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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임의 ‘바닷가 서재’] 이야기의 힘 

삶으로서의 소설, 또는 소설가의 삶 

함정임 소설가, 동아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무라카미 하루키, 제임스 미치너가 말하는 ‘직업 소설가’의 쓰기란?
너무 멀리 왔다. 가끔 그런 날이 있다. 미포에서 시작된 바닷가 산책이 청사포와 구덕포를 지나 송정 해안 끝자락까지 나아가는 날이. 무슨 엄청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가. 그렇지 않고서는 끊임없이 귓전에 부서지는 파도소리를 전혀 듣지 못한 채 그렇게 멀리까지 갈 수는 없다. 서재를 벗어나기 전까지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고 있었다. 마치 옆 사람에게 들려주듯 친근한 어조로 쓴 소설과 소설가에 대한 소회를 따라가며, 처음 그의 소설을 접했던 순간을 회상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를 만난 것은 대학 졸업 후, 기자로 재직하던 사에서였다. 완성된 책으로서가 아니라 누런 원고지에 펜으로 쓴 번역 원고 형태였다. 이것은 하루키가 한국에 상륙하는 첫 장면에 속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원고에 손을 얹었던 순간이 떨리는 장면으로 각인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때는 주어지는 일들 중 하나일 뿐 특별한 감동이 없었다. 여러 편집자의 교정을 거쳐 책으로 출간되기 직전 회의가 있었다. 제목과 표지에 관한 것이었다. 아무도 하루키가 누구인지 몰랐고, 당연히 그의 소설을 읽어본 사람이 없었다. 책을 만들면서 최초로 읽었고, 그것을 쓴 사람이 하루키라는 이름의 생소한 작가라는 것을 편집자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일부러 환기할 뿐이었다. 책상 한편을 차지할 정도로 방대한 분량의 원고 상태여서인지, 원고지에 쓰인 번역자의 필체 탓이었는지, 오탈자에 신경을 쓰며 교정에 몰두한 탓이었는지, 처음 완독했을 때의 느낌은 그다지 엄청나지 않았다.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에 이르는 나날은(저 개인적으로는 저의 십대의 끝에서 이십대의 초기에 걸친 시기가 됩니다만), 우리에게 이른바 ‘멀미 나는 시기’였습니다. 그 시절엔 주위의 모든 사물이 흔들흔들 크게 요동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요동은 매우 오랫동안 강력하게 계속되어, 그것이 잠잠해진 후에도 우리에겐 아직도 땅이 줄곧 요동치고 있던 것처럼 느껴졌던 것입니다. (…) 이 소설은 정치적인 소설도 아니고, 사회적인 문제를 다룬 소설도 아닙니다. (…) 제가 여기에서 그려내고 싶었던 것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 한 시대를 감싸고 있는 분위기라는 것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무라카미 하루키, 한국독자에게, , 유유정 옮김, 문학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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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호 (2016.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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