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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남북 정상회담 성공의 조건] “북, 정상국가 추구” 예견한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김정은 목표는 고도 경제성장··· 두 번째 남북 정상회담도 추진해야” 

글 고성표 월간중앙 기자
김정일 유훈 따라 중국식 성장 모델 추구… 비슷한 스타일의 리더십 가진 트럼프와 김정은 회담에 기대감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핵과 미사일 발사 실험으로 갈등이 고조되던 시기에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머지않아 ‘정상국가’를 지향할 것으로 예상해 온 국내 몇 안 되는 인물이다. 그는 김대중 정부 시절 6·15 남북 정상회담 당시 대통령 특별수행원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이어 노무현 정부 때는 외교안보의 사령탑으로 불렸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을 거쳐 통일부 장관으로 일하며 대북 실무를 두루 경험한 대표적 북한 전문가 중 하나다.

4월 11일 세종연구소에서 만난 그는 “선군정치를 통한 강성대국을 내세운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은 체제 안전보장을 바탕으로 북한 내부 경제의 고도 성장을 최종 목표로 한다”고 내다봤다. 김정은의 실용적이고 대담한 성향을 잘 파악해 우리 정부는 더 창의적이고 과감한 제안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이를 위해 남북, 북·미 정상회담 이후 연내에 반드시 두 번째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우리 정부가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김정은 위원장이 1월 신년사를 기점으로 대화 기조로 급선회했다. 왜 그랬을까?

“이미 지난해 여름께 북한이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완성을 선언하면 그 다음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대화의 길로 나설 것을 예상한 전문가가 적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북한은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따라서 김정은 위원장 자신이 갖고 있던 스케줄에 따라 전략적 결단을 한 것으로 봐야 한다.”

그동안 북한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핵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 않았나?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으로부터 군사적 위협을 해소하고 체제 안정을 보장받은 뒤 고도 경제성장을 이루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한다. 그가 생각하는 경제성장은 인민에게 밥 세끼 먹여주는 것에 있지 않다. 김정일 시대에 비해 김정은 집권 후 북한 내 경제 사정은 상당히 나아졌다. 밥 세끼 먹여주는 정도라면 굳이 핵을 포기하지 않고도 가능한 일이다. 김정일과 김정은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김정일·김정일 위원장이 어떤 차이가 있다는 건가?

“김정일은 선군정치를 통한 강성대국을 내세웠다. 인민은 두세 끼만 먹고 버티면서 핵과 미사일 등 군사적 무력을 앞세웠다. 장밋빛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허장성세가 많았다. 반면 김정은은 강성국가와 함께 정상국가를 추구한다. 김정일 시대에는 우리식 제일주의만을 강조했다. 지금도 이런 부분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김정은은 세계적 발전 추세에 따른 경제·교육 등 제반 사회 분야의 발전을 더 강조한다. 우리식만 고집하기보다는 국제 표준을 지향하는 것이다. 김정은은 실용주의적 성향이 강하고 과제 점검형 리더십을 보이는 부분이 김정일과 차이 나는 부분이다. 정상국가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은 김 위원장의 여러 행보에서도 엿보인다.”

어떤 부분에서 그런 면이 보이는가?

“김정일 시대와 달리 김정은은 군이 아닌 당이 중심이 된 지도체제를 구축했다. 얼마 전 북한에서는 김 위원장이 참석한 정치국회의가 열렸다. 정치국회의는 우리로 치면 국무회의에 해당한다. 정상국가들처럼 주요 의제를 국무회의를 통해 논의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부인 이설주를 동반해 현지지도에 나선다거나 외국 사절단을 맞고 또 부인과 함께 중국 방문에 나선 것도 과거에는 볼 수 없던 풍경이다.”

"임신한 김여정 파견은 김정은 결단 보여준 것”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김정은이 중국식 개혁·개방 모델을 상정하고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을 통해 공산당 1당 독재체제 아래서도 경제발전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과거와 달라졌다고 봐야 하나?

“사실 우리는 김 위원장을 호전적이고 모험주의적이며 잔인하게 공포정치를 하는 쪽만 강조하고 또 그렇게 보고 싶어 한 측면이 있다. 김 위원장이 갑자기 변했다기보다 우리가 모르고 있었거나 보려고 하지 않았던 면이 전략적 결단으로 드러났다고 하는 게 맞다. 정상국가를 지향하며 실용적 리더십을 보여주는 김 위원장에 대한 이런 평가는 절대 그를 칭찬하기 위해 하는 얘기가 아니다.”

지난 1월부터 남북 관계의 급속한 진전 과정을 지켜보면서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면?

“김 위원장이 김여정을 특사로 보냈고, 그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내가 특사입니다’고 밝힌 부분이다. 자신의 혈육인 김여정을 특사로 보낸 자체도 놀랍지만 김여정이 임신한 몸으로 왔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다. 임신한 여동생을 남측에 특사로 보낼 정도면 김 위원장이 남북 관계 진전을 얼마나 중대한 사안으로 인식했는지 느껴지는 대목이다. 우리 특사단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위원장이 먼저 미사일 발사 등 도발을 하지 않겠다는 모라토리엄(중단) 선언을 하고 예정된 한·미 군사훈련도 이해한다는 말을 먼저 꺼낸 것도 놀라운 부분이었다. 과거 같으면 우리가 북측과 1년을 협상해도 겨우 될까 말까 한 문제를 우리 측 설득이 아닌 김 위원장 스스로 언급한 것 아닌가.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관계 개선을 위해 자기 살점을 떼주고 시작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김여정의 행보도 주목된다. 그가 어떤 역할을 하리라고 보나?

“앞으로도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김 위원장이 젊기 때문에 오랫동안 통치할 것으로 보이지만 만약 신변에 어떤 이상이 생겼을 경우 누가 그 빈틈을 메우겠는가. 김 위원장의 자녀가 성장해 후계자가 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 간극을 메우는 역할을 할 사람은 바로 동생인 김여정밖에 없다. 김여정은 권력의 라이벌이 아니잖나. 잠재적 후계자로서의 위상을 김여정이 갖고 있다고 본다. 여러 정보에 따르면 당 간부들이 김여정을 편하게 대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김여정은 최고 존엄인 김 위원장과 간부들 사이에서 완충적 소통 역할을 하면서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 정상회담 때 어느 선까지 논의가 가능할 것으로 보나?

“비핵화가 의제인데 이 문제는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이기도 하다. 비핵화 의제는 남북 간 논의도 있겠지만 결국엔 북·미 정상 간 회동에서 결론을 내려야 하는 사안이다. 따라서 비핵화 의제를 놓고 남북이 합의할 수 있는 수준은 생각보다 높지 않을 것이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과거 정부 때 남북이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를 재확인하고 이를 위한 공동의 노력 등 추상적 수준의 합의 정도만 할 가능성이 있다. 북·미 정상회담 때 트럼프와 김정은이 대타결을 이뤄낼 수 있도록 사전에 설득하고 조율하는 디딤돌 역할을 우리가 해야 한다. 대북제제 해제나 남북 경협을 당장 논의하기는 어렵다.”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물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 아닐까?

“비핵화 의제에서 구체적 합의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그 의미가 축소되는 건 아니다. 공동 발표문 등 언론을 통해 공개되는 내용 속에는 담지 못하는 중요한 얘기들이 오갈 수 있다. 당장 큰 합의가 나오지 않더라도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적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설득과 조율 과정은 공개될 내용 이상으로 중요한 부분이다. 이런 내용은 대중 앞에 공개적으로 다 발표할 수 없는 부분이다.”

평양에 美 연락사무소 개설도 검토해야

그렇다면 남북 정상회담의 가시적 성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어떤 부분일까?

“군사적 대결을 종식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합의한다면 이것만으로도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봐야 한다. 가령 비무장지대(DMZ) 내에 있는 경계초소를 양측이 철거하기로 합의한다거나, 충돌이 잦은 북방한계선(NLL)을 해상 평화경계선으로 삼는 합의를 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만약 서울과 평양에 각각 대표부나 연락사무소 같은 것을 두는 합의를 할 수 있다면 이 또한 큰 성과가 될 수 있다. 남북 관계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조치가 될 테니까. 이산가족 상봉, 고위급회담의 정례화, 의료 협력, 인도주의 차원의 지원 등 비제재 분야에서 양 정상이 합의할 수 있는 내용은 많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실용적이고 창의적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북측에 대담하고 실용적인 제안을 과감하게 할 필요도 있다. 지금의 국면 자체가 우리의 상상을 이미 뛰어넘고 있지 않나.”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만남은 어떻게 예상하나?

“두 사람 모두 형식보다는 내용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둘러 가지 않고 스트레이트로 접근한다.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에 따르기보다는 자신이 결단을 내리는 톱다운 방식에도 익숙해 있다. 두 지도자가 정책 결정 방식이나 사안에 접근하는 태도가 유사하기 때문에 예상보다 더 잘 풀릴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비핵화를 위해 단계적·동시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미국은 단계적 해법보다는 ‘대담한 행동과 구체적 조치’를 우선하며 북을 압박한다. 어떤 해법이 가능할까?

“단계적·동시적이라는 표현과 포괄적 일괄 타결이 배치되는 개념은 아니라고 본다. 북이 핵을 먼저 폐기해야만 그 후에 체제 안정을 보장하겠다고 미국 정부나 트럼프가 공식적으로 얘기한 적은 없다. 나는 트럼프가 핵 포기만을 먼저 요구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합의는 포괄적으로 하겠지만 이를 위한 이행 로드맵은 가능한 한 짧은 시간 내에 하려고 할 것인데 이 역시 단계와 절차는 있는 것이다. 북·미 수교 문제나 평화협정 그리고 제재 해제 문제 등을 묶어 포괄적 합의 시도가 있을 것이고 북한은 기본적으로 미국과 크게 주고받는 입장을 취할 것으로 예상한다. 북한은 미국에 확실한 비핵화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 미국은 합의에 대한 신뢰를 보이는 차원에서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만드는 식의 선행 조치를 취할 필요도 있다.”

포괄적 합의 후 이행 단계가 길어지거나 지지부진해질 가능성은 없을까?

“트럼프는 자신의 임기 내에 비핵화 문제를 완전히 끝낸다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 당장 11월에 미국 중간선거도 있고 이후 자신의 재선 여부도 걸려 있다. 북·미 정상회담 후 서너 달 내에 문제가 다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두 정상이 가급적 빠른 동시 행동 조치에 나서 문제를 풀어갈 것으로 생각한다.”

북·미 정상회담 장소가 어디로 결정될지도 큰 관심사다.

“워싱턴은 의전 수준 등 여러 복잡한 문제로 쉽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김 위원장에게 다소 덜 부담스러운 장소인 뉴욕에서 하면 어떨까 싶다. 상상력을 더 동원하면 김 위원장이 컬럼비아대 같은 데서 영어로 강연을 하면 더 좋을 것 같은데….”(웃음)

비핵화 과정에서 6자회담은 여전히 유효한 수단인가?

“북·미 정상회담에서 포괄적 타협이 이뤄져도 실행 단계에서는 보완해야 할 문제가 많을 것이다. 동북아에서 다자 안보협력 체제로 확실히 만들어놓은 게 6자회담 아닌가. 이이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6자회담 이상의 틀을 구축하기란 어렵다. 북·미 양자회담 후 그 결과를 안정성 있고 온전하게 가져가기 위해서는 6자회담이 유일한 틀이다. 향후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 문제 등 여러 현안을 푸는 것 역시 이 틀에서 다뤄지는 것이 좋다.”

외국 자본·기술 들여오면 연 15% 성장도 가능

향후 북한이 개혁·개방의 길로 나온다고 봤을 때 김정은 위원장은 어떤 모델을 추구할까?

“김 위원장은 중국식 모델을 상정하고 있을 것이다. 중국의 40년 개혁·개방 성공사를 보면서 공산당 일당 독재체제하에서도 충분히 경제 발전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주목할 것이다. 이미 2010~2011년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 각 지역을 다니면서 중국식 경제발전 구상을 했다. 당시 김정일은 나진·선봉 경제특구를 만들어 중국과 공동으로 개발을 하고 이곳을 성공적 모델로 해 북한을 개혁과 개방으로 이끌려고 했다. 이런 구상은 김정은에게도 그대로 이어졌을 것이다. 이를 위해 전국적으로 특구를 조성해 놓았고 외자 유치 등 대외 개방을 위한 사전 법적 조치도 다 해놓았는데 제재 국면인 지금은 이를 실행할 수 없는 상황이다. 비핵화 결단을 통해 체제 안정을 보장받은 후 최종적으로는 중국식 고도 성장을 추구할 것으로 본다.”

북한의 개혁·개방이 성공할까?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가 잘 이뤄지면 제재 문제도 단계적으로 해소될 것 아닌가. 한국과 중국, 서방의 자본·기술이 북한의 노동력과 결합하면 연 15%의 성장도 기대해 볼 수 있다. 북한 노동자들은 문맹률이 낮고 근면하다. 경공업 분야는 상당한 수준에 와 있고 정보기술(IT) 분야에서도 고급 인력이 수만 명 정도 된다. 지하자원이 풍부한 것도 큰 이점이다. 지리적으로도 북한은 물류 중심기지가 될 수 있다. 이런 요소들이 외국의 자본·기술과 결합하면 김정은이 꿈꾸는 고도 성장이 불가능하지 않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최근 북한 내부의 변화가 감지되나?

“노동신문을 매일 스크랩하고 있는데 이전과 분위기가 다르다. 전체적으로 부드러워졌다고 해야 하나. 보통 6면을 발행하는데 지난해까지만 해도 5면은 남한 비난, 6면은 미국 비난 일색이었다. 그런데 지금 5면은 거의 경제 뉴스로 채워져 있다. 또 6면에 남한과 미국 등 국제 문제를 다루는데 과거와 같은 원색적 비난은 많이 사라졌다. 우리에 대한 비판도 지난 정부에 대한 부분에 한정하거나,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지 않고 역사적 관점에서 비판하는 정도로 많이 바뀌었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 이후 우리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남북 정상회담은 한 번으로 끝낼 것이 아니다. 북·미 회담 결과를 지켜본 후 연내에, 가급적이면 8월께 2차 남북 정상회담을 열어야 한다. 한 번 만남으로는 부족하다. 미국과의 비핵화 합의 이후에도 우리 정부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하다. 첫 번째 정상회담 때는 꺼낼 수 없는 경제협력 문제를 두 번째 회담 때는 논의할 여지가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남북이 평화체제를 넘어 공동 번영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합의해야 한다. 우리는 북을 향한 기회의 창을 두 번째 회담에서 확실히 열어야 한다.”

- 글 고성표 월간중앙 기자 muzes@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201805호 (201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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