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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지혜] ‘결혼 주기’ 별로 보는 이혼 위기 극복법 

결혼은 매 순간에 충실한 짧은 호흡으로... 이혼 결심은 상대방 고려해 긴 호흡으로 

정은세(가명) 변호사 ycnexa2me@gmail.com
신혼, 임신·출산과 중년의 위기, 황혼이혼까지… 결혼생활의 고비 때마다 일어나는 부부관계 위기 대처법은?

▎결혼식을 올리는 젊은 남녀의 모습. 어떤 이에게 신혼은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그때 이혼했어야 하는데’ 라고 후회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누구나 이번 생은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다. 부모가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교육과 책 등으로 배운 지식을 통해 인생의 고비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미리 준비한다.

인생에 주기가 있듯이 결혼에도 주기가 있다. ‘이런 게 결혼생활이었어?’ 놀라게 되는 신혼을 거쳐, 임신과 출산으로 상상도 못한 당혹스러운 상황에 처한다. 이후 자녀를 키우고 교육시키면서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제대로 맛보게 된다.

부부에게는 부모 역할도 있지만 남자와 여자이기에 다른 인연에서 봄날을 꿈꾸기도 하고, 일탈을 감행하기도 한다. 그렇게 좌충우돌로 지내다 보면 어느 새 할머니나 할아버지로 불리는 때를 맞게 된다. 인생 주기 별로 맞닥뜨리는 사건이 다르듯이 개인차가 있지만 부부 사이에서도 ‘결혼 주기’에 따라 갈등이 극대화되는 위기의 순간이 있다.

물론 주기와 관계없이 대부분의 이혼소송에서는 남녀가 서로를 향해 공격하는 전형적인 패턴도 있다. 한 예로 아내 쪽에서는 남편의 폭언과 모욕을 주로 문제 삼는다. 생활비를 벌어온다며 인격적인 무시를 받아왔다며 이혼청구를 하는 식이다.

이때 남편의 해명도 대체로 비슷하다. “폭언한 적은 없고, 오히려 남편 대접 한 번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 아침밥 한 번 제대로 챙겨준 적도 없고, 어머니가 집을 찾으면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내면서 시댁을 무시했다.”

대다수 이혼소송은 이혼사유를 유형화할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한 갈등에서 일어난다. 실제로 간이 이혼소장 양식을 보면 이혼사유를 유형별로 분류해 놓고 있다. 이를테면 돈 벌 생각을 안 하는 남편이나 씀씀이가 큰 아내와 같은 경제적 이유, 가정폭력, 배우자의 부모가 괴롭히는 경우, 배우자의 부정한 행위 등이 그 예다.

이런 문제를 안고 있는 부부가 이혼까지 가느냐 아니냐의 차이는 대체로 부부의 가치관과 성격 그리고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무엇보다도 결혼 주기 별로 대처 방법이 달라진다. 이혼 전문변호사로서의 경력과 직접 이혼을 해본 경험을 토대로 현재 갈등을 겪고 있는 부부에게 결혼 주기 별 위기 사례와 극복법을 소개한다.

신혼, 갈라서기 좋은 ‘기회의 시간’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 위자료 문제에 이견이 없다면 법적 절차를 거칠 필요 없이 한쪽이 이사를 나가면 관계가 정리된다. 결혼한 뒤 곧바로 혼인신고를 안 하는 것도 때론 현명한 방법일 수 있다.
대부분의 실수는 주로 신혼 때 일어난다. 어떤 이에게 신혼생활은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고 어떤 이에게는 ‘그때 이혼했어야 했는데…’라고 말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다. 연애 기간과 상관없이 결혼해서 한 집에서 살면서부터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서로에 대한 적응기간이 지나면 봐줄 만한 단점도 있는 반면 어떤 단점은 결혼생활 내내 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상대방의 행동에 대해 일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면 혼인신고를 미루는 게 낫다. 이혼 결단이 빠를수록 좋은 게 신혼이다.

한 30대 여자는 남편의 조건이 썩 마음에 든 건 아니었지만 몇 년 동안 자기만 바라보는 순정에 끌려 결혼을 승낙했다. 결혼 준비를 하는 동안 다른 예비부부처럼 갈등이 있었지만 특별히 심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결혼식 당일 시댁 친척이 많아 사진을 몇 번 나눠 찍어야 했을 때는 우애가 좋은 집안인 것 같아 든든하기도 했다.

그런데 신혼여행에서 불길한 느낌이 시작됐다. 신혼여행이 아니라 시댁 어른들의 선물을 사는 여행인 것 같았다. 아침마다 남편은 시댁에 안부전화를 하라고 채근했다. 여자가 남편에게 직접 통화하라고 요구하면 남편은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여자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했다.

시댁은 먼 친척의 대소사를 모두 챙기고 뭐든 남자가 우선인 집안 분위기인 반면에 여자는 단출한 집안에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란데다 외국 생활도 오래해서 가부장적인 분위기를 접해볼 기회가 전혀 없었다. 결혼 생활이 시작되자 여자의 고민은 더 커졌다. 매주 택배로 반찬을 부쳐주시는 시어머니의 정성이 거북했고 주말이면 먼 친척의 대소사에 부부 동반으로 참석해야 하는 것도 이해 안 갔다. 남편의 수저를 따로 두지 않고 섞어서 쓴다는 이유로 시어머니에게 야단을 맞았을 때는 너무 서러워서 눈물도 났다.

남편의 사랑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여자는 이혼을 요구했다. 여자는 그런 시댁에 맞춰가면서 살 자신이 없다고 단언했다. 남편은 여자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애쓰면서도 시댁하고 거리를 두고 지내는 건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시부모님은 명절에만 뵙고, 평소에는 부부 중심으로 지내면 안 되겠냐는 여자의 마지막 제안을 남편은 거절했다. 남편은 여자가 힘들어하는 이유를 공감하지 못했고, 여자는 시댁에 적응할 마음이 없었다.

협의이혼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여자가 상담을 왔다. 반년도 채 안 되는 결혼생활이었고 남편의 유책을 주장하기에는 사유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여자의 개선 노력도 부족해 보여 재판상 이혼을 권하기가 어정쩡했다. 우리 법원은 재판상 이혼을 위해서는 결혼 생활이 파탄 난 상태여야 하고 이혼 청구를 한 원고가 그 파탄에 이르기까지 갈등을 극복하기 위하여 어떤 노력을 했느냐를 따지기 때문이다.

여자는 신혼여행 때 느낌이 안 좋았는데 혼인신고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며 눈물을 떨궜다. 결국 몇 달간의 별거 끝에 남편이 이혼에 동의해줘서 협의이혼이 됐다.

혼인신고의 여부는 관계를 청산하는데 하늘과 땅 차이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 위자료 문제에 이견이 없다면 법적 절차를 밟을 필요가 없이 어느 한 쪽이 이사만 나가면 정리된다. 그런데 결혼한 지 한두 달 안에 헤어지는 경우에는 결혼식과 혼수비용, 예물과 예단비 등을 어떻게 할지를 두고 분쟁이 생긴다.

우리 판례에 의하면 결혼할 의사가 있었다면 예물은 돌려주지 않아도 되고 예단비는 사정을 감안해 반환받을 수 있다. 혼수는 장만한 사람이 가져가면 된다. 그러나 결혼식 비용은 돌려받을 수 없다. 소위 ‘사기 결혼’인 경우에는 예물도 돌려받을 수 있지만 법에서 사기 결혼이 인정되는 범위는 좁다.

결혼식 올렸어도, ‘혼인신고’는 신중해야


▎일반적으로 혼인무효를 혼인신고 기록이 남지 않는 절차로 보고 이혼보다 선호하는 추세다. 그러나 혼인할 의사가 없는 상황인데 상대방이 일방으로 혼인신고를 해야만 혼인무효가 가능하다.
상담실로 들어서는 모녀 얼굴이 상기돼 있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된 때라 혼인신고는 안 한 상태였다. 남편은 언니 소개로 만났고 6개월 남짓한 연애 기간은 일 때문에 자주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여자는 신혼여행에서 겪은 남편의 문제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했다.

자기주장이 너무 강하고 신부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으며 의견 대립이 있을 때마다 언뜻 보이는 신랑의 눈빛이 너무 공격적으로 느껴졌다고 한다. 그리고 남편의 성기능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고급스러운 풀 빌라를 빌려 열흘 가까이 둘이서만 지냈는데도 잠자리가 거의 없었고, 그것마저 성공한 적이 없다고 했다. 연애 때도 비슷했다고 한다. 마지막 날 여자가 분위기를 만들어서 그 얘기를 꺼냈더니 남편은 입을 닫아버리고 그 다음날 혼자 본가로 가버렸다고 한다.

여자의 어머니는 격앙돼 ‘사기 결혼’이라고 주장했다. 다행히 혼인신고는 안하고 결혼식만 했지만 딸이 졸지에 사회적으로 이혼녀가 된 상황이 원통하다며 위자료는 몇 억원을 받아도 신통치 않다고 했다. 예물과 예단은 물론 결혼식 비용도 받아야겠다고 강조했다.

혼인신고가 안 된 경우 이혼 절차가 아니라 위자료 등을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으로 다퉈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남편이 실제로 성기능에 문제가 있는지부터 밝혀야 했다. 남편 측은 ‘성기능에 전혀 문제가 없고, 여자가 너무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바람에 위축돼 그렇게 됐다’며 신체감정을 받겠다고 나섰다.

병원에 1박2일 입원한 상태에서 받은 검사 결과는 정상이었다. 하지만 여자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던 신랑의 싹이 노랗다는 이유에서다. 위축됐다는 남편의 말을 믿어도 될 만큼 여자는 당차고 화끈했다. 신혼집에서 여자가 짐을 빼는 걸로 관계는 정리됐다.

만일 혼인신고를 한 상황이었으면 재판상 이혼이 쉽지 않았을 사례다. 남편의 성기능적인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곧 ‘사기 결혼’이 되거나 이혼사유가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치료하면 개선 가능성이 있고 원만한 성관계도 기대해볼 정도라면 서로 노력해야 할 부부로서의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인 즉 남편이 치료에 소극적이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이혼사유가 될 수 있다.

혼인신고는 결혼식을 했다거나 동거를 시작했다는 사실과 별개로 신중히 진행할 필요가 있는 절차다. 남편의 경제적 무능력을 사유로 한 이혼사례를 보면 결혼 직후 남편이 재정 상태를 속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경우가 많다. 폭력성과 바람기 또한 신혼 때 감별이 가능한 종류다. 최근 일부러 혼인신고를 늦게 하는 커플이 많아지고 있는데 현명한 방법인 것 같다.

결혼식만 올리고 혼인신고는 하지 않은 상황에서 헤어진 뒤 다른 상대와 다시 결혼한 경우가 문제되기도 한다. 상대방이 재혼 사실을 속였다며 이혼을 요구하는 것이다. 일반인의 인식에서는 혼인신고는 물론 동거 경험도 혼인 전력의 범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당시 상담자에게 “법으로만 따지면 초혼”이라며 돌려보냈다.

짧은 결혼생활을 한 경우 이혼 절차를 정식으로 밟지 않고 혼인무효로 없애버리고 싶어하는 이도 많다. 주로 혼인의사 없이 혼인신고가 된 경우 혼인무효를 원한다. 한 연예인을 너무 흠모해서 몰래 혼인신고를 했다거나 스토커 기질이 있는 연인의 일방적인 혼인신고가 그 예다.

대학생 남녀와 어머니가 상담을 왔다. 같이 온 어머니는 여학생의 어머니였는데 딸의 혼인무효 절차를 도와달라고 했다. 대학생 남녀는 연인 사이로 양가에서 교제를 반대하자 대뜸 혼인신고를 했다고 한다. 이를 여학생의 아버지가 알게 되면서 한바탕 난리가 났고, “혼인무효로 서류를 깨끗하게 만들어서 오라”는 엄명을 받았다는 것이다. 남학생은 사랑하는 여자가 집에서 쫓겨나게 생긴 상황이라 뭐든 하겠다는 태도였다.

임신 초기에 남편의 배려·희생 필요한 이유


▎이혼소장을 쓰기 위해 여성 의뢰인에게 ‘결혼 생활에서 겪은 일을 말해보라’고 하면 임신과 출산, 산후조리 때 남편의 무관심에 대한 서운함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혼인무효는 혼인관계증명서에 혼인신고 기록이 남지 않는 절차라 믿고 이혼보다 선호하는 편이다. 그러나 혼인무효결정을 받으면 혼인신고 기록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혼인이 무효가 됐다는 새로운 기록이 혼인관계증명서에 기재된다.

게다가 혼인무효는 혼인 의사가 없는데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혼인신고를 해야 성립되기 때문에 ‘허위로 혼인신고를 했다’는 공정증서원본부실기재죄 판결이 있어야만 받아들여진다. 쉽게 말해 부부 중 누구 한 명에게 전과가 생겨야 혼인무효가 가능하다. 없는 죄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데다, 이런 희생(?)을 감내하는 상대방이라면 이혼보다는 같이 살라고 권하고 싶다.

참고로 앞서의 남학생은 희생(?)을 거부했다. 전과자가 되는 건 싫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문제로 갈등을 겪다 둘은 협의이혼으로 헤어졌다. 어떤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감으로 혼인신고까지 감행했는데 결국 그 혼인신고 때문에 헤어지게 된 것이다. 철부지 대학생 커플의 결혼은 비단 이 이유만이 아니라도 오래가기 힘들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 이혼절차를 도와줬다.

이혼변호사로서 가장 안타까운 때는 남에 비해 심각한 사유가 아닌데도 유독 대처하는 방법이 미흡하거나 극단적인 경우다. 이런 때 이혼 결정을 잠시 미뤄보라고 설득하는 방법으로 가끔 ‘사주 상담’를 권할 때도 있다. 때로는 변호사보다는 법이 아닌 영역에서의 조언이 필요할 때도 있는 것 같다. 역리학자로부터 “일시적인 갈등일 뿐 극복하고 나면 장차 잘살 부부다”라는 말을 듣고 다시 잘살게 되는 경우가 제법 된다.

최근 딩크족이 늘었지만 여전히 난임과 불임으로 갈등을 겪는 부부도 많다. 임신과 출산이 그저 행복한 부부도 있고 새로운 환경에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갈등이 극대화되는 부부도 있다. 사실 임신 초기는 남편의 배려와 희생이 어느 시기보다 필요한 때고 심리 상담을 적극적으로 받아야 하는 시기다.

임신은 예상보다 여자에게 강도 높은 신체적 변화와 심적 부담을 준다. 건강한 임산부라도 임신 초기에는 입덧으로 고생하며 중기에는 빈뇨와 잔뇨감으로 인한 고생과 만성변비로 ‘화장실에서 뒷목 혈관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상상까지 하게 된다. 옥시토신의 분비로 태아에 대한 모성은 끝이 없지만 남편의 철딱서니 없는 말 한마디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한(恨)이 된다.

산통만큼 어려운 게 수유다. 젖이 잘 돌아 쉽게 수유를 하는 산모도 있지만 대개는 수유에 어려움을 겪는다. 젖을 빠는 아기나 산모 모두 진땀을 흘려가며 노력해야 하는 과정이다.

이혼 소장을 쓰기 위해 결혼 생활에서 겪은 일을 써오라고 하면 빠지지 않는 얘기가 임신과 출산, 산후조리 때 남편으로부터 당했던 서운했던 일이다. 아내가 먹고 싶다는 음식을 사러 가면서 남편이 무심결에 뱉은 욕설을 토씨 하나 놓치지 않고 써오고 시댁에서 아기에 대해 섭섭하게 했던 말은 시간까지 정확하게 기억해서 써오기도 한다.

임신과 출산은 신혼 기간 동안 서로에 대해 어느 정도 적응돼 부부로서 안정기를 찾아갈 즈음 또다시 맞닥뜨리는 새로운 환경이라 갈등 요인이 많아질뿐더러 아내가 가장 예민한 때라서 그런 것 같다. 때문에 남편의 무조건적인 희생과 배려가 필요한 때다. 남녀로서의 모습만 알다가 부모로서 책임지고 희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서로를 존경하게 되고 인생을 같이할 수 있겠다는 절대적인 믿음을 갖게 되는 절호의 기회 또한 이때다.

여자는 태아의 존재를 느끼는 순간부터 모성을 갖게 되지만 남자는 아이와 소통될 때부터 부성을 갖게 된다. 그래서 남자는 아이가 눈을 맞추고 옹알이라도 시작하게 되면 육아에 적극적이게 되고 아이가 커갈수록 더 애착을 보인다고 한다. 남편이 아이의 출생에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더라도 공감능력이 여자보다 덜 발달한 남자인 점을 고려해서 채근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마음으로 지켜봐줄 필요가 있다.

남편이 육아에 비협조적이고 특히 경제적으로 무능하면 아내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다.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양육자가 부부밖에 없는 경우 아내가 받는 스트레스는 심신의 피폐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시기는 결혼 생활한 지 몇 년에 불과해서 설사 이혼한다 해도 재산분할이 얼마 안 된다. 돌배기 아이를 두고 이혼을 고민하는 경우 변호사로서 해줄 수 있는 말이 별로 없다.

자녀 교육 문제로 부부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도 있다. 자녀 교육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아내 때문에 갈등을 겪던 부부에게 우리 법원은 아내에게 파탄책임을 묻고 이혼을 인정한 예가 있다.

이혼소송에서 아내의 교육열은 자기희생적인 훌륭한 엄마로 보이게 하고 때로는 자존감이 부족한 비정상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보이게도 한다. 씁쓸한 고백을 하면, 이혼 조정에서 자녀가 좋은 대학을 간 경우 이를 엄마의 공이라고 주장하면서 남편에게도 좋은 아내였다고 주장하면 어느 정도 먹힌다는 사실이다.

남자는 아내의 히스테리를 더는 받아줄 마음이 없었다. 산후우울증으로 이해하고 아내가 때리는 주먹질도 고스란히 받아줬다. 시댁 식구 모두 보기 싫다고 해서 손녀를 보고 싶어하는 부모님에게 집으로 오지 말라고도 했다. 하지만 아내의 신경질과 폭력은 줄지 않았다. 상담을 받아보자고 설득도 했지만 아내는 덤터기를 씌운다면서 상담을 거부했다.

산후우울증이 왜 아이가 세 돌이 되도록 지속되는지 의심도 들고, 상담도 거부하는 아내를 보면서 이혼을 고려하게 됐다고 한다. 출산 전까지는 특별한 문제가 없던 부부였기 때문에 기다려보자고 했지만, 몇 달 뒤 결국 이혼소송에까지 이르렀다.

아내의 묵은 일기장에 담긴 불륜의 추억


▎황혼 이혼은 대부분이 단순한 헤어짐이 아닌 인생 한풀이에 가깝다. 평소 반평생을 함께한 배우자의 이혼 요구가 있다면 상대를 존중하면서 편안히 들어주는 배려가 필요하다.
이혼소송 중에 법원의 배려로 심리상담 과정을 거치게 됐다. 아내의 숨겨진 트라우마를 알게 되면서 아내를 가엽게 여기게 된 남자는 심리상담을 계속 받기로 하고 소를 취하했다.

배우자의 심리적 트라우마로 인해 갈등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연애 때도 묘한 성격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혼하면서 비로소 심각해지는 것이다. 특히 출산 후 드러나는 트라우마는 자녀에 대한 학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부부가 양육에 모두 적극적이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중년에 찾아온 연애 감정은 부부에게 큰 위기가 될 수 있다. 낙엽을 보면서 ‘이대로 청춘이 끝나는 건가?’ ‘다시 사랑에 들뜨는 감정은 느껴볼 수 없는 건가?’ 갖가지 상념에 빠지게 되고, 숨겨둔 애인과 밀월여행을 다녀온 친구에게 ‘그렇게 살지 말라’며 욕은 하지만 내심 부러운 생각이 든다면….

영화 <메디슨카운티의 다리>의 여주인공 프란체스카의 선택에 대해 입장이 갈리는 것 같다. 유부녀 프란체스카가 사진작가 로버트와 함께 떠나길 바란 쪽과 따라 나서지 않았기에 아름다운 사랑으로 남았다는 쪽이 있다.

배우자의 외도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에게 그들의 사랑은 ‘그래 봐야 불륜’이고 ‘정신 나간 것들’이겠지만 영화의 기본이 된 소설이 발간되자마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걸 보면 프란체스카의 감정은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낸 것 같다. 어떤 외도는 인생에서 소중한 추억이 되고 부부 사이에 나쁜 영향도 끼치지 않고 끝나는 경우도 있다. 들키지 전까지는 그렇다.

가끔 아내의 묵은 일기장에서 이미 끝난 외도 사실을 발견하고 이혼상담을 오는 경우가 있다. 남편은 돌이켜보니 그때 아내가 이상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평상시와 같았다면서 감쪽같이 자신을 속인 아내의 두 얼굴에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보이기도 했다.

사랑에 빠진 아내의 일기장은 날 것 그대로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구체적인 행위 묘사에 감정까지 상세히 써놓았으니 일기장을 본 남편으로서는 용서가 어려웠던 것 같다. “일기장을 그렇게 방치했다는 건 그만큼 그 남자에 대해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거 아니겠느냐?” “애들한테도 잘하고 문제없이 지내고 있지 않았느냐?” “지난 일이니 눈감아 주면 어떠냐?”고 설득도 해봤지만 남편의 태도는 강경했다.

훔쳐 본 일기장을 이혼소송에서 증거로 쓰는 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이미 끝난 관계 때문에 이혼하게 된 아내는 “잘못도 했고 미안한 마음도 크지만 이미 끝난 관계인데…”라며 억울하다는 태도를 보였다.

부부 사이에 큰 문제는 없지만 결혼생활에 지쳐있을 때 느닷없이 찾아 온 연애 감정에 들뜨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들뜬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일기에라도 털어놓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은 흥분 상태도 자연스럽다. 하지만 가정에 충실하겠노라 결심했으면 일기장은 버렸어야 한다. 그게 배우자에 대한 예의이자 혹시라도 있을 위험에서 가정을 지키는 방법이다.

늦바람이 무섭다는 옛말이 있다. 우직한 인상에 40대 후반이었던 한 남자 의뢰인이 그랬다.

남자는 술도 팔고 커피도 파는 카페 여사장과 3년째 사랑에 빠져 있었다. 그는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와 예금을 아내에게 다 주고라도 이혼하고 그 여사장과 살고 싶다고 했다. 아내에게 이혼 얘기는 꺼냈다면서 내게 “여성 변호사니까 아내가 반감이 덜할 것 같아, 아내를 설득해 합의해줄 것을 기대하고 왔다”고 했다.

여사장이 과연 이혼한 빈털터리 남자와 결혼해줄지 궁금하다고 했더니 남자는 고향에 땅이 좀 있다고 하면서 거기서 같이 살기로 얘기가 됐다고 했다. 나라면 믿지 않을 약속을 남자는 쑥스러워 하면서도 들떠서 얘기했다.

협의이혼이 아니면 재판상 이혼은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려주고 “마른하늘에 날벼락일 아이들 생각해서 그냥 연애만 하다 정리하는 게 어떠냐”고 떠보니, 남자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남자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고학으로 대학을 나와 평생 쉬어본 적 없었다. 중매로 만난 아내와는 남매를 얻었지만 정이 없었다. 부부 모두 성격이 무뚝뚝한데다 결혼 전에 연애 경험도 없었다. 어쩌다 남매를 두게 된 거지 아내가 거부해서 결혼생활 동안 잠자리도 몇 번 없었다고 했다.

이번 사랑이 남자에게는 첫사랑이었고 그 여사장은 남자로서 자신감을 찾아준 은인(?)이었다. 남자는 그녀의 적극적인 반응 덕분에 자기가 슈퍼맨이 된 듯 자신감이 생겼다. 잘나간다고 잰 척하는 친구 앞에서도 꿀리지 않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래도 몇 번 정리해보려 했지만 마음이 너무 아파 공황증세까지 나타났다.

결국 그녀의 얼굴이 보고 싶어져서 며칠도 못 견디고 찾아갔다고 했다. 당시 ‘왜 내가 이런 아픔을 겪어야 되나? 아버지이고 아내가 있다고 해서 남자로서 행복을 포기해야 하는가?’라는 회의가 들면서 이혼을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

이런 종류의 이혼 상담은 인생 상담이 되는 경우가 많다. 순진하다기보다 답답한 남자를 보면서 아내는 불쌍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선생님은 뜨거운 사랑이 뭔지 알게 됐다고 하지만 아내는 당신과 살면서 여자로서 기쁨은 하나도 모르고 살았던 거 아닌가요. 불공평하고 무책임하다는 생각 안 드나요?”

여사장에게서 연마한 기술을 아내를 위해 써보는 건 어떠냐고 사족을 단 뒤 상담을 끝냈다. 이후 들리는 얘기는 여사장과 흐지부지 관계가 정리됐고 겉보기에는 원만한 가정생활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인생의 한(恨) 풀이, 황혼 이혼


▎가장 악질적인 불륜은 동반자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아예 대놓고 외도를 하는 경우다. 이런 경우 필자는 꼭 이혼을 권한다.
배우자의 외도로 고통받는 쪽에서 이혼 상담을 오는 경우에는 이혼할 준비가 안 돼서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상담으로 끝난다. 가장 악질적인 불륜은 아내(남편)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티가 나도록 외도하는 경우다. 이런 경우에는 이혼을 권한다.

불륜커플이 상담 오는 경우도 있다. 자기 합리화가 뒤섞인 그들의 궤변을 듣다 보면 겉으로는 당당한 척하지만 심리 근저에는 공개적으로 만나지 못하는 관계에 대한 열등감과 불만이 자리 잡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들의 사랑이 아무리 순수하다고 자부하더라도 가족에게 아픔을, 특히 아이들에게 상처를 입힌 만큼 무결한 사랑은 아니다. 무결하지 않기에 당당해서도 안 된다.

바람난 연인은 매달리거나 차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자녀가 있는 배우자의 바람은 아이의 인생마저 흔들어 놓는다. 흔들리는 마음을 도저히 제어할 수 없다면 순간의 일탈로 멈추자. 들키지 않을 머리와 정성이 없다면 포기하기를 권한다.

황혼 이혼은 한풀이다. 배우자의 이혼 요구라도 편안히 들어주는 배려(?)가 필요하다. 60대 중후반의 어르신이 이혼 상담을 오는 경우가 있다. 특히 여자의 경우 평생을 남편의 무시와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희생하면서 살아온 분이 많다. 그런 분과의 이혼 상담에서는 이혼 의사를 철저하게 존중해준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재산분할은 5대 5다. 위자료는 상대 배우자의 재력에 따라 통상의 경우보다 높아질 수 있다.

부모의 황혼 이혼에 혼자 남은 아버지를 부담스러워 하는 자녀도 있지만 자녀와 함께 이혼 상담을 오는 경우도 늘고 있다. 황혼 이혼은 특별하지 않았던 일상의 일이 어느 순간 기폭제가 돼서 이혼결심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내가 40년을 참아왔는데, 밥 때 하나 놓쳤다고 자식들 앞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느냐?” “그 여자 누구냐고 내가 물어보지도 못하느냐? 이제껏 바람 피웠으면서 그 버릇을 지금도 하고 있다”며 말문이 터지는 식이다.

“이제라도 마음 편히 내가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먹고 싶을 때 밥해 먹고 그렇게 살고 싶다” “누구 시중 안 들고 살고 싶다”는 그분의 바람은 인권적 차원에서도 정당한 요구다. 뒤늦게 후회하는 배우자의 항변에 별로 동정이 가지 않는 건 40년 결혼생활 동안 서서히 닫혀 진 할머니의 마음이 더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긴 세월 수많은 갈등을 이겨왔지만 결국 이혼으로 끝나는 황혼 이혼을 보면서, 결혼은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충실해야 하는 짧은 호흡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혼 결심은 긴 호흡으로 바라봐야 한다. 이순간 배우자 때문에 고민하는 이가 있다면 당장의 그(그녀)가 아니라 몇 십 년 후의 그(그녀)를 상상해보고 이혼을 결심하라고 권하고 싶다.

- 정은세(가명) 변호사 ycnexa2m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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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호 (2017.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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