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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남북 정상회담 성공의 조건] 김정일과 150분 독대한 정동영 前 통일부 장관 

“北의 세 번째 전략적 결단 이끌어내야” 

글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美 CVID와 北 CVIG, 교환 이뤄지면 비핵화 길 보여… 獨 동방정책 추진 시 여론이 큰 힘, 결국 정치가 중요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으로 가는 길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현 민주평화당 의원)은 2004년 6월부터 2005년 12월까지 제31대 통일부 장관 재임시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독대했다. 2005년 6월 3박4일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한 정 전 장관은 김정일 위원장과 150분간의 독대 시간을 포함해 총 4시간50분 동안 자리를 함께했다. 그가 현역 정치인 중 북한을 잘 아는 대표적 인사로 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 의원은 “오늘까지는 김정은의 시간표대로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며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북한의 전략적 결단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1월 신년사, 2월 평창올림픽, 3월 북·중 정상회담, 4월 남북 정상회담, 5월 북·미 정상회담, 5월 이후 북·일 정상회담, 4월과 5월 사이 북·러 정상회담. 이렇게 정상회담이 러시를 이루고 있잖아요?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시간표대로….”

그는 최근 북측의 움직임과 관련해서 “문재인 정부가 통일을 급격히 추진하지 않겠다고 계속 신호를 보냈다”면서 “북한이 이런 진정성을 인정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과거 김정일 위원장 시절, 북한은 동굴에서 광장으로 나오려는 전략적 시도가 두 차례 있었다. 이번에 김정은 위원장이 세 번째 전략적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본다”고 해석했다.

월간중앙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북 특사 자격으로 김정일 위원장과 150분간 독대했던 정동영 전 장관을 만나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통일부 장관 시절을 돌아본다면?

“(내가) 통일부 장관을 할 때 만들어진 것이 개성공단, 9·19 공동성명이다. 개성공단은 남북 경제공동체로 가는 바퀴이고, 9·19 공동성명은 한반도 비핵화로 가는 바퀴였다. 그게 중단됐으니 참 안타깝다. 얼마 전 정의용·서훈 특사가 북한에 가서 얘기한 주제가 정상회담을 통한 남북관계의 정상화다. 남북관계가 정상화되면 개성공단도 정상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게 북·미 정상회담까지 가면 비핵화 문턱을 넘어갈 수 있다고 본다.”

9·19 공동성명은 제4차 6자 회담 중 2005년 9월 1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모든 핵무기를 파기하고 NPT(핵 확산금지조약), IAEA(국제원자력기구)로 복귀한다는 약속을 한 것이다. 또 한반도 평화협정, 단계적 비핵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핵무기 불공격 약속, 북·미 간의 신뢰구축 등을 골자로 하는 선언이다.

정 전 장관의 저서([개성역에서 파리행 기차표를])를 보면 2005년 김정일과의 면담 내용이 소개돼 있던데.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전략적 결단을 내렸던 것 같다. 동굴에서 국제사회로, 광장으로 나오기로 결심했다. 결단을 하고 남쪽의 특사를 만난 것이다. 2000년으로 돌아가 보자. 5월 북·중 정상회담, 6월 남북 정상회담, 7월 북·러 정상회담에 이어 10월 북·미 정상회담 합의로 갔다. 그러다 11월 미국 내 정권교체로 (북·미 정상회담이) 좌절됐다. 이어 5년 뒤인 2005년 (김정일은) 또 한 번 전략적인 결단을 했다. 남북 정상회담 합의, 6자 회담 복귀, 9·19 정상회담에서 핵 포기 선언. 그리고 북·미 수교까지를 얻어내지 않았나? 그런데 2007년 12월 한국 내 정권교체로 암초를 만난 것이다. 미국과 한국 내 정권교체로 좌초한 것이다.”

정 전 장관은 2005년 6월 17일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에 얽힌 뒷얘기를 자신의 저서 [개성역에서 파리행 기차표를]에서 공개했다. 저서에 따르면 6자회담 재개 요구에 대해 김 위원장은 “미국이 공화국(북한)을 압살하려 하니 핵을 가지려 할 뿐이다. 미국의 태도 변화 없이 먼저 약속했다가 못 지키면 신의 없는 사람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정 전 장관에게 ‘곰발바닥’ 요리를 내놓으면서 “다음에 폭탄주 한잔하자”는 제의도 했다고 한다.

김정은 방중 통해 中 불안감 해소됐을 듯


▎김정일 위원장이 2005년 6월 17일 평양 대동강 영빈관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에게 귓속말을 하고 있다.
한반도 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어떻게 보는가?

“김정은 위원장이 6년을 준비해 왔다고 본다. 김정은 위원장은 핵무력, 핵·경제 병진전략을 채택하고 핵무력 완성을 위해 질주해 왔다. 탄도미사일 발사 60여 차례, 핵실험 4차례, 지난해 12월 29일 드디어 완성을 선언했다. 두 가지 국가 목표 중 하나를 완성했다. 그러니 경제발전이라는 목표에 집중하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김정은 위원장은 2012년 4월 집권자로 등장하면서 ‘인민의 허리띠를 더 이상 졸라매게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려면 자력갱생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지난 6년간 22곳의 경제개발구역을 지정한 것이다. 서해안에 7곳, 압록강·두만강에 7곳, 동해안에 7곳, 거기에 지난해 12월 21일 평양시 강남군에 강남개발구역을 설정했다. 모두 외국인 투자지역이다. 최소 1억 달러에서 최대 5억 달러까지 외국자본을 투자받아서 경제개발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앞뒤가 안 맞는 말이다. 핵실험 하고 미사일 발사해 유엔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 어떻게 외자를 유치하겠나? 그래서 전략적 결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핵무력의 명분은 체제 안전보장이다. 지난 3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방북했을 때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했던 그 말은 2005년 6월 17일 김정일 위원장이 남쪽 특사인 정동영에게 한 말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 우리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고 북한과 미국이 관계를 정상화한다면, 우리가 핵을 가질 이유가 없지 않느냐’. 당시 그 말의 배경에는 전략적 결단이 있었다. 그래서 3개월 뒤인 2005년 9월 19일 베이징 공동성명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현존하는 모든 핵무기와 개발 중인 프로그램을 포기한다고 말한 것이다.”

얼마 전 김정은의 방중(訪中)을 어떻게 보는가?

“누가 제안한 건지, 그게 중요하다. 만찬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저의 방중 제안을 흔쾌히 수락해준 데 대해 감사하다’고 했다. 북한이 제안했다는 말이다. 북한의 제안 전까지만 해도 중국은 당황했을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도, 북·미 정상회담도 몰랐을 것이다. 한반도 상황은 급물살을 타는데 중국으로서는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북한이 언제쯤 정상회담을 제안했을까?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리용호 외무상이 스웨덴(3월 15일부터 사흘 방문) 가는 길에 (중국에 들러) 제안한 것으로 아마 3월 19일이었을 것이다. 19일에 북한이 제안하고 26일에 정상회담이 열린다. 딱 일주일 새 제안하고 접수하고 수락하고 준비해서 회담이 열린 것이다. 지난 7년 동안 불편했던 북·중 관계를 일거에 회복시켰다. 김정은 위원장은 ‘조·중 친선은 숭고한 의무’라고 표현했다.”

그동안 수년 동안 북·중 관계가 악화돼 있었지 않나?

“작년에 조선중앙통신은 ‘대국이라는 것들이 줏대도 없이 미국에 놀아난다’며 대놓고 중국을 공격했었다. 그만큼 북·중 관계는 불편했다. 왜냐하면 중국이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대북 제재에 동참했기 때문이다. 7년간의 불편한 관계를 일시에 돌려놓은 핵심은 김정은 위원장의 ‘한반도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는 발언이다. 중국의 대북 3대 기조를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첫째 북핵 불용(不容), 둘째 무력 사용 불용, 셋째 북한 붕괴 불용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핵실험 하고 미사일 발사하니까 중국도 불편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고 하니 마음이 풀렸던 것이다. 중국은 자신들이 한반도 문제의 대주주라고 생각해 왔다. 최근 들어 배제되는 듯한 걱정을 북한이 해소시켜준 셈이다.”

국제사회로 나오는 데 ‘회랑(回廊)’은 남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2005년 6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을 위해 수행원들과 백화원 초대소를 나서고 있다. 정 장관의 오른쪽 뒷사람은 서훈 통일부 실장.
비핵화라는 결정적인 표현을 한국을 통해 전달했는데.

“한국은 당사자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미국의 유일한 적국이 자신들이다. 또 한국의 유일한 적국이 북한이다. 우리는 이중적 지위를 갖고 있다. 통일을 향해 협력해 가는 상대이자 군사적으로는 적대관계다. 미국과 북한은 순전히 적대관계다. 두 가지를 해소하려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 그런데 남쪽 정부가 대북 적대시 정책을 가지면 그 정권과는 상대할 수 없다. 미국과 직접 상대할 수밖에 없다. 반면 남쪽 정부가 관계 정상화 의지가 있다면 당연히 통로로 쓰는 것이다. 국제사회 구성원으로 나오는 데 회랑(回廊)이 남한이다. 그리고 1991년 12월 한반도 비핵화 선언 당시 남북은 당사자로서 ‘남과 북은 핵무기의 시험·제조·생산·접수·보유·저장·배비(配備)·사용을 하지 아니한다’고 선언했다. 남북 간의 합의와 이행이 필요하다.”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트럼프 미 대통령이 요구하는 게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즉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핵 폐기다. 반면 김정은 위원장은 CVIG, 즉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보증(Guarantee)을 내놓으라 할 것이다. 양측의 교환이 이뤄지면 성공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진정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원한다면 거래가 이뤄질 것으로 본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외교적 업적이 필요하지 않을까.”

일각에서는 대화 만능주의를 경계하기도 한다.

“대화 만능주의라는 표현이 적절치는 않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대화·방치·주먹이 있는데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은 8년간 방치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최악의 정권이었다. 오바마 정부 때 북한의 핵무력이 100배 이상 강해졌다. 트럼프 정부는 지금까지 제재와 압박, 즉 주먹이었다. 이제 진지하게 대화를 통한 문제를 해결해 보자는 것이다. 개인관계든 국가관계든 한쪽이 무오류인 경우는 없다. 북핵은 관계의 산물이다. 북·미가 적이 아니고, 남북이 적이 아니면 태어나지 않았을 산물이다. 북핵 문제 해결은 크게 보면 냉전의 해체다.”

일각에서 언급되는 ‘코피작전’이 실제로 가능하다고 보나?

“불가능하다. 존 볼턴 신임 미 국가안보보좌관을 최근에 만나 토론한 한국 사람은 정동영이 유일할 것이다. 국회 외교단이 트럼프 당선 직후인 2016년 11월(14~18일) 볼턴을 만나 토론한 적이 있다. 그는 놀랍게도 ‘선제타격 가능성이 제로’라고 말했다. 볼턴은 판문점과 서울에 여러 번 와봤다. 북한이 얼마나 비이성적 집단인지도 잘 안다. 한국이 선제타격에 동의하지 않으리란 것도 안다. 당시 국무장관 후보라 그렇게 말한 것인지 몰라도 한국이 결사반대하는 상황에서 동맹인 미국의 일방적 군사옵션은 말이 안 된다.”

평화체제로 가는 데 ‘공식’은 없다

이 대목에서 정 전 장관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잠시 후 그는 “월간중앙에 처음 공개하는 것”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2005년 대북 특사로 갔을 때 노무현 대통령의 메시지를 김정일 위원장에게 전했다. ‘한국이 반대하는 한 미국이 (북한을) 공격 못 한다. 미국이 공격한다면 우리 군대는 한 명도 동원할 수 없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막을 것이다. 한국 정부의 결단이다’는 메시지가 김정일 위원장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다. 5시간 가까이 토론하는 과정에서 김 위원장에게 노 대통령의 이런 말을 전했다. 코피작전은 비현실적이다.”

국회사무처가 발간한 <동북아 평화·협력 의원 외교단 미국 방문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볼턴 전 유엔 대사는 “북한 문제에서 미국이 먼저 무력을 사용하는 일은 절대 없다. 가능성은 제로”라며 “다만 북한이 무력을 먼저 사용하게 되면 한·미연합군은 그에 대한 완전한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남북 정상회담의 첫 번째 합의 사항은 ‘북한은 핵을 포기하고, 남북은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절차를 시작한다’가 되지 않을까. 우리는 비핵화, 저쪽은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 안정을 원한다. 사실 북한도 우리의 수십 배에 달하는 위협을 느낀다. 그래서 한·미연합훈련 때마다 경기(驚氣)를 일으키는 것이다. 군사적 위협이 감소되고,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꿔내는 데 공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종전(終戰) 선언 방식도 있고, 평화협정 방식도 있고, 북·미 수교 방식도 있다. 핵심은 남북이 적이 아니라는 걸 선언하는 것이다.”

전 통일부 장관으로서, 현 남북 정상회담 자문(諮問)으로서 조언할 것이 있다면?

“가장 중요한 건 남남통합이다. 남남통합의 첫걸음은 문재인 대통령이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를 만나는 것이다. 반대파의 수장을 만나서 최근 상황에 대해서 설명하고 협조를 구해야 한다. 홍 대표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극렬 반대는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초당적(超黨的)으로 대응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국민들도 자연히 한 방향으로 뒷받침을 할 것이다. 브란트 전 독일 총리가 접촉을 통한 변화, 작은 발걸음 정책으로 동방정책을 추진할 때 서독 내 여론이 큰 힘이 됐다. 이후 정권이 바뀌어 기민당의 콜 총리도 동방정책을 이어갔다. 결국 정치가 중요하다. 언제까지 이런 상태(냉전)에서 살 것인가?”(정 전 장관과의 인터뷰 4일 뒤인 4월 13일 문재인 대통령과 홍준표 대표의 단독 영수회담이 청와대에서 진행됐다. 회동은 문 대통령이 제안하고 홍 대표가 수용하면서 이뤄졌다. 남북 정상회담 등 국내외 주요 현안이 다뤄졌다.)

- 글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201805호 (201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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