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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완의 쿠바탐험 | 부에나비스타, 아바나(6)] 합법과 불법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돈벌이 

쿠바의 척박함에서 소박(素朴)의 가치를 깨닫다 

김해완 작가
내·외국인 화폐 이원화 정책으로 물가 수십 배 차이 나기도…정부 묵인 아래 생계 위한 불법적인 돈벌이 수단도 일상화

▎지난해 9월, 허리케인 어마가 지나간 뒤 달걀과 휴지가 품절되는 대란이 벌어졌다. 약 3주 뒤 휴지가 공급되자 주민들이 휴지를 사려고 길게 늘어서 있는 모습이다. 긴 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쿠바의 일상이다.
세계적으로 ‘쿠바 열풍’이 한창이다. 지구상에서 몇 남지 않은 공식적인 ‘사회주의’ 국가로 수많은 여행객이 발걸음을 옮긴다. 이러한 열풍은 관광업계의 마케팅 전략이 먹힌 결과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일색이 된 세상 속에서, 돈 앞에서 무엇이 행복인지 잊어버린 ‘호모 에코노미쿠스’들이 가슴에 품고 있는 향수를 반영하기도 한다. ‘푸르른 바다와 흥겨운 음악이 가득한 섬나라… 이곳에 가면 그 옛날 돈 없이도 행복했던 시절을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고백하자면 내가 바로 그런 환상을 품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쿠바에 머무를 기회가 찾아왔을 때 나는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았는데, 이는 신념이라던가 하는 대단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쓰리 잡(three jobs)’을 뛰면서 생활비를 버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팍팍한 뉴욕 생활에 질려 버렸기 때문이었다. ‘돈 없이도 행복했던 한국’을 기억하는 세대도 아니면서, 나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보여준 가난한 동네의 행복한 삶을 쿠바에 투사했다. 그 시절, 내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쿠바는 소박의 아이콘이었다. 아, 그곳에 갈 수만 있다면!

무지는 언제나 그 대가를 치른다. 쿠바에 머무른 지 7개월째인 지금, 나는 내가 멋대로 품었던 사회주의의 상(想)을 매일 버리고 있다. 아, 이것은 쿠바 탓이 아니라 홀로 상상하고 기대를 품었던 나의 탓이다. 어느 나라나 그렇듯, 쿠바는 자기만의 시간 속에서 자기만의 환경을 만들어 왔다. 그리고 세상 어느 누구나 그렇듯, 쿠바인들은 생계라는 문제 앞에서 모두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텅 비어 있는 대로변의 임시 시장. 식재료부터 공산품까지 품목은 매일 바뀐다. 물건이 떨어지면 문을 닫는다. / 사진·김해완
맨 눈으로 바라본 아바나의 생계 현장은 어떨까? 한국인의 상식만을 탑재하고 있었던 나는 처음에는 아바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시장에 가도 물건이 안 보일까, 왜 똑같은 물건의 가격이 가게에 따라 25배나 차이 날까. 그리고 곧 여기만의 논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선 아바네로의 쇼핑 사정부터 살펴보자. 이론대로라면 정부의 배급을 통해 모든 생활이 가능해야 하겠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절반 이상의 생필품을 시장에서 구하고 있다. 이들의 소비는 즉흥적이고 비정기적이다. 시장이 먼저 있고 그 후에 물건이 조달되는 것이 아니라, 물건이 모이는 곳에 임시 시장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건이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희귀한 아이템’이다. 따라서 쇼핑의 주도권을 내가 아니라 물건에게 넘겨 줘야 한다. 있으면 사고, 없으면 포기해야 한다.


▎상점 입구에 쿠바인 전용 화폐인 ‘쿱’을 받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쿠바의 화폐는 내·외국인 전용으로 분리돼 있다. 아이스크림은 쿠바인들의 값싼 국민 간식이지만 고급 호텔이 모여 있는 베다도의 이탈리아 아이스크림 가게(아모레)는 쿠바인 최저 월급(250쿱)의 10분의 1이나 될 정도로 비싸다. 이곳은 외국인 전용 화폐(쿡)를 받는다.
물건이 귀하다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나면, 그때부터 숨어 있는 물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 달 동안 찾아 헤맸던 수세미를 노점상에서 발견하기도 하고, 이른 아침에 이미 다 팔리고 없는 양파를 어떤 아저씨가 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조금 더 비싼 가격에 팔기도 한다. 누구나 배급줄에서 기다릴 수 없다는 상황을 이용해 정부가 공급하는 저렴한 배급식품을 집집마다 방문하며 더 비싸게 판매하는 장사꾼들도 있다. 이런 보부상 사업은 국제적으로도 이루어진다. 여행 비자가 있는 소수의 쿠바인들이 멕시코에 가서 공산품을 직접 들여오는 것이다. 가전제품이나 의류가 그 대상이다.

이처럼 실질적인 시장은 안개처럼 퍼져 있다. 이런 환경에서 합리적인 가격을 기대하긴 어렵다. 공급 상황이 흔들릴 때마다 물건의 가격은 널뛰기를 한다. 계란은 원래 하나 당 1쿱(40원)인데, 작년 태풍 ‘어마’가 왔다 간 직후에는 5쿱까지 뛰었다. 멕시코에서 들어오는 물건은 한국에서 같은 물건을 살 때보다 가격이 더 비싸다. 심플한 옷이 한 벌에 최소 20~30쿡(2만~3만원)은 한다.

같은 물건이라도 가격은 가게마다 천차만별


▎아바나 비에하의 한 레스토랑 앞에서 밴드가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관광업이 쿠바의 주요 산업으로 떠오르면서, 음악도 전도 유망한 전공이 됐다. 외국인 관광객들 앞에서 얻는 공연 수익이 꽤 높기 때문이다. / 사진·김해완
게다가 물건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칠수록, 마진이 붙으면서 가격은 뻥튀기된다. 예를 들어 감자는 배급표를 가진 현지인에게 무료로 배급되고 있는데, 배급표가 없거나 이미 써 버린 사람들에게는 몇 배 더 비싼 가격에 팔린다. 또, 정부에서 정한 500㎖ 생수 한 병의 공식 가격은 500원이지만, 이 생수는 아바나 어디를 가든지 1000원에 팔린다. 쿠바 사람들의 최저 월급이 250쿱(약 1만원)이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물가는 엄청나게 비싼 것이다.

누군가 물건을 산다는 것은 또 다른 이에게는 돈을 번다는 뜻이다. 따라서 아바나의 지하시장은 아바네로의 지갑 사정과 직결된다. 지난 호에도 언급했지만, 현재 쿠바 정부가 노동자에게 지불하는 월급의 액수는 몹시 낮아서 실질적인 생계비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그래서 쿠바인들은 생계비를 확충하기 위해 언제나 제도권 밖에서 해결책을 찾고 있다.

첫 번째 해결책은 관광업에 종사하는 것이다. 현재 쿠바의 실질적인 돈벌이 수단은 관광업이다. 관광업에서 수익이 높게 나는 까닭은 쿠바가 쿡(CUC, 미국 달러와 일대일로 교환되는 외국인용 화폐)과 쿱(CUP, 쿠바 현지인용 화폐)을 동시에 사용하는 이중화폐 제도를 택했기 때문이다. 쿡과 쿱의 환율은 1대 25다. 외국인이 이용하는 서비스는 쿡으로, 현지인의 물가는 쿱으로 계산되고 있다. 그래서 길거리 가판대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은 1쿱이지만, 외국인이 머무는 호텔 옆에서는 1쿡(25쿱)이 되는 마법이 벌어진다. 관광수입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국가가 제도적으로 ‘가격 뻥튀기’를 허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아바네로들은 쿡으로 돈을 벌기 위해 목을 맨다. 외국인들이 이용하는 직통택시는 보통 5쿡(약 5000원)부터 가격을 매기는데, 이는 환전하면 125쿱이다. 125쿱으론 버스 열 번, 아이스크림 열 컵, 커피 열 잔, 햄 샌드위치 열 개, 거기에 덤으로 로빠 비에하(Ropa Vieja, 쿠바의 전통요리) 한 접시까지 구매할 수 있다. 15분 동안 택시 운전으로 열 사람을 위한 버스비와 간식비가 마련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모두가 관광업에만 종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두 번째 해결책은 생산자의 신분으로 지하시장에 진출하는 것이다. 그런데 원자재 대부분이 정부 관할 아래 놓여 있기 때문에, 개인 사업을 하려면 ‘불법 행위’가 불가피해진다. 가령, 시가 공장에서 평생 일했던 할아버지는 은퇴 후에 몰래 담뱃잎을 빼돌리고, 그의 아들은 이 담뱃잎을 말아서 정부 가격보다 더 싸게 시가 박스를 내다 판다. 혹은 식당에서 일하는 조카가 밀가루와 햄을 가져다주면, 고모는 이것으로 학교 근처에 학생들을 위한 작은 분식점을 여는 식이다.

합법도 불법도 아닌 ‘생존법’


▎5월 1일, 세계 노동자의 날을 맞아 혁명 광장에서 대대적인 행진이 벌어졌다. 이는 매년 있는 행사로, 새벽 4시에 시작해 아침 9시에 끝난다. 쿠바 국기를 상징하는 빨간색, 파란색, 하얀색의 옷을 입고 광장으로 향하는 행렬 때문에 이때는 아바나 시내에 거의 모든 교통이 마비된다. / 사진·김해완
중개 수수료를 챙기는 것 역시 보편적인 해결책이다. 가령, 한 까사 주인이 여행객을 다른 까사에 소개해 주면 그는 단기적으로 일당 5쿡, 장기적으로 월 50쿡(약 5만원)의 소개비를 받는다. 이것도 한 번만 받는 게 아니라, 여행객이 그 까사를 완전히 나갈 때까지 정기적으로 받는다. 택시운전사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운전사는 차의 실제 소유주가 아니기 때문에, 차를 빌리는 대가로 매일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불법이 아닌가? 중개 수수료 역시 세금을 피하는 ‘눈먼 돈’이 아닌가? 국민 세금으로 무료로 박사 학위까지 공부한 사람이 교육에 종사하지 않고 택시운전사가 되다니, 이것은 사회적 의무를 방기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되묻는 사람은 아바나의 생계를 아직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 한 것이다. 이것은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기에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삶의 조건이다. 정부 역시 사람들이 합법과 불법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회가 마비되지 않고 순환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인지하고 있다. 합법과 불법을 가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존법’을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바나에서 생계를 둘러싼 계산은 복잡하고 또 복잡하다. 돈이 늘 사적인 인맥을 타고 흐르기 때문에, 인간관계는 우정과 이해관계 사이의 회색 지대에서 요동친다. 아바네로마저도 그 복잡함에 고개를 내젓는 판국인데, 인간의 정(情)을 주고받는 소박한 공동체를 상상하고 온 외부인은 큰 코다친다. 눈 감으면 코 베는 곳은 서울이 아닌 아바나다!

이런 상황이 연출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쿠바 정부나 쿠바인이나, 정말로 돈이 궁하기 때문이다. ‘돈이 없다(No hay dinero)’, 이 표현은 어디서나 들려 온다. 하지만 돈의 부재를 쿠바가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라고 성급히 결론지어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현실에서 칼로 무 베듯이 딱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실 경제에서는 생산을 촉진하는 자본주의의 요소와 분배에 집중하는 사회주의의 요소가 언제나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또, 이 둘 중에 어느 쪽이 더 우월하다고 확언하기도 어렵다. 미국과 소련의 대결만 보면 자본주의가 완승을 거둔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티 같은 국가에서 자본주의는 완전히 실패한 체제다.

월급과 물가 사이의 불일치, 널리 퍼진 지하시장, 교육받은 인력을 활용할 수 없는 빈약한 산업. 이런 모순적인 시스템은 역설적이게도 ‘소박한 삶’을 위해서 시작되었다. 쿠바 혁명은 처음부터 공산주의를 위한 혁명이 아니었다. 혁명을 지지했던 대중의 정서는 반미주의와 민족주의에 가까웠는데, 이 정서 아래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생계에 대한 질문이었다. 20세기 초, 독립을 이뤄낸 쿠바인들은 다른 카리브해 국가들처럼 동일한 선택을 강요받고 있었다. 미국의 경제적·정치적 속국이 되어서 생계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미국의 심기를 거스르면서 자급자족하는 모험을 해볼 것인가? 선택은 후자였다. ‘쿠바인들을 위한 쿠바(Cuba por los cubanos)’, 이 유명한 문구는 미국 달러를 위해서 주권을 팔지 않겠다는 의사표시였다.

돈이 없다고? 돈 빼고 다 있다!


▎성모마리아상 밑둥에는 사나운 파도 위의 배에 탄 사람들이 기도하는 모습이 묘사돼 있다. 혁명을 피해 뗏목에 몸을 실은 도피자들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깃들어 있다.
쿠바혁명은 이 과제에 어떻게 응답했을까? 구성원이 다양한 만큼 생계에 대한 이해관계도 천차만별이었지만, 혁명 정부는 최약자와 대다수를 보호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향을 택했다. 체 게바라가 말한 것처럼 부르주아의 안락한 생활은 포기할지라도, 돈 없는 자에게 인간적인 삶을 보장해 주는 ‘신인류(Hombre Nuevo)’의 가치를 실현하기로 한 것이다.

문제는 이 인간주의적 시스템을 유지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게 비싸다는 것이다. 지난 4세기 동안 스페인의 설탕 농장으로, 그 다음에는 미국의 카지노 사업장으로 기능해 온 쿠바에 탄탄한 경제기반이 있을 리 만무하다. 혁명 이후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렇다 할 해결책이 나오고 있지 않다. 경제 구조의 다양화를 이루고자 했던 70년대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고, 소련에 설탕 판매로 의존하는 전략은 90년대 이후로 불가능해졌으며, 미국의 경제 봉쇄는 예나 지금이나 견고하게 쿠바의 목을 조르고 있다. 그러나 쿠바는 아직도 ‘가난하지만 평등한 삶’의 비전을 포기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관광업으로 길을 뚫어 보려고 하는 중이다.

현재 쿠바가 안고 있는 문제는 혁명의 실패보다는 식민지 유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아비바 촘스키는 “세계사의 관점에서 보면 가장 잘 ‘작동하는’ 것은 식민지 권력이 되었던 반면에, 가장 잘못 ‘작동하는’ 것은 식민화된 쪽”이라고 주장했다. ([쿠바혁명사], 26쪽) 식민지에서 원자재를 착취했던 제1세계는 그 부를 기반으로 산업을 꽃피운 반면, 제3세계는 사회를 발전시킬 기회를 박탈당한 채 여전히 구(舊)제국주의 국가들의 그림자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쿠바가 생계와 주권 사이에서 하고 있는 고민은, 자본주의 국가인 아이티나 필리핀에서도 현재진행형인 문제다.

한 번은 아이티에서 유학 온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쿠바에는 돈이 없어. 그런데 사실 이곳에는 돈 빼고 모든 게 다 있어. 멀리 갈 것도 없이 아이티만 봐도 쿠바가 얼마나 발전된 국가인지 알 수 있지.” 이 친구의 의견은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첫째는 돈이 없을지언정, 쿠바의 길거리에서 절망적인 가난의 그림자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돈의 부재’가 이곳에서 의미하는 바다. 쿠바에서 개인이 가난한 이유는 그 사람의 탓이 아니라 국가의 탓이며, 쿠바라는 국가가 가난한 이유는 국가의 탓이 아니라 부당한 세계 경제의 구조 탓이다. 그러나 세계는 개인을 위해서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과거로부터 식민지의 운명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은 불리한 조건을 감수한 채 스스로 생계의 길을 개척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쿠바의 현실이자 쿠바인의 운명이다. 오늘도 “돈이 없다”고 말하는 이웃집 할머니의 돈 타령에는 지난 500년의 세계사가 진하게 녹아 있는 셈이다.

현재 쿠바는 새로운 딜레마에 처해 있다. 다수에게 ‘돈 빼고 다 있는’ 삶을 제공하기 위해서, 소수가 가장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돈을 벌고 있는 것이다. 그 소수란 외국에서 매달 돈을 송금해 주는 친척들, 밤늦게까지 외국인을 태우고 짧은 영어로 가격을 흥정하며 돈을 버는 택시 기사들, 외국인을 관광업에 연결해 주는 브로커들이다. 하지만 다들 마음속으로 의문을 품고 있다. “언제까지 이런 임시방편으로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을까?”

특히 이중 화폐 제도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중으로 갈라놓고 있다. ‘가난한 쿠바’와 ‘부유한 외국’이라는 대비가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쿡을 벌어들이는 소수, 쿡에서 쿱으로의 환전, 그리고 쿱을 소비하는 다수. 이 시나리오는 얼핏 보면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현지인과 외국인이 한 공간에 공생하는 상황에서 화폐를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외국인에게 25배 더 비싸게 상품을 판다는 것은, 현지인들이 현지 물가로 계산된 월급으로 25배는 더 비싼 외국 생필품을 구매해야만 하는 역설을 의미한다. 그럴수록 노동력은 관광업에 몰리고, 공공부분의 일자리는 일손 부족에 시달리게 된다. 관광 수입이 커지면커질수록 쿠바가 지난 60년간 지켜오려고 애를 쓴 원칙들이 무너지는 것이다.

‘이중 화폐’의 역설


▎해질녘 말레꼰의 풍경. 언제나 그렇듯, 말레꼰에는 낭만과 여유를 즐기는 젊은 아바네로들이 앉아있다. 카리브해의 섬 특유의 여유는 쿠바가 지금까지 혁명을 이어오게끔 한 소박한 저력인지도 모른다. / 사진·김해완
이 모순을 가장 심각하게 체현한 장소가 바로 아바나다. 외국의 달러가 가장 많이 유입되는 곳, 외국인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곳, 관광업이 가장 성하는 곳. 쿠바에서 가장 부유하고 또 활기찬 이 도시는 안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다. 외국 자본이 유입될수록 생계비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사람들은 더욱 전전긍긍하며 돈 만들 구멍을 찾는다. 쿠바인들 사이에도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있고, 이런 환경에서 자라난 젊은 아바네로들은 자아실현을 하기보다는 외국인과의 인맥을 통해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길에 유혹을 느낀다.

돈 없이도 행복했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물질 만능주의에 찌든 사람들만이 아니다. 쿠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가난 속에서도 빛났던 쿠바인의 존엄성이 사라질까 봐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어 버렸다. 최근에 이사를 했는데, 가족처럼 지냈던 예전 쿠바 집주인이 중개 수수료로 매달 내 집값에서 50쿡을 받아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집주인은 이런 수수료가 비도덕적인 돈벌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그는 꽤 비싼 고급 시계를 차고 있었다. 돈 있는 자만이 ‘돈 없이 함께 살아가자’는 그 옛날 도덕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쿠바가 이 과도기를 잘 빠져나갈지, 아니면 ‘밥은 다 함께 나눠먹어야 한다’는 공산주의의 미덕과 ‘당당하게 일해서 내 밥값은 내가 번다’는 자본주의의 윤리를 모두 잃어버린 채 표류할지. 두고 봐야 할 일이다.

나는 여전히 외국인이다. 아직도 많은 불편함을 돈으로 해결하고 있다. 뉴욕에서는 돈에 치였으면서, 아바나에서는 돈에 매달려 살고 있다. 그런데 이곳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희한하게도 내 가계부의 지출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쿠바 사람들처럼 애를 쓰며 장을 보고, 귀찮아도 매 끼니 밥을 해먹고, 오래 기다려도 대중교통을 사용하자 자연스럽게 소비가 줄어든 것이다. 처음에는 불편해서 도대체 어떻게 사나 싶었는데, 살아보니 또 살 만하다. 결국 마음먹기에 달린 문제다. 그러면서 나는 쿠바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도 느긋하게 살아 가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헬조선’의 상황에 절망하면서도 가족과 친구를 아끼며 살아 가는 것처럼, 이곳 사람들도 자신이 나고 자란 이 섬을 사랑한다.

사랑은 상황을 받아들이게 만든다. 그러고 나면 마음은 자연히 중심을 찾게 된다. 그리고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더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게 된다. 평화로운 마음, 부지런한 몸. 소박함이라는 것은 어떤 환경이 아니라, 어느 환경에서든 이렇게 살아가는 태도를 지칭하는 게 아닐까? 2018년의 아바나는 ‘돈 없는 그 시절’에 응답하지는 않았지만, 내게 진정한 소박함을 훈련시키고 있다!

※ 김해완 - 1993년 생. 십대에 중졸백수를 자처했으나 지금은 평범한 이십대 청년백수다. 고등학교 때 학교를 그만둔 후 남산강학원에서 5년 동안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읽고, 쓰고, 같이 사는 법을 익혔다. 2014년 초부터 미국 뉴욕에 떨어져 좌충우돌 여러 나라의 청년과 함께 생활한 후 2017년 9월부터는 쿠바 아바나에 정착해 공부하고 있다. 저서로는 [다른 10대의 탄생] [리좀, 나의 삶 나의 글]이 있다.

201806호 (2018.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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