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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인터뷰]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의 ‘보수 혁신론’ 

“배신자는 우리가 아니라 박근혜와 친박계” 

글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보수의 심장 TK의 강력한 편견, 현장에서 정면돌파할 것… 자유한국당 박 전 대통령의 부활이라는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는 대선 당시 자유한국당이 보수 지지층에 잘못된 정보를 주입했다고 비판한다.
보수 야당인 바른정당의 이혜훈 대표는 자유한국당과의 보수적통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다. 정당 규모로 보면 바른정당(20석)과 자유한국당(107석)은 다윗과 골리앗처럼 덩치부터가 다르다. 그런 이 대표는 지금은 비록 20석의 미니 정당이지만 각종 선거와 정치 여정을 밟아가면서 보수를 대변하는 대표 정당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7월 하순 시작되는 바른정당의 전국 민생 투어 출발지가 보수의 철두철미한 메카인 대구·경북(TK)인 점도 이런 결전 의지를 물씬 풍긴다. 바른정당이 정치권에서 살아남자면 같은 보수 계열인 자유한국당을 넘어서야 한다. 첫 시험대는 내년 6월 지방선거가 될 공산이 크다. 그전에 탄탄한 전국적 기반을 확보하는 게 바른정당의 우선 과제로 꼽힌다. 이 대표는 7월 10일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자유한국당의 급소, 보수 혁신의 방향, 문재인 정부의 정책 등을 언급했다.

6월 26일 당 대표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유한국당을 예방했다. 하지만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취임(7월 3일) 후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을 외면했다. 무시당한다는 기분이 드나?

“정치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홍 대표는 결국 힘 센 사람, 정당하고만 정치를 하겠다는 것 아닌가? 여당만 방문하고 나머지 야당은 인사조차 안 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보다 더한 처사라고 하겠다. (홍 대표의) 소통의 부재는 박 전 대통령보다 더 심하다. 사실 속 좁은 밴댕이 정치를 하는 것 아닌가.”

홍 대표의 스타일이 좀 확 지르는 데 반해 설득하는 스타일은 아니지 않나. 국회의원, 경남지사 시절과 비교해볼 때 대선 이후 홍 대표가 바뀐 걸로 느껴지나?

“(약간 시니컬한 어투로) 달라진 거 보긴 했다. 당 대표 되더니 반대를 위한 반대는 하지 않겠다고 하더라. 여권에 협력할 것은 협력하겠다는 말인데. 바른정당의 스탠스를 그대로 따라 한 것은 바뀐 점이다. 그것 하나 달라진 것 말고 언행이야 원래 그랬다. 2007년인가 정두언 전 의원이 한 말이 기억난다. 홍준표 당시 의원을 향해 ‘연탄가스 같은 사람’이라고 했었다. 소리 없이 사람 목숨을 앗아가는 연탄가스 같은 정치인이라는 뜻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한국당 지지층은 당 대표 경선에 나선 홍 대표에게 65.7%라는 몰표를 줬다.

“자유한국당 7·3전당대회 현장투표율이 7%밖에 안 됐다. 모바일 투표를 포함한 최종 투표율은 25% 정도다. 상대적 소수만이 당 대표 선거에 참여한 것인데, 전체 보수층의 의중을 충분히 대변했다고 할 수 있나?”

미래 집권세력으로서의 신뢰를 얻는다


▎6월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바른정당 당원대표자회의에서 이혜훈 신임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인사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홍 대표는 24%의 득표율을 올렸다. TK를 비롯한 보수층 일각에서는 홍 대표가 대선 당시 보수의 주자로 제 할 일을 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반면 바른정당은 대선국면에서 이른바 ‘배신자 프레임’에 갇혀 애를 먹었다. 박 전 대통령 덕분에 정치적 입지를 다진 바른정당 의원들이 탄핵 국면에서 보수진영을 이탈해 딴 살림을 차려 적전분열을 일으켰다는 게 ‘배신자 프레임’의 골자다. TK 현지에서 이런 배신자 프레임이 일부 먹히고 있다는 전언이다. 바른정당은 이런 거부 정서를 정면돌파한다는 방침이다.

‘배신자 프레임’의 본질은 뭔가?

“대선을 앞두고 집중적으로 유포된 배신자 프레임은 가짜 뉴스의 산물이다. 전통적으로 보수는 TK의 6070세대가 주력 아닌가. 이들에게 가짜 뉴스가 쏟아지면서 본의 아니게 우리에게 편견을 가지고 계신다. 낡은 보수가 가짜 뉴스를 퍼뜨려 낙인찍게 한 것이다. 이분들은 온라인 정보 접근이 잘 안 되는 탓에 자신들의 휴대전화에 뜬 문자 정보만 보고 판단하고 믿기도 한다. 대선 당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지지율은 여론조사 공표금지기간(5월 3일부터 9일 오후 8시까지) 직전까지도 문재인 민주당 후보 지지율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도 공표금지기간에 접어들면서 얼마나 터무니없는 문자 폭탄이 쏟아졌나. 홍 후보가 문 후보를 앞선다는 엉터리 여론조사 결과까지 나왔다. TK의 6070세대는 홍 후보를 찍으면 홍 후보가 당선된다는 그 가짜 문자를 굳게 믿은 것이다. 보수정권이 다시 일어서리라는 기대감에 몰표를 준 것인데 정확한 진실을 알았다면 선택을 그렇게 하진 않았을 것이다.”

대선 당시 보수진영 후보단일화 압박을 받기도 했는데.

“앞서 봤듯이 보수가 승리하기 힘든 선거였다. 부패한 친박 세력과 손잡아서 뭘 어떻게 하자는 건가. 미래 집권세력으로 신뢰를 얻는 게 더 중요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찬성하고 주도했다는 게 배신자 프레임의 한 축이기도 하다.

“그런 점까지 포함해 오프라인에서 어르신들을 직접 만나 설명하고 이해를 구할 계획이다.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심부름 꾼이며 국민의 세금에서 세비를 받는다. 국회의원, 정치인들의 주인은 국민이지 대통령이 아니다. 낡은 보수들은 우리더러 박근혜 전 대통령과 등을 졌다며 배신자라 부르는데 그건 어불성설이다. 국회의원이 모셔야 할 대상은 국민이지 개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배신자는 우리가 아니라 친박계다. 헌법재판소가 뭐라고 판결했나? 박 전 대통령이 국민을 배신했다고 했다. 국민을 배신한 사람들이 배신자다. 낡은 보수들이 배신자로 찍힐 것 같으니까 먼저 배신자 프레임을 퍼뜨린 것이지. TK는 보수의 심장이면서 가장 강력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전국을 순회하는 바른정당의 민생투어도 TK에 각별한 공을 들일 참이다.”

대선 당시 바른정당 후보로 나선 유승민 의원도 민생투어에 같이하나?

“그렇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맨투맨 접촉을 해서 설득하는 작업을 하자는 의견도 보탰다.”

보수적통을 자임하는 바른정당이 가진 국가 경영에 관한 비전이 궁금하다.

“안보와 경제가 국정운영의 두 수레바퀴다. 북한 핵을 비롯해 어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든 대한민국을 철석같이 지키는 게 보수의 대원칙이다. 낡은 보수와는 무엇이 다른가. 저 사람들은 자신과 경쟁하는 사람들에게 툭하면 빨갱이 딱지를 붙이고, 종북몰이를 하는데 우리는 그런 냉전적, 반공주의적 대응을 안 한다는 것이다. 매카시즘 광풍도 물론 배격한다. 홍 대표만 해도 두 달 전쯤 대선후보 시절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마이크를 잡고 ‘문재인 집권하면 김정은이 집권하는 것’이라고 연설을 했다. 수천 명의 (자유한국당) 당원들이 환호하고 박수갈채를 보냈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그건 건강한 보수가 아니라 수구적 행태에 다름 아니다. 그런 종북몰이 안 하겠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의 비전은 무엇인가?

“시장경제를 존중하면서도 시장의 불안정성을 인정하는 보수가 되고자 한다. 시장에서 힘과 영향력을 가진 이들에 의한 특권, 갑질 횡포를 제지하고 근절해서 공정한 경제질서를 확립하게 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 돼야 한다. 과거 보수정권은 그걸 방기했다. 그래서 재벌이 법을 어겨도, 법에 의해 유죄 판결을 받아도 사실 처벌하지 않았다. 바른정당은 이런 고리를 끊겠다. 약자라는 이유로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해야 대한민국이란 공동체를 제대로 지킬 수 있다. 양극화라는 게 결국은 보수가 지키려는 걸 안에서부터 무너뜨리는 것 아니냐. 그래서 우리는 경제개혁을 하겠다. 정체성에 있어 저들(자유한국당)과 다르며, 정치하는 방식도 다르다.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 출범 두 달이 지나도록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느라 제대로 일한 게 하나도 없다.”

지지율 고공행진하는 현 정부, 포퓰리즘 휩쓸려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 등 당 지도부가 7월 13일 국회 대표실에서 열린 박종진 전 앵커(가운데) 입당식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성과에 대해선 긍정적 평가를 하던데.

“바른정당이 사안의 경중과 진위를 가려 찬반을 분명히 하고 그게 당 지지율로 반영되니까 자유한국당이 따라오는 것이다. 우리가 잘하는 것은 배우라고 하고 싶다. 자유한국당도 바뀌어야 한다.”

문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여전히 80% 고공행진을 한다. 예감이 좋아 보이나?

“(지지율 고공행진은) 대한민국에도, 문재인 정부에도 이로울 게 없다. 어느 사회든 양쪽 날개가 균형을 잡아야 건강하게 발전한다. 한쪽 날개가 꺾이면 바른 방향으로 못 날아간다. 지지율 80%라는 건 진보와 보수가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떠받치지 못한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여기에는 보수의 책임이 크다. 보수가 빨리 복원력을 보여야 한쪽으로 편향된 정치구도의 개선이 가능하다. 그게 문재인 정부에 이롭다. 그렇지 않으면 현 정부는 포퓰리즘에 휩쓸릴 가능성이 크다. 국민들이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밀어붙이면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긴다. 정부가 소신을 가지고 국정을 펼치는 데는 여론이 반반 정도 나뉘어져야 오히려 편하다.”

현 정부가 예상보다 잘한다는 생각은 안 드나?

“(보수 몰락에 따른) 반사이익이라는 측면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소통하고 국민밀착형으로 가려는 의지와 자세는 평가할 만하다. 우리가 인정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국정운영이 어디 소통만으로 되는 것인가? 역량이 중요하다. 즉 일머리를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참여정부 그림자가…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가 7월 13일 ‘푸드트럭, 그린라이트를 켜라’ 토론회에 앞서 푸드트럭에서 직접 만든 새우고추잡채를 시민들에게 나눠 주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예를 들자면?

“탈(脫)원전 정책이 대표적이다. 바른정당도 가능한 한 원자력발전 비중을 줄여나가자고 대선 때 공약했다. 그건 어디까지나 단계적, 장기적으로 줄이는 정책 방향이다. 그런데 현 정부처럼 급진적으로 폐지해버리면 당장 전력 수급에 차질을 빚지 않나. 신재생에너지는 그 비중을 끌어올리는 데 절대적 시일을 필요로 한다. 현 정부의 정책엔 그 기간 동안 공백을 메우는 대안이 안 보인다.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이유다. 부동산 대책도 극약처방, 초강수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전·월세 상한제나 계약갱신청구권 같은 건 굉장히 강한 조치이지 않은가? 이걸 하겠다고 복선을 까는데…. 자칫 잘못하면 시장 역풍을 부를 수도 있다.”

이 대표는 정치권에서 경제통으로 통한다. 1964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그는 마산제일여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UCLA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랜드(LAND)연구소 연구위원, 영국 레스터대 교수를 거쳐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으로 활동했다. 같은 KDI 출신인 유승민 대선후보 캠프 종합상황실장을 역임했다. 따라서 경제정책을 평하는 목소리에 힘이 더 들어갔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불안하다는 지적 같은데.

“집값이 오르는 건 서울 등 특정 지역의 얘기다. 정부는 수요를 줄이는 대책을 쓰려는 것 같다. 공급을 늘리면서 수요를 눌러야 가격 안정도 되는데, 공급은 늘리지 않는다. 정부는 올해 말로 끝나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유예 기간을 연장할 계획이 없다. 그러면 (재건축 위축에 따른) 주택 공급도 증가하지 않는다. (지금도) 공급은 충분하다고 하지만 그건 2~3년 전 분양 물량이 나오는 것일 뿐, 그것도 다 지방에 몰려 있을 뿐 이어서 서울은 별로다. 그래선 수급이 맞지 않는다. (현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는) 노무현 정부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참여정부는 단군 이래 집값을 잡겠다는 의지가 가장 강했던 정부였다. 자고 나면 부동산 대책이 나왔지만 눈만 뜨면 집값이 올랐다. 의지와 역행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정책이 봇물을 이뤘다. 역량 부족과 일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말인데 지금 그런 면에서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 야당으로서 생산적인 대안을 내면서 부동산 안정화를 계속 모색할 계획이다.”

어느 자리에선가 정부 인선 중에 가장 기대되는 사례로 김상조 공정위원장을 들었던데, 그 동기는?

“저는 공정위가 그동안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안 했다고 생각한다. 미뤄온 일들을 김상조 위원장이 취임 후 하나둘 해나가는 모습이 후련해서 기대한다고 말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독과점 업종이 많다. 백색가전만도 그렇다. 미리 약속이나 한 것처럼 짜고 가격을 올려도, 담합을 해도 처벌하는 경우가 드물다.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말이다. 김 위원장이 부당한 가격 인상을 손보는 등 앞으로 치고 나간다. 치킨값만 보자. 조류인플루엔자(AI)를 구실로 한 마리에 2만원대를 넘겼지 않나? 가격담합 가능성이 농후했는데 직권조사하겠다는 공정위의 말 한마디에 일제히 내렸다. 오죽하면 대한양계협회가 한 마리에 2만원이 넘는 이른바 ‘귀족 치킨’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기로 결정했을까. 치킨 프랜차이즈에 공급하는 닭고기 가격은 연중 동일한데도 AI 때문에 가격을 올린다고 하니 양계협회부터 반발한 것이다.”

현 정부는 헝클어진 경제 질서를 바로잡고 재벌개혁도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대기업 오너들도 긴장하는 눈친데.

“김 위원장은 재벌 오너 일가의 마음가짐이 과거와 달라야 한다고 했다. 지분에 비해 과도한 영향력 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순환출자구조를 바꾸는 건 장기적 과제이지만 재벌 2세, 3세 경영인들에게 일하는 자세를 바꾸라는 김 위원장의 메시지는 긍정적이다. 경영권 승계도 제대로 된 절차에 따라야 한다. 재벌 1세대는 이노베이션(혁신)이 충만했기에 무(無)에서 유(有)를 이뤘다. 하지만 후손들은 땅 짚고 헤엄칠 생각만 하지. 사내유보금을 760조원씩 쌓아두고 땅 투기 하고 돈 놀이만 하는 게 혁신을 하는 사람들이 모습인가. 투자만 해도 그렇다. 확신이 들지 않으면 투자를 않겠다고 하는데, 혁신 마인드가 없어서 하는 말이다. 재벌 1세대는 투자 기회를 찾아다녔다. 2세, 3세들은 꽃가마만 타고, 안전한 투자처만 골라 가려는데 한국에 성장 동력이 생기겠나? 4차 산업혁명이나 항공우주산업, 신약개발 등 국부를 창출하는 첨단산업 중 땅 짚고 헤엄치기로 가능한 게 어디 있겠나? 위험을 감수하면서 기업가정신으로 매진했을 때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요즘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대기업 2, 3세 경영인들 땅 짚고 헤엄칠 생각만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는 혁신 없는 보수의 통합만으로는 집권이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재계뿐 아니라 한국의 보수진영도 대대적인 혁신을 요구받는 상황이다. 오랜 세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막강한 중력(重力)권 안에 머물던 보수진영이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마치 무중력 상태로 접어든 모양새다.

“보수가 초토화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 개인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십 년 동안 보수진영의 문화 자체가 그랬다. 1990년 3당(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합당 때 민주세력과 군부세력이 민주자유당으로 모여들었다. 이후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으로 이어오는 동안에도 군사문화가 곳곳에 배었다. 1인 지배체제를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굴종을 당연시하는 문화가 보수당을 지배한 것이다. 당론을 결정하는 의원총회는 자유 토론보다는 당 대표, 원내대표, 사무총장 등 당 지도부의 말 한마디로 결론을 맺는다. 오더를 내리고 당론을 공지하는 자리가 의총이다. 모든 의사결정은 톱다운(하향) 방식으로 이뤄질 뿐 바텀업(상향)은 오간 데 없다. 토라도 달면 징계가 따르니….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은 뛰쳐나오고 아닌 사람들이 남은 곳이 지금의 보수당이다.”

어느 시점에 박 전 대통령의 중력이 다시 살아나리라고 자유한국당 일각에서 기대하는 게 아닐까?

“한때 영국의 양당 지배체제를 구가하던 자유당은 노동당에 밀려 몰락의 길을 걸었다. 본연의 가치와 공동체 통합보다 집권에 연연하다 소멸한 것이다. 보수도 사회에 변화상에 맞춰 적응해야 한다. 자유한국당은 영국의 자유당 전철을 밟는 것 같다. 지금 박 전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먹히겠나? 시대는 이미 변하고 있다. 그것도 모르고 사회와 완전히 유리된 채 가다 보면 소멸되는 운명을 면치 못할 것이다.”

자유한국당이 소멸될 거라고 보나?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안 봐도 뻔하다. 박 전 대통령의 뇌물죄 혐의가 무죄로 판명되면 탄핵에 찬성한 정치인들 모조리 손볼 거라고…. 박 전 대통령이 비운의 여왕으로 등극해 다시 부활하는 시나리오를 기대하는 것이다. 설령 뇌물죄로 유죄 판결을 받아 박 전 대통령이 실형을 받는다고 치자. 유죄 판결은 정치적 압력의 산물이므로 정권 지지율이 빠지는 시점에서 사면이라는 타협이 불가피해지고, 추종자들이 집결하면 다시 ‘선거의 여왕’이 (현실 정치에) 복귀한다고 기대할 것이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이 자신들의 정치생명을 되살려주리라는 말인데 그 시절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정치를 왜 하려는 것인가, 망상에 의존해 국회의원이 돼 뭘 하려는 것인가? 이런 자유한국당은 소멸되는 게 우리나라 정치의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TK 지방선거 우리가 이긴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유세에 몰린 대구 시민들. 바른정당은 보수의 텃밭인 대구·경북의 지지 확보에 부심한다.
그럼에도 자유한국당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바른정당과의 연대 대상으로 거론된다.

“우리는 그 사람들이 퇴출돼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연대는 안 한다.”

지방선거에서 힘을 모으거나 같이할 길은 없다는 말인가?

“그 사람들이 변화해서 바른정당이 추구하는 가치에 동의하고 그 대열에 합류하겠다고 하면 달라진다. 그들이 우리의 날개 안으로 들어온다면 그건 (선거)연대와는 다른 것이다. 우리의 가치에 공감하고 우리의 비전과 같은 길을 가겠다면 말이다.”

자유한국당이 같이할 만큼 변했다고 볼 수 있는 척도를 말한다면?

“정체성을 공유해야 하고, 정치하는 방식도 우리와 같아야 한다. 그걸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자유한국당이 말로는 기업에는 자유를, 서민에게는 기회를 준다면서 유죄 판결 받은 (재벌) 총수의 경영 일선 복귀를 얘기하고 ‘불공정거래 금지법(이른바 일감몰아주기 금지법)에는 미온적이지 않나. 말과 행동이 다른 당이 자유한국당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내 현역 의원들이 탈당하면서 교섭단체가 무너진다거나 당이 크게 흔들릴 것이라는 관측도 한다.

“그럴 가능성은 없다. 대선 직전 바른정당을 탈당해 자유한국당으로 복귀한 13명의 의원은 정치생명이 끝났다는 얘기도 있다. 그들은 보수가 집권해야 나라를 살린다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했지 않았나. 그런데 다시 누군가 바른정당을 탈당한다? 마땅한 명분을 댈 수 있을까. 앞서 13명 의원보다 더 큰 공적(公敵)이 될 것이다. 그럴 분들은 없을 것이다.”

본인은 불출마 입장을 분명히 했지만 유승민 의원의 내년 서울시장 출마 필요성을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당내에서 이 문제가 다시 제기될 가능성은 있나?

“그런 얘기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당에서 좋은 후보를 구해 올 것이다.”

유 의원의 서울시장 선거 출마 가능성을 제로라고 보면 되나?

“좋은 후보를 물색하고 있다. 섭외되면 발표할 것이다.”

지방선거에서 TK 선거 결과를 낙관하나?

“우리가 이긴다. 두고 봐라.”

지방선거 후보 공천은 어떤 원칙을 적용하게 되나?

“최대한 빠르게 공천할 것이다. 홍준표 대표는 ‘여론조사 규정은 참고사항이지 그걸 절대적 공천 기준으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의 귀에는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으로 들린다. 사천(私薦)을 하겠다는 것이지. 바른정당은 본래적 의미의 공천을 할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19대, 20대 총선 공천을 했는데 사실상 사천을 했다. 우리는 그런 사천의 피해자다. 그것 때문에 당시 정치를 그만둘까도 생각했다. 그 사천이 얼마나 당을 좀먹고 나라를 좀먹는지 뼈저리게 배운 사람들이다. 우리는 사천이 아닌 공천을 바르게 할 것이다.”

보수 대수혈을 말했는데…, 외부인사 영입은 진전이 있나?

“보수의 대수혈은 두 가지 트랙으로 한다고 말씀드렸다. 그중 한 가지는 현역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의원들 중 바른정당 밖에 있는 분들을 모셔온다고 했다. 그걸 잘 새겨보시길.”

보수진영이 정권을 되찾을 날이 언제쯤이라고 보나? 5년 뒤, 10년, 아니면?

“보수는 그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정권 탈환을 위해 통합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던데. 그런 생각 때문에 썩은 살을 도려내지 못하고 덮어두다가 전체를 곪게 만들었다. 보수의 고질병이다. 문제가 터지면 발본색원은커녕 눈앞에 위기가 닥쳤으니 뭉쳐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이 지경까지 온 것이다. 이번에 제대로 고치지 않으면 보수의 부활은 불가능하다. 집권을 하자면 제대로 바뀌어야 한다. 제대로 고치면 다음 대선에서 이긴다.”

- 글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201708호 (2017.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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