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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위기의 한류, 비상구는 어디? 

중국 시장 붕괴가 부활의 촉매제 된다 

김경철 일본 고단샤 서울통신원(뉴스잡지 부문)
일본 내 한류 드라마 붐 다시 불붙어…북남미와 유럽 신흥시장도 청신호 켜져

아시아 시장을 넘어 이제는 유럽과 미주 지역에서도 큰 호응을 얻고 있는 한류 콘텐트. 각 지역 특성에 맞춘 진출 공략으로 중국 시장 붕괴라는 위기를 넘고 있다. 세계를 향한 한국 문화의 도전은 계속된다. 그 매력과 잠재력은 충분하다.


▎2016년 3월 열린 마카오 코타이 아레나 한류 K팝 스타 공연. 당시 중국·홍콩·대만·싱가포르 등에서도 팬들이 몰려와 1만5000석을 가득 메웠다.
2016년 7월 박근혜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에 중국 정부는 분노했다. 경제보복 조치는 제일 먼저 중국 내에서 활동하고 있던 한국 연예인을 향했다. 8월 초, 중국 드라마에 출연 중이던 배우 유인나가 돌연 드라마에서 하차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중국에서 인기가 높은 한류스타 김우빈과 수지의 팬미팅도 행사 직전에 취소됐다. 이어서 한류 배우들과 아이돌의 팬미팅 행사가 줄줄이 취소됐다. 중국 측은 사전 준비 부족 등을 이유로 둘러댔지만, 국내 한류업체들은 사드 배치로 인한 중국의 경제보복이 시작된 것으로 파악하고 긴장했다.

큰 인기를 끌며 한류를 주도해 오던 한국 드라마와 가요가 중국 방송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어 한국 연예인이 등장하는 광고와 콘서트 등이 중국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11월 19일, 중국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위챗에 “역사상 가장 강한 ‘한한령(限韓令, 한류 금지령)’이 왔다. 한국 기업과 브랜드, 한국 연예인 등 한국과 관련된 모든 것이 전면 금지에 들어간다”는 글이 퍼졌다.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한류 콘텐트를 금지한다는 문건은 내려오지 않았으나 결국 인터넷을 포함한 모든 매체에서 한류 콘텐트가 사라졌으며, 중국 수출 길은 완전히 막혀버리고 말았다.

바닥 찍고 부활하는 일본 시장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출연한 송중기. <태양의 후예>는 올 초 일본에서 DVD로 발매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다.
1년 이상 계속되고 있는 중국의 한한령으로 한류 콘텐트 업계는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국제수지 통계를 보면 올해 1∼5월 ‘음향·영상 및 관련 서비스’ 수지는 1억5660만 달러 흑자로 집계됐다. 흑자 규모가 작년 같은 기간(2억980만 달러)보다 25.4%나 줄었다. 국제수지에서 음향·영상 서비스는 한류와 밀접한 항목이다. TV방송 콘텐트·영화·라디오·뮤지컬 등과 관련된 서비스, 그리고 연예인의 해외 공연 수입 등이 여기에 들어간다.

분기 기준으로 보면 작년 3분기부터 흑자 규모는 줄곧 하락하고 있다. 작년 2분기 1억6930만 달러에서 3분기 1억 3220만 달러, 4분기 1억200만 달러, 올해 1분기에는 7710만 달러로 급감하고 있다. 이는 작년 7월 사드 배치를 발표한 뒤 중국의 ‘한한령’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류 콘텐트 업계에서는 최근 ‘문화산업정책협의회’(문정협)를 발족했다. 중국의 사드 보복과 일본의 혐한 등 외교 문제로 발생되는 문화계 피해를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다. 22개의 민간 한류 콘텐트 관련 업체가 참여하는 이 단체 관계자는 “2015년 기준으로 한류 콘텐트의 중국 수출액은 2조3000억원 수준으로 전체 수출액의 30%에 달한다”며 “피해가 장기화될 경우 한국 콘텐트 제작 기반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관련 부처의 적극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는 호소다.

일본의 한류는 <겨울연가> 열풍으로 시작됐다. <겨울연가>의 경이적인 성공은 한류 드라마의 일본 진출을 촉진했다. 당시 장기 불황에 고민하던 일본 방송가는 저렴한 비용으로 높은 시청률을 내는 한국 드라마를 앞다퉈 사들이며 드라마에 의한 한류 붐을 촉발시켰다. 한국 드라마는 콘텐트 부족에 시달리던 일본의 DVD 업체에도 커다란 기회를 제공했다.

DVD 마켓의 총아로 등장한 한국 드라마 쟁탈전에 일본의 방송국과 할리우드 직배사들까지 가세했다. 그러자 드라마 가격이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초기에는 회당 1000∼2000달러에 판매되던 판권 가격이 100배까지 치솟았다. 2012년 <겨울연가>의 윤석호 감독이 연출하고 일본 최고의 한류스타 장근석이 주연한 <사랑비>가 회당 30만 달러에 수출되면서 한류 드라마는 어느덧 일본에서 가장 비싼 영상 콘텐트가 됐다.

일본의 한류는 급격히 진화되면서 드라마뿐 아니라 K팝·뮤지컬에 이르기까지 일본 대중문화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모든 지상파 채널에서 한국 드라마가 방영되고 일본 드라마에 한국 배우가 주요 출연진으로 등장했다. 음악 프로에서는 K팝 스타들이 대거 등장하는 등 미디어 노출이 높아갔다.

일본 시장에서 한류 드라마 다시 인기


▎지난해 3월 인천시 연수구 송도 석산에서 중국 아오란그룹 임직원들이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촬영지를 방문했다.
그러나 2012년 8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면서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게 된다. 때마침 탄생한 아베 정권 아래서 ‘혐한(嫌韓)’이 득세했다. 일본의 서점가에는 혐한 서적이 봇물을 이뤘고, 한국 드라마를 방송하는 방송국에는 하루에도 수백 통의 항의전화가 걸려왔다. 우익의 공격은 한국 드라마 광고주들에게 향하게 됐고 결국 광고주들이 하나둘씩 떠나갔다. 결국 일본 TV에서 한국 드라마나 한국 연예인은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2015년 한·일 간의 위안부 합의를 계기로 양국 정부가 관계 개선을 도모하면서 한류 시장에도 훈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일본 한류 시장의 큰손인 DVD 업체의 이탈로 급락하던 한류 드라마 판권가격도 2016년에 바닥을 찍었다. 현재는 전성기 수준까지 회복하지는 못했지만 한류스타가 출연하는 드라마는 회당 10만 달러를 넘기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2016년 6월 일본에서 CS위성채널을 통해 첫 방송된 <태양의 후예>는 한류 부활의 기폭제가 됐다. 높은 호응에 재방송을 거듭하며 인기를 끌던 <태양의 후예>는 2017년 2월 DVD로 발매되면서 수개월 동안 랭킹 1위 자리를 지키며 폭발적인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6월에는 <구르미 그린 달빛>의 DVD 대여가 개시되면서 한류 드라마의 인기몰이에 가세하고 있다. 이 밖에 한류스타 이민호·전지현 주연의 <푸른 바다의 전설>, 한국에서 신드롬을 일으킨 <도깨비> 등도 DVD 출시를 앞두고 있다. 일본 내의 한류 드라마 붐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여겨진다.

일본 시장에서 한류 드라마가 다시 인기를 얻으면서 기획 단계에서 제작자와 배우들 이름만 보고 주문하는 일본 업체도 많아졌다. 드라마 제작업체 관계자는 일본 한류의 부활로 드라마 제작 환경이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들은 “드라마 제작 전 일본에 선(先)수출되면 그 자금으로 질 좋은 드라마의 사전제작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일본의 영화 배급사 ‘KLOCKWORX’의 호소카와 유카리는 이번 BCWW 행사에서 한국 업체들의 일본 시장을 향한 열기를 느꼈다고 한다. 그는 “이번 마켓에서 만난 한국 방송국과 제작사들은 한결같이 현재 일본에서 인기 있는 한류 배우가 누군지 알고 싶어 했다”고 했다. 중국 시장만 보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던 과거와는 다른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SBS 콘텐트허브는 일본 최대의 DVD 대여체인인 ‘TSUTAYA’와 조인트벤처 설립에 합의했다. 올해 안에 일본 현지에 본사를 오픈할 예정이다. 한류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보다 적극적인 일본 시장 공략의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SBS 관계자는 “일본에 설립될 조인트벤처는 드라마를 비롯해 K팝 관련 콘텐트 등 한류 콘텐트 전반에 걸친 비즈니스를 적극적으로 전개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한 방송 관계자는 “2012년 이후 오랜만에 다시 훈풍이 불고 있는 일본 시장이 침체된 한류 콘텐트 사업에 활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류 업계는 다음과 같은 그의 조언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2010년 <미남이시네요>와 <성균관스캔들>의 메가 히트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일본의 한류가 오랜 침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에는 정치적인 문제도 있지만 ‘재미있는 콘텐트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많다. <태양의 후예>가 예상을 뒤엎고 일본에서 크게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아주 심플하다. 바로 ‘재미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반일 배우로 알려진 송-송 커플이 주연이고, 더구나 남자 주인공이 일본인에게는 생소한 군인이라 일본 업체들도 처음에는 무척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한류 팬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중국과는 달리 일본 시장은 ‘재미만 있다면’ 아무리 정치적인 이슈가 발생하더라도 한류 콘텐트가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시장이다.”.

신 개척지 미국과 유럽 공략 스타트


▎SBS 월화드라마 <신의 선물 14> 제작발표회. <썸웨이 비트윈>이라는 제목의 미국드라마로 리메이크돼 지난 7월부터 ABC 방송에서 방영되고 있다.
지난 4월 종합편성 채널인 JTBC에서 방송된 드라마 <맨투맨>은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인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여 개국에 동시 방영됐다. 한 방송 전문기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맨투맨>은 원래 중국 시장을 겨냥해 만들어진 드라마였다. 중국에서 인기 높은 한류스타 박해진을 캐스팅해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100% 사전 제작됐다. 그런데 사드의 영향으로 중국 수출길이 막히면서 막대한 손해가 예상됐다. 그때 구원투수로 등판한 것이 넷플릭스다.”

케이블채널인 tvN의 드라마 <비밀의 숲> 역시 넷플릭스 소속 배우 배두나의 출연이 결정되면서 일찌감치 넷플릭스에 전 세계 전송권이 판매됐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넷플릭스는 전 세계 1억 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세계 최대의 스트리밍 전문 사이트다. 앞서 언급한 방송기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넷플릭스가 한국 TV드라마 시장에 진출하게 된 데는 중국의 영향이 크다. 중국 시장이 무너지면서 과거 중국의 전송권 가격과 거의 같은 가격으로 넷플릭스가 전 세계 전송권을 가져가게 된 것이다. 어찌 보면 중국 시장이 닫혀버린 것이 한류 콘텐트의 세계 진출을 촉진하는 계기가 됐다고 할 수 있다.”

2016년 초 한국에 진출한 넷플릭스는 올해 들어 본격적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에 투자하는가 하면, 인기 드라마 작가 김은희의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의 투자도 발표했다. JTBC와는 600시간에 달하는 콘텐트 방영권 계약을 체결해, 드라마는 물론 예능 프로까지 전 세계에 독점 방영한다는 계획을 세워놓았다. NH증권은 넷플릭스의 올해 한국 투자금이 10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NH증권의 한 애널리스트는 “<맨투맨> 방송을 기점으로 아시아에서 넷플릭스의 다운로드 수가 급증했다”며 “넷플릭스가 한류 콘텐트를 아시아 진출의 교두보로 삼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2016년에 캐나다에 본사를 둔 한류 콘텐트 전문 스트리밍업체 ‘드라마피버’를 인수한 워너브러더스 역시 한류 콘텐트 공략에 힘을 쏟는다. 워너브러더스는 대작을 선호하는 넷플릭스와 달리 <애타는 로맨스> <모히또> 등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워너 코리아의 박현 대표는 “미국인들도 한국 로코를 좋아한다. 아마도 장르물은 미국이 더 잘 만들 수 있기 때문일 것”이라며 “올 상반기 드라마피버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드라마는 로코물인 <도깨비>와 <애타는 로맨스>다”고 설명했다.

아마존의 스트리밍 사이트인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는 ‘아이돌마스터’라는 일본의 인기 게임 콘텐트를 한국 드라마로 각색한 <아이돌마스터 KR>을 제작, 방영할 것을 발표했다. 지난 8월 25일 방한한 아마존의 제임스 퍼렐 본부장은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아이돌 문화와 한류 드라마의 조합이 매우 독특하다”고 분석했다. 퍼렐 본부장은 “요즘 미국 등지에서도 K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아마존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도 한류 드라마에 큰 관심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미국과 유럽에는 리메이크 진출이 유리

BCWW 2017에서는 지성·황정음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킬미힐미>에 대한 드라마 리메이크 계약에 대한 조인식이 열리기도 했다. <킬미힐미>의 제작사인 팬엔터테인먼트는 스웨덴에 소재한 북유럽 최대 배급사인 에코라이츠와 MOU를 맺고 <킬미힐미>의 리메이크 드라마를 제작하기로 했다. 이 드라마는 전 세계에 배급될 예정이다.

2015년 조승우·이보영이 주연한 미스터리 타임슬립 드라마 <신의 선물>은 <썸웨이 비트윈>이라는 제목의 미국 드라마로 리메이크돼 지난 7월부터 ABC 방송에서 방영되고 있다. 리메이크를 제작한 선더버드 엔터테인먼트의 조 브로이도 부사장은 BCWW 2017에 참석해 “<신의 선물>에 대한 반응이 놀랍다”며 한류 드라마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ABC방송에서는 <신의 선물>에 이어 <굿닥터>의 리메이크 드라마도 9월부터 방송된다. 한 드라마 관계자는 “아무래도 우리와 생김새가 다르고 문화권도 다른 미국과 유럽 등에는 오리지널이 아닌 리메이크로 진출하는 방법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 시장을 넘어 이제는 유럽과 미주 지역에서도 큰 호응을 얻고 있는 한류 콘텐트. 각 지역의 특성에 맞춘 진출 공략으로, 중국 시장의 붕괴라는 위기를 넘어 세계를 향한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그 잠재력은 충분하다.

- 김경철 일본 고단샤 서울통신원(뉴스잡지 부문)

201710호 (2017.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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