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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2)] 김정은의 정상회담 카드 속내 

남북 대화에서 북·미 대화로 간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제재의 근본을 흔드는 남북한 합의 선언 시 한미동맹 좌초 우려…북한, 서울 볼모로 핵·미사일 개발하면 정세는 ‘비포(before) 평창’ 회귀

▎문재인 대통령이 2월 10일 청와대를 방문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에게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친서를 받았다.
"네가 이번에 평창에 한번 다녀오거라.”

“제가요? 남측에 가면 누굴 만나죠?”

“남측 최고지도자를 평양에 초청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여정이 네가 가야 일이 잘될 것 같다. 미제 우두머리의 딸도 온다고 하더라. 네가 가서 기선을 제압하고 오거라.”

“오빠 알았어요. 특사 역할 잘하고 올게요.”

북한의 30대 오누이 가족정치를 이끄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평창겨울올림픽에 참가하기 전 나누었을 법한 대화다.

“한마디로 부지런하다. 보통내기가 아니다. 싹싹하다. 시아버지 나이에 해당하는 노회한 군 원로를 처음 만나서는 ‘안녕하십니까~’하고 악수를 청하고 능청스럽게 이야기를 건넨다. 갑작스러운 악수에 놀라는 고령의 당 간부들에게 오히려 ‘열심히 한다고 들었습니다’라고 선수를 친다. 거침이 없다. 친화력이 대단하다.”

한국 거주자로서 유일하게 김여정 제1부부장을 평양에서 세 번 이상 만나본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의 인물평이다. 박 사장은 2011년 12월 26일 금수산궁전 김정일 국방위원장 장례식장에서 조문을 하면서 검은색 상복을 입고 오빠 김정은과 문상객을 맞는 김여정을 처음 보았다. 그 후 박 사장은 여러 차례 방북해 김여정을 가까이서, 때로는 멀리서 지켜보고 짧은 대화를 나눴다. 김여정의 부지런하고 가만히 있지 못하는 적극적인 성격은 그 후 공식행사에서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김정은 위원장이 참석하는 각종 행사장에서 가방을 끼고 단상 뒤에서 이리저리 이동하는 장면이 조선중앙TV에 자주 포착됨에 따라 그의 액티브한 성격은 관심의 대상이 됐다.

김여정(金與正, 1987년 9월 26일생)은 성장기가 베일에 가려 있다가 2011년 1월 14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영국의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턴(Eric Clapton) 공연장에서 처음 한국 언론에 포착됐다. 큰오빠 김정철과 함께 공연장을 찾은 모습이 KBS 취재진의 카메라에 노출됐다. 아직은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기 전이라 당시만 해도 그저 유명한 외국 팝스타에 열광하는 철없는 젊은 금수저 처자 정도로 평가됐다.

김정은이 김정일의 후계자로 지명돼 황태자 수업을 받고 있던 시절이라 김정일의 사후에 서구 생활에 물든 이들이 북한 체제를 제대로 통치할 수 있을지 불확실했다. 과연 이들 남매가 3대 세습의 과업을 성공적으로 이어받을지 미지수였다. 이때는 필자가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으로 근무하면서 김정은의 지능(IQ)과 능력을 파악하는 데 주력하던 시기였다. 2008년 8월 14일 뇌졸중으로 저세상 문턱까지 갔던 김정일은 수술실에서 회복실로 옮겨 재활에 주력하면서 그해 가을 내내 후계 문제를 고심했다. 드디어 2009년 1월 24일 북한 전역에 ‘발걸음’ ‘청년대장 동지’ 등의 노래를 배포하면서 김정은의 후계자 작업이 공식화한다. 김정은의 동향과 해외 거주 시절 행적을 추적하면서 그가 유일한 여동생 김여정과 각별한 사이라는 팩트들이 감지됐다.

지난해 12월 21일 평양에서 열린 북한 노동당 ‘제5차 세포위원장 대회’에서 김여정 부부장은 김정은 위원장과 같은 맨 앞줄에 착석했다. 김여정의 자리는 김정은의 오른쪽 다섯째였다. 좌석 배치는 김여정의 서열이 북한에서 10위권 이내 임을 상징한다. 같은 줄엔 최용해·김평해·오수용·박태성 등 당의 최고위 간부들이 함께 앉아 있었다.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 동생 김경희를 훨씬 능가하는 권력 장악력이다. 1인 독재체제 아래 가장 총애하는 핏줄인 이상 김여정의 권력 서열은 이미 무의미하다. 유일수령체제에서 최고지도자와 자유롭게 독대 보고를 할 수 있는 인물은 피붙이 외에는 불가능하다.

김여정의 수백억 원짜리 언론플레이


▎2월 8일 북한 건군절 70주년 열병식 연설을 하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뒤에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 사진:조선중앙TV
결국 김여정은 김정은의 아바타이자 특수대리인이다. 그의 위상은 방남 전날 열린 2월 8일 건군절 열병식에서 다시 한 번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김여정은 열병식 내내 주석단 기둥에 몸을 숨긴 채 김정은 위원장을 지켜보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오누이가 평양의 최고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김여정은 지근거리에서 모든 행사를 보좌하고 기획하는 최측근의 위상을 가감 없이 보여줬다. 권력은 지도자와의 거리에 비례한다. 단순 실세들은 최고지도자에게 너무 가까이 가면 의심과 견제를 받아 타 죽는다. 하지만 권력을 찬탈할 가능성이 없는 여동생은 아무리 가까워도 무탈하다. 그들을 이간시킬 간 큰 인물은 북한에 존재하지 않는다.

서울과 평창에서 김여정의 임무 수행은 북측 입장에서 성공적이었다. 장외 외교 및 이미지 경기에서 사실상 금메달감이다. 김여정은 2월 10일 청와대 방문록에 독특한 글씨체로 “평양과 서울이 우리 겨레의 마음속에서 더 가까워지고 통일번영의 미래가 앞당겨지기를 기대합니다”라고 적었다. 미국 대통령이 우리 오빠를 로켓맨이라고 비판하지만 우리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평창올림픽 취재진을 통해 전 세계에 과시했다. 광고단가 기준으로 볼 때 수백억 원을 투입해야만 가능한 확실한 언론플레이였다.

김여정은 문 대통령과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과 경기 후 악수를 하고 격려함으로써 올림픽 주인공의 역할을 화려하게 수행했다. 겨울올림픽 참가 선수들의 메달 경쟁이나 명장면보다는 김여정의 발언과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미국의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오토 웜비어의 부친 및 탈북자들과 천안함을 방문하고 북한의 잔인함을 강력 비판했지만 김여정의 미소작전에 밀려버렸다. 오히려 문 대통령 주최 리셉션에 불참한 것을 두고 외교 결례라는 비판에 직면, 백악관이 해명에 진땀을 흘렸다. 김영남과 마이크 펜스가 조우하게 하는 사진의 앵글을 확보하고 싶어 하는 청와대의 의중을 거부한 데 대한 후유증이었다.

폐막식이 임박해서 이방카가 평창을 방문해도 관심도는 김여정의 절반에도 못 미칠 것이다. 그저 트럼프 대통령의 딸이라는 정도의 호기심뿐일 것이다. 결국 선전전에서 평양의 압승이었다. 한반도 긴장과 평화 속에 깊이 잠복해 있는 민족 공조의 환영(幻影)과 유령이 올림픽을 기점으로 기승을 부린 결과다.

트럼프와의 일전엔 서울의 협력이 필수


▎2월 7일 강원도 묵호항에 정박한 만경봉 92호에서 하선하는 북한 예술단원과 관계자들.
평양 통전부에서 기획한 ‘백두공주’ 김여정의 임무는 특사 자격으로 김정은 위원장 명의의 남북정상회담 초청장을 문 대통령에게 화려하고 우아하게 전달하는 역할이다. 남북정상회담 카드는 북한이 남한을 쥐고 흔들 때 사용하는 마지막 비장의 무기다. 북한이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하고 발표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대남 전략·전술이다.

김여정의 청와대에서 친서 전달 행위는 과거 2000년 6·15와 2007년 10·4 정상회담 성사 당시 막전막후와 같이 제3국에서 남북한 비밀 요원들이 언론의 눈길을 피해 합의를 도출한 방식과는 근본적으로 궤를 달리한다. 1·2차 정상회담은 물밑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비공개 형태였다. 정상회담 성사에 대한 불투명성과 남북 양측의 상호 불신 및 신중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에 사전 수차례에 걸쳐 주고받기 조건 맞추기가 필요했다. 따라서 정상회담 공동선언문의 내용까지 조율하고 합의가 완료된 이후 회담 개최 사실을 발표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핵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아 비교적 치명적인 장애물도 없었고 의심에 찬 국제사회의 눈초리도 크게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유엔 안보리 제재나 5·24 조치와 같이 인적·물적 남북 왕래를 차단하는 국내외 견제장치도 부재했다. 오히려 국내 정치적 측면에서 정상회담 성사에 매달렸다. 따라서 두 차례의 정상회담은 남북이 합의만 하면 가능했던 2차방정식 수준이었다.

북측은 3차 정상회담은 공개적인 고공비행 방식으로 접근했다. 김정은은 궁지에서 정면돌파를 택했다. 트럼프와 일전을 불사하기 위해서는 서울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3차 정상회담은 차원과 상황이 다르다. 사태가 엄중하고 복잡하다. 단순히 서울과 평양 외에 워싱턴과 뉴욕 및 도쿄가 뒤엉킨 복합 외교전이 배후에 기다리고 있다. 남북이 합의만 한다고 성사되기에는 후폭풍이 간단치 않다. 북측은 정상회담 친서 전달 메신저로 김여정을 내세웠다. 핵과 미사일의 어두운 그림자가 오버랩되는 고령의 김영남보다는 순진무구형의 젊은 처자를 내세우는 것이 거부감을 불식 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평양은 판단했다.

남측이 이번에 각별히 강조하는 북측의 진지한 협상 자세는 역시 혈육인 백두공주가 적임자다. 백두공주는 수다보다는 미소가 훨씬 효과적이다. 김여정은 007가방에 국장이 색인된 파란색의 친서 서류철을 지참, 평양 초청이 갖는 수많은 복선을 감추면서 실무형 비즈니스 이미지를 과시했다. 김여정은 2월 10일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을 이른 시일 안에 만날 용의가 있다”며 “편한 시간에 북한을 방문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말하면서 미소를 머금은 채 친서를 문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남북정상회담 방패로 제재와 미국 군사옵션 차단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21차에 걸친 장관급회담이 열렸지만 비핵화 성과는 전무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의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A4용지 3분의 2 분량의 친서 내용에 대해 청와대가 공개하지 않아 인터넷에선 추측성 보도가 넘치고 있다. 북측은 과거부터 남측 정상이나 고위급 인사를 초청할 때 ‘편한 시간’ ‘날이 따듯해지면’ 등 추상적인 시점을 언급했다. 국제 관계에서 사용되는 외교 수사로 해석할 수 있지만 북측은 남북정상회담 개최 시점부터 주도권 장악에 나선다. 북한이 생각하는 “편한 시간”은 남북관계의 만조기인 6·15부터 8·15까지가 될 것이다. 아마도 남북 양측은 8월 하순 예정인 한·미 연합 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이전에는 정상회담을 성사시킬 복안일 것이다. 늦어도 정권 창설 70주년인 9·9절까지는 성사를 완료할 것이다. 사실 3차 정상회담은 이제 북측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에 내려올 차례다. 두 차례나 서울에서 평양을 방문했으니 3차는 순서상 서울 개최가 마땅하다. 하지만 최고 존엄이 평양을 떠날 의도는 없는 것 같다.

삼수 끝에 개최한 겨울올림픽은 여하간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 한마디로 흥행에 성공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평창올림픽이 평양올림픽으로 변질됐는지 논란이 있지만 지난해 북핵과 미사일 발사의 긴장 속에 일부 국가가 불참할 것으로 보여 성공적 개최에 빨간 불이 들어왔던 시점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북한 선수단 등에 과공(過恭) 논란 등이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개최한 겨울올림픽은 2월 25일 폐막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3월에 장애인 올림픽이 있지만 본게임의 긴장과 설렘은 없다.

문 대통령은 평양 초청에 대해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서 성사시키자”고 했다. 사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불감청고소원이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운전석 이론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는 것이 출발인데 돌파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어왔다. 평창이 결국 돌파구를 열어줬고 내친김에 꽃피는 4월이라도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머리와 가슴을 맞대고 진정한 담판을 시도하고 싶을 것이다.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은 시 ‘황무지’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했다. 그가 4월을 가장 잔인한 달로 표현한 것은 봄이 진정한 재생을 가져오지 않고 공허한 추억으로 고통을 주기 때문이었다. 4월 이후에는 평창은 더 이상 없다. 핵과 미사일의 냉엄한 현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북한은 평창은 없지만 평양으로 무대를 옮겨 민족 공조 놀이를 계속하고 싶어 한다. 김영남은 내친김에 ‘경평축구’ ‘발레단 평양공연’ 등 예술·문화 교류의 보따리를 잔뜩 풀어놓아 남측을 확실히 흔들어놓고 밤비행기로 돌아갔다. 남북관계의 급물살을 예고하는 장면이다.

남측도 이에 호응해 우선 4월 안에 대북 특사를 파견해서 정상회담 분위기 조성에 주력할 것이다. 축구단과 예술단 방북도 신속하게 진행할 것이다. 대북 특사는 문 대통령의 현재 핵 동결을 비핵화의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입구(入口)론’으로 평양 수뇌부와 줄다리기에 들어갈 것이다. 북한은 확실한 언질을 주지 않고 남북정상회담을 방패로 제재와 미국 군사옵션을 차단하는 것이 목표다.

한·미 훈련 중단은 서울의 고립무원 자초 행위


▎지난해 9월 포항에서 실시된 한미 연합훈련.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미 연합훈련 중단 여론이 조성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문 대통령의 ‘여건 성사’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미국 등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비핵화 대화에 북한이 응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백악관은 문 대통령의 평양 초청장 수령에 대해 한국과 긴밀하게 협의하고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외견상 3차 남북 정상회담 성사 과정에서 양국 간 이견이 외부로 노출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은 한·미 동맹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워싱턴은 남북관계가 비핵화와 별개로 앞서 나갈 순 없다는 입장이다.

북한은 역설적으로 한·미 동맹이 견고할 때 서울의 목소리에 신경을 쓴다. 한·미 동맹의 첫 번째 시련의 딜레마는 한·미 연합훈련이다. 4월에는 연기됐던 한·미 간 독수리연습 등 연합훈련을 바로 시작하는 것이 김여정 방남 전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연례적이고 방어적인 훈련이 과연 봄날에 실시할 수 있을지 점차 불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일부 청와대 조언그룹은 1992년과 1994~96년의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 사례를 언급했다. 3월부터 서서히 훈련 중단 여론을 조성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앞두고 분위기 조성 차원에서 금년에 한해 훈련 중단 선언을 해야 한다고 여론몰이를 할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문제의 본말을 전도하지 말아야 한다. 한미동맹의 핵심 구조는 생사가 걸린 안보로서 연합훈련은 동맹이 살아 움직인다는 증거다. 북한은 연합훈련의 고리를 차단하는 과정에서 현란하고 감성적인 통일전선 전술을 구사할 것이다. 훈련 중단은 동맹의 자해 행위로서 서울에서 평양만을 쳐다보는 고립무원의 광경이 연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아이스하키 경기에서 ‘우리는 하나다’란 구호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소회를 밝혔다. ‘아 이제는 핵과 미사일을 개발해도 남측이 전면에서 미국을 제지할 테니 살았구나’라는 판단인지 속내를 알 수는 없다. 40일 전만 해도 ‘코피 작전(bloody nose)’이 거론되던 점과 비교하면 서울이라는 확실한 볼모를 잡았다는 안도감에 울컥했는지 분간이 안 간다. 통일부가 대북 인도적 지원 800만 달러를 2월 안에 집행하기로 결정했다. 사실상 여건 조성의 첫발인 셈이다. 곧이어 적십자회담, 민간교류 확대 등이 숨가쁘게 발표될 것이다. 정부는 인도적 교류를 시작으로 핵 문제를 의제화해 미국을 설득한다는 로드맵을 다듬고 있다. 동시에 중국·일본·러시아 등 주변 4강을 상대로 김여정 방남 결과를 설명하며 대화 모멘텀을 유지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미국 백악관은 기본적으로 북한이 올림픽 참가를 결정하게 된 배경은 최대한의 제재와 압박의 결과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특히 중국 기업의 동참이 확대되면서 1년 정도만 더 제재를 지속하면 북한의 경제난이 심각해지는 임계점(critical point)에 도달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미국은 한국이 올림픽 기간에 한시적이나마 육·해·공에 걸쳐 제재를 허문 데 대해 인내심을 발휘했다.

한국 입장에서 정상회담 카드는 장고가 필요한 계륵의 수(數)다. 독배와 축배가 혼재된 정상회담은 과거 대통령들의 통일 대망론의 결과였다. 하지만 결과는 국내 정치세력 확보의 일환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21차에 걸친 장관급회담을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개최했지만 비핵화 성과는 전무했다. 2005년 6월 서울에서 개최된 15차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처음으로 제기된 북핵 문제에 대해 권호웅 북측 단장은 핵 문제는 남북회담의 의제가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김여정에게도 꺼내지 못한 비핵화 문제를 문 대통령이 민족 공조의 메아리가 울려 퍼지는 평양 한복판에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언급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에는 회의적이다. 북한이 자랑하는 백두산 들쭉술로 남북 정상이 ‘우리는 하나다’라는 건배 구호를 외치는 순간에도 미사일과 핵무기 기술개발은 멈추지 않는다.

남북정상회담은 전가의 보도인가?


▎북한이 지난해 11월 29일자 [노동신문]을 통해 공개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시험발사 모습. / 사진:연합뉴스
결국 남북정상회담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가 아니라는 사실은 두 차례의 만남을 통해 드러났다. 북측에서 정상회담은 남측의 지도자가 북측의 최고지도자에게 알현하는 성격으로 해석된다. 특히 김정은은 집권 6년이 지났지만 할아버지·아버지가 중국 베이징에서 진행했던 북·중 정상회담을 성사시키지 못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방북이 이뤄지면 김정은 입장에서 최소의 실질적인 정상회담이 될 것이다. 젊은 지도자이지만 국제사회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화려하게 국제 무대에 데뷔할 것이다. 독재자 로켓맨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국제적인 위상이 올라갈 것은 불문가지다.

한국은 올림픽 이후 미국에 평양 정상회담의 필요성과 불가피성을 강조할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 한국의 입장을 고려해 정상회담을 마지못해 동의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후과가 문제다. 비핵화에 대해 어떤 단초도 마련하지 못한 평양 방문 이후 문 대통령의 입지는 곤란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비핵화 회담을 하지 못한다면 문 대통령은 평양에서 조연 역할에 그치고 말 것이다. 비핵화를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북한의 기본적인 핵보유국 입장이 설득으로 변할 수 있다는 인식은 순진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북·미 대화는 사실상 한국이 중재하는 데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지난해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3~4개의 북·미 채널이 있다는 표현으로 물밑 접촉을 인정했지만 회담의 조건이 맞지 않아 성사되지 않았다고 우회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서 제재의 근본을 흔드는 남북한 합의를 선언한다면 한미동맹은 좌초할 수밖에 없다. 금강산 관광 재개 등 세간에 회자되는 북한의 경제협력 청구서가 혹시라도 평양에서 공식화된다면 앞길을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미국은 한국의 지정학적 입장을 고려해 우회적인 압박을 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미국의 저금리로 한국 증권시장이 추락한 바 있다. 세탁기를 넘어 자동차·반도체 등의 품목에서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고 유대인의 금융자본은 물밑에서 한국 자본시장에 충격을 가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민족 공조가 한미동맹 넘어서선 곤란


▎통일부가 대북 인도적 지원 예산 800만 달러를 2월 안에 집행하기로 결정했다. 2006년 한국은 수해를 입은 북한에 구호물자를 보냈다.
정치와 경제가 별개일 수 없다. 아베의 일본이 트럼프에게 공을 들이는 것도 경제적 실리 때문이다. 민족 공조의 남북 정상회담이 한미동맹의 레드라인을 넘어서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에 나서지 않으면서 서울을 볼모로 삼아 핵과 미사일 개발의 시간 벌기 작전을 전개한다면 당장 코피 작전은 아니더라도 중국 및 한국 등 제3국 기업을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을 비롯해 해상 봉쇄 등에 의한 선박 나포 등을 감행할 것이다. 북한은 이에 대응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맞대응할 것이다. 결국 한반도 정세는 원점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평창올림픽 참가의 물타기 전술이 한·미 동맹의 고리를 차단하고 갈라치기 전술을 구사할 복안이라면 평양은 위기의 돌파구를 잘못 짚은 것이다. 한·미 간 이간계(離間計) 전술은 한시적일 뿐이다.

평창 이후의 공은 결국 평양 코트로 넘어간다. 인공위성을 가장한 ICBM을 태평양으로 보낼지 북·미 간 채널로 진지한 협상을 시작할지 결심해야 한다. 남북대화가 북·미 대화로 확장되기 위해서는 북한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수적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판단대로 3개월간의 올림픽 전후 기간을 활용해 대기권 재진입 기술 시험으로 핵무력의 실전배치를 선언한다면 한반도 정세는 ‘비포(before) 평창’으로 돌아간다. 연합훈련의 연기와 중단과 상관없이 북한이 핵보유국을 고수한다면 민족 공조는 공허한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유엔 안보리의 제재와 도발의 악순환이 재연될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의 운전자론도 북·미 간 중재 외교도 평양의 비핵화 입장에 달려 있다. 만남의 불씨가 횃불이 될지 그대로 사그라질지 여부는 평양의 몫이다. 스포츠 위에 정치가 있는지, 정치 위에 스포츠가 있는지는 꽃피는 계절이 오면 판가름 날 것이다. 연일 강추위지만 4월의 한반도는 잔인한 시기가 아니라 아름다운 비핵화의 꽃이 피는 시간이 되기를 기원해본다.

-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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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호 (2018.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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