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히스테리라고밖에 볼 수 없는 잔혹성의 유래…
더러운 전쟁 고백하고 참회한 자들이 남긴 정직한 기록
인간의 어리석은 행위 중 최고로 꼽히는 것은 아마도 맹목적인 폭력에의 몰두, 그중에서도 전쟁이라 할 수 있겠다. 제2차 세계 대전은 당시 거의 모든 인류가 참여했던 거대한 폭력 행위의 결정판이다. 나치 독일, 군국 일본이 전쟁 범죄의 표상으로 낙인 찍혔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 역시 반인륜 전쟁 범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전쟁의 본질적 사악성은 승자와 패자, 피아를 가리지 않고 강림하기 때문이다.그럼에도 일본 군국주의는 훨씬 더 강렬한 혐오와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군국주의자들은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을 통해 상대국은 물론 자국민에게도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다. 그들은 뭇 생명을 초개와 같이 불태워 스러지게 했다. 집단 히스테리라고밖에 볼 수 없는 그 잔혹성은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쇼와 천황이 재위하던 시대의 일본제국 육군의 구조 안에 그 해답의 몸통이 있다.논픽션 작가 호사카 마사야스는 일본의 건군(建軍) 당시부터 종전에 이르기까지 육군의 전사(戰史)를 다루며 그 최상위 지도부를 치밀하게 파헤쳤다. 군부의 A급 전범과 장교, 일반 병사를 두루 만나 인터뷰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과 대만의 군인, 외교관,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관계자의 증언과 일기, 기록 등을 찾아나섰다.이 책이 집필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경. 메이지 말기에서부터 제2차 세계대전의 현장, 전후 쌓여온 시간 속에서 전쟁의 잔재를 하나씩 끄집어내어, 그것이 어떻게 기억으로 퇴화되지 않고 현재를 지배하고 있는지를 드러냈다. 인터뷰 당시 이미 70~80세 노인이었던 참전 군인은 신기하게도 전장에서 저지르고 당했던 일만큼은 또렷이 기억해냈다. 그러한 증언이 하나씩 모여 이 책의 토대가 됐다. 이들은 전쟁 중 부녀자와 노인, 소년, 유아를 장난감처럼 다루며 살해할 만큼 타락했었다. 그 같은 타락이 오히려 그 더러운 전쟁을 고백하고 참회할 용기를 그들에게 주었다니 슬픈 역설이다.일본 내 우익은 이 책에 ‘자학사관’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철저히 일본제국 육군이 저지른 오류를 밝히기 위해 집필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의 역사관을 ‘자성(自省)사관’이라 부르며 우익에 맞섰다. 1136쪽에 달하는 이 책이 그 볼륨에 값하는 신뢰감을 주는 이유일 것이다. 대본영 참모의 자화자찬에 가까운 전쟁사를 믿을 것인가, 아니면 살아남은 병사들이 어렵사리 들려주는 고통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전사를 다시 쓸 것인가? 저자는 이런 문제의식으로 이 역저를 완성했다고 한다. 일본의 양심이라 할 만하다.-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glutton4@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