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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분석] 文 정부 지지율 고공행진의 ‘함정’ 

“현찰 아쉬운데 약속어음만 남발” 

전계완 정치평론가 jkw68@hanmail.net
여론의 ‘착시’ 벗고 야당과 협치로 난국 돌파해야… 한·미 정상회담 등 통해 풀어야 할 숙제도 떠올라

▎문재인 대통령이 6월 3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공동 언론 발표를 마친 뒤 박수를 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악수를 청하고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대통령의 지지율 고공행진에는 멈춤이 없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최고치를 이어가고 있다. 7월 초 한국갤럽 여론조사는 응답자 83%가 직무수행을 잘한다고 평가했고, 잘못했다 응답은 9%에 불과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말 그대로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공직배제 5대 원칙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지만 대통령 특유의 탈(脫)권위, 소통행보에 국민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곧바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공, 주요 20개국(G20) 다자외교 무대의 성과 등이 이어지면서 진보정권에 대한 막연한 국민 불안이 많이 해소됐다.

북한 미사일 도발에 대해서도 강력한 응징과 제재로써 중심을 잡고, 대화 병행 카드를 부가적으로 내세움으로써 국제사회 공조와 정권의 정체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

촛불혁명, 탄핵 의결과 심판, 조기 대선으로 이어진 역동적 정치 상황을 감안할 때 문재인 정부는 예상 밖으로 성공적인 출발을 하고 있다. 외견상으로 야당 문제를 제외하고는 흠잡을 데 없는 모양이다. 국민의 높은 지지율은 문 대통령의 국정에 대한 자신감과 정국 주도권을 동시에 선물하고 있다.

“대통령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관을 지냈던 한 인사의 설명이다. 당시 문재인 비서실장은 수줍음 많은 ‘샤이(shy)’한 사람이었다. 사려 깊고 인간적이었지만 상대에게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고 친근감을 표시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무뚝뚝하고 멋쩍으며 소극적이었다.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때도 마찬가지였다. 안철수·손학규·김종인 등 내로라하는 정치 거물들은 연대 후 결별이라는 공식에 예외가 없었다. 소수 독점, 비민주성, 패권주의 등의 단어가 민주당 안팎에서 매일 들리다시피 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국민 앞에 등장했다. 소통을 위해 모든 것을 파괴했다. 의전 간소화, 언론 브리핑, 국회 방문, 야당 지도자 초청, 국민 손잡기 등의 파격행보가 이어졌다. 이를 지켜본 많은 사람은 “놀랍다. 너무 잘한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나? 아니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나?”라는 평가와 질문을 이어갔다.

청와대 전직 비서관은 이렇게 분석했다.

“문 대통령이 결심을 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바뀐 게 아니라 목적을 갖고 스스로 변신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떠밀려서 어쩔 수 없이 정치를 시작했던 정치인 문재인과는 다르다. 나이 들어 스타일 바꾸기가 정말 어려운데 취임 이후의 모습은 확실히 바뀐 게 맞다.”

대통령의 본심을 몰랐거나, 의도적인 변화가 있었거나 출발점은 의미가 없다. 현재 대통령의 모습이 중요하다. 그는 국민의 머릿속에 부정적으로 남아 있는 ‘제왕적 대통령’인데도 전혀 권위적이지 않고 오히려 친근할 따름이다.

메르켈 독일 총리를 만났을 때 두 사람이 특히 친밀해 보였던 것도 문 대통령의 소탈한 이미지 덕분이다. ‘메르켈리즘’이라는 말이 있다. 권력 가진 것을 특별한 일로 여기지 않는 털털한 성품, 힘을 과시하지 않지만 힘을 가진 정책을 추진하는 리더십이 메르켈 총리에게 있다는 의미다.

정상회담 직후 총리공관 펜스 밖에 있던 교포들에게 양국 정상이 함께 가서 즐겁게 손을 잡는 장면은 독일 정부 설명대로 아주 이례적이었다. 탈권위의 상징인 두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자연스러운 장면이기도 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문재인 대통령의 파격적인 행보로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신선한 충격’에 휩싸여 있다. 대통령의 이미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국정원·검찰·경찰·국세청·공정거래위원회 등 대통령 직속 권력기관의 적폐청산 작업이 더해지면서 ‘나라다운 나라’에 대한 기대감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를 돕는 정치 상황


▎문재인 대통령이 7월 6일(현지시간) 독일 옛 베를린시청에서 ‘7·6 베를린 구상’을 밝히고 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등 한반도 정책 5대 원칙을 제시했다. / 사진:연합뉴스
착시(錯視)현상은 없을까? 당연히 있다. 바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비교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본 국민들은 ‘이게 나라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수사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어처구니없는 사실이 하나씩 드러났다. ‘설마 대통령이 저렇게 깊이 관련됐을까’라는 의구심이 있었지만 수사 결과는 딴판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딸, 여성 대통령, 전임에 대한 예우 등으로 동정심이 일어날 듯했지만 재판을 거듭하면서 국민은 점점 더 박 전 대통령을 머릿속에서 지워나갔다. 전직 대통령이 법리공방을 외면하고, 특정 세력의 조작에 의한 탄압이라는 태도로 일관하자 민심은 그나마 남아 있던 ‘애처로움’조차 버리고 있다. 태극기 집회를 주도했던 세력이 설 자리를 잃었고, 박 전 대통령을 옹호했던 정치인들은 도리어 국민 심판을 받고 있다.

이것이 문 대통령을 도와주는 첫째 외부 요인이다. 짧게는 박근혜 정부 4년의 처절한 실패, 길게 보면 보수정권 9년의 피로감이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감으로 폭발하고 있다. 조기 대선에서 60% 가까운 유권자가 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열렬한 지지를 보내는 것은 “당신이라도 정말 잘해달라”는 민심의 절규일지도 모른다.

또한 권력기관의 적폐청산 작업으로 악행이 드러나면 박근혜 정부에 대한 비판은 더욱 거셀 것이다. 특히 채동욱 전 검찰총장 찍어내기의 배후, 노무현 대통령 수사 과정의 논두렁 명품시계 사건 등 청와대 지시와 국정원 공작이 사실로 밝혀지면 민심의 분노는 다시 전임 정권을 정조준할 것이다.

적폐청산이라는 국가 개조가 보수정권 9년에 대한 심판 열기를 높이면서 동시에 문재인 정부를 뒷받침하는 주춧돌 역할을 하고 있다. 국가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과정이 문재인 정부 지지로 이어지니 그야말로 일거양득, 양수겸장의 형국이다.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의 처지도 문 대통령을 크게 돕는다.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몰락과 함께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대선에서 24% 득표로 그나마 체면을 유지했지만, 대선 이후 내홍이 거듭되면서 한 자릿수 지지율에 허덕이고 있다. 107석의 제1야당이 대구·경북에서조차 20석의 바른정당에 밀리는 수모를 겪는다.

매일 혁신을 외치고 있지만 국민 눈에는 밥그릇 싸움으로만 비친다. 자기생존에 몰두한 나머지 당을 살리거나 보수세력을 재건할 비전이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 당내 친박세력에 대한 합의된 평가와 정리가 없는 한 당분간 회생이 불가능할 것이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교수는 “자유한국당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대다수 국민은 뭔가 꼼수가 있을 것이라고 의심한다. 장관 인사청문회, 추경예산안, 코드인사 등에 대한 제1야당의 정당한 비판도 ‘자유한국당 패싱(passing)’이라는 벽에 부딪힌다. 억울하겠지만 자업자득”이라고 말했다.

국민의당도 앞이 보이지 않는다. 40석 의석으로 캐스팅보트를 자임했지만 대선 참패와 제보 조작사건으로 존립기반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안철수 후보의 리더십은 땅바닥으로 추락했고, 호남 민심의 단호한 외면은 위기 탈출을 위한 돌파구를 원천봉쇄하고 있다.

장관 인사 청문보고서의 선별적 채택, 사안별 국정협조, 추경안 심의 참여 등으로 몸값을 한껏 올렸지만 그것도 일장춘몽이었다. 제보 조작사건 후폭풍이 정리되지 않는 한 정부와 집권여당의 견제세력으로서 제자리를 찾기 어렵다. 이런 국면에서도 당 내부는 탈당과 민주당 합류, 분당 등으로 각자도생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송문희 더공감정치연구소장(정치학 박사)은 “국민의당 탄생의 시대적 요청이 거대 양당의 패권정치 청산, 제3지대 정당, 새로운 정치 등이었다는 사실을 되새긴 뒤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다시 판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시중에는 “문재인 대통령은 운이 참 좋은 사람”이라는 우스갯말이 있다. 누가 어떤 비판을 해도 문 대통령의 행보에 압도되고, 도리어 비판자가 꾸짖음을 당하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허실이든, 선악이든, 민심의 반영이든 방송국에 비판 전화가 쇄도하고, 문자폭탄 공격으로 고통 받는 정치인이 늘고 있다. 안팎의 정치적 여건이 문 대통령에게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겉보기엔 기분 좋고 화려한 대북정책


▎전병헌 정무수석,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한 사람 건너)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왼쪽부터)이 7월 5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독일로 출국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환송한 뒤 공항을 나서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대통령에겐 잘되는 일만 남았을까? 아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우리는 문재인 대통령의 ‘성품’ 덕분에 오랜만에 나라다운 나라에 살고 있다. 대통령의 성품이 아직 능력으로 드러나지 않았고, 청와대와 여당의 실력은 선조차 보이지 않았다. ‘정치는 칼싸움이 아니라 패싸움’이라는 말처럼 나라는 대통령의 개인기로 바꿀 수 없다. 더구나 혼자서는 할 수도, 오래갈 수도 없다.

청와대와 집권여당이 집단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여기에는 야당이 필요하고, 때로는 이해관계에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반대파도 있어야 한다. 정치는 대통령·청와대·집권여당이 나서고, 야당과 반대세력이 견제와 경쟁을 통해 함께 움직여가는 거대한 지각판과 같다.

외교문제를 보자.

국민은 자랑스러워하고 언론은 칭찬 일색이다.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쥐고, 미·일·중·러 4대 강대국 사이에서 중심을 잡았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이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후속조치에서 성과가 나타날 일이지, 출발 단계에서 마치 결실을 맺은 것처럼 포장할 일은 아니다. 대통령의 움직임을 생중계로 시청하는 국민이 수천만 명인데 청와대가 미사여구를 동원하며 자화자찬하는 것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사실 이번 한·미, G20 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는 무차별적인 북한 도발로 인한 ‘북·미 간의 무력충돌’ 예방이었다. 문 대통령이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르는 전쟁 발발 가능성을 막고 최소한의 현상유지를 해냈다는 것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나머지는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를 나열한 것이지 당장 결과를 내놓을 게 없다. 오히려 집권 내내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할 처지를 걱정해야 한다.

청와대 외교라인의 성격을 지적하는 전문가가 적지 않다. 정의용 안보실장을 비롯한 외교안보정책 사령탑은 외교관 출신으로 채워져 있다. 한마디로 ‘미국에 좋고, 일본에 좋고, 중국에 좋고, 러시아에도 좋은 외교’를 하자는 것이다. 실제 그렇게 될 수 있느냐는 문제는 외교관의 영역을 벗어난 정치가의 몫이다. ‘좋은 게 좋은 것’은 이도 저도 아무것도 아닌 것과 같을 수 있다. 전략과 우선순위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익명을 원한 외교정책 전문가는 “외교관식 외교의 특징은 유동적이고 실리적인 대응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구체적인 성과를 내기 어렵다”며 “문 대통령의 해외 순방이 형식적인 면에서 매우 만족스럽지만 실현 가능성에 모호한 점이 많다. 특히 남북문제는 상황 관리를 뛰어넘는 승부수가 필요한데 그게 아직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북핵 폐기가 최종 목적이지만 현 상황에서 미사일 발사 중단이 먼저인지, 긴장완화 조치가 맞는지, 아니면 교류가 우선인지 내부에서 정확하게 정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평가가 사실이라면 남북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은 지금부터 만들어야 할지 모른다.

문제는 북한의 호응 여부다. 문 대통령이 조건부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지만 당장 필요한 것은 이산가족 상봉이다. 상봉 성사 이후에도 평창 올림픽 참여, 금강산관광 재개, 개성공단 재가동 등의 현안에 얼마만큼 대화가 이뤄질지 가늠하기 어렵다. 성사 이후에 사안별로 국민 동의를 어떻게 구하고, 미국 설득은 또 어찌할 것인가? 특히 북핵 동결을 전제로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거의 없다. 이를 두고 “‘현찰’이 절실한 시점에 문재인 정부가 ‘약속어음’을 너무 많이 발행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협치 ‘꺼리는’ 청와대와 집권여당


▎정세균 국회의장(가운데)과 4당 교섭단체 원내대표들이 7월 7일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오찬 회동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국민의당 김동철·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 정 의장, 자유한국당 정우택·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
높은 지지율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정치적 황금장세는 계속 유지될까? 안 될 것이다.

지난 정권에서 수도 없이 봤지만 언제나 집권세력은 ‘나는 예외’라는 마술에 걸린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도 마술의 성 앞에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문재인 정부의 높은 인기와 집권여당의 선전이 돋보이는 국면이다. 지리멸렬한 야당에 실망하지 않는 국민이 없을 정도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목 자르기’ 발언을 하고, 대선후보와 당 대표를 배후로 지목해도 ‘말이 심했다’고 할 뿐 국민의당 편을 드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저렇게 당해도 싸다”고 비아냥거린다. 집권여당의 호위무사인 일부 네티즌들은 “추 대표가 뭘 잘못했느냐”며 되레 응원을 한다. 그러면서 국회는 올스톱 상태로 치닫고 있다.

야당은 문재인 정부의 협치가 물 건너갔고, 여론을 등에 업은 독주가 시작됐다고 평가한다.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는 사석에서 “협치라는 말을 너무 자주 듣는데 문 대통령은 협치가 어떤 의미인지 분명하게 말을 하지 않는다. 어디까지, 무엇이 협치인지 가이드라인도, 내용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상돈 국민의당 의원은 “120석에 불과한, 과반 미만의 민주당이 마치 200석을 가진 거대 여당인 것처럼 위대한 착각에 빠져 있다. 야당이 그냥 백기투항할 것으로 보는 것 같은데 과거 민주당이 전 정권 집권 초기부터 반대 노선으로 달렸던 것을 잊지 말라”고 경고했다.

야당은 문재인 대통령이 협치 약속을 깼다고 규정한다. 취임 직후까지 연정은 아니더라도 야당 추천 인사의 내각 참여까지는 수용될 것으로 기대했다. 예상과 달리 대통령은 총리 지명, 청와대 인사, 장관 지명 등을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민주당 기류도 바뀌었다. 민주당의 고위 당직자는 사견을 전제로 “야 4당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민주당으로서 가장 좋은 구도다. 존재감 없는 자유한국당은 논외로 하고 필요에 따라 국민의당, 바른정당을 번갈아 활용하면 지방선거, 총선까지 끌고 갈 수 있다. 그러면 장기집권의 포석까지 둘 수 있다”고 말했다. 정권의 성공 여부와 무관하게 야권 교란을 통한 정국 관리를 하겠다는 계산이다.

여기에 호응하듯 민주당 의원들은 협치의 의미에 대해서도 독특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한 의원은 “여당이 야당과 협치를 해야 하지만 야당의 주장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반드시 협치는 아니다. 협치가 되지 않는 것에는 야당에도 책임이 있다”고 했다.

궁지에 몰려 있는 야당은 속을 부글부글 끓이면서도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한다. 따지는 것만큼 야당으로 비난이 쏟아지고, 여론은 언제나 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한 압도적 지지를 보낸다.

협치는 결국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이 만들지 않는 것이다. 여당이 이런저런 조건을 얘기하지만 자의적이고 일방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권한 없는 야당이 협치를 얘기하면 ‘구걸’이 되고, 여당이 요구하면 야당은 ‘발목 잡기’로 비칠까 고민해야 하는 지경이다. 이제 협치 논쟁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일방적인 승리로 막을 내리고 있다. 힘없고 지원군 없는 야당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대통령제의 폐해, 낡은 정당 구조 특히 여소야대 국회라는 현실 때문에 문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대선후보가 협치를 외쳤지만, 정작 문재인 정부는 이런저런 이유로 협치를 회피하고 있다. 다수의 정치전문가는 선택이 아닌 필수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예외의 마술’에 걸려 있는 대통령과 청와대는 능력을 과신한 듯 여전히 이를 수단으로 인식한다.

채진원 경희대 교수는 “우리 현실에서 정당 간 협치는 힘을 가진 쪽이 상대를 배려하거나 약한 쪽이 이익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다. 권력을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서로 나눠 공동의 이익을 극대화하자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책임을 나누어 공익을 키우자는 협치의 참의미를 대통령 참모들이 새겨야 한다.

지지율 과잉 신뢰는 가장 큰 ‘암초’ 될 수도


▎이언주 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가 7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국민의당 원내대표 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 원내수석부대표는 문재인 정부가 포퓰리즘적 독재를 하고 있다며 인천공항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최저시급 인상 등에 대해 비판했다. /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정부는 성공할 수 있을까?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대다수 국민이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란다는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의 불행을 절대 반복하면 안 된다는 것은 지역·이념·계층·세대를 넘어서는 국민 요구다. 이것이 문재인 정부에는 큰 힘이 되고, 웬만큼 잘하면 성공한 정권으로 역사적 평가를 받을 것이다. 천 년에 한 번 만난다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얻은 정권이다.

그런데 곳곳에 암초가 보이고 불안하다. 먼저 지지율 고공행진에 대한 과잉 신뢰 문제다. 탈권위, 소통의 상징인 문재인 대통령이 힘의 정치를 시작했다. 지지율을 디딤돌 삼아 여론의 힘으로 국정을 밀어붙인다.

청와대에서 총리와 장관 추천 배경을 직접 브리핑했던 대통령이 인사배제 5대 원칙 논란과 관련해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비서실장 대독(代讀) 사과 표명과 관련해 박근혜 정권의 불통을 연상시킨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민 앞에 자주 나와 대통령이 직접 브리핑을 하겠다던 소통 의지는 빈말처럼 보인다”는 비판도 들렸다.

국민들은 문 대통령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국회를 찾고, 야당 지도부를 만나 장관 후보 한 사람 한 사람을 직접 구출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 흠결이 있지만 대통령의 선한 의지에 야당이 화답하고, 국민이 박수를 치는 모습을 그렸다. 정부는 정부대로 달리고, 야당은 야당대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소박한 기대가 순진한 헛된 꿈이었다.

지금이라도 문 대통령은 작은 일도 이해와 협조를 구하겠다는 초심을 지켜나가야 한다. 친서민, 반권위, 소통행보는 유불리를 따지고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불리할 때 이를 피하지 않아야 큰 이득을 볼 수 있다. 그것이 민생의 안정과 공익이라는 열매다. 손해를 감수하고 용기를 내는 당당함이 필요하다. 문 대통령만이 할 수 있고, 그런 자세가 청와대 참모와 집권여당을 바꿀 수 있다.

또한 대통령은 집권여당에 자율성을 주고, 국회의 권위를 무조건 인정해야 한다. 지금의 민주당은 국회 제1당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대변정당’처럼 보인다. 당청의 협조 관계에 시비를 거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과 집권당의 특수 관계 이전에 정부와 국회의 관계로 역할 분담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제왕적 대통령이라며 매일같이 비판을 쏟았던 민주당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런 정당과 다르다’는 부분적 차별로 국민의 이해를 구하면 이율배반이다. 날카로운 눈을 가진 사람에게는 비슷하게 보일 뿐이다.

이는 여당의 체질 변화보다 대통령이 여당을 존중하고 당의 결정을 따르면 쉽게 해결된다. 개방적인 언로(言路)와 건강한 당청 관계의 시스템이 필요하다. 협치와 관련해 집권여당이 대통령을 설득하지 않고, 야당에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본질을 흐리면 전임 정권과 똑같다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상상을 해보자. 현재는 지지율이 80%를 오르내리고 있으니 그나마 견딜 것이다. 그러나 어느날 40% 전후로 곤두박질치는 대통령 지지율 앞에서 어떤 야당이 협조를 하고, 어떤 여당 국회의원이 대통령을 보호할 것인가? 박근혜 정부도 집권 초기 70% 이상의 지지율을 유지했다. ‘우리는 다르다’고 자만하지 말고 ‘우리도 같을 수 있다’는 전제로 당청이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대통령의 전면적인 협치다. 이는 야당에 대한 조건 없는 대화와 타협이다.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어가는 유일한 방책이기도 하다.

존재감 없는 자유한국당, 존립기반 상실 위기의 국민의당, 갈 길 먼 바른정당, 6명에 불과한 정의당 등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 길게 보고 크게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 대통령의 뜻을 우선 관철시킨다는 자세를 버리고 야당 요구를 먼저 들어주겠다고 마음을 바꿔야 한다.

모든 정권에 예외 없었던 레임덕


▎6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자유한국당 대표 회의실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정우택 당시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정 원내대표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임명은 문재인 대통령의 협치 포기이며 국민과 국회를 무시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 사진:오종택
장관 임명과 추경안 처리를 동시에 하겠다는 의욕보다 취사선택으로 야당의 요구를 수용하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그에 앞서 야당 지도자와 수시로 만나 대통령의 생각과 의지를 가감 없이 토론해야 한다. ‘할 만큼 했다’며 반복적으로 고난에 찬 결단을 내리면 그 후유증은 고스란히 대통령에게 쌓인다.

외교 문제는 대통령과 청와대의 힘으로 돌파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라 안의 수많은 갈등과 개혁과제를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산업구조조정, 교육개혁, 인구절벽, 가계부채, 일자리창출, 비정규직, 자영업자 생계대책 등 겹겹이 쌓여 있는 국가적 난제들이다. 먹고사는 문제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의 이익이 걸려 있기 때문에 다수결로 해결될 수도 없다. 오직 사회적 대타협, 즉 합의만이 근원적인 해법이다.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협치가 바로 사회적 대타협이다. 그런 자세만이 난마처럼 얽힌 국가혁신 과제를 하나하나 풀어나갈 수 있다.

신뢰란 상대방으로 인한 내 손해를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결심에서 나온다. 문 대통령이 양보를 전제로 정치실험을 하는 게 아니라 나라를 위해 협치의 정치 실천을 해야 한다.

집권 초기 의욕이 불타는 시점에 레임덕 얘기는 뜬금없을 수 있다.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문재인 정부도 집권 3년차부터 레임덕이 올 수밖에 없다. 가깝게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3년차가, 길게는 진보 정부 10년이 타산지석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쁘게 홀로 서둘지 말고 협치라는 ‘황금열쇠’를 잡아야 한다.

‘레임덕’은 모든 정권에 예외 없이 거칠게 왔다. 가장 큰 피해는 대통령이 입었다. 외부에서 온 게 아니라 내부의 ‘총질’로부터 시작됐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다.

- 전계완 정치평론가 jkw68@hanmail.net

201708호 (2017.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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