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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정세] 5년간 얼어붙었던 중·일 관계 급속 ‘해빙무드’ 

청일전쟁 이전으로 국력 우열도 역전?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특별편집위원
중국은 아시아 지배권을, 일본은 중국의 시장을 노린다…줄타기 외교로 살아남아야 하는 게 한국의 민족적 운명

▎2016년 9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만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아베 신조(왼쪽) 일본 총리. / 사진:연합뉴스
일본에서 아베 신조 총리 정권이 출범한 때는 2012년 12월이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제18차 중국 공산당대회에서 실권을 잡은 때는 그보다 한 달 전인 2012년 11월이었다. 중·일 관계가 해빙하기까지는 그로부터 5년의 시간이 걸렸다.

2012년은 일·중 간의 국교가 수립된 지 40주년이 되는 기념할 만한 해였다. 당시 출판그룹 고단샤의 중국지사 대표였던 나는 일본 경제산업성의 후원 아래 중국 주재 일본 콘텐트 기업 약 30개 사를 대표하는 회장직을 맡고 있었다. 그래서 민간인의 입장에서 일·중 국교 수립 40주년 기념식을 성공리에 이끌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해 9월 당시 노다 요시히코 민주당 정권이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의 국유화를 선언하자 중국 측이 맹렬히 반발, 그달 인민대회당에서 예정됐던 일·중 수교 40주년 기념식을 취소해 버렸다.

이런 가운데 출범한 일·중의 새 정권인 아베 총리와 시 주석은 서로를 라이벌로 여기며 각축을 벌였다. 시진핑 정부는 2013년 2월 출범한 한국의 박근혜 정권을 끌어안고 ‘일본 vs 중국+한국’이라는 구도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해 11월에 일본이 그토록 반대하던 동중국해의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해 버렸다. 아베 총리도 지지 않고 다음 달인 12월 중국이 가장 혐오하는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했다.

2014년 11월 베이징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서 드디어 만난 일·중 두 정상은 악수를 나누었지만 양쪽 모두 언짢은 듯한 표정이었다. 이유는 바로 그 전까지 약 4개월 동안, 양국의 외교 당국자가 협상을 벌였으나 양측의 간극을 좁히지 못한 채 원치 않는 타협을 강요받았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지극히 애매모호한 ‘4항목 합의’를 정하고 쌍방이 자국의 입맛에 맞게 해석함으로써 일단 서로에게 겨눴던 창을 거둬들인 것이다.

2015년에도 4월의 반둥회의(아시아·아프리카 회의) 60주년 기념행사 기간 중 자카르타에서 두 번째 일·중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불과 20여 분 만에 종료됐다. 당시 필자도 자카르타의 정상회담 취재에 동행했다. 정상회담이 끝나자 아베 총리는 “9월 베이징에 초대됐어”라며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이 초대 자리란, 9월 시진핑 주석이 베이징에서 개최한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군사 퍼레이드로, 당시 서방 국가에서 참가한 인사는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이 유일했다.

2016년에는 항저우에서 G20회의가 있었지만 일·중 정상의 관계는 여전히 찬바람이 불었으며, 2017년 5월 시진핑 주석이 베이징에서 주최한 “일대일로 국제제휴회의·포럼”에도 아베 총리는 불참했다.

일본 톱뉴스를 장식한 시진핑의 엷은 미소


▎중국 관광객들로 붐비는 일본 오사카 거리. / 사진캡처·차이나랩
이처럼 우여곡절을 거듭하던 5년간이었지만 올해 11월 11일 베트남 APEC 중에 열린 6번째 일·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이 엷은 미소를 지었다. 단지 웃음을 보였다는 이유로 일본의 톱뉴스를 장식한 인물은 시진핑 주석이 처음일 것이다.

이틀 뒤인 13일 필리핀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에서는 아베 총리와 리커창 총리 간의 ‘또 하나의 일·중 정상회담’이 열렸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에 따르면 이때는 1시간이 넘는 공식회담뿐만 아니라, 사석에서도 서로의 사적인 것까지 이야기하는 등 어느 때보다도 친밀한 회담이 이뤄졌다고 한다.

이어 11월 20일부터 26일까지 일·중 경제협회와 일본경제단체연합회, 그리고 일본상공회의소가 250명이라고 하는 사상 최대의 ‘방중단’을 구성해 베이징을 방문했다. 올해로 43번째 중국을 찾은 경제방문단 21일 오후 인민대회당에서 리커창 총리와 면담을 가졌다.

이처럼 아베 정권과 시진핑 정부가 각각 만 5년의 집권기간을 거치면서 일본과 중국은 급속히 가까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왜 그럴까?

먼저 아베 정권의 의도를 알아보자. 아베 총리는 11월 11일 시진핑 주석과의 일·중 정상회담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국 공산당 대회의 성공적 개최와 시 주석의 당 위원장 연임에 축하의 뜻을 전하고 싶다. 일·중 양국에서 리더십이 새롭게 강화된 가운데, 내년 일·중 평화우호조약 체결 40주년을 앞두고 전략적 호혜관계를 바탕으로 관계개선을 계속 강력하게 추진해나가고 싶다.

중·일 양국은 지역과 세계의 안정 및 번영에 큰 책임을 지고 있다. 특히 매우 중요한 과제인 북한에 대한 대응에 대해서 더 강력하게 연대해야 한다. 중국이 유엔 안보리 결의를 이행하기 위해 구체적인 대처를 하고 있는 점을 환영하며 계속적인 노력을 기대한다.

동중국해의 안정 없이는 일·중 관계의 진정한 개선은 없다. 동중국해가 평화·협력·우호의 바다가 될 수 있도록 계속적으로 의견을 교환하고 싶다. 일·중의 방위 당국 간에 바다와 하늘의 연락체제를 조기운용하기 위한 협의를 가속화할 것이다. 동중국해 자원개발에 관한 ‘2008년 합의’를 견지하며 이 합의의 실시를 위한 구체적 진전이 있도록 계속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 이틀 후 열린 리커창 총리와의 일·중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의 발언 요지는 다음과 같다.

“리커창 총리의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연임을 축하한다. 일·중·한 정상회의(도쿄)개최와 리커창 총리의 총리로서의 첫 방일을 앞두고 일·중 관계개선을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싶다. 일·중 양국은 이제 지역과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에 큰 책임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가운데 2008년 일·중 공동성명에서 명시된 ‘상호 파트너로서 서로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원칙을 양국 국민 사이에 제대로 정착 시켜야 할이다. 또 중국의 구조개혁 정책이나 일본의 아베노믹스 등 서로의 경제 정책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가야 할 것이다. 중국의 경제 발전은 일본에도 기회이며, 중국 경제가 안정적이며 지속 가능한 형태로 발전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북한 문제에 관해서는 한반도의 비핵화는 일·중 양국의 공통의 목표이다. 중국이 유엔안보리 결의를 완전히 이행하는 것을 포함한 지역의 평화와 안정, 일·중 간의 연계를 더욱 강화하고 싶다. 또한 일본인 납치 문제의 조속한 해결은 아베 내각의 최우선 과제로서 중국의 지지와 협력을 기대한다.

한국과 일본을 소외시킨 일대일로 전략


▎지난 11월 중국을 방문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 기업들로부터 천문학적인 규모의 수출 계약을 이끌어냈다.
두 번에 걸친 아베 총리의 발언을 살펴보면 다음의 5가지의 속셈이 드러난다.

첫째, 10월 제19차 공산당 대회에서 시진핑-리커창 총리의 직책이 유임되면서, 향후 5년 간 중국의 정치적 안정이 예상되는 만큼 일본도 본격적인 관계개선을 도모한다.

둘째 11월 8일~10일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으로 당분간 미·중 밀월관계가 분명해진 만큼 미국의 동맹국인 일본도 ‘버스를 놓치지 않도록’ 노력한다.

셋째, 기로에 서있는 아베노믹스를 부양하기 위해 일대일로와 차이나머니를 이용한다.

넷째, 북한 무역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이 북한 문제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도록 촉구한다.

다섯째, 아베 정권이 최고 중요 과제라고 외쳤던 납치 문제에 대해서도 중국의 역할을 기대한다.

오랫동안 중·일 관계를 지켜봐 온 필자로서는 특히 둘째와 셋째 요인이 가장 크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중·일 정상의 갑작스러운 접근에 환호하고 있는 것은 일본 경제계다.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경단련 회장은 11월 21일 리커창 총리와의 면담에서 “일대일로를 포함한 글로벌 경제협력을 추진하는 것이 일·중의 윈-윈 관계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또 무로오카 쇼지 일·중 경제협회 회장은 일대일로 구상을 위한 일·중 간의 협력기반을 만들고자 인프라 정비 등에 관한 공동연구체제의 구축과, 양국 기업이 협력할 수 있는 프로젝트 후보 군의 정보창구를 설치하는 등의 제안서를 총리에게 건넸다.

이처럼 일본 경제계가 일·중 간의 경제협력에서 특히 주목하고 있는 키워드의 하나가 ‘일대일로’이다.

일대일로(一帶一路, One belt One road)라는 것은 시진핑 주석이 2013년부터 제창하고 있는 유라시아 대륙에 대한 중국의 외교 전략이다. 중국과 유럽을 육로로 연결하는 ‘실크로드 경제벨트’와 해상에서 연결하는 ‘21세기 해상 실크로드’로 이뤄진다. 중국이 중심이 돼 정책, 무역, 인프라, 금융, 인적 자원의 5개를 이 곳을 통해 교류하게 한다는 장대한 목표를 내걸고, 올해 5월 시진핑 주석이 ‘일대일로 국제제휴회의·포럼’을 베이징에서 개최했다.

중국 정부가 만든 일대일로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중국과 70개국과의 가교’라고 되고 있다. 방향이 중국에서부터 서쪽으로 향해서 그런지 중국의 동쪽에 위치한 일본과 한국은 빠져 있다(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유라시아 대륙에 위치하지 않은 파나마가 포함되어 있다).

일본 경제계로서는 일대일로를 새 비즈니스의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이에 참여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아베 정권은 그동안 “일대일로는 중국의 새로운 유라시아 지배”로 경계하며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 그래서 5월의 포럼에도 니카이 토시히로 자민당 간사장과 이마이 나오야 총리 수석보좌관 등이 앞 다투어 참석했지만, 일본 정부의 참여는 이뤄지지 않았다.

중국통 이토추 상사의 화려한 귀환

일본 대기업 중에서 제일 먼저 일대일로에 이름을 올린 곳은 일·중 수교(1972년 9월) 이전부터 중국 정부로부터 ‘우호 상사 제1호’로 지정된 이토추 상사다. 2015년 1월 동사의 오카후지 마사히로 사장은 “국유 기업집단인 CITIC(중국 중신)에 6000억 엔을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태국의 거대 재벌 CP와 함께 각각 1조2000억 엔씩을 투자해 중국 및 해외 시장을 개척하려 했던 것이다. 일·중 관계가 냉각됐던 당시 일본 기업으로서는 사상 최대 규모의 대중 투자를 발표한 이토추 상사는 “무모한 도박”이라는 조롱을 받으며 연일 주가가 하락했다. 하지만 이제 일본 경제계에서는 ‘이토추 모델’로 추앙받게 됐고, 주가는 지난 반 년간 1500엔대에서 1900엔대로 치솟았다.

10월 공산당대회를 마치고 집권 기반을 굳힌 시진핑 정부는 적어도 앞으로 5년, 아니 어쩌면 10월 18일 공산당 대회 ‘5년간 활동 보고’에서 시진핑 주석이 ‘2035년까지의 목표’를 유독 강조한 점을 보면 2035년까지 계속될지도 모른다. 일본 기업에는 아무리 공산당 일당 독재체제라고 해도 안정적인 정권은 투자 위험이 경감되기 때문에 매력적으로 작용한다. 때문에 일제히 중국으로 다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일대일로에 동참한다”는 것이 일본 경제계가 가진 가장 큰 속셈이다. 그리고 두 번째 속셈은 ‘매력적인 차이나머니를 자사에 유치하고 싶다’라는 것이다. 그것은 11월에 중국의 “두 번에 걸친 바쿠가이(爆買い, 싹쓸이 구매)”를 지켜보았던 것이 크게 작용했다.

첫째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중 당시, 양국 기업이 나눈 ‘2535억 달러 계약’이다. 11월 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지켜보는 가운데 미국을 대표하는 29개 기업의 대표가 홍조 띈 얼굴로 단상에 올라가서 계약 각서에 서명했다.

“국가에너지투자집단이 셰일 가스와 화학제품 생산을 위해 웨스트버지니아 주에 837억 달러 투자, 중국석유화학이 알래스카 주의 액화천연가스 개발에 430억 달러 투자, 중국항공기재집단이 보잉사로부터 B737 260대, B787과 B777를 40대, 총 300대를 370억 달러에 구매, 샤오미·OPPO·vivo가 퀄컴으로부터 휴대전화 부품을 120억 달러에 구매, 중국이 내년까지 미국으로부터 1200만t 분의 콩을 50억 달러에 추가 수입, 지샹항공이 B787의 엔진을 GM 전기 등에서 35억 달러 구매 등등.”

이처럼 거액의 ‘바쿠가이’가 가능한 것은 세상이 아무리 넓다고는 하지만 중국밖에 없다. 이를 목격한 일본 기업으로서는 새삼 차이나머니의 위력을 실감한 것이다.

또 하나는 11월 11일에 중국 전역에서 벌어진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 ‘광군제(光棍節)’ 열풍이다. 알리바바는 상하이의 행사장에서 시시각각으로 누적되는 소비액을 발표했다.

“개시 11초 만에 1억 위안 돌파, 28초에 10억 위안 돌파, 3분 1초에 100억 위안, 11분 14초로 200억 위안 돌파, 9시간 4초로 1000억 위안 돌파….”

결국 24시간 동안 전년 대비 39.4%가 늘어난 1682억6800만 위안을 판매한 것이었다. 한화로 환산하면 28조6000억 원에 달하는 규모다. 일본 최대의 온라인쇼핑몰인 라쿠텐의 연간 거래액과 맞먹는 동시에, 일본 백화점 전체의 6개월간 매출액을 합한 금액과 같다.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텐마오 사이트에서의 쇼핑 성사 건 수는 24시간 동안 14억8000만 건(전년 대비 41%증가)에 이르렀다. 중국 국민이 평균 1번씩은 산 셈으로 초당으로 환산하면, 1초에 무려 25만6000 건이다!

이 사이트에는 중국 안팎의 100만 개가 넘는 회사가 약 1500만 개의 상품을 올려놓았다. 그 가운데 24시간 안에 매출 1억 위안을 돌파한 기업을 ‘억위안 클럽’이라고 부른다. 올해는 167개 회사에 달했다.

주목할 것은 이 ‘억위안 클럽’의 ‘베스트 10’에 일본 기업이 두 개나 들어 있는 것이다. 6위의 유니클로와 7위의 샤프다. 유니클로는 2017년 8월 말 현재 일본 국내에서 831점포, 중국 대륙에서 555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8월 결산(2016년 9월~2017년 8월)에서는 국내 매출 8107억 엔인데 비해 해외 매출은 7081억 엔으로, 곧 중국 시장을 주력으로 한 해외 매출이 일본 매출을 뛰어넘을 기세다.

샤프도 한때 부도 위기에 처했지만, 지난해 홍하이가 인수하며 ‘중국계 기업’이 된 이후 실적이 V자 회복세를 보였다. 10월에 발표된 2017년 실적 전망을 보면 매출액 21.3% 증가, 영업 이익은 516배 증가를 목표로 한다. V자 회복의 뒤에는 중국 시장이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이 밖에도 2017년 광군제에는 다수의 일본 기업이 참가했는데, 텐마오 사이트에 있는 17개국의 쇼핑몰에서 ‘미국관’과 ‘한국관’을 제치고 ‘일본관’의 매출이 압도적이었다. 일본 기업들의 ‘월경 비즈니스’는 지금이 전성기인 것이다.

이러한 중국 기업과 중국인의 왕성한 ‘바쿠가이’ 실태를 목격한 일본 기업은 중·일의 정치 환경이 개선되는 것과 맞물려 새삼 중국 비즈니스를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중국 경제계는 다소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최근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중국 경제 관료와 광둥성의 전기회사 사장이 일본을 방문했는데, 중·일 경제문제에 조예가 깊은 그들은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시진핑 주석이 11월 11일 베트남에서, 리커창 총리가 13일 필리핀에서 각각 아베 총리와 정상 회담을 가지면서 중·일 관계가 호전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양국 사이에 ‘5번째의 경제 붐 ‘이 도래할 것이다.

중국이 개혁·개방정책을 시작한 1980년대에 일본 기업의 제 1차 중국 진출 붐이 일었다. 이어 1992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가속하자!’고 선언한 후가 제 2차 중국 진출 붐. 2001년에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을 때가 제3차 붐,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전후에 제4차 붐이 일었다.

이번 제5차 붐의 특징은 처음으로 중국 기업들의 일본 시장 진출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중국과 대부분의 국가와의 경제 관계는 중국의 투자액이 중국에의 투자액을 웃돈다. 그동안 중국 기업들은 정치 리스크를 떠안고 있는 일본 투자를 주저했으나 양국 간의 관개 개선의 징후가 보이면서 2018년에는 중국 기업들의 ‘일본 진출 러시 원년’이 될 것이다.”

2018년에는 중국 기업의 ‘일본 진출 러시 원년’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로 불리는 광군제 행사에서 판매된 상품을 분류 중인 택배회사 직원들. / 사진:연합뉴스
알리바바의 알리 페이(전자 결제)는 일본의 백화점이나 편의점 등에서도 서서히 침투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전자 결제 보급률은 아직 10%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중국에서는 이미 5억 명이 알리 페이를 이용하고 있다.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는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는 완전한 캐시리스 사회가 도래한 것이다. 더욱이 스마트폰 결제는 날마다 진보하고 있어 지문 인증 시대를 거쳐 얼굴 인증 시대가 시작됐다.

즉 중국은 모든 소비의 기초가 되는 결제 부분에서 이미 일본보다 몇 걸음 앞서고 있는 것이다. 이 한 가지를 보더라도 ‘일본=선진국, 중국=개발도상국’이라는 20세기적 발상은 붕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11월 8일에는 일본 최대의 택시회사인 다이이치교통산 업이 도쿄·오사카·후쿠오카·오키나와·홋카이도에서 세계 최대의 배차 앱인 디디추싱과의 제휴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발표했다. 디디추싱은 이미 하네다 공항을 비롯하여 일본의 각 공항 등에 진출해 중국인 관광객을 실어 나르고 있었지만 내년 이후는 완전히 합법적으로 일본에 진출하게 되는 것이다.

중국 최대의 공유 자전거 업체인 모바이크도 이미 삿포로에서 시험 운영을 시작했다. 이제는 일본 전국에 있는 편의점과 매칭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중국 최대의 화궈(중국식 샤브샤브) 체인점인 하이디라오도 도쿄의 이케부쿠로에 300석이나 되는 거대 점포를 상륙시켰다. ‘이케부쿠로의 상징’으로 불리는 세이부 백화점을 나오면 매운 화궈 냄새가 코를 찌른다. 하이디라오 역시 조만간 일본 전역에 점포를 설립할 예정이다.

광둥성의 전기회사 사장은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는 일본 기업 인수를 위한 도쿄 출장이 계속될 것 같아서 이번에 일단 오다이바에 숙박용 고급맨션을 샀다. 도쿄의 맨션은 비슷한 크기의 광저우 맨션보다 30%가량 저렴하다. 요 며칠 10개 가까운 일본 기업을 돌아다녔지만 기술력이 높고, 직원들은 부지런하다. 게다가 인수 금액은 싸다. 중국 기업에게 일본 시장은 그야말로 ‘보물창고’다.”

마지막으로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착수하고 있는 시진핑 정부의 의도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싶다. 10월 제19차 중국 공산당대회에서 보여준 시진핑 정부의 뜻은 다음의 세 가지 점이다.

‘단기 목표’: 중국 공산당 100주년인 2021년까지 모든 분야에서 아시아 넘버1 국가가 된다.

‘중기 목표’: 시진핑 정부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는 2035년까지 모든 분야에서 유라시아 대륙 넘버1 국가가 된다.

‘장기 목표’: 건국 100주년인 2049년까지 모든 분야에서 세계 넘버1 국가가 된다.

2049년까지 세계 넘버1 국가로!

시진핑 정부가 이 5년간 일본에 대해 경쟁의식을 노출한 것은 오로지 <단기 목표>을 달성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일본의 급속한 저출산 고령화 등과 맞물려서, 이 단기 목표가 예정을 앞당겨 실현될 기미를 시진핑 정부가 포착한 것이리라. 따라서 다음의 네 가지 의도로 일본에 접근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1. 공산당 대회와 트럼프 대통령 방중을 성공시킨 시진핑 정부에 자신감과 여유가 생기자, 일본에 대해서도 다른 주변국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상하’ 관계를 구축하고 싶다.

2. 중국 경제의 부양과 일대일로의 성공에 일본 경제 및 기술을 끌어들이고 싶다.

3. 미국 트럼프 정부가 북한과 전쟁을 일으키지 않도록 전쟁에 반대하는 일본을 끌어안고 미국과 일본의 분단을 도모한다.

4. 아베 정권이 주장하는 인도·태평양 전략(미국, 일본, 인도, 호주의 중국 포위망)을 무산시킨다.

돌이켜보면, 아시아는 고대로부터 중국을 중심으로 한 ‘화이질서(華夷秩序)’에 의해서 유지돼 왔다. 종주국인 중국과 그 주변의 속국(조공국)에 의한 ‘책봉 체제’다. 그러던 것이 1840년 아편전쟁에서 청나라가 영국으로부터 타격을 받고, 반세기 후인 1894년 청일전쟁으로 일본 제국의 타격을 받았다. 그리고 20세기 전반은 반식민지적인 처지를 감수해야 했고 한때는 일본 제국이 중국 영토의 약 3분의 1을 차지했다.

그러나 1945년에 일본은 미국에 패배했고, 1949년 국공내전을 제압한 중국 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했다. 그리고 약 70년을 거치면서 드디어 ‘청일전쟁 이전으로의 회복’을 중국이 강렬하게 의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증거로 청일전쟁 직전의 청나라와 현재의 일본, 그리고 청일전쟁 직전의 일본 제국과 현재의 중국은 각각 으스스할 정도의 공통분모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1894년을 기점으로 중·일의 위치가 뒤집힌 것처럼, 현재의 동아시아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다시 일·중이 역전돼 가는 과정임에 틀림없다. 참고로 한국도 강국들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로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는 민족적인 운명은 청일전쟁 당시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특별편집위원

201801호 (2017.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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