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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김정은 ‘다수의 폭정’ 용인술 

내 손에 피 안 묻히고 2인자끼리 견제·제거 반복 

전수진 월간중앙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흙수저’ 황병서, ‘오뚝이’ 최용해의 질긴 악연
■초고속 승진 뒤에 바로 계급 강등시키는 충격요법
■운구차 7인방의 몰락 이어 삼지연 8인방도 행적 묘연
■중대결심 있을 때마다 찾은 백두산 또 방문한 속내는?

‘인사(人事)가 만사(萬事)’인 건 북한이라고 다르지 않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통치술에서 인사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승진과 강등, 나아가선 숙청과 복권도 불시에 강행한다. 롤러코스터를 태우는 식이다. 이런 김정은식 인사는 정치학 용어인 ‘다수의 폭정(tyranny of the majority)’으로 정리할 수 있다.


▎2012년 11월, 김정은과 장성택(맨 오른쪽), 현영철(맨 왼쪽)이 인민군 기마중대를 시찰하는 모습. 맨 뒤로 최용해의 모습이 보인다. 이 사진이 나온 약 1년 뒤 김정은은 장성택을 처형한다.
2012 년 11월 북한이 공개한 사진 한 장.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점박이 말을 타고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그 바로 옆에서 고모부 장성택 당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말을 타고 같은 곳을 바라본다. 김 위원장의 오른쪽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서 있어 권력 핵심에 근접했음을 과시한다. 그 뒤로는 최용해 당시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자리하고 있다. 김정은의 조선인민군 소속 기마중대 훈련장 시찰 장면이다.

이 사진 한 장을 두고 장성택의 위상이 더 높아졌다는 해석이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왔다. 김정은과 장성택이 타고 있는 말의 장식이 같고, 둘의 거리도 가까워서다. 인민군 기마중대 시찰 행사인 데도 군을 대표하는 총정치국장인 최용해는 정작 뒤에 서 있다.

그러나 2017년 12월 현재, 장성택도 현영철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김정은은 이 둘에게 숙청의 칼날을 겨눴다. 정권의 2인자로 불렸던 장성택은 이 사진이 공개된 이듬해인 2013년 12월,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 도중에 끌려 나갔다. 특별군사재판에 넘겨진 장성택은 ‘국가전복 음모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됐다.

현영철의 목숨도 오래 가진 못했다. 현영철은 2015년 5월에 처형된 것으로 정보당국은 보고 있다. 현영철의 숙청 이유에 대해 국가정보원은 그가 김정은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거나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으며, 김정은이 주재한 회의 석상에서 졸고 있는 모습 등으로 인해 ‘불충’으로 낙인찍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현영철 처형은 재판 절차도 거치지 않았을 정도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는 게 당시 국정원의 전언이다. 김정은이 권력 기반 강화를 위해 숙청과 처형과 같은 충격요법을 구사하는 것으로 읽혔다.

숙청이나 처형과 같은 극단적 조치는 아니어도 김정은의 인사는 칼춤을 춘다. 승진과 강등은 일상다반사. ‘롤러코스터 인사’라 할 만하다.

‘계급장 뗐다 붙였다’ 김정은식 충격요법


▎김정일의 장례식에서 김정은과 함께 운구차를 호위한 이들은 ‘운구차 7인방’으로 불리며 핵심 실세로 등극하는 듯했으나 모두 처형 또는 해임됐다.
한 나라의 국방부 장관이 2년간 네 번 바뀌었다고 가정해보자. 정책의 지속성이나 조직 안정성에서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터다. 그러나 북한에선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2011년 12월, 김정일의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권좌에 오른 김정은은 이듬해 4월 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이었던 김정각을 한국의 국방부 장관에 해당하는 인민무력부장에 임명한다. 파격적 승진 인사였다. 그러나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김정각은 7개월 만에 전격 해임된다. 이후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총장을 맡고 있다. 이 학교는 군 엘리트를 양성하는 곳으로, 김정은도 2002~2007년 이 대학의 특설반에서 공부했다고 알려져 있다. 김정각을 숙청할 만한 사유는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인사를 통해 자신의 권력과 존재감을 확인시키고 충성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김정각의 뒤를 이어 인민무력부장으로 임명된 김격식의 운명은 더 가혹했다. 전임자보다 더 짧은 6개월간 재임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사람을 계속 긴장하게 만들고 충성을 이끌어내는 일종의 충격요법”이라고 풀이했다.

김격식의 후임인 장정남은 김정은식 롤러코스터 인사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집안 배경이 좋은 것도 아니고, 정치적 발판이 탄탄하지도 않은 장정남은 오로지 실력만으로 승부를 보는 ‘흙수저’ 타입이다. 군 생활도 동부 지역 최전방인 1군단에서 한 야전형이었다. 나이도 50대 초반으로 당시 군을 장악하고 있는 60~70대 원로층과도 확실히 차별화된 ‘젊은 피’였다. 아버지 사람들이 아닌 자기 사람을 찾고 싶었던 김정은에겐 맘에 쏙 드는 인물이 아닐 수 없었다. 2013년 5월, 김정은은 장정남을 인민무력부장으로 전격 발탁한다. 군을 대표하는 인민무력부장인 만큼 계급도 인민군 중장에서 상장으로 승진시켜준다. 롤러코스터는 계속 위를 향해 올라갔다. 약 3개월 후 장정남은 대장 계급장을 달았다. 북한 군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초고속 승진이었다.

하지만 추락은 갑자기 찾아왔다. 6개월 만인 2014년 2월, 장정남은 상장으로 갑자기 강등됐다. 갈피를 잡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 달 후, 상황은 더 알쏭달쏭해진다. 김정은이 그에게 다시 대장 계급을 달아준 것이다. 계급장을 뗐다 붙였다 사람 혼을 다 빼놓은 뒤 김정은은 결국 인민무력부장을 갈아치운다. 다음 타자는 현영철. 차라리 장정남의 경우가 나았다.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다. 2014년 6월 인민무력부장이 된 현영철은 1년도 안 돼 계급장 아닌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이 같은 인민무력부장 인사는 김일성과 김정일 시대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김일성은 집권 46년 동안 최용건·김광협·김창봉·최현·오진우로 이어지는 5명의 인민무력부장과 함께했다. 김정일도 17년간 최광·김일철·김영춘 단 3명만 인민무력부장으로 임명했다. 집권 5년 만에 인민무력부장을 4번 바꾼 김정은은 용인술 철학 자체가 다르다. 한 고위 탈북자는 익명을 전제로 “김일성과 김정일은 인사를 거의 하지 않고, 큰 과오를 범해도 ‘이럴 때 용서를 해줘야 충신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김정은은 수시로 인사를 하며 충성 경쟁을 유도한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용인술에 있어서는 선대와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엘리트층 견제하며 다수 인민의 지지 노려


▎김정은이 고모부 장성택 숙청을 결심하기 위해 백두산 삼지연을 찾은 모습. 이때 동행한 이들은 ‘삼지연 8인방’으로 불린다.
김정은의 이런 롤러코스터 용인술을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젊은 지도자의 거친 용인술이라고 폄하하는 시선도 있는 반면, 기득권과 원로 그룹에서 권위를 확보하기 위한 치밀한 계산이라는 주장도 있다. 김용현 교수는 “치밀한 용인술이라기보다 부하들을 끊임없이 경쟁시키면서 거칠게 충성을 유도하는 방식”이라고 평했다. 반면 김영수 서강대 교수는 “아버지 밑에서 간신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김정은은 용인술에 있어선 동물적 감각을 길러왔다”며 “자기 사람을 고르는 눈이 뛰어나고 충성하는 자와 하지 않는 자에 대한 포상이나 처벌이 가차 없다”고 분석했다.

혹자는 이런 인사 롤러코스터가 체제의 불안정성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적 시선을 보인다. 군부나 엘리트층이 반감을 갖고 쿠데타 등 체제 전복을 꿈꿀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집권 6년 차인 김정은 정권에서 그러한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다수의 폭정(tyranny of the majority)”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김정은이 다수의 지지에 기댄 폭정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김근식 교수의 말이다. “북한 주민들은 군이나 엘리트층의 부패를 많이 봐온 사람들이다. 김정은의 잦은 숙청과 좌천 등은 주민들에게 오히려 ‘부패 청산’과 같은 이미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간부들이 처벌받고 처형될수록 주민들의 지지는 높아진다. 김정은도 이 점을 잘 알기에 ‘다수의 폭정’을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김정은의 롤러코스터 용인술은 군부와 엘리트층을 공포정치로 견제하면서 주민들의 지지도 함께 얻겠다는 일석이조 노림수라는 얘기다.

김정은 시대의 첫 핵심 측근으로 꼽혔던 이들은 이른바 ‘운구차 7인방’이다. 김정일의 장례식에서 김정은과 함께 운구차 옆을 지켰던 7인이다. 장성택과 김기남 당 비서,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 이영호 총참모장,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김정각 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현 국가보위성) 제1부부장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김정일 장례식에서 눈을 맞으며 김정은과 함께 운구차를 호위하며 걸었다.

그러나 현재 이 중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인물은 없다. 장성택과 이영호는 처형됐고, 김기남과 최태복은 지난 10월 7일 열린 제7기 2차 전원회의에서 해임됐다. 김영춘은 현직이 파악되지 않는데다 북한 관영매체의 보도 등에서도 일절 보이지 않는다. 우동측 부부장은 2012년 3월 김정일 사망 100일 중앙추모대회 참석 이후 자취를 감췄다. 김정각은 인민무력부장 롤러코스터를 탄 뒤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총장으로 조용히 지내고 있다. 운구차 7인방은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퇴장했다.

운구차 7인방의 빈 자리를 메운 것은 이른바 ‘삼지연 8인방’이다. 삼지연은 백두산 인근의 양강도의 지명으로 북한이 김일성의 ‘혁명활동 성지’로 선전해온 곳이다. 김정은은 2013년 11월 29일 이곳을 찾는다. 그의 곁엔 8인이 함께한다. 당시 직함 기준으로 황병서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 한광상 당 재정경리부장, 김병호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 박태성 당 부부장, 마원춘 당 부부장, 홍영칠 기계공업부 부부장이다. 김정은의 낙점을 받은 신(新) 파워 엘리트 계층이었다. 당시 표면적으론 여전히 ‘운구차 7인방’이 득세한 시기였으나, 김정은은 이미 마음속에서 다음 권력지도를 그리고 있었던 셈이다.

이 삼지연 회동의 의미가 깊은 건 그 목적 때문이다. 김정은은 자신의 새 사람들을 규합해 옛 세력을 쳐낼 구상을 한다. 그 핵심은 고모부 장성택이었다. 삼지연 회동에서 김정은은 장성택 제거 구상을 구체화했고, 보름 후 장성택은 처형된다.

공식석상에서 사라진 황병서, 출당설도


▎지난봄 평양 여명거리 완공식에 참석한 황병서(왼쪽)를 김정은 위원장이 쳐다보고 있다. 시선이 곱지 않다.
이 8명 중에서도 특히 이름을 기억해 둬야 할 이는 황병서와 김원홍이다. 이들은 장성택 처형을 계기로 김정은의 핵심 측근이자 2인자로서의 입지를 탄탄히 다지게 된다. 그러나 이들에겐 숙명의 라이벌이 있으니, 최용해다. 글 첫머리에 언급한 김정은의 기마중대 훈련장 사진에서 장성택 뒤에 서 있던 인물. 최용해·황병서·김원홍은 2인자 삼각구도를 그리며 상호 견제와 충성 경쟁을 하게 된다. 김정은은 이 셋에게도 좌천과 복귀의 롤러코스터를 태운다. 이들의 얽히고설킨 인연은 현재 진행형이다.

2인자 3인방 중에서도 황병서와 최용해는 극과 극의 대조를 이룬다. 황병서는 당 조직지도부에서 잔뼈가 굵은 인사로 전형적 자수성가형이다. 반면 최용해는 북한의 대표적 금수저다. 아버지 최현(1907~82)이 김일성과 함께 항일 빨치산 동료였던 인연이다. 북한은 김일성의 정통성을 주장할 때 항일 빨치산 활동을 주요 근거로 내세운다. 그런 북한에서 빨치산의 후예라는 핏줄은 든든한 배경이다. ‘빨치산 금수저’인 셈이다. 김영수 교수는 신라의 골품제에 빗대 “황병서가 육두품이라면 최용해는 진골 계급”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금수저든, 흙수저든 김정은 수하에선 부침을 겪고 충성 경쟁을 해야 한다는 점은 같다.

황병서에겐 ‘굴욕 영상’이 있다. 2015년 6월 북한 관영 조선중앙TV를 통해 공개된 군 훈련일꾼대회 영상이다. 김정은과 함께 걸어가던 황병서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앞서 걷게 되자 황급히 뒷걸음질을 치는 모습이다. 김정은보다 앞서 걷다가 행여 눈밖에 날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생생히 포착됐고, 이는 북한 주민에게도 공개됐다. 이후에도 황병서는 공개 회의석상 등에서 김정은에게 무릎을 꿇고 손으로 입을 가린 채로 보고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정은이 ‘노인 냄새가 싫다’며 입을 가리고 보고하라는 명을 내렸다는 얘기가 회자되던 때였다. 황병서는 1949년생으로 올해 68세다. 김정은이 자리에 앉으라고 손짓을 하지만 바로 앉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는 모습도 보인다. 김정은이 거듭 손짓을 하고 나서야 경례를 하고 자리로 돌아간다.

이뿐만이 아니다. 황병서는 김정은을 위한 충성가도 만들어 보급했다. ‘알았습니다’라는 제목으로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명령 지시에는 오직 ‘알았습니다’라는 한마디 대답밖에 모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정은도 최용해 대신 황병서를 군 총정치국장 자리에 앉히며 황병서의 손을 들어주는 듯했다. 그러나 아무리 눈물겨운 충성이라 해도 김정은의 마음을 영원히 붙잡을 수는 없는 듯하다. 황병서의 신변에 이상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첫 징후는 지난 10월 9일 포착됐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김정일 총비서 추대 20주년 경축대회’ 내용을 전하면서 참석자를 김영남→최용해→박봉주→황병서 순서로 표기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김영남→황병서→박봉주→최용해였다. 북한 관영 매체에서 호명 순서는 곧 권력 서열과 직결된다. 황병서가 두 계단 아래로 떨어지고, 그 자리에 최용해가 들어갔음을 암시했다. 10월부터 북한 매체에서 아예 자취를 감췄다. 황병서처럼 고위급 동정이나 사진·영상이 갑자기 어느 시점부터 보도되지 않는다면 숙청됐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국정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해 확인 중이다. 11월 진행된 국회 정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국정원은 “최용해의 주도로 황병서와 김원홍이 처벌됐다는 첩보가 입수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국정원은 “최용해 주재 아래 당 지도부가 불순한 태도를 문제 삼아 군 정치국에 대한 검열을 진행 중”이라며 “이 같은 검열은 20년 만에 처음”이라고 보고했다고 한다. 최용해는 현재 당 조직지도부 부장도 맡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오뚝이’ 최용해가 최후 승자?


▎김정은이 최근 백두산에 올랐다고 북한 매체들이 12월 9일 일제히 전했다. 김정은은 장성택 숙청 등 중대 결심을 앞두고 백두산 일대를 찾곤 했다. 이번에도 숙청의 피바람을 예고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일각에선 황병서가 ‘철직(해임을 의미)’에 이어 노동당에서 출당 조치까지 당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김원홍은 수용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는 정보도 함께 나돈다. 황병서와 김원홍 모두 뇌물을 받고 인사를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데, 김정은이 “일벌백계하라”고 지시를 내린 데 따른 조치라고 한다.

실제로 황병서가 출당 조치까지 당했다면 이는 정치적 생명이 끝났음을 의미하며, 사실상 재기가 어려운 숙청을 당한 걸로 볼 수 있다. ‘당이 곧 국가’라는 사회주의 체제인 데다 김정은이 아버지의 선군정치와는 달리 당에 무게중심을 두는 행보를 보여오고 있기 때문이다. 처형과 같은 극단적 사태는 면한 것으로 보이지만 복권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를 주도하는 인물이 최용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최용해의 칼끝이 삼지연 8인방의 핵심인 황병서와 김원홍을 향한 것이다. 삼지연 8인방도 흔들리고 있다는 의미다. 2인자끼리 상호 견제하는 수준을 넘어 서로를 제거하는 그림을 김정은이 짜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자기의 손엔 피를 묻히지 않고 2인자끼리 서로 견제하도록 하는 셈법이다.

지금 칼자루를 쥐었다고는 하지만 최용해도 수차례 좌천 대상이 됐던 전력이 있다. 오죽하면 남측에서 그의 별명이 ‘오뚝이’일까. 최용해는 여러 번 ‘혁명화 교육’ 처벌을 받은 바 있다. 혁명화 교육은 모든 직위에서 해임된 후 지방 협동농장에서 일하며 사상 교육을 받는 처벌이다.

1950년생인 최용해는 ‘빨치산 금수저’인 덕에 일찌감치 정치적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1989년 당시 대학생이었던 임수경 전 의원이 방북해 화제가 됐던 평양세계청년축전의 개막 연설을 맡았던 인물도 최용해다. 이후 북한의 주요 단체인 사회주의 노동청년동맹의 위원장을 맡으며 승승장구하지만, 1997년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직위에서 해임됐다. 이후 2004년에도 비리 혐의로 혁명화 교육을 받고 좌천됐으나 권력 핵심으로 다시 복귀한다. 최용해가 거듭 재기를 할 수 있었던 데는 그의 특유의 능란한 처세술도 있지만 ‘빨치산의 후예’로서의 그의 상징적인 가치를 김정은이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가 젊은 시절부터 정부 각 분야에서 쌓아온 경험도 김정은이 무시하진 못했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김용현 교수는 “최용해가 빨치산 2세로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에 걸쳐 일해왔다는 점도 있고 당·정·군의 여러 분야에서 오랜 기간 다양한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최용해를 쉽게 내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2015년 11월, 최용해는 또다시 공개 석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석 달 후 다시 모습을 드러내면서 건재를 알리긴 했으나 그의 공백기를 두고 여러 가지 설이 나왔다. 국정원은 당시 최용해가 김정은의 관심 사업이었던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의 토사 붕괴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추방돼 혁명화 교육을 받고 있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그가 당뇨 등 지병이 악화돼 치료를 받았던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복권 후 북한 매체에서 공개한 사진에서 최용해의 오른쪽 다리가 왼쪽에 비해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이 나오면서 이런 주장에 무게가 실렸다. 다리를 심하게 절뚝거리며 걷는 모습도 조선중앙TV를 통해 공개됐다.

어쨌거나 최용해의 컴백은 성공적이다. 적어도 현재 웃고 있는 인물이 황병서가 아닌 최용해라는 점은 확실하다. 김정은이 지난 10월 7일 단행한 인사에서 최용해의 서열은 2단계 상승했다. 여기에다 당 중앙군사위 위원과 당 부장직까지 추가로 맡았다. 이미 그 전에 6개의 보직(당 정치국 상무위원,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당 중앙위원회 위원,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국가체육지도위원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갖고 있었는데 이번 인사로 감투가 8개로 늘어났다. 김정은이 최용해에게 권력의 무게추를 옮겨주고 있는 모양새다.

김정은 또 백두산행(行)… 중대 결심?

최용해의 달라진 위상은 김정은의 최근 백두산행을 봐도 드러난다. 김정은은 갑자기 백두산에 오르고 삼지연을 방문했다. 노동신문 등 관영 매체는 지난 12월 9일 김정은이 백두산에 오른 사진을 대거 쏟아냈다. 이를 두고 김정은이 또 다른 ‘백두산 구상’을 꾸미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장성택 처형 직전 삼지연 8인방과 함께 백두산을 찾았던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뿐 아니라 김일성도 그랬다. 1977년 김동규 부주석의 숙청에 앞서 백두산 인근 낚시터에서 장고를 하는 모습을 보인 게 대표적 사례다.

왜 하필 백두산일까. 북한은 백두산을 체제 정통성의 근거지로 선전해오고 있다. 김일성이 항일 빨치산 활동의 주무대로 삼았던 곳과 김정일이 태어난 곳이 백두산이라는 게 북한 측의 선전 내용이다. 최고지도자가 중대한 결심을 앞두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면서 동시에 정통성을 부각시켜 그 결심에 힘을 실을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백두산 방문인 셈이다.

김정은의 2013년 11월 삼지연 방문이 장성택 숙청의 피바람으로 이어졌듯, 이번 백두산 방문 역시 중대한 변화 기류의 예고편일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2013년과 이번 방문이 달랐던 건 그 수행단이었다. ‘삼지연 8인방’ 중 유일하게 마원춘 국무위원회 국장이 동행했다. 마원춘은 김정은에겐 테크노크라트, 즉 전문 기술관료에 가깝다. 설계전문가로, 김정은의 ‘건축 브레인’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정작 삼지연 8인방의 핵심이었던 인물들은 모두 사라졌다. 김양건은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황병서·김원홍은 숙청됐다. 그 빈자리는 당시 8인방에 들지 못했던 최용해가 채웠다. 김근식 교수는 “김정은은 어느 누구든 해임할 수 있다는 공포감을 조장하는 용인술을 쓰며 엘리트를 장악하고, 동시에 신진 테크노크라트를 발굴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며 “조직 장악과 세대 교체를 통해 ‘김정은의 사람’으로 정권을 재편하는 작업 중”이라고 해석했다. 김정일 사망 후 만 6년, 장기 집권을 꿈꾸는 30대 지도자 김정은의 나름의 인사 혁신은 현재 진행형이다.

- 전수진 월간중앙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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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호 (2017.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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