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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 윤익중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글로벌정치 한국연구소장 

“미국·러시아, ‘우크라이나 사태’ 극적 타협 가능성 더 높다” 

조규희 월간중앙 기자
겉으로는 미국·러시아 싸움, 이면엔 미국과 EU의 우크라이나 주도권 다툼
푸틴 현 G2 체제 불만, 글로벌 강대국 간 세력관계 재구성 신호탄 될 수도


▎윤익중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글로벌정치 한국연구소장은 2월 5일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를 두고 러시아는 전면전도 불사할 태세지만 현상 유지 차원에서 극적 타협할 가능성도 있다는 견해를 내비쳤다.
최근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이 심상찮다. 여전히 대화의 불씨는 살아 있지만, 상대를 겨냥한 군사적 행보가 이어지면서 ‘전쟁’에 직면하는 듯한 상황이다. 러시아 전문가인 윤익중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글로벌정치 한국연구소장은 “우크라이나를 잃으면 머리를 잃는 것”이라는 러시아 지도자 레닌의 표현처럼, 러시아 입장에서는 절대 양보가 불가능한 만큼 전쟁으로 치달을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미국과 러시아 간 극적 타협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극도의 긴장감과 장기적 대결 구도를 유지할 경우 경제·군사·안보 측면에서 양쪽에 이득이 될 게 없기 때문이다. 2월 5일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연구실에서 윤 소장을 만나 우크라이나 사태 이면에 있는 미·EU·중·러의 역학관계를 살펴봤다.

최근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러 갈등이 심각하다. 우크라이나는 과거 유로마이단 시위, 크림반도 병합 등 이전부터 ‘갈등의 씨앗’이 있지 않았나?

“1991년 말 소연방 해체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각기 독립해 개별 주권국가의 길을 걷고 있으나, 연방 시절 양국은 70여 년 이상 정치·경제·영토·사회 부문 등 모든 분야에서 한 국가의 일원으로서 존재했다. 따라서 소연방 해체 이후 30여 년이 지났지만, 양국은 여러 부문에서 아직도 명료하게 정리되지 않은 부분들이 많다. 소위 소연방의 유산(Soviet legacy)이다.”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설명해달라.

“2004년 오렌지 혁명 이후 우크라이나는 본격적으로 친서방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궁극적으로 유럽연합(EU)·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추구하며 국가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이러한 우크라이나의 반러·친서방적인 지향은 국제사회에서 강대국으로의 복귀를 꿈꾸는 러시아의 푸틴 정권에는 결코 협상이나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사실 2000년 푸틴 등장 이후 한동안 러시아는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체제에 편입하려 했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미국의 독단적인 일방주의와 이중적 잣대로 인해 푸틴의 러시아는 서방에 맞서기 시작했다. 2007년 2월 뮌헨 안보회의에서 푸틴이 미국의 일방주의를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을 러시아와 미국의 틈이 공식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한 시점으로 본다. 2014년,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병합하며 탈냉전 시대 미국이 구축해온 유럽 안보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이는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근외국가들의 반러·친서방적 지향을 공세적인 방어로 예방하겠다는 전략이다. 따라서 지금의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러 갈등은 2013년 말 우크라이나의 유로마이단 시위, 2014년 3월 크림반도 병합, 이후 돈바스전쟁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한다. 현재 미·러 갈등은 유럽안보체제와 글로벌정치 구도에 매우 중요한 변곡점이다.”

과거 레닌 “우크라이나를 잃으면 머리를 잃는 것”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한 공원에서 1월 22일(현지시간) 정부군과 의용군이 러시아군 침공에 대비해 합동훈련을 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최근 우크라이나를 3면에서 포위한 형태로 병력과 장비를 집결시켜 양국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오렌지 혁명’은 2004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에서 적은 표차로 당선된 친러 성향의 여당 후보가 부정선거를 치렀다는 증거가 포착되면서 재선거를 치르게 했던 시민혁명을 뜻한다. ‘유로마이단’은 2013년 EU 가입을 지지하는 우크라이나 대중의 요구로 시작된 대규모 시위이자 시민혁명이다. 2014년 ‘크림반도 합병’은 우크라이나 자치공화국이었던 크림반도에서 주민투표 결과 90% 이상이 러시아와의 합병에 찬성하면서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연방 합병안에 최종 서명해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한 사태를 말한다. EU와 미국은 현재까지도 합병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에 우크라이나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러시아에 우크라이나는 사활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핵심국가란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우크라이나를 잃으면 머리를 잃는 것’이라는 러시아 지도자 레닌의 표현이 있을 정도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결코 외부세력과의 타협이나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러시아의 입장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관리·통제권 상실은 나토의 동진 확장, 근외국가 분열 가속화, 흑해 통제 약화, 유럽 에너지시장 지배력 약화 등 국익과 안보에 치명적인 위협이다. 아울러 러시아 국내정치적인 측면에서도 반푸틴·민주화 운동의 활성화에 따른 체제 불안정 우려 등 타격이 크다. 푸틴 정권과 러시아연방의 명운이 우크라이나 이슈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외국가’라는 개념이 생소하다.

“소연방은 러시아공화국, 우크라이나공화국 등 15개 공화국으로 구성돼 있었으나, 연방 해체 이후 각기 독립된 주권국가로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들 국가와의 정치·경제·영토·역사·민족·종교 등 상호연관성을 강조하며 ‘외국이지만 결코 외국이 아닌’ 근외국가(가까운 외국 또는 준외국)의 개념을 만들며 이들 국가와의 연대와 통합을 강조한다. 즉, 러시아는 근외국가를 자국의 일부로 인식하고 자신의 배타적 세력권으로서 반드시 자국과 입장을 같이할 나라로 편입시켜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주권·영토·국민을 기초로 ‘개별 국가’를 바라보는 서방과 근본적인 인식이 다르다.”

윤 소장의 설명에 따르면 2000년 푸틴 대통령 등장 이후 러시아는 근외국가와의 관계회복과 발전을 최우선 외교정책으로 설정했다.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 외교에서 우선순위 대상은 미국 등 서방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등 근외국가란 의미다.

미국, EU 통제력 강화와 대(對)중국 압박 원해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6월 1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포함해 ‘근외국가’에 러시아 국적의 국민이 많이 거주한다고 알고 있다. 이들은 구체적으로 러시아 외교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1991년 소연방 해체 이후 러시아 정부에 가장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것 중의 하나가 우크라이나 등 구소연방 공화국에 거주하고 있는 러시아인(Russian Diaspora)의 권익을 어떻게 보호하느냐에 관한 것이었다. 소연방 시절 14개 공화국에 흩어져 살던 러시아인은 당시 현지인보다 특혜를 받는 우월적 지위에 있었으나, 소연방 해체 이후 현지인에게 오히려 역차별을 받는 처지로 전락했다. 특히 1990년대 러시아 옐친 정부는 체제전환으로 인한 극심한 혼란기의 약화된 국력으로 근외국가에 거주하고 있는 러시아인(자국민)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 반면 2000년 등장한 푸틴 정부는 근외국가에 거주하는 자국민 보호를 국가정책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설정하고 신속히 실행했다. 이것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국민적 지지를 받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현재 우크라이나 인구의 약 17%가 러시아인이며 이들은 주로 동부지역(현재 돈바스 지역, 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2014년 크림반도 병합 이후 돈바스 전쟁에서 친러반군의 성향을 나타내며 분리 독립 또는 러시아와의 병합을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푸틴 대통령은 이에 호응하듯 크림반도 병합 때와 유사하게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 거주하는 러시아인을 보호하는 강력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 서부지역의 주민들은 대개 친서방적이며 미국과 유럽과의 정치·경제적인 협력을 바탕으로 국가발전을 바란다. 우크라이나는 동서로 상당히 대비되는 정치성향을 나타내고 있다.

반대로 미국이 우크라이나 사태에 개입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토를 결집하고 유럽에서 미국의 지도력을 회복하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유럽의 동맹국을 효과적으로 결집해 새로운 형태의 집단안보체제를 동아시아에서 발현시키려는 의도다. 물론 목표는 대(對)중국 압박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최우선 외교과제인 강력한 중국 압박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트럼프 정부 시절 소원해졌던 유럽 동맹국과의 협력과 단합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그러한 결집을 이끌어내기 위한 계기가 필요한데, 우크라이나 이슈는 바이든 행정부의 이러한 목적에 매우 부합한다. 아울러 EU에 대한 통제권 강화 목적도 있다. 탈냉전 시대에 새로운 유럽 안보 질서를 놓고 미국과 유럽 국가 간 주도권 경쟁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독일과 프랑스 등 EU 중심 국가는 미국과는 달리 우크라이나의 즉각적인 나토 가입을 현재 원치 않고 있다. EU의 우크라이나 추구 정책은 ‘현상 유지’이며 친유럽 성향을 유도하는 선에서 러시아와의 완충지대로 남아 있길 원한다. 하지만 미국의 자극에 의한 러시아의 군사적 행보는 미국의 적극적 개입 여지를 넓혀준다. 미국의 주도적 선택과 행동으로 EU가 끌려다니는 상황이 됐다.”

푸틴, 전면전 불사 의지 있지만 외교적 협상 바랄 것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서방과 러시아 간에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새 가스 파이프라인인 ‘노르트스트림-2’가 대러 제재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동맹 관계인 미국과 EU 사이에 간극이 있어 보인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 2014년 7월부터 러시아에 대한 미국과 서방의 경제제재가 현재까지 지속하고 있다. 그런데 대러 경제제재에 대한 미국과 EU의 입장이 상당히 다르다. 러시아와 경제적 상호의존성이 그리 크지 않은 미국은 대러 경제제재를 지속·강화하기를 원하고, 러시아와의 경제적 상호의존성이 높은 프랑스와 독일 등 EU 국가는 조속한 제재 해제를 희망한다. 한편 EU는 미국 주도의 나토에 대응해 유럽안보체제 확립에 독자적인 지역안보기구(OSCE, 유럽안보협력회의)의 역할 강화를 모색하고 있다. 즉,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유럽안보 문제에 관하여 EU는 미·러 사이에서 결코 수동적이지 않고 지정학적 독자성과 자율성 확대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자 한다. 실제로 바이든 행정부는 유럽과의 단일대오를 강조하고 있지만, 독일의 무기제공 거부와 대러 경제제재 반대 등으로 나토는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러 간 갈등의 핵심 관전 포인트 중 하나가 미국과 유럽의 갈등이다.”

2022년 2월 7일(현지시간) AFP통신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회담을 마친 뒤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제시한 많은 아이디어와 제안은 현실성이 있다”며 “일부는 추가 조치를 위한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도 “푸틴 대통령에게 구체적인 안전 보장안을 제안했다”며 “앞으로 며칠간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며 우리는 집중적으로 토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대다수 전문가는 핵심적 의제가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와 ‘민스크 협정 강화’일 것으로 예상했다. 민스크 협정은 2014년 9월 5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당시 독립을 선언했던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 사이에 서명한 돈바스 전쟁의 정전 협정이다. 이 협정은 유럽안보협력기구인 OSCE의 중재 아래 진행됐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가능성이 있나?

“푸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부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금지와 무기 배치 금지 등 최근 러시아 정부가 미국과 나토에 요구한 사항이 이뤄지느냐에 달려 있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한다면, 푸틴은 그러한 상황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고 전면전도 불사할 태세로 보인다. 아울러 러시아는 침공이란 표현보다는 ‘자위적 개입(engagement for selfdefense)’이란 표현을 선호할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 러시아의 입장에서 우크라이나는 외국이 아니라 앞으로 함께 가야 할 핵심 근외국가이며 대내외적으로 국가발전의 초석에 해당하는 러시아의 고유영역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푸틴 정권도 우크라이나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하는 전쟁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외교적 협상으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금지 등을 문서화하길 원할 것이다.”

미·러 근본 ‘타결’ 아닌 현상 유지 ‘타협’ 가능성 높아


▎우크라이나 사태를 두고 유럽의 리더 국가인 독일이 모호한 입장을 보이는 가운데 프랑스가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며 전면에 나서고 있다. 마크롱(오른쪽) 프랑스 대통령이 2월 7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을 찾아 푸틴 대통령과 일대일 대화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미·러 간 ‘극적 타결’이 가능하다는 것인가?

“미국은 우크라이나 문제를 두고 대중국 압박, 대러 경제제재 해제, 유럽 및 아시아 동맹과의 협력 및 관계 설정, 국내 중간 선거 등 여러 가지 요소를 생각해야 한다. 러시아는 대 EU 관계, 대중국 관계 등을 고려하고 전략적 안정성 측면에서 미국에 밀리지 않고 맞설 수 있는 강한 이미지를 글로벌 차원에서 각인하는 문제를 고민할 것이다. 이렇듯 양측은 각기 처한 이해관계가 달라 상대의 요구를 수용할 여력이 없기 때문에 상호 안보 이익에 부합하고 전략적 안정성을 증진하는 수준의 합의가 필요하다. 예상하건대 미·러는 ‘현상 유지(status quo)’ 차원에서 극적 해결·타결이 아닌 극적 타협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가 요구하는 미국의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 불허 확약과 미국이 요구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영토 주권 보장이라는 극적 타결보다는 단거리 미사일의 유럽 배치 동결, 러-서방의 상대편 인근에서의 훈련 금지, 전투기 및 함정의 근접 허용 거리 조율 측면에서 전략적 상호 안정성을 바탕으로 상호 타협할 가능성이 있다.”

미·러 극적 타협은 국제 질서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미국은 아시아에서 중국과의 패권 경쟁을, 유럽에서는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러시아와 군사적 긴장·대치 국면까지 가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즉, 미국은 현재 2개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미국의 국력으로서는 힘에 부치지 않겠는가. 주지하다시피 바이든 정부의 가장 중요한 외교정책의 목적은 효과적이고 강력한 중국 압박을 통한 미국의 패권유지 전략이다. 유럽지역에서의 미·러 간 극적인 타결 또는 타협은 미국의 효과적이고 강력한 대중국 압박의 신호탄을 의미한다. 이에 중국 정부가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러 간 대결 구도를 노심초사하며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한편, 러시아도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국과의 군사적 대결 구도를 형성하며 여전히 글로벌 군사 강국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며 더는 중국에 지나치게 경도된(의존적인) 지역강대국이 아니라는 점을 은연중에 나타내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 푸틴의 러시아는 미·중 G2로 명명되는 현 국제체제를 그리 달가워할 리 없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극적인 미·러 간 타협은 러·중 관계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며 글로벌 강대국 간 세력관계 재구성의 본격적인 신호탄이 될 것이다.”

전통적 우방인 러·중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까?

“현재 러·중 관계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보이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갈등과 경쟁의 소지가 다분하다. 예를 들어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철군 이후 그 공백에 대하여 양국은 서로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러시아의 영향권이지만 최근 푸틴의 유라시아경제통합과 시진핑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중국이 추진 중인 신 실크로드) 전략이 마주치는 접점이 되고 있다. 나아가 2010년 이후 G2로 인정받는 중국을 푸틴의 러시아는 어떻게 바라보겠는가? 러·중 관계는 수평적이라기보다는 중국 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졌고 러시아가 따라가는 모양새로 인식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이슈, 미·중 사이 낀 한국에 타산지석


▎윤익중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글로벌정치 한국연구소장은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처럼 강대국 사이에 낀 중간국이 처한 현실이 한반도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실제로 2014년 크림반도 병합 이후 러시아 내부에서는 지나친 중국 경사론, 특히 러시아 경제의 중국 의존 심화 현상에 대한 경고가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이슈에 대하여 중국은 러시아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지지하며 합동군사훈련을 지속하고 있지만, 시진핑 등장 이후 우크라이나와 중국 간 관계 발전(양국 수교 30주년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 10주년)은 러시아에는 몹시 거슬리는 요인일 수밖에 없다. 2020년 우크라이나의 제1교역국은 러시아가 아닌 중국이며 시진핑은 일대일로 전략의 유럽 거점을 우크라이나로 상정하고 있다.”

이번 사태에서 우크라이나가 주도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은 적다고 보는가?

“우크라이나는 유럽에서 러시아를 제외한 가장 큰 나라이고 과학기술 분야가 발전했고 교육 수준이 높으며, 국토의 80%가 흑토인 유럽의 주요 산업국가이자 농업 강국이다. 더구나 유럽의 동과 서를 연결하는 지정·지경학적 가치가 엄청난 중간국에 해당한다. 그러나 소연방 해체 이후 지난 30여 년간의 우크라이나의 국가발전을 고찰하면 주권국가로서 독자적인 발전을 해왔는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우크라이나는 강대국 사이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전형적인 중간국의 지정학적 딜레마를 나타내고 있다. 실제 1990년대 독립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는 일관성 있게 친서방 노선을 추구했던 것도 아니다. 친서방 노선, 친러 노선, 중간 노선 등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심지어 중국과의 관계 강화를 추구하는 친중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강대국들의 핵심 이익이 충돌하는 지역의 중간국 또는 약소국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강대국에 대한 편승과 균형 사이에서 현명한 전략적 선택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해방 이후 분단부터 최근 미·중 사이에 낀 우리나라의 모습이 보인다.

“각론적인 측면에서는 다소 다르지만, 총론적인 측면에서는 다를 바 없다. 강대국들의 핵심 이익이 충돌하는 지정·지경학적 위치에 있는 약소국 또는 중간국의 안보 딜레마와 갈등은 냉전 시대나 탈냉전 시대나 다를 바 없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념보다는 국익이 먼저이고, 탈냉전 시대 약소국과 중간국이 여전히 진정한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크라이나 이슈가 한반도에 미칠 영향은?

“우크라이나 이슈 진행 과정과 결과 등은 미·러 관계와 유럽의 안보체제 변화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안보체계의 변화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미국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정리하면 대중국 압박을 강화하기 위해 동아시아에서 동맹국을 결집해 쿼드나 오커스 이외의 새로운 안보체제를 확대·발전시키고자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되묻고 싶은 질문이다. 또한 우크라이나 이슈는 1994년 핵무기를 포기한 대가로 강대국들이 우크라이나의 독립·주권·영토 보장과 안보를 제공한다는 국제적 약속의 문서인 부다페스트 양해각서가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이러한 이유로 북한의 김정은 정권도 우크라이나 이슈를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본다.”

- 글 조규희 월간중앙 기자 cho.kyuhee@joongang.co.kr / 사진 정준희 기자 jeong.junhee@joongang.co.kr

202203호 (2022.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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