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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리포트] 영·미를 배회하는 공산주의 그림자 

‘미국판’ 사회주의 열풍 세계로 확산되나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차기 노리는 미국 민주당, 영국 노동당의 유력 주자들 좌파 이념 전진 배치…공유경제에 익숙한 미국 내 18~ 34세 밀레니얼의 61%가 사회주의 지지해

▎2011년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아큐파이 월스트리트’ 집회. / 사진:연합뉴스
'아이덴티티 정치(Identity Politics)’.

2018년 미국 정치를 달구는 키워드 중 하나다. 1960년대에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정치 용어로, 풀이하자면 인종·출신·배경에 따른 정치로 압축될 수 있다. 사회적 마이너리티(약자) 입장인 사람들끼리 뭉치고, 다른 단체와 연대하면서 자신의 정치적·경제적 위상을 확장 실현시켜 나가는 정치다. 쉽게 말해 ‘을’끼리의 이해관계에 기초한, ‘갑에 맞선 정치다. 장애자·여성·이민자·성소수자·노동자·흑인들이 자신의 단체를 만들어, 입법·사법·행정부에 영향력을 주면서 권익을 보호 확대해 나가는 식이다. 크게 보면 이익단체, 압력단체 범주에 들어가지만, 구성원이 마이너리티 배경을 갖고, 갑을 적(敵)으로 상정해 투쟁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민주당의 발판은 을에 있다. 이스테블리시먼트(Establishment), 즉 기득권자인 공화당의 갑에 맞선 을의 권익향상이 민주당 정치의 중심이념이다.

을에 기초한 아이덴티티 정치는 이미 상식화된, 60여 년 전에 등장한 고전적 정치 행태에 속한다. 그런데 왜 올해 들어 ‘갑자기’ 미국 신문·방송에서 자주 오르내리게 됐을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때문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아이덴티티 정치가 도마에 오르게 된다. ‘아메리카 퍼스트’는 트럼프 정치의 핵심이다. 글로벌 이념, 국제 경찰로서의 미국, 대국으로서의 관용이 아니다. 손익 대차대조표에 근거한, 미국 스스로의 이익보호와 확대가 최우선적인 가치다. 현재 한국에서 보듯, 70년 가까이 지속된 동맹관계보다 미군 유지비 삭감이 더 중요하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아메리카 퍼스트는 아메리카인(人) 퍼스트다. ‘미국=미국인’이다.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의 퍼스트는 아이덴티티 정치가 갖는 ‘내부적 분파적 차별적’ 개념을 넘어선, 큰 그림 아래서의 정치다. 백인에 대한 흑인, 정상인에 대한 장애인이 아니라, 미국인 모두의 이익에 기초해 세상에 맞서자는 정치이념이 아메리카 퍼스트다.

‘반(反)트럼프’가 반드시 ‘친(親)민주당’은 아니다


▎1930년대 대공황 당시 제작된 초대형 유화 [미국 생활].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미국 내 갑과 을 간의 갈등이 없었던 평화의 시대에 해당한다. / 사진:유민호
사회적 차별에 맞선 성소수자의 정치운동이 아니라, 중국의 3600억 달러 흑자에 맞선 미국인 전체의 이익에 주목한다. 갑론을박으로 내부가 분열에 휩싸이는 동안, 중국과 이슬람의 테러가 미국의 이익과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고 트럼프는 주장한다. 미국인의 이해증진을 위해,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적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중국과의 무역전쟁에 올인하는 것은 무역적자를 줄이고, 중국을 견제하자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확실한 적을 미국인 모두에게 보여주면서, 내부의 갑을 관계를 초월한 아메리카인 전체를 위한 악의 상징으로 중국을 활용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이덴티티 정치를 기반으로 정통성을 구축해 온 민주당이 밀릴 수밖에 없는 논리다.

한국의 신문을 보면 트럼프 정치에 대한 비판, 비난이 미국 여론의 전부인 것으로 묘사한다. 미국은 큰 나라다. 다양한 이해관계에 기초한, 다양한 인종과 배경을 가졌다. 트럼프에 대한 반감은 미국 도심부에서나 적용될 얘기로, 미국 전체를 두고 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사회적 약자라 생각하거나 불리기를 원하는 사람들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한국 미디어에 보도되는 ‘시골 거주 저학력 백인 남성’만이 트럼프 지지에 나서는 것은 아니다. 포퓰리즘에 근거한 트럼프의 천박한 리더십에 반대하기는 하지만, 민주당의 아이덴티티 정치에 염증을 내는 사람도 많다. 오바마 케어의 실질적 혜택은 흑인을 중심으로 한 마이너리티다. 사회적 약자를 돕자는 데 대해 반대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러나 당장 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간다. 아메리카 퍼스트 그 자체에 대한 찬성보다, 아이덴티티 정치에 염증을 느끼던 미국인들의 반감이 트럼프 지지의 근간이다. 아메리카 퍼스트에 대한 반발과 비난이 강하다는 것은 그만큼 트럼프 지지자가 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반(反)트럼프 뉴스가 넘칠수록 국민들의 인기도 높다고 해석될 수 있다. 주의할 부분은 트럼프에 대한 도심부의 반발이 민주당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반(反)트럼프=친(親)민주당’이 아니라는 말이다.

8월 2일부터 3일간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넷루트 네이션(NetRoots Nation, 이하 NN)회의는 아이덴티티 정치 실천을 위한 민주당 화이팅 이벤트다.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에 대응하기 위한 민주당 차원의 전략전술회의다. 1000명이 넘는 연사와 함께, 수만 명의 민주당 지지자가 참가했다. NN회의는 2006년부터 매년 열려 왔다. 흑인·여성·성소수자·장애인에 의한 아이덴티티 정치가 논의의 중심이다.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참가해 자신이 갖는 아이덴티티 정치론을 펼쳐야 한다. NN회의에서 통과되지 못할 경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설 기회조차 없다. 버락 오바마, 클린턴 힐러리도 후보에 나서기 전 참석해 열광적 지지를 이끌어냈다.

올해도 2020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 오를 인물 대부분도 NN회의에 참석했다. 오바마, 심지어 힐러리 그림자에 갇혀 민주당 차기 주자에 대한 관심이 무뎌진 듯하지만, 역사는 항상 앞으로 향해 나아간다. 두 사람은 이미 과거 인물에 불과하다. 2018년 8월 기준으로 차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오르내리는 인물은 크게 네 명으로 압축된다.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 카말라 해리스(Kamala Harris), 부통령이었던 조 바이든(Joe Biden), 뉴저지주 상원의원 코리 부커(Cory Booker),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렌(Elizabeth Warren)이다. 이들 네 명 가운데 NN회의에 참석한 정치가는 해리스, 부커, 워렌 상원의원 세 명이었다. 바이든이 안 보인 것은 NN회의 성격에 비춰볼 때 너무도 당연하다. 정치적으로 갑으로 통하는 백인 남성이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주 해리스 상원의원은 자메이카 출신 아버지와 인도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여성 정치가다. 뉴저지주 부커 상원의원은 흑인 출신으로 예일대학 법학부에서 공부한, 오바마와 거의 비슷한 배경을 가진 인물이다. 미국 리버럴의 화신격인 매사추세츠주를 무대로 한 워렌 상원의원은 원래 공화당에서 민주당 지지자로 변신한, 하버드대 교수 출신의 여성이다. 바이든을 제외한 세 사람은 여성과 흑인이라는, 을의 배경에 선 아이덴티티 정치의 주역에 해당된다.

흥미로운 것은 바이든에 대한 민주당 지지자의 성원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2020 대통령 선거 결승전 진출에 가장 유력한 인물이 바이든이다. 그러나 미국 정치상황을 보면 바이든의 인기는 한여름 서리에 불과할 듯하다. 아직 뚜껑도 열지 않은 상태에서 결론을 내리기는 이르다. 2008년 대통령 선거 당시 오바마란 이름이 전국에 알려진 것은 선거 1년 전부터다. 2020년 11월까지는 아직 25개월이 남아 있다. 그렇지만,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번 NN회의를 2020대통령 출사표 정도로 받아들였다. 민주당 스타가 사라진 상태에서, 하루라도 일찍 전국적 지명도의 인물을 만들어내자는 것이 NN회의의 목적 중 하나다.

미리 보는 2020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대회


▎넷루트 네이션(NN) 회의에 참석해 연설 중인 카말라 해리스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왼쪽부터), 지지자들과 사진 촬영에 응한 코리 부커 뉴저지주 상원의원, 연설에 앞서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엘리자베스 워렌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 / 사진:연합뉴스
세 명의 상원의원은 자신들의 정치적 비전을 아이덴티티 정치에 기초해 모두에게 전파했다. 각자 나름대로의 성과야 있었겠지만, 사실 이번 NN회의를 통해 최고의 뉴스메이커로 떠오른 인물은 세 명의 상원의원이 아닌 전혀 뜻밖의 다른 인물이다. 28세의 히스패닉 여성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Alexandria Ocasio-Cortez)가 주인공이다. 지난 6월 28일, 뉴욕주 브롱크스 연방하원의원 제 14선거구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승리했던 인물이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민주당 현역 10선 의원 조 크롤리 의원을 무너뜨린, 술집 바텐더 출신의 인물이다. 돈, 조직 하나 없이 오직 인터넷으로 이뤄낸 승리다.

결선에 나섰던 조 클로리 의원은 낸시 펠로시 의원을 이을, 차기 하원의원 원내대표로 유력시되던 거물이다. 알렉산드리아는 이변이 없는 한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될 전망이다. 뉴욕주 브롱크스는 전통적으로 민주당 강세 지역이다. 알렉산드리아가 하원의원에 당선될 경우 현역 하원 최연소 의원이 될 전망이다. 한국에서는 해외토픽 수준에 그친 인물이지만, 미국에서는 후보 당선 불과 1개월 만에 전국적 지명도를 가진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NN회의 참가자는 세 명의 차기 대선 후보군보다 오히려 신예의 정치가를 자신의 영웅으로 받아들인다. 히스패닉 여성 20대 바텐더라는 ‘을’로서의 배경이 모두를 흥분시킨 이유일 것이다. 유튜브에 수록된 NN회의에서의 알렉산드리아 연설을 들어보면 현장 분위기가 어떤지,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이너리티 정치와 NN회의 목적에 가장 어울리는 인물이 바로 알렉산드리아다.

그러나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면 알렉산드리아 인기의 또 다른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마이너리티 아바타로서만이 아닌, 미국 밀레니얼 세대의 이데올로기란 관점에서 본 분석이다. 밀레니얼은 1980년대 중반부터 21세기 들어서기 직전에 태어난 2030세대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미 40대를 눈앞에 둔, 미국 허리에 해당되는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세대다. 20대말 알렉산드리아는 그 같은 밀레니얼 정치가의 상징이자, 영웅이다. 젊음이 갖는 장점만이 아닌, 밀레니얼이 갖고 있는 공통적 정치이념을 통해 전국적 지명도를 더해 가고 있다. 바로 사회주의다.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 아바타의 탄생


▎뉴욕주 브롱크스 연방하원의원 민주당 경선에서 10선의 조 크롤리 의원을 제치고 승리한 28세 히스패닉 여성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
알렉산드리아는 스스로를 ‘데모크레틱 소셜리스트(Democratic Socialist)’라 규정한다. 데모크레틱 소셜리즘(Socialism)을 신봉하는 운동가로서의 정치가 자신의 사명이라 강조한다. 한국인이 보면 소셜리즘, 즉 사회주의의 의미가 너무도 광범위하게 와 닿을 듯하다. 간단히 말해, ‘데모크레틱 소셜리스트’는 소셜리즘(사회주의)에 방점을 두는 정치이념이다. 사회주의는 국가가 모든 것을 관장하는, 개인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체제다. ‘데모크레틱 소셜리즘’은 그 같은 완전 사회주의로 가기 직전의 통로쯤에 해당된다.

비교해 주목할 부분은 ‘소셜 디마크러시(Social Democracy, 사회민주주의)’다. 개인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기본으로 하면서 사회주의적 장점을 부분적으로 도입하자는 정치이념이 소셜 디마크러시다. 의료보험, 실업보험에서부터 최근 한국정부가 도입하고 있는 각종 복지정책이 소셜 디마크러시 범주에 들어간다. 자본주의를 제로, 사회주의를 100으로 한 좌표를 두고 볼 때 소셜 디마크러시는 30 정도, 데모크레틱 소셜리즘은 70 정도 수준에 있다고 보면 된다. 국가가 모든 것을 관장하는 소셜리즘 체제에 가까운 것이 데모크레틱 소셜리즘이다. 따라서 알렉산드리아의 정치성향은 반(反)자본주의 전사에 가까운 극단적 이념이다. 바로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맹위를 떨친 민주당 후보, ‘버니 샌더스(Bernard Sanders)’가 주창한 정치 이념이다. 버니 샌더스는 형식적으로 민주당이지만, 스스로는 데모크레틱 소셜리스트로서의 무소속 의원으로 규정한다. 알렉산드리아는 2016년 대통령 선거 당시 버니 샌더스를 도운 자원봉사자다. 바로 버니 샌더스의 아바타가 알렉산드리아인 셈이다.

‘유스퀘이크(YouthQuake)’.

유럽 정치에 관심이 있다면 신문방송 곳곳에서 이 말을 자주 들었을 듯하다. 2017년 말, 영국 옥스퍼드 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Word of the Year)’다. 원래 1960년대에 등장한 신조어지만, 가끔씩 등장하다가 지난해 갑자기 영국 전역을 흔들어 놓은 유행어다. 말 그대로, ‘젊은이에 의한 지진, 반란’으로 풀이된다. 젊은이가 앞장서서 엄청난 변화를 만들어냈다는 의미다. 지난해 6월 치러진 영국 총선거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과반수 획득까진 못 갔지만, 집권여당인 보수당을 바짝 추적한 노동당 약진의 원동력이 바로 유스퀘이크다. 40대 이하 유권자의 경우 여당인 보수당보다 야당인 노동당에 대한 지지가 압도적으로 높다. 지지율의 차는 대략 20%포인트 정도다. 특히 10대 유권자의 노동당에 대한 지지율이 66%로, 보수당 19%에 비해 47%포인트나 높다.

잘 알려져 있듯이, 지난해 총선거가 치러지기 1년 전인 2016년 6월 23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가 이뤄졌다. 51.89% 대 48.11%로 보수당 주도 하의 EU탈퇴가 결정된다. EU 존속을 주장했던 노동당의 위상은 추락한다. 지난해 총선거에서의 노동당의 대약진은 패자로서의 침체 분위기에서의 탈피를 의미한다. 40대 이하, 특히 10대와 20대의 절대적 지지와 투표 참여를 통해 노동당이 부활한 것이다.

토니 블레어보다 더 좌파적인 영국 민주당의 약진


▎영국 총선거에서 노동당을 이끈 제레미 코빈(앞줄 가운데) 당수는 노동당 안에서도 공산주의자로 불리는 인물이다. / 사진:연합뉴스
주목해야 할 점은 지난 총선거에서 노동당을 이끈, 제레미 코빈(Jeremy Corbyn) 당수다. 영국 노동당이라고 하면 당장 토니 블레어(Tony Blair) 전 수상이 떠오를 듯하다. 글로벌 시대로 접어들던 1990년대 블레어의 정치이념 ‘제3의 길(The Third Way)’도 생각날 것이다. 소셜 디마크러시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하나로 묶은 중도좌파 정책이다. 사반세기가 넘어선 지금의 코빈은 어떨까? 블레어가 주장한 제3의 길 대부분을 부정한다. 공공사업과 철도의 재국유화, 탄광 재개, 긴축 재정에 대한 대안인 기업의 세금 회피 단속 강화, 대학등록금 폐지, 학생보조금 재개, 비핵화,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자금을 위한 양적 완화, 복지예산 증강… 대략 봐도 리버럴을 넘어선, 사회주의체제 아래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과감한 정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원래 코빈은 노동당 안에서도 공산주의자로 불리던 인물이다. 소수파에 머물러 있던 극좌 정치가가 노동당 당수에 오른 것은 2015년 9월이다. EU 탈퇴여부를 묻는 국민투표 참패에도 불구하고, 총선에서의 약진을 통해 강력한 리더십을 구축한 상태다. 유스퀘이크는 사회주의 정책의 상징인 코빈을 지지하고 확장시켜 나가는 영국 좌파 파워의 근원이다.

영국은 EU 탈퇴 이후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막상 EU탈퇴에 나섰지만, 넘어야 할 산이 엄청 많이 남아 있다. 시간의 문제일 뿐, 코빈의 노동당이 가까운 시일 내에 정권의 주체로 나설 것이다. 코빈의 정책이 그대로 반영될 경우, 산업혁명 자본주의의 모델 영국이 사회주의 국가로 변신하게 되는 셈이다. 유스퀘이크는 그 같은 사회주의에 기초한 노동당과 당수를 지지한 핵심세력이다. EU 존속 문제도 있지만, 국가가 나서서 모든 것을 해결해 주려는 노동당의 사회주의 정책에 대한 지지로서 표를 던진 것이다. 21세기 영국의 젊은이는 사회주의정책을 선호하는, 반(反)자본주의 ‘홍위병’으로 변해 가고 있다.

영국과 미국은 일란성 쌍둥이다. 18세기 미국 독립 과정에서 적대관계에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서로의 유전자는 같다. 미·영 두 나라의 지도부는 ‘백인 앵글로색슨 개신교(White Anglo-Saxon Protestant)’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른바 와스프(WASP) 국가다. 인종·종교·세계관이 통하는,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는 나라다. 어제보다 오늘과 내일에 주목하는 앵글로색슨 세계관에 기초해, 서로의 이익과 안정을 위해 함께 손을 잡고 세계에 맞서 나간다. 유전자가 동일하기 때문이겠지만, 시대의 변화를 읽는 감각이 너무도 비슷하다. 변화하는 국제정세 속에서의 양국이 펼치는 대응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진행된다. 보통은 규모가 작은 섬나라 영국이 먼저 치고 나가고, 뒤이어 대륙의 미국이 따라가는 식이다. 영국의 EU탈퇴 찬성 5개월 뒤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 이뤄졌다는 점은 좋은 본보기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친 트럼프보다 한 발 앞서 ‘브리티시 퍼스트’가 실행됐다.

벌써 2년 전의 얘기지만, 대부분의 서방 미디어는 영국의 EU 탈퇴와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 시대정신을 읽는 혜안이 있다면 미·영 두 나라가 동시에 보여준 대응을 ‘반(反)역사적 쿠데타’로 몰아세우진 못할 것이다. 인류 역사가 증명하듯, 어둡고 불투명한 시대일수록 WASP의 진가가 나타난다. 브리티시 퍼스트, 아메리카 퍼스트를 옳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산업혁명 이래 지금까지 특징이지만, 역사를 리드한 것은 WASP다. 양국 국민이 내린 ‘자주적 선택’은 항상 다른 나라의 모델로 자리 잡아간다.

현재 유럽에서 벌어지는 극우정당 열풍은 ‘자국 퍼스트’ 정책에서 비롯된다. 이민과 복지 문제가 자국 퍼스트의 주된 내용이다. 덴마크·네덜란드·오스트리아·이탈리아 4개국이 극우정당 영향권 내에 들어간 데 이어, 인권대국 스웨덴의 극우정당도 제1당에 오를 전망이다. 영국의 ‘브리티시 퍼스트’,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가 그 같은 흐름의 출발점이다.

민주당의 트럼프 대항마는 ‘공유경제’


▎민주당을 조롱하는 베스트 셀러. 책의 본문이 전부 백지로, 민주당이 정책과 무관한 이념정당이란 점을 부각한 책이다. / 사진:유민호
불과 1년이 막 지난 시점이지만, 유스퀘이크는 영국에 이어 미국 밀레니얼로 밀어닥치고 있다. [뉴욕타임스] 7월 3일자 기사에 따르면 18세에서 34세까지의 밀레니얼의 61%가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큐파이 월스트리트 운동에서 보듯이, 1%의 부익부와 99%의 빈익빈으로 치닫는 경제구조에 대한 반발이다. 민주주의 체제하의 자유는 보장하지만, 국가가 모든 것을 관장해 균형을 맞추는 평등체제가 밀레니얼의 시대정신인 것이다.

당장 11월의 중간선거와 2020년 대통령 선거, 나아가 앞으로의 정치무대에서의 주인공은 밀레니얼이다. 이들의 정치적 좌표가 미국의 미래, 나아가 전 세계 정치 경제구도의 나침반이 될 것이다. 이제 막 시작됐지만, 빠른 시일 내에 미국판 사회주의 열풍이 전 세계를 달굴 것이다. 공화당 우파에 해당하는 티파티(Tea Party)가 등장한 것이 2009년이다. 그 후로 트럼프가 대통령에 오르기까지는 7년이 걸렸다. 민주당 내 좌파에 해당되는 데모크레틱 소셜리즘이 본격화된 것은 2016년 버니 샌더스를 통해서다. 밀레니얼이 중심에 서는 날, 과연 미국은 어떤 모습으로 나아갈까? 필자의 판단이지만, 트럼프 재선을 전제로 할 경우 빠르면 2024년 대통령 선거를 통해 그 결과를 접할 수 있을 듯하다.

[민주당에 표를 줘야 할 이유(Reasons to Vote for Democrats)]는 1990년생 밀레니얼이 펴내, 장기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고 있는 책이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전부 백지인 희한한 책이다. 경제·군사·외교 각 항목의 제목만 있을 뿐 전부 백지다. 그러나, 아마존닷컴에 들어가 보면 무려 2900건의 코멘트에다, 별 다섯 대만족의 책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정책도 없이, 아이덴티티 정치로 싸워 온 민주당을 조롱하는 책이다. 아이덴티티 정치는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에 맞설 만한 상대가 못된다.

그렇다면, 민주당에 남은 트럼프 대항카드로 무엇이 있을까? 사회주의다. 티파티가 공화당 정체성에 안 맞았던 것처럼, 사회주의도 민주당 이념과 부딪칠 것이다. 그러나 밀레니얼은 다르다. 사무실·자동차·자전거에서 보듯, 공유경제를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세대가 밀레니얼이다. 공유경제는 사회주의의 출발점이다. 학비, 복지는 물론, 직장과 연금 심지어 토지와 주택에 이르기까지, 과연 모든 것이 공유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 있을지? 정답에 이르는 키워드는 밀레니얼에서 찾을 수 있다.

-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201809호 (2018.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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