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ZOOM UP] 50년 만에 새 단장… 세운상가의 새로운 꿈 

손끝기술과 상상력이 만났다 4차 산업혁명 산실로 리스타트! 

글·사진 전민규 월간중앙 기자 jun.minkyu@joins.com
농사로봇, 의료용 3D 프린터 등 ICT 융합 입주업체들 눈길… 리모델링 개장 이후 생긴 임대료 상승 문제는 해결돼야

노병은 죽지 않았다. 철거 대상 ‘애물단지’로 취급받던 세운상가가 스타트업 거점으로 부활했다. 자리를 지켜온 기술장인 1600여 명은 청년사업가들과 함께 제조업 혁신을 준비한다. 새 업체들 맞이에 분주한 세운상가를 찾았다.


▎세운상가 옥상텃밭에서는 ‘스마트 농업’ 체험교육이 정기적으로 열린다. 10월 14일 교육에 참가한 서울대학교사범대학 부설초등학교 학생들이 농사로봇 ‘밭봇’을 보며 신기해 하고 있다.
서울 세운상가가 50년 만에 새롭게 단장했다. 9월 19일 서울시는 3년6개월 진행한 ‘세운상가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1단계 리모델링을 마무리하고 세운상가 재개장 행사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세운상가 재생으로 (종로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도심 보행축을 잇게 됐다”며 “세운상가 일대가 4차 산업을 이끌 창의제조산업 거점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세운상가와 대림상가를 연결하는 ‘다시세운보행교’를 지나고 있다.
예전 ‘세운상가’ 간판 자리에 ‘메이커시티(Makercity) 세운’이라고 적힌 간판이 내걸렸다. ‘메이커(Maker)’란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 ‘생각에 형체를 입히는 사람’을 말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개인 제조창업이 가능해지면서 만들어진 개념이다. 서울시는 세운상가에 ‘메이커스 큐브’라는 창업공간을 만들고, 기술장인 및 상인, 청년사업가를 연결하는 지원센터도 마련했다.

‘도시재생’ 기치 내걸고 ‘메이커시티 세운’으로 새 출발


▎세운상가 류재용 기술장인(왼쪽)과 스타트업 ‘보리’의 배현종 대표가 류 장인의 작업실에서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용산전자상가 이전에 세운상가가 있었다. 종묘공원 맞은편 판자촌을 밀어내고 1968년 세워진 세운상가는 1980년대까지 한국 전기·전자산업의 메카 역할을 했다. ‘세운상가에 가면 인공위성도 만들어낸다’는 우스갯소리가 회자될 정도였다. 주상복합 건물로 지어져 사회 각계 명사가 거주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1987년 정부가 용산역 청과물시장 부지에 전자상가를 조성하면서 세운상권은 쇠퇴의 길을 걸었다. 2006년 오세훈 서울시장은 세운상가를 철거하고 공원을 조성하겠노라 공언하기도 했다. 2014년 박원순 서울시장이 리모델링으로 방향을 튼 지 3년6개월 만에 세운상가는 소규모 제조창업의 공간으로 부활했다.


▎세운상가 5층 실내광장을 찾은 한 시민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전시대 양 옆으로 세운상가 터줏대감 작업실·사무실이 늘어서 있다.
지난해 7월 입주한 ‘웃는텃밭’ 백혜숙(52) 대표는 세운상가 재개장으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스마트 농업’을 알리기 위해 세운상가에 입주했다는 백 대표는 세운상가 옥상에 텃밭을 조성하고 아이들에게 농업과 디지털 기술의 융합을 교육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와! 로봇이 알아서 잡초도 뽑고 물도 주네요.” 10월 14일 오전 세운상가 옥상텃밭을 찾은 초등학생들의 눈이 반짝였다. 백 대표는 “3D 프린터 스타트업인 ‘아나츠(Anatz)’에서 만든 농사로봇인 ‘밭봇’”이라고 소개하며 “부산에서도 휴대전화 하나로 일을 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밭봇은 흙에 있는 영양성분을 측정해 사용자에게 알리고, 급수나 잡초 제거 같은 농사일도 사람 대신 해준다.

“도심에 이만한 창업 인프라 갖춘 곳 또 있나요?”


▎세운상가 전면광장을 지나는 시민 너머로 새 단장한 세운상가의 모습이 보인다. ‘메이커시티 세운’ 간판이 세운상가의 새로운 정체성을 보여준다.
아나츠 이동엽(44) 대표는 지난 9월 사무실과 공장을 세운상가로 이전했다. 17년 동안 캐나다에서 IT 개발자로 활동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뒤 자체 개발한 3D 프린터 특허도 획득했다. ‘제조업의 ICT화’가 꿈이라는 이 대표는 최근 백혜숙 대표와 함께 ‘스마트 벌통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스마트 벌통은 스마트폰 등 IT 기기를 통해 꿀벌의 상태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대표는 1억원을 호가하는 의료용 3D 프린터의 국산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세계 어떤 나라도 도심 한가운데에 이런 인프라를 갖춘 곳은 드물다”며 “입주업체 및 기술장인들과 협업을 통해 새로운 사업들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아나츠 이동엽 대표가 스타트업 창업공간인 ‘메이커스 큐브’에서 손수 제작한 스마트 벌통의 설계를 확인하고 있다.
세운상가 재개장 이후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적지 않은 임대료 상승 때문이다. 과거에 월 25만~30만원(30㎡대 기준) 하던 임대료가 재개장 한 달도 안 돼 평균 10만원가량 올랐다. 이동엽 대표는 “활기 넘치는 분위기는 좋지만 되레 그런 분위기 탓에 임대료가 올라 기존 상인들이 쫓겨나서는 안 된다”며 제조업과 스타트업의 상생이 좌절될 것을 걱정했다.

서울시는 2019년 12월까지 나머지 구간인 삼풍상가~진양상가에 공중보행로를 설치할 계획이다. 그렇게 되면 세운상가는 제작에서 생산, 판매까지 이어지는 ‘메이커시티’의 마지막 퍼즐을 완성하게 된다.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1600여 개 제조업체와 새로운 변화를 몰고 올 스타트업 기업들은 4차 산업혁명의 전초기지를 꿈꾸며 혁신을 준비하고 있다.

- 글·사진 전민규 월간중앙 기자 jun.minkyu@joins.com

201711호 (2017.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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