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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 문재인 정부 1년 성적표는?] 전문가 평가 (2)경제정책 

경제 원리 합당한 정책 실종 언제까지 허송세월할 건가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규제 혁파는 위원회가 아니라 대통령이 목록 들고 직접 챙겨야 할 일…경제는 ‘정공법’이 우선, 주류경제학의 제언에도 귀 기울여야

▎지난 1월 3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8 정부청사관리본부 신년 행사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청사 미화원 등 비정규직 직원들이 임명장을 받은 뒤 손하트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1980년대 초 로널드 레이건 제40대 미국 대통령 이후 진행돼 온 자유무역과 세계화에 세계는 지금 회의(懷疑) 중이다. 미국은 지난 4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막대한 무역·재정적자 때문에 고전적인 자유무역으로 손해 봤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외정책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손해보는 자유무역의 추세를 바로잡겠다는 것으로 대미 무역 흑자국에 대해 거의 무차별적 관세 폭탄과 보호무역 조치를 쏟아내고 있다. 영국은 유럽연합(EU)을 탈퇴하기로 결정했고 탈퇴 협상이 진행 중이다. 지금 EU의 경제가 호전되고 있다고는 하나 그동안의 경제위기 때문에 경제발전 단계가 다른 여러 나라 사이의 통화동맹(Currency Union)에 대한 회의가 적지 않게 존재하고 있다. 그 와중에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장기 집권을 위한 헌법 개정을 완료함으로써 세계 정세에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

지금 세계는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고 있다. 정치뿐 아니라 경제에 있어서도 보호무역과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선진국의 하나로 살아남는, 쉽지 않은 과제를 안고 출범한 정권이 문재인 정부다.

그러나 경제 운용에서 문재인 정부의 지난 1년은 허송세월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나친 혹평이라고 할 학자도 없지 않겠지만 경제 원리에 합당한 개혁이나 정책을 찾기가 쉽지 않으니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되는 것은 문 정부의 정책 담당자들이 경제를 너무 쉽게 본다는 점이다. 불쑥 원리에 맞지 않는 정책을 시행하고는 부작용이 나타나면 재정을 들이댄다. 이런 정책 행위는 장기적으로 지속되기 어렵고 끝내 위기를 불러오는 것으로, 경제정책이라기보다 정치정책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정치와 지지율을 위해 경제를 희생하고 있는 것이다.

문 정부가 들어선 이후 가장 많이 회자된 경제이론이 이른바 소득주도 성장론이었다.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은 소득분배를 개선해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소득이 높은 집단의 소비 성향이 낮고 낮은 집단에서는 높으니 소득이 높은 집단의 소득을 낮은 집단에 재분배하면 소비가 진작돼 성장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소득주도 성장의 첫 단추가 최저임금의 16.4% 인상이었다. ‘2020년까지 1만원으로 인상하겠다’는 게 대통령의 공약이었으니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고용시장이 불안해지니 중소기업의 비용 증가를 정부 재정을 풀어 보조하는 정책을 들이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초 고용시장의 동향이 심상치 않은 것은 최저임금의 지나친 인상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단언컨대, 이론적으로 말해서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것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선진국 가운데 성장정책으로 소득주도를 내세우는 나라는 없다.

성장의 원리는 실행이 어려울 뿐 너무나 단순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득주도 성장을 위해 정부는 법인소득세의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인상하는 법 개정을 했다. 법인세율은 다른 선진국의 경우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는 것이 상례다.

세법 개정 이전까지 우리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35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6위로 중간 정도였다. 2016년 최고세율이 미국 35%, 프랑스 33.33%, 이탈리아 24%, 일본 23.4%로 우리보다 높았으나 영국 19%, 캐나다와 독일은 15%로 우리보다 훨씬 낮았다. 무한경쟁 시대에 기업의 국제경쟁력 제고를 위해 법인세를 인하하는 것이 하나의 추세다. 일례로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12월 20일 법인세 최고세율을 35%에서 무려 21%까지 낮추고 8개로 돼 있던 조세 구간도 하나로 통일하는 법 개정에 성공함으로써 현재는 법인세율이 우리보다도 낮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1970~80년대 고도성장을 하던 우리 경제가 지금처럼 장기 저성장 경로로 가라앉기 시작한 것이 1992년부터라는 점이다. 공교롭게도 1992년은 중국과의 수교가 이뤄진 해다. 제조업의 고용 비중이 급격하게 감소하기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임금 상승 때문에 고비용을 견디지 못한 기업들이 중국으로 대거 생산기지를 옮기면서 그 같은 현상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고효율 기업 대부분이 국내에 남아 제조업의 고용 비중이 10%포인트 이상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생산 비중은 크게 하락하지 않았다. 우려되는 것은 이제부터 기업의 해외 엑소더스가 일어난다면 고효율 대기업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그동안 해외에서 대기업들이 창출한 고용이 30만 명이 넘었다는 통계가 있다. 하지만 보호 무역 때문에 외국의 관세는 높아만 가는데 법인세율은 높고, 고용은 경직적이고, 정부 정책은 적대적인 환경에서 사투를 벌여야 할 이유가 무엇이겠나?

법인세 인하 세계적 추세…한국만 ‘역주행’

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설 때 월간중앙에 ‘새 정부에 바라는 경제정책’을 기고한 바 있다. 그때 제시한 정책 제안은 사회안전망을 대폭 확충하고 규제 혁파, 노동·교육 개혁을 통해 경제체제를 일신해 달라는 것이었다. 먼저 사회안전망을 확충함으로써 경제 혁신에 따라 피해를 보는 계층이 재기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우리 경제를 옭아매고 있는 규제를, 특히 포지티브 방식의 규제를 대부분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지금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전혀 변함이 없이 경직적인 노동시장과 교육제도를 유연하게 전환함으로써 선진국형 제도를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제안의 밑바탕에 깔린 생각은 사회안전망과 복지를 선진국 수준으로 확충하는 데 적지 않은 재원이 소요되는데 그와 같은 재원을 제도를 혁신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여 마련하자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지난 1년 동안 이러한 필자의 제안 가운데 어느 것도 이뤄진 것이 없다. 비가 새는 지붕을 땜질하듯 사회안전망을 손질하기는 했으나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이는 달리 보면 규제 혁파나 노동·교육 개혁에 대한 의지가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문 대통령이 규제 혁파를 지시한 것으로 기억하나 아직 뚜렷한 성과는 없어 보인다. 김대중 정부 이후 과거 정부들에서도 규제 혁파가 화두였지만 지금까지 달라진 것은 없다. 이 정부에서도 그 같은 사정은 마찬가지가 아닐까 염려하게 되는 이유다. 규제 혁파는 위원회에 맡겨서 될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규제 목록을 가지고 직접 챙겨야만 가능한 일이다.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에도 혁명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문 정부가 처음 시도한 노동시장 정책이 공항공사의 비정규직 정규직화였다. 비정규직이 남발되고 있는 현실이 누군들 한심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남성과 여성,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조원과 비노조원 등의 직업안정성과 임금격차는 경제원리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그러나 제도의 혁신이 없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까? 공항공사의 경우와 같이 밀어붙이면 아마도 비정규직 일자리의 고용절벽 이외에는 다른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본다. 지금 우리 노동시장에서 정규직은 비정규직을 희생 삼아 높은 직업안정성을 확보하고 모순된 제도를 바탕으로 비정규직 임금 일부를 착취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정규직의 경직성을 완화하지 않고 비정규직 문제를 풀겠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라 할 수 있다. 특히 정규직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는 대기업 노동조합을 보라. 그들은 뇌경색을 일으키는 혈전 같은 이익집단이다. 열악한 위치에 있는 동료 노동자들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 집단을 어떻게 감히 노동조합이라 부를 수 있나. 노동조합은 절실히 필요하나 비정규직 양산을 조장하는 이런 노동조합은 아니라고 본다.

비정규직 해소보다는 정규직의 경직성 완화가 ‘우선’

경직성과 함께 정부의 노골적인 노동시장 개입이 문재인 정부 들어서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 공무원 증원, 중소기업 취업자 임금 지원 등을 보면 이 정부 정책 담당자들이 경제를 얼마나 쉽게 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경제의 모든 문제는 노동문제다.

노동문제를 잘못 다루면 상상하지 못한 문제들이 나타난다. 노동시간 단축도 정부가 나서서 강제적으로 밀어붙일 사항은 아니었다고 본다. 노동(여가)은 인간의 행복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을 누군들 모르겠나. 따라서 노동시간이 지나치게 길고 강압적이라고 생각될 때 노동당국이 개입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 않다면 노사가 합의 아래 노동시간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보다 타당한 정책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약자인 노동자들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기술적인 문제로 얼마든지 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고 본다. 나아가 지금이 어느 때인데 공무원을 증원하고 중소기업 취업자에게 복지 차원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임금보조를 지급하는가. 납세자의 한 사람으로 그렇게 돈 쓸 데가 없는지 묻고 싶다.

교육의 경직성도 노동시장의 문제 못지않게 심각하다. 교육의 문제도 정부의 과다한 개입에 기인하고 있다. 모든 교육 문제의 핵심에 교육부가 자리하고 있다는 말이다. 정부부처 가운데 가장 경직적인 부서를 꼽으라면 아마도 교육부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교육부는 달라진 것이 전혀 없다. 이제 나라의 모든 교육을 교육부라는 경직적이고 비효율적이며 관료적인 집단이 아닌, 많은 부분을 민간이 맡을 때가 됐다고 본다. 정부 부처가 교육의 모두를 관리할 수 없을 만큼 대한민국이 이미 성장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이미 수요자가 바라고 공급자가 제공 가능한 교육 서비스와 제도를 마련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대학 구조조정을 유연하게 할 수 있도록 교육법을 개정해야만 하고 학문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의 간섭과 규제를 철폐해야만 한다. 그리고 대학의 등록금은 언제까지 동결할 것인가? 초·중등 교육도 지방정부와 지방교육청이 관리할 수 있도록 예산과 권한을 대폭 이양해야만 한다.

문재인 정부 1년의 경제를 허송세월이라고 규정한 것은 아마도 과장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지난해 5월 품었던 희망과 1년 동안의 실망을 고려하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는 점을 피력하고 싶다.

감히 말하지만 지금까지와 같은 경제정책을 되풀이한다면 적어도 경제에 있어서는 문 정부도 실패하리라고 생각한다. 경제는 쉬운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경제가 이질성을 가진 무수히 많은 인간의 선택의 결과이기 때문인데 그런 다양한 선택을 심사숙고하지 않은 정책은 반드시 실패하거나 큰 부작용을 낳는다.

실패와 그 부작용에는 반드시 큰 비용이 뒤따른다. 지난 1년은 그런 실험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실험의 비용은 결국 모두 국민이 진다. 사회적인 어젠다가 무엇이든 경제는 정공법으로 가는 것이 옳다. 이를 위해 주류경제학의 제언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마음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앞으로의 1년을 기대해 본다. 내년 이맘때는 다른 평가를 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년까지 지금과 같은 정책이 지속된다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장기 불황을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지금 정도 그리고 그보다 나은 잠재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도 내년쯤이면 조금은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전 한국경제학회장 choj@sogang.ac.kr

201805호 (201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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