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동북아 정세] 일본 모리토모 스캔들과 북풍(北風) 

아베의 백기사는 북한과 김정은?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특별편집위원
정치적 고비마다 미사일 발사 등 북한발 돌발 이슈가 구원투수 역할… 김정은 방중(訪中)도 사학 스캔들 희석시키고 아베의 평양행 가능성 키워

▎일본 아베 총리와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정상회담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있다.
"잘 듣게. 흔히 ‘작은 일은 지략으로 이루고, 큰일은 덕으로 이루고, 더 큰일은 운으로 이룬다’는 말이 있다네. 나는 지금까지 여러 명의 총리를 모셔 봤지만 총리라는 정상의 자리까지 올라간 정치인들에게 특별한 지혜가 있거나 덕이 있었냐고 한다면 솔직히 반드시 그렇지는 않았네. 하지만 무서울 정도로 운이 따른다는 공통점이 있었지. 그리고 그 운이 다한 때가 바로 정권에서 물러나는 때야. 그런 의미에서 아베 신조라는 정치인은 아직 운이 다하지 않았다고 보네. 그 증거로 이번에도 때마침 ‘북풍’이 불어주지 않았는가!”

4월 초순의 도쿄는 만개한 벚꽃으로 인해 춘색(春色)이 만연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서울과 비교하면 녹음이 적은 도시이긴 하지만 봄의 이 시기만큼은 빌딩숲으로 둘러싸인 도심이 벚꽃으로 물들며 자연과의 공생을 느끼게 한다.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스마트폰으로 연신 벚꽃을 찍어댄다. 업무에 지친 샐러리맨들도 퇴근 후 있을 꽃놀이 연회에 마음이 들떠 있다.

그런 도쿄의 중심부, 치요다구 나가타초의 총리 관저 부근에 위치한 요정에서 아베 총리의 측근 인사와 회식을 했다. 그때 그가 입을 열자마자 들려준 말이 바로 모두(冒頭)의 발언이었다.

2018년 3월, 그동안 5년3개월이라는 한국 대통령의 임기보다 긴 장기집권을 이어가던 아베 총리는 내각 지지율이 30% 초반까지 떨어지는 최대 위기를 맞고 있었다. 이유는 이른바 ‘모리토모 스캔들’ 때문이다.

2015년 5월 오사카의 사립학교인 모리토모(森友) 학원은 오사카부 도요나카시에 초등학교를 건립하고자 9억5600만 엔으로 국유지를 매입했었다. 이듬해 3월 학교 건설공사 중 땅속에 쓰레기가 가득 차 있었다고 주장하며 국유지를 관리하는 재무성(財務省)의 오사카 하부 기관인 긴키 재무국(近畿財務局)에 할인을 요구했다. 모리토모 학원은 재무국으로부터 쓰레기 철거 비용으로 약 8억 1900만 엔 등을 차감받아 불과 1억 3400만 엔으로 광대한 국유지를 손에 넣을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모리토모 학원의 가고이케 야스노리(籠池泰典) 이사장 부부는 할인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긴키 재무국의 담당자에게 거듭 “우리는 아베 총리 부부의 친구”라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아베 총리의 부인인 아키에 여사가 모리토모 학원에서 강연을 하고, 명예교장이 될 예정이라는 점 등을 어필했다. 일본의 언론들은 ‘총리의 친구’라는 것이 재무국의 파격적인(!) 할인의 이유가 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러한 의혹에 대해 실제로 가고이케 이사장이 “그렇다. 아베 총리 부부의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긴키 재무국 담당자의 태도가 변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일본의 최고 유행어 ‘손타쿠(忖度)’


▎지난해 사학 스캔들의 핵심 인물인 가고이케 야스노리 모리토모 학원 이사장이 일본 도쿄 국회 청문회에서 증언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아키에 여사가 학교에 100만 엔을 기부했다”는 핑계로 인연이 끊긴 아키에 여사와 아베 총리에게 100만 엔을 반환하려고 아베 총리의 선거 유세장에 출몰했으며 아키에 여사가 경영하는 이자카야(선술집)를 방문했다. 결국 가고이케 이사장은 지난해 7월에 사기죄로 체포돼 오사카 구치소에 수감됐다. 2018년 4월 현재까지도 이례적인 장기 수감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아베 정권은 이 ‘모리토모 스캔들’로 휘청거렸다. 관료가 총리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지 않아도 총리의 심정을 헤아려 총리가 원하는 대로 처리한다는, 이른바 ‘손타쿠(忖度)’라는 단어는 지난해 일본의 최고 유행어가 됐다.

여기까지가 ‘모리토모 스캔들’의 1부다. 제 2부는 올해 3월 2일 [아사히신문]이 취재한 특종기사로 시작됐다.

위의 모리토모 학원과 긴키 재무국의 거래는 당시 도쿄 재무성에 보고됐다. 재무성에서는 그것들을 정리해 ‘공문’으로 만들어 보존했다. 공문서는 담당 관청의 수많은 간부의 결재를 거쳐야 하는 정부의 공식 문서다. 공개하지는 않지만 각 관청에서는 이를 보존하는 것이 보통이다.

지난해 2월 모리토모 스캔들을 둘러싸고 국회에서 난상 토론이 벌어지자 재무성은 지난해 5월 관련 ‘공문’을 국회에 제출했다. 모리토모 학원과 긴키 재무국의 협상 과정을 공개하고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당당히 주장했다.

그런데 [아사히신문]은 재무성이 국회에 제출한 이 ‘공문’이 2016년 봄에 결재된 원본이 아니라 몇 군데를 고쳐 쓴 수정본이었다고 보도한 것이다. 공문이 결재된 후에 수정했다고 하면, 이는 법률을 마음대로 고친 것과 마찬가지다. 즉 법치국가인 일본의 근간을 뒤흔드는 범죄다. 한편 [아사히신문] 보도가 오보라고 한다면 이는 [아사히신문]이 폐간 위기에 처할 정도의 큰 문제가 된다.

[아사히신문]은 아베 총리의 ‘천적’이다. 그동안 수많은 아베 총리 비판 기사를 쓰며 맞서 왔다. 한 총리 공관 관계자에 따르면 아베 총리의 집무실에는 매일 아침 일간지 6개가 놓인다. 맨 위에 놓이는 것이 “아베 정권의 홍보지”라는 야유를 받고 있는 [산케이신문], 가장 아래 놓이는 것이 [아사히신문]이라는 것이다. 다만 2014년 여름 [아사히신문]이 위안부 보도에 대한 오보 문제로 사장이 물러나면서 엉망이 됐을 때만큼은 [아사히신문]이 가장 위에 놓였다고 한다.

그런 경위로 인해 아베 정권과 [아사히신문]의 ‘재(再)대결’에 일본인이 주목했다. 하지만 이번에 침묵한 것은 [아사히신문]이 아니라 재무성 쪽이었다. 게다가 재무성은 공문을 무려 290군데나 마음대로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정도의 공문서 위조는 과거에 전례가 없는 것으로 일본 국민들도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일본에서 재무성은 ‘관청 중의 관청’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일본의 최고 명문대인 도쿄대 중에서도 인문계에서 가장 입학이 어려운 법학부 졸업생 600명 중 매년 상위 10명 정도만이 재무성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20대에는 지방 도시의 세무서장을 역임하며 도시의 재정을 관리한다. 즉 재무성 관료는 일본에서 가장 우수한 초엘리트 집단인 것이다.

그런 그들이 공문을 290군데나 조작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말았다는 것이 ‘모리토모 스캔들’ 제2부의 핵심이다.

필자는 몇 년 전, 지인인 재무성 관료의 호의로 도쿄 가스미가세키에 있는 재무성 본청사의 내부를 견학한 적이 있다. 바닥 면적이 1만1968㎡인 정사각의 중후한 건조물로 전시 중인 1943년에 건축됐고, 그 후 1963년에 개·보수됐다.

기개의 상징이던 대장성이 어쩌다가…


▎[아사히신문]은 3월 2일자에 모리토모 학원 스캔들과 관련한 문서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 사진:아사히신문
견학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의외로 검소한 재무성 관료들의 일상이었다. 예를 들면 야근할 때는 재무성 내에 있는 편의점의 500엔짜리 도시락을 먹는다. 재무성 관료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수면실 내부도 들여다봤는데 예상보다 훨씬 좁고 너저분한 곳이었다. 재무성을 둘러보면서 일본의 국가 재정을 움직이는 초엘리트들에게 해당되는 말로 ‘멸사봉공’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런데 이번에 밝혀진 것은 ‘공문’을 마음대로 290군데나 조작하고, 그것을 ‘최고 입법부’인 국회에 제출했다는 사실이었다. 국회도 바보가 된 것이다.

전 재무성 관료로 야당인 ‘희망의 당(希望の党)’ 간사장을 맡고 있는 후루카와 모토히사 의원에게서 다음과 같은 전자우편이 왔다.

“저는 30년 전 4월에 대장성(大藏省, 현재의 재무성)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동기로 입사한 이른바 커리어(국가고시에 합격해 공무원이 된 엘리트) 그룹의 동기들은 24명이었습니다. 저는 6년3개월을 근무하고 퇴직했습니다.

제가 그만둔 때는 바야흐로 대장성 전성시대로, 한 신문에서 ‘옛날에는 육군, 지금은 대장성’이라고 평할 정도로 권력의 중심이었던 곳입니다. 정치가가 되기 위해 관청을 그만두고 싶다고 했을 때 상사는 제게 ‘정치가를 움직이는 것은 우리가 아닌가? 왜 스스로 조종당하는 편에 서고 싶은 건가?’라고 묻더군요. 그때 저는 ‘그런 방식은 이상하지 않은가요?’라고 대답한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만이라면 오만이겠지만,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건 당시의 재무성 관료들은 그 정도의 자부심과 기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랬던 그들이 공문서를 조작한 것입니다. 예전의 그 자부심과 기개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요….”

문제는 왜 재무성이 공문을 290군데나 조작했는가에 관한 것이다. 후루카와 의원은 전자우편에서 다음과 같이 계속했다.

“이번 건에 대해 저는 국가 공무원의 커리어 제도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기들은 기본적으로 나란히 승진하다가 나중에는 극소수의 포스트(간부)라는 자리를 두고 자리 뺏기 게임처럼 싸우게 됩니다. 거기에 내각인사국(內閣人事局)이 끼어들면서 이런 사건이 발생하는 요인이 된 것은 아닐까요? 이제는 커리어 제도 자체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내각인사국은 아베 정권이 들어선 이후인 2014년 5월 내각관방에 신설된 부서다. 그 전까지는 사무차관을 수장으로 하는 각 관청의 간부 인사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각 관청에 맡기고, 총리 관저는 그것을 승인할 뿐이었다. 그런데 아베 정권이 들어서면서 관청의 국장 이상의 간부 인사를 총리실에 부설된 내각인사국이 결정하도록 변경한 것이다.

2014년 당시 내각부 특명담당대신을 지낸 야마구치 순이치 자민당 총무회장 대리는 다음과 같이 경위를 설명해 줬다.

“21세기 들어 세계가 더욱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반면, 일본의 행정 시스템은 옛날 그대로의 방식으로 각 관청 내 강한 종적 관계가 유지되고 있었다. 그래서 총리 관저로 권한을 더 집중시키고 총리의 권력을 강화하지 않으면 일본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해 제도를 바꾼 것이다. 하지만 이제 총리 관저에 권력이 집중하면서 관료들이 총리 관저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폐해가 두드러지고 있다. 이른바 ‘손타쿠’ 문제다. 따라서 다시 한번 부처에 대한 개편이 필요하게 됐다.”

아베 억울해도 도의적 책임 면키 어려워


▎3월 28일 일본 국회에 출석해 증인 선서를 하는 사가와 노부히사 전 재무성 이재국장.
일본에서 관료는 ‘직함이 전부’인 세계여서 자신의 인사 결정권을 가진 사람의 의향에 맞춰 일하는 건 당연한 추세다. 그 결과, ‘관청 중의 관청’으로 불린 재무성 관료들도 아베 총리를 ‘손타쿠’한 나머지 초법적으로 행동하고 만 것이다.

아베 총리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지시한 것이 아니다”며 억울해할 수도 있겠지만 도의적 책임을 면키 어렵다. 게다가 5년3개월이라는 이례적인 장기집권에서 오는 국민들의 권태감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3월 25일 도쿄 시나가와의 그랜드프린스호텔 신다카나와에서 제85회 자민당 대회가 열렸다. 필자도 취재를 나간 이날, 자민당 총재 자격으로 등단한 아베 총리는 입을 열자마자 가장 먼저 “행정 전반의 최종 책임은 내게 있다.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자민당은 올 9월, 3년에 한 번 있는 총재 선거를 앞두고 있어 아베 총재가 3선을 달성할지가 초점이 되고 있다. 아베 총리로서는 당초에는 3선을 달성을 위해 이번 자민당 대회에서 자신의 리더십을 과시하고자 했지만 일순간 사과로 인사를 대신해야 하는 처지가 돼버린 것이다. 그만큼 아베 총리의 리더십에 어두운 그늘이 드리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이날의 대회장은 마치 장례식처럼 스산하고 고요했다. 나는 과거 여러 번 자민당 대회를 취재했지만 이렇게 분위기가 달아오르지 못한 것은 야당으로 전락했던 시절(2009~2012년) 이후 처음이었다.

자민당 전당대회 이틀 후인 3월 27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가까이 국영방송인 NHK를 비롯해 니혼 텔레비전, TBS방송, 아사히 텔레비전, 후지 텔레비전까지 일본의 지상파 방송국 6곳 중 5곳이 모두 ‘특별 프로그램’을 편성, 국회 상황을 생중계했다. 이는 2011년 3월의 동일본 대지진 보도 이후 한 번도 없던 일이다.

그만큼 일본 열도가 주목한 것은 바로 사가와 노부히사 전 재무성 이재국장(理財局長: 이재국은 국유재산 관리를 담당하는 곳)의 증인 소환이었다. 2016년 7월 이재국장에 취임한 사가와는 2017년 2~3월 국회 답변에서 긴키 재무국과 모리토모 학원과의 교환을 기록한 ‘공문’을 폐기한 듯한 발언을 반복했었다. 그런데 결국 ‘공문’은 존재했고 지난해 5월 국회에 제출됐다. 게다가 이번에는 그것이 크게 조작된 것임이 판명됐기 때문에 사가와 전 이재국장의 국회 소환에 여야가 합의한 것이다. 사가와 전 국장은 지난해 7월 이재국장에게서 국세청장으로 승진했지만 올해 3월 9일 [아사히신문]의 폭로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는 형식으로 자진 사퇴했다.

증인 소환은 건강상의 이유 등을 제외하고 출석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위증을 할 경우 위증죄로 처벌을 받는다. 그래서 “거짓말을 할 수 없는 국권(國權)의 최고 법정”이라고도 불린다. 일본 전체가 주목한 증인 채택에서 여야 의원과 사가와 전 이재국장 사이에 긴박한 문답이 펼쳐졌다.

모리토모 학원에 국유지를 매각할 때, 또는 공문서의 조작에 관해 아베 총리의 지시는 있었습니까?

“아니오, 없었습니다.”

아키에 여사의 지시는 있었습니까?

“아니오, 없었습니다.”

아소 다로 재무상으로부터 지시는 있었습니까?

“아니오, 없었습니다.”

총리 관저의 지시는 있었습니까?

“아니오, 없었습니다.”

사가와 전 국장은 마치 도장을 찍듯이 똑같은 답변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이 답변보다 많은 답변이 “형사 소추를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답변을 삼가겠다”는 것이었다. 이 대답은 총 55회나 반복됐다. “왜 공문을 조작했는지” “언제 누가 했는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결국 일본 전체가 주목한 사가와 전 이재국장의 증인 소환은 아무런 진상도 밝혀내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집권여당인 자민당은 “이로써 모리토모 문제가 일단락됐다”고 평가했다. 야당은 “의혹이 한층 더 깊어진 양상으로, 다음은 아베 총리의 부인인 아베 아키에 여사의 증인 소환이 필요하다”며 공세의 강도를 높였다.

이처럼 3월 27일은 아베 정권 출범 5년3개월 만의 ‘최대 위기’를 맞은 하루였다.

그전까지의 최대 위기는 지난해 7월 28일 찾아왔었다. 아베 총리의 ‘업무상의 아내’로 통했던 측근 이나다 도모미 방위상이 각종 스캔들로 인해 자리에서 물러난 날이다. 그날 오전 이나다 방위상이 총리 관저를 찾아와 아베 총리와 ‘단둘’이 30여 분간 대화를 했다. 그 직후 이나다 방위상의 해임이 발표되자 내각 지지율은 급락했고 아베 정권이 끝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북한 관련 이슈 내보내야 시청률 나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사학 스캔들과 관련한 재무성의 문서 조작에 항의하는 집회가 3월 30일 밤 도쿄 총리 관저 앞에서 열렸다. / 사진:연합뉴스
그런 아베 총리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준 것이 북한이었다. 북한은 이날 심야에 장거리 탄도미사일 화성-14형을 첫 발사하며 세계를 뒤흔든 것이다. 담당관청인 방위성은 ‘이나다 스캔들’에서 벗어나 즉각적으로 이 ‘적국’에 대한 대응에 돌입했다. 그것은 아베 총리도 마찬가지로 즉각 ‘긴급 성명’을 내놓으며 위기 대응에 나섰다.

결국 북한의 미사일 한 방에 아베 정권의 ‘방위성 스캔들’은 허공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아베 내각 지지율은 급격히 회복됐으며, 지난해 10월 22일 거행한 중의원 선거에서 아베 자민당은 284석을 획득하며 완전한 부활에 성공했다.

당시 총리 관저와 자민당 간부들은 입을 모아 다음과 같이 읊조렸다.

“모든 것은 ‘북풍’ 덕분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때마다 아베 정권의 지지율은 올라간다.”

하지만 2018년 3월 시점에서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이라는 ‘북풍’이 불어올 가망은 없어 보인다. 잘 알려진 것처럼 올해 들어 북한은 극적인 ‘방향 전환’을 보였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를 표명했고, 2월 9일 개회식에 여동생 김여정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무위원장을 특사로 파견했다. 또한 폐회식에는 ‘조선 인민군의 에이스’인 김영철 당 통일전선부장을 보냈다. 그리고 남북의 관계 회복을 전 세계에 과시한 것이었다.

3월 9일 더 충격적인 뉴스가 백악관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특사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발표로 전해졌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5월 말까지 첫 북·미 정상회담을 한다는 것이다. 아베 정권에게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얘기였다.

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남북 정상회담이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릴 것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아베 총리 관저에서 은밀히 기대하고 있는 미사일 발사라는 ‘북풍’이 불 전망은 거의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말하면 또다시 ‘북풍’이 불어줬다. 3월 27일 낮까지만 해도 일본의 모든 방송국에서는 사가와 전 이재국장의 증인 소환에 관한 뉴스 일색이었다. 그러나 이날 밤 이후는 ‘김정은 위원장의 베이징 방문’이란 청천벽력 같은 뉴스로 바뀌어 버렸기 때문이다.

어쨌든 미사일 발사라는 ‘북풍’이 아니라 이번에는 북한 정상의 방중이란 ‘북풍’이 분 것이었다. 방송 뉴스는 이날부터 “왜 공문을 조작했을까”라는 것에서부터 “왜 이 시기에 방문했을까?”로 바뀌었다. 이것은 많은 방송사 관계자로부터 직접 들은 얘기인데 “아무튼 북한 관련 이슈를 내보내야 시청률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방송사에 있어서도 ‘북풍’은 반가운 것이다.

일본인의 관심 또한 마찬가지로 북한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원래 일본인은 북한과 김정은 위원장에게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시골에 사는 80세를 넘긴 필자의 노모도 평범한 연금생활자에 지나지 않지만, 김일성 패밀리 3대의 가계도와 북한이 언제 어떤 미사일을 발사했는지 등에 대해 마치 전문가처럼 꿰뚫고 있다. 그리고 어떤 의문이 생기면 곧바로 필자에게 전화를 건다. 지난해 이후 부모·자식 간 대화의 절반가량이 북한과 관련된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에게 있어 아버지 김정일의 사망 후 첫 외유이자 첫 정상회담. 그리고 최초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대면…. 이제 북한의 ‘다음 수’는 과연 무엇일까…. 방송과 신문들이 심층 해설을 곁들일 수 있는 북한 관련 뉴스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런 가운데 ‘모리토모 스캔들’은 어느새 흐지부지돼 버렸다. 첫머리에 소개한 총리 측근 인사는 다음과 같은 말을 이어갔다.

“고맙기 그지없는 김정은 장군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부부의 방중(訪中)에 일본인들도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 사진:CC-TV
“지난해 여름 아베 내각 지지율이 급락했을 때 자민당 지지율은 그만큼 떨어지지 않았었네. 또한 야당의 지지율은 그만큼 상승하지 못했어. 그리고 미사일 발사라는 ‘북풍 한 방’으로 방위성 스캔들은 국민과 매스컴의 관심에서 사라지며 내각 지지율도 회복돼 갔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아베 내각 지지율이 급락했지만 자민당의 지지율은 그만큼 떨어지지 않았다. 야당의 지지율도 그만큼 오르지 못하고 있다. 이 와중에 또다시 ‘북풍 한 방’이 찾아왔단 말이지. 이번 북풍은 미사일이 아닌 ‘방중’이었지만, 그래도 역시 고맙기 그지없는 김정은 장군님이지.”

이 측근 인사는 그렇게 말하고 만연에 미소를 띠었다. 때를 놓치지 않고 물었다.

“조만간 아베 총리가 평양을 방문할 수도 있을까.”

그는 한순간 침묵을 지킨 다음 중얼거렸다.

“현재 그런 예정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

그는 ‘현재’란 단어에 힘을 준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깨달았다. 즉 “지금으로서는 아직 정해지지 않지만 물밑에서는 필사적으로 방북을 달성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임에 틀림없다.

실제로 4월 들어 일본에서 화두로 떠오른 것은 ‘버스를 놓치지 말라’이다. 올해 들어 먼저 한국의 문재인 정권이 북한에 갑작스럽게 접근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5월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빅이슈를 쏘아 올렸다. 이어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굳은 악수를 나눴다.

이처럼 지난해만 해도 북한과 대치하고 있던 한국·미국·중국이 모두 북한에 급속도로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일관된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회담도 조기 성사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 가운데 일본만 방치되면서 ‘버스를 놓쳐 버린’ 셈이 됐다.

특히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는 쪽이 북한 납치 피해자 가족 모임이다. 일본은 ‘납치 피해자 가족회’를 전담하는 장관을 둘 정도로 납치 피해자 문제를 주요한 국정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 가족회의 대표는 3월 30일 총리 관저를 찾아 아베 총리에게 다시 한번 ‘납치 피해자 문제의 조기 해결’을 부탁했다.

아베 총리는 4월 18일 백악관에서 열릴 예정인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5월 김정은 위원장과의 회담에서 일본인 납치 문제도 꼭 언급해 달라”고 요청할 것이다. 동시에 자신의 방북에 대해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상의할 것이다.

2002년 9월 17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방북해 일본인 납치 피해자 5명을 다음달 일본으로 귀국시켰다. 고이즈미 총리는 단 하루 일정의 방북만으로 지지율을 15%나 끌어올리며 일본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 모든 것을 옆에서 지켜보았던 인물이 당시 관방 부장관으로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에 동행했던 아베 총리다. 그 뒤 그는 납치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납치의 아베’는 닉네임을 얻으며 2006년 9월 고이즈미 총리의 후계자로서 총리의 자리를 획득한 것이다.

궁지에 몰린 아베 총리는 올 9월의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자신에게 3선을 가져다주는 것은 북풍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6월 18일은 정기국회가 폐회한다. 그 시기에 방북할 수 있도록 김정은 정권과의 물밑 협상이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특별편집위원

/images/sph164x220.jpg
201805호 (2018.04.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