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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의 한자 時評(11) 干城] “황제라도 군문에서는 군율을 지켜야 하오이다”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방패 기능에 무기 덧댄 干, 공격 막아내는 城…나라와 민족에 ‘올곧게’ 헌신하는 군인이 절실

▎KBS 사극 <태조왕건>에서 왕건(왼쪽에서 넷째)이 장수들을 이끌고 몸소 전투를 지휘하고 있다. 왼쪽 둘째부터 태평 군사(김하균 분), 신숭겸(김형일 분), 왕건(최수종 분), 복지겸(길용우 분), 배현경(신동훈 분), 홍유(송용태 분).
중국의 역사에서 등장하는 가장 ‘군기 센’ 군대가 하나 있다. 細柳營(세류영)이다. 가느다란 버드나무 가지가 있는 곳? 그럴지도 모르겠다. 원래 앞의 두 글자, ‘細柳(세류)’는 여기서 지명이다.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을 세운 진시황의 수도 셴양(咸陽) 인근에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인 중국 서한(西漢) 때 유명한 장수 周亞夫(주아부)라는 인물이 그곳에 주둔했다. 그가 이끌었던 군문(軍門)의 이름이 細柳營(세류영)이다.

당시 서한 왕조의 가장 큰 근심거리는 북방의 흉노였다. 늘 남쪽의 서한을 침략해 약탈을 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에 분주했다. 황제는 문제(文帝)였고, 그 서한의 수도 주변을 지키는 부대 중의 하나가 세류영이었다.

황제는 어느 날 시찰에 나섰다. 覇上(패상)과 棘門(극문), 그리고 細柳營(세류영)에 주둔 중인 군대를 방문하기로 했다. 황제의 일행은 覇上(패상)과 棘門(극문)을 아무런 제지 없이 통과했다.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던 황제의 어가(御駕) 행렬을 누가 막을 수 있었을까. 그러나 細柳營(세류영)에서는 달랐다.

황제 행렬의 호위대가 먼저 도착했다. 정문에는 갑옷을 걸치고 칼과 활로 무장한 무사들이 서 있었다. “황제 행렬이 곧 도착하니 길을 열라”고 했으나 장병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초병들은 “군문에서는 장군의 명령만 따른다”며 막무가내였다.

이어 황제가 도착했어도 마찬가지였다. 영문 앞의 장병들은 역시 태산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황제 일행이 장수에게 통첩을 보내서야 비로소 길을 열어줬다. 그러면서도 “규율에 따라 영내에서는 말을 빨리 달릴 수 없다”고 ‘잔소리’까지 했다.

황제 일행의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그러나 상황은 더 나아지지 않았다. 장수 주아부(周亞夫)는 완전히 무장을 한 채 황제 앞에서 무릎도 꿇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장수가 군영에 있을 때는 무장을 풀지 않고, 황제가 오시더라도 무릎을 꿇지 않으니 이해하라”고 했다.

그럼에도 황제는 기분이 좋았다. 주아부가 명장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군은 국가를 지키는 초석이다. 따라서 제 아무리 높은 신분의 사람이 오더라도 군영 안에서는 군의 규율, 군율(軍律)을 지켜야 한다. 그런 군대는 반드시 적을 보면 나가서 용감하게 싸울 수 있는 법이다. 그런 장면을 확인하고 기분이 좋았으니 문제도 괜찮은 황제였다. 그는 주아부를 “진짜 장군(眞將軍)”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세류영’은 ‘제대로 준비를 마친 군대’ ‘훌륭한 군대’의 대명사로 변했다. 군대를 키우면서 가꾸고, 그들의 의지를 북돋우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 북핵의 위협이 도져 존망이 위태로울 수 있는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서울 지하철 1호선에 남영(南營)이라는 역이 있다. 이럴 경우 원래 그곳이 군대 주둔지였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 이른바 군영(軍營)이었다는 얘기다. 영문(營門)도 역시 군대 주둔지를 지칭하는 단어다.

그러나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는 군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한자어는 간성(干城)이다. 우리 한자 새김에서 干(간)은 방패를 가리킨다. 城(성)은 달리 풀이가 필요 없을 정도로 친숙하다. 누군가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쌓은 담이다. 따라서 간성(干城)이라고 적으면 우리는 흔히 나라를 지키는 방패와 성채로 우선 풀고, 나아가 국방을 담당한 군대라는 의미를 덧붙인다.

세류영의 주아부는 어디에?

그러나 한자 초기의 글자꼴을 보면 干(간)은 단순한 방패가 아니었던 듯싶다. 방패의 기능이 있는 무엇인가에 공격 때 필요한 무기를 덧댄 모습이다. 그러니 단순 방패라고 간주하기 보다는 방어와 함께 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일종의 무기라고 보는 편이 낫다.

城(성)도 단순한 흙담은 아니었다고 본다. 한자 초기 꼴을 보면 무기를 쥔 사람, 또는 그 무기 자체에다 흙으로 쌓은 담이 어울린 형태로 나온다. 따라서 무장한 사람 등이 흙으로 쌓은 담 위에 올라 누군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과 제가 속한 집단을 지키는 모습이다.

城(성)과 함께 붙는 글자로는 郭(곽)이 있다. 이 글자의 모습도 완연한 담장이다. 그냥 담이 아니라 전투를 위한 건축이다. 가운데에 마을이 등장하고 그를 사방에서 에워싼 담의 형태다. 담 위에 설치한 망루(望樓)가 있어 적의 동태를 살피는 군사적 용도의 글자라는 점이 뚜렷하다.

둘을 병렬하면 성곽(城郭)이다. 앞의 城(성)은 보통 안으로 두른 담, 뒤의 郭(곽)은 그를 넓게 에워싼 담이다. 작은 규모의 담이 城(성), 그를 크게 둘러싼 담이 郭(곽)이다. 외곽(外郭), 윤곽(輪郭) 등의 단어가 왜 만들어졌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보루(堡壘)라는 단어도 생각해 봄직하다. 둘 다 공격과 방어를 상정한 건축이다. ‘지키다’라는 새김의 保(보)라는 글자에 담을 지칭하는 듯한 土(토)가 붙었다. 따라서 나중에 생긴 글자로 추정한다. 壘(루)의 처음 꼴은 적의 동태를 관찰하는 망루의 모습이다.

따라서 壘(루) 역시 담장을 두른 뒤에 망루를 내고 적을 살피는 시설이라고 볼 수 있다. 군사적인 시설물임을 금세 알 수 있다. 야구에서 득점에 필요한 전진기지라는 의미로 1~3루(壘)를 이 글자로 적고 있으니 쓰임새가 제법 실하다.

성채(城砦)라고 적을 때의 砦(채)도 흙이나 돌로 쌓은 군사적 용도의 담이다. 寨(채)는 나무로 둘렀던 담이다. 營(영)이라는 글자도 궁궐의 외부를 두른 담이라는 의미에서 출발해 지금은 군영(軍營), 병영(兵營) 등의 단어로 발전했다.

심지어 나라를 가리키는 國(국)이라는 글자도 담장과 관련이 있다. 그것도 무기(戈)를 지니고 거주지(안의 작은 네모)를 지키는 큰 둘레의 담(큰 네모)이라는 요소로 이뤄져 있다. 적의 위협 앞에서 스스로를 지킬 줄 알아야 ‘나라’의 의미가 온전해진다는 점을 슬며시 깨우쳐주는 대목이다.

이들 모두 인류 역사에서 피할 수 없었던 전쟁의 흔적이다. 그러니 나라의 안보는 매우 중요하다. ‘간성’의 의미가 요즘처럼 절박해지는 때가 없을 듯하다. 세류영의 주아부와 같은 군인도 절실해진다. 우리는 우리의 성곽을 튼튼히 유지했으며 나라와 민족에 올곧게 헌신할 줄 아는 군인을 제대로 키웠던 것일까. 이 문제를 자주 생각해보는 요즘이다.

※ 유광종 - 중어중문학(학사), 중국 고대문자학(석사 홍콩)을 공부했다. 중앙일보에서 대만 타이베이 특파원, 베이징 특파원, 외교안보 선임기자, 논설위원을 지냈다. 현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저서로 <유광종의 지하철 한자 여행 1, 2호선> <중국이 두렵지 않은가> <백선엽의 6·25전쟁 징비록 1, 2권> 등이 있다.

201711호 (2017.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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