 함부르크, 빈을 거쳐 파리 오페라나 바르셀로나 리세우, 이탈리아의 밀라노 스칼라, 로마 국립 오페라를 거치는 식이다. 이 극장이 최고의 오페라 극장인지 확인하려면 전막 캐스팅을 확인하면 된다. 현재 연주력과 흥행면에서 공히 세계를 제패한다고 평가받기에 충분한 가수들이 있다. 요나스 카우프만,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이상 테너), 안나 네트렙코와 디아나 담라우(이상 소프라노) 등이다. 이들을 볼 수 있는 곳이 최고의 오페라 현장이다.

로열 오페라도 이들을 볼 수 있는 극장 군에 속한다. 이들 외에도 오페라 제작진이 선호하고 관객이 만족하는 보석 같은 주역이 많다. 특히 이번 시즌 로열 오페라에는 한국인 성악가의 약진이 눈부시다. 2016년 1월 <토스카>에는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이 스카르피아 역을 맡았다.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의 공연일에 5회 출연한다. 3월에는 <라 트라비아타>에 테너 정호윤이 제르몽 역으로 4회 출연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을 중심으로 활동 중인 테너 이용훈은 2015년 가을과 겨울 시즌 로열 오페라를 휘어잡은 최고의 성악가 중 한 명이었다. 11월 <카르멘>과 12월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서 돈 호세와 투리두를 연기했다. 이미 2013년 <토스카>를 통해 런던에서 실력과 시장성을 입증했다. 2010년대 이후 이용훈은 요나스 카우프만과 같은 역에 더블 캐스팅되거나 서로의 역할을 이어받는 형태로 공연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12월 런던 공연은 기존의 뉴욕 스케줄과 맞물려 당초에는 출연이 어려웠지만 파파노의 간청으로 이뤄졌다.

올해 마흔 넷의 이용훈은 요즘들어 세계 정상급의 성악가가 보이는 전성기의 전형을 증명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유럽 본토에서의 데뷔 직후 목소리에 치명적인 질환을 얻어 은퇴 기로에 서기도 했다. 이를 극복해낸 이후의 이용훈의 목소리는 눈부시다. 2010년 이후 보여 온 전막에서의 활동 궤적은 한국 국적을 떠나 최고의 테너가 누릴 수 있는 연주 여정을 보여준다.

가수의 역량을 오페라 극장이 신뢰하는 지표는 ‘재초청’이다. 메트로폴리탄(2010, 2011, 2012, 2014, 2015), 바이에른 슈타츠오퍼(2012, 2014, 2015), 빈 슈타츠오퍼(2010, 2013), 베를린 도이치오퍼(2011, 2012), 영국 로열 오페라(2013, 2015), 취리히 오페라(2013, 2014), 로마 국립 오페라(2011, 2015). 시드니 오페라(2013, 2015)가 이용훈을 주역으로 다시 불렀다.

메이저 오페라 극장을 매료시키는 화려한 활동에도 불구, 이용훈을 국내에서 오페라 전막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용훈이나 카우프만의 경우 향후 5년치 시즌 스케줄이 정해져 있는 게 기본이다. 예정된 스케줄이 갑자기 취소된다거나, 공교롭게 그 시기에 한국에서 이용훈이 만족할 만한 예술적 여건의 스태프들이 함께하는 행운이 따라야 한다. 그런 궁합의 전막이 올라간다는 보장이 없으면 오페라 주역 이용훈을 국내에서 보기란 쉽지 않다.

이용훈을 한눈에 알아 본 게르기예프의 심미안

보통 세계 메이저 오페라단의 투어를 아시아에서 1주일간 유치하는 데 드는 제반 비용은 30억∼50억원이다. 1993년 정명훈과 함께한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 <살로메> 내한 이후 20년 넘게 한국에선 메이저 오페라단의 전막 공연을 볼 수 없었다. 단지 스크린으로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오페라 영상이 이를 대체하고 있다. 예산과 회계 연도의 문제로 이용훈뿐 아니라 세계를 주름잡는 가수들을 오페라 전막으로 부르는 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매년 12월초 제야와 송년 음악회 출연이 가능한지 여부를 묻는 게 우리 실정이다.

2016년 전막에서 활동하는 이용훈을 가깝게 볼 수 있는 곳은 일본 도쿄다. 올해 가을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지휘하는 마린스키 오페라 <돈 카를로> 일본 투어에 이용훈이 합류한다. 바덴바덴 페스티벌에 마린스키 오페라 공연 도중 ‘마린스키의 차르’ 게르기예프가 이용훈을 만났다. 인터미션 시간에 이용훈의 방에 들어온 게르기예프가 “앞으로 너랑 같이하고 싶으니 부를 수 있는 배역을 모두 적으라”고 종이와 펜을 건네면서 이들의 인연이 깊어졌다. 러시아의 가수들을 세계 초일류 가수로 길러낸 게르기예프의 심미안이 어떤지 확인하려면 올가을 일본에 가면 된다.

지리적 변방을 벗어나 서울이 도쿄나 시드니처럼 오페라 시장의 한 축으로 자리 잡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그 단서는 이용훈의 활동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과 호주는 오페라를 제작하면서 돈을 벌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당대를 대표하는 가수를 유인하는 매력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물질적 보상 이외의 분야에서 예술가가 감동할 요소를 찾아냈다.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일, 그리고 서구 시장에서 받는 출연료 이상의 대우가 그것이다.

도쿄는 1960∼70년간 오페라에 자본을 투자하고 신뢰를 축적했다. 시드니는 미항의 거점이 된 오페라극장을 지었다. 서울시장 시절 이명박이 입안한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건립이 무산된 다음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2020년경 부산에 지어질 오페라하우스의 세부 계획은 아직 알려진 게 없다. 일류 가수의 오페라 캐스팅은 5년 전 작업이 기본이다. 2019년 메트 오페라는 <일 트리티코> HD 라이브에 이용훈을 출연시킨다. 이용훈을 영화관에서 볼 것인가, 오페라극장에서 볼 것인가. 가수의 전성기는 유한하기에 고민이 따를 수밖에 없는 선택이다.

- 런던=한정호 음악평론가

201602호 (2016.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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