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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쇼와 육군의 광기를 해부하다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glutton4@joongang.co.kr
집단 히스테리라고밖에 볼 수 없는 잔혹성의 유래… 더러운 전쟁 고백하고 참회한 자들이 남긴 정직한 기록

인간의 어리석은 행위 중 최고로 꼽히는 것은 아마도 맹목적인 폭력에의 몰두, 그중에서도 전쟁이라 할 수 있겠다. 제2차 세계 대전은 당시 거의 모든 인류가 참여했던 거대한 폭력 행위의 결정판이다. 나치 독일, 군국 일본이 전쟁 범죄의 표상으로 낙인 찍혔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 역시 반인륜 전쟁 범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전쟁의 본질적 사악성은 승자와 패자, 피아를 가리지 않고 강림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본 군국주의는 훨씬 더 강렬한 혐오와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군국주의자들은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을 통해 상대국은 물론 자국민에게도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다. 그들은 뭇 생명을 초개와 같이 불태워 스러지게 했다. 집단 히스테리라고밖에 볼 수 없는 그 잔혹성은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쇼와 천황이 재위하던 시대의 일본제국 육군의 구조 안에 그 해답의 몸통이 있다.

논픽션 작가 호사카 마사야스는 일본의 건군(建軍) 당시부터 종전에 이르기까지 육군의 전사(戰史)를 다루며 그 최상위 지도부를 치밀하게 파헤쳤다. 군부의 A급 전범과 장교, 일반 병사를 두루 만나 인터뷰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과 대만의 군인, 외교관,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관계자의 증언과 일기, 기록 등을 찾아나섰다.

이 책이 집필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경. 메이지 말기에서부터 제2차 세계대전의 현장, 전후 쌓여온 시간 속에서 전쟁의 잔재를 하나씩 끄집어내어, 그것이 어떻게 기억으로 퇴화되지 않고 현재를 지배하고 있는지를 드러냈다. 인터뷰 당시 이미 70~80세 노인이었던 참전 군인은 신기하게도 전장에서 저지르고 당했던 일만큼은 또렷이 기억해냈다. 그러한 증언이 하나씩 모여 이 책의 토대가 됐다. 이들은 전쟁 중 부녀자와 노인, 소년, 유아를 장난감처럼 다루며 살해할 만큼 타락했었다. 그 같은 타락이 오히려 그 더러운 전쟁을 고백하고 참회할 용기를 그들에게 주었다니 슬픈 역설이다.

일본 내 우익은 이 책에 ‘자학사관’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철저히 일본제국 육군이 저지른 오류를 밝히기 위해 집필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의 역사관을 ‘자성(自省)사관’이라 부르며 우익에 맞섰다. 1136쪽에 달하는 이 책이 그 볼륨에 값하는 신뢰감을 주는 이유일 것이다. 대본영 참모의 자화자찬에 가까운 전쟁사를 믿을 것인가, 아니면 살아남은 병사들이 어렵사리 들려주는 고통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전사를 다시 쓸 것인가? 저자는 이런 문제의식으로 이 역저를 완성했다고 한다. 일본의 양심이라 할 만하다.

-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glutton4@joongang.co.kr

201612호 (2016.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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