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특별 인터뷰] 김병준 |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의 ‘진짜 보수정치’ 

“표 의식하는 정치가 공동체 미래 좀먹어” 

박성현 월간중앙 기자
여론과 정서 속에 국가 미래 전략이 들어 있다고 믿는 건 착각…자유한국당 공천 제도, 개인·당·국가 이익에 부합하도록 고친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대위원장은 “대통령의 짐을 지려는 사람은 엄청난 내공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 사진:변선구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은 권력이 갖는 힘의 속성을 잘 안다고 자부한다. 그 자신이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의 막강한 신임을 받으며 국정의 중심에서 권력의 일부를 행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권력과 힘은 손잡이 없는 양날의 칼”이라며 권력의 무자비함과 무상함을 표현했다. 많은 이가 그 칼을 탐내지만 양날의 예리함을 알지 못한다고 각종 연설과 글을 통해 경고음을 날렸다.

그는 권력의 힘이 정당하고 공정하게 쓰여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강조한다. 자유한국당의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을 수락한 것도,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와 경제 정책에 날선 비판을 가하는 것도 이런 믿음의 실천이라고 말한다. 8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실에서 만난 김병준 위원장은 보수가 망가졌다고 해서, 진보가 득세했다고 해서 양 진영이 일희일비할 게 아니라고 했다. 현재의 위치에서 기준과 원칙을 바로 세우고 그걸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와서 보니 한국 정치에 아직 희망이 남아 있던가?

“한국 정치가 참 어렵다. 정치는 크게 세 가지로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하나는 제가 지적했듯이 정치는 물론 정부에서도 ‘국가주의’ 성격이 너무 강하다. 여기에 ‘대중영합주의’가 작용하고 있다. 그에 더해 권력을 쥐면 같은 파벌끼리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패권주의’ 성향이 결합돼 화(禍)를 더 키우더라.”

그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그래서 진영논리가 판을 치는 것이다. 계파로 나눠 싸우다 보니 정치 에너지를 패권주의 싸움에 다 빼앗기고 쏟아붓는다. 정말 국민에게 필요한 정책 이슈들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이게 한국 정치의 큰 비극이다. 다투더라도 그냥 다투는 게 아니라 권력에 눈먼 나머지 대중과 영합하는 걸 서슴지 않는다. 표가 있다고 하니 가선 안 될 길도 가고, 해선 안 될 일도 하는 게 현실의 정치다.”

대중영합주의, 패권주의, 국가주의 척결할 터


▎8월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 국민대토론회에 참석해 축사를 하는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 사진:연합뉴스
정치인이라면 대중의 정서, 국민의 여론을 존중해야 하지 않나?

“마땅히 민심을 받들어야 한다. 그렇지만 정치하는 이들은 여론과 정서 속에 늘 국가 미래의 전략이 들어 있다고 믿어선 안 된다. 국민의 마음은 마음이고, 국가의 길은 그것과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를 망각하고 표에 매달리는 건 공동체의 미래를 좀먹는 행위와 다름없다. 그래서 걱정이다.”

어디서 해답을 찾을 건가?

“정당정치를 바로잡아야 한다. 대중영합주의, 패권주의를 벗겨내고, 권력을 잡으면 아무 데나 칼을 들이대는 국가주의 양상도 일소해야 한다. 지금 여권은 뭔가 찔리는 게 있어서 국가주의가 아니라고 계속 반박한다. 반박하면 할수록 우리 사회가 그 논쟁 속으로 들어가는데도 말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왜 내 삶에 국가가 들어와서 간섭하는지 따져 묻게 될 것이다.”

한국 정치에서는 자유한국당이 가장 큰 골칫덩어리 아닌가?

“와서 보니까 의원 한 사람, 한 사람 자질이 뛰어난 분이 많다. 이분들에게 공천은 중요하다. 국회의원에 당선돼야 한다는 욕구를 꼭 나쁘다고 탓할 건 아니라고 본다. 세상 산다는 게 그런 것 아닌가. 내가 잘되고 싶은 욕망이 모여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사람의 욕심은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의원들이 공천과 당선에 집착한다고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게 아니다. 문제는 개인의 이익 추구가 당의 이익, 국가의 이익과 맞아떨어지는가에서 찾아야 한다. 시장의 예를 들어보자. 상인이 좋은 물건을 팔면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모두 행복하다. 소비자는 원하는 물건을 손쉽게 살 수 있어서 좋은 거다.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장사꾼의 마인드가 세상을 편하게 해줄 수 있다. 시장의 시스템이 그렇다. 개인의 이익이 전체의 이익으로 돌아오게 하면 된다.”

시장 메커니즘을 정당에 투영할 수 있을까?

“공천받고 싶은데 정당의 공천 시스템이 잘 짜여 있으면 그건 곧 당의 이익에 연결된다. 이는 결국 국가의 이익으로 귀속된다. 그런데 공천 시스템이 엉망이면 모든 게 헝클어진다. 제가 할 일은 의원들의 배지를 달려는 욕구가 당의 이익에 결부되고 국익에 직결되도록 시스템을 짜주는 것이다. 어려운 일이지만 노력하면 영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것 때문에 이 자리에 온 것이다.”

공천시스템을 손본다는 말인데?

“그렇다. 정말 좋은 분을 모셔야 한다. 제일 중요한 건 당이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의 깃발을 분명히 내걸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 깃발을 들고 갈 사람이 많이 공천되도록 제도를 갖추면 된다.”

정당은 선거 때마다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등 개혁 공천을 자랑해 왔다. 완벽한 상향식 제도라고 홍보하기도 했는데.

“세상에 완벽한 게 있나. 정치에서 완벽이라는 건 없다. 공천도 마찬가지다. 결국은 여러 가지 목적 중 어떤 걸 먼저 취하느냐의 문제이다. 그나마 더 좋은 것을 추구하면 족하다. 어떤 공천 제도든 한계는 있겠지만 그나마 당, 국민, 국가의 이익을 자연스럽게 챙길 수 있는 이들이 공천되도록 할 것이다. 정치 진입의 문턱을 낮추고 인재풀을 넓히는 작업이 필요하다.”

김 위원장은 다음에 올 자유한국당 대표가 공천 제도를 되돌릴 수 없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다시 말해 국민의 동의를 받아 만들어진 공천 제도를 후임 당 대표가 쉽게 바꾸지 못하도록 하는 작업을 이번 혁신비대위에서 진행하겠다는 포부다. “염두에 둔 공천 제도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내 머릿속에는 분명히 있지만 지금 함부로 말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내가 언급하더라도 그게 완벽한 건지는 모른다. 시스템·정치개혁 소위에서 논의하면 적당한 시점에 내 의견도 내놓겠다. 거기서 논의할 것이다.”

자유한국당 대선 흥행 이끌 사람들 나서야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과 당직자들이 7월 30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을 방문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에서 참배하고 있다.
보수의 가치를 새롭게 가다듬고 노선을 정립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권과 맞설 차기 대선주자, 즉 ‘대안적 리더’를 창출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게 청와대 정무수석을 역임한 박형준 동아대 교수의 주문이다. 어떻게 보나?

“오랜 세월 계파 싸움을 해온 자유한국당은 그게 참 어렵다. 싸우는 구도에서는 인물이 키워지지 않는다. 좀 될 만한 인물이 나오면 흠집을 냈다. 밖으로부터의 공격이 주는 상처도 힘든데 안에서 상처를 입히니까 인물이 제대로 클 리 있겠나. 이는 비단 자유한국당만 아니라 진보 진영을 포함한 한국 정치의 폐단이다. 그리고 인물이 어디 키운다고 키워지던가? 스스로 크기도 해야 한다. 자유한국당은 장기적 안목에서 젊은 세대를 많이 영입해 키워야 하고, 단기적으론 여기저기서 대선에 흥행이 될 사람들이 나타나줘야 할 것이다.”

비대위에서 경제 위기 얘기를 많이 한다고 들었다. 한국 경제는 어느 정도 심각한가?

“이 정도로는 모자라니 더 세게 직접적으로 경제 문제를 때려 달라는 주문도 있다. 지금 한국 경제 상황은 심각하다. 정부가 그 심각성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당장 설비투자가 안 된다. 전년 동기 대비 6~7% 내려앉았다. 연구개발(R&D) 투자는 늘지 않고 옆걸음질 하고 있다. R&D 투자는 미래를 얘기하는 거다. 우리가 미래에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가. 단순히 경제가 어렵다는 수준을 넘어 미래에 대한 희망을 놓아버린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도 내가 보기에는 정부가 거의 팔짱을 끼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되는가?”

소득주도 성장론이 문제인가?

“잘못된 프레임을 고집하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은 우리 사회에 맞지 않는 이론이다. 내수가 경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국가에서는 소득이 오르면 소비가 늘고 생산이 증가하는 등 선순환 구조로 돌아가는 게 가능하다. 한국은 그게 아니지 않나. 수출주도형 경제 국가다. 내수만 갖고 전체 경제를 살리기 어려운 여건이다. 그래서 이 모델은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자영업자들도 소득을 있게 해주는 주체들이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다들 어려운데 누구더러 임금을 올려주라고 할 텐가. 소상공인들은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 점을 몰랐을까? 그 이상의 고민에서 나온 방법론 아닐까?

“고민은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책적 자율성이 없다는 사실이다. 정책적 자율성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정책을 결정하는 것인데 문재인 정부는 지지세력에 갇혀 있기에 그게 안 된다. 지지세력 이익이나 신념에 반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 지지세력은 강경하기만 하다. 대표적인 게 노동조합이다. 정부가 대기업 노조 같은 데 갇혔기에 그들의 신념, 이해관계를 배반하는 정책을 펼 수가 없지 않나. 산업구조를 조정하려면 당연히 노동자 다수를 구조조정해야 한다. 이 정부는 그걸 해낼까? 못하는 것이다. 근본적 산업정책이 나올 수 없는 구조라고 본다.”

국익에 이로운 정책이라면 개인과 집단에 불리하더라도 선택하는 게 ‘노무현 정신’이라는 입장은 여전히 유효한가?

“그게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 스타일인데 지금 정부는 안 된다고 봐야지.”

“문재인 대통령 옛날보다 더 크게 웃어”


▎지난해 7월 자유한국당 대구시당·경북도당 출입구 간판 아래에 시민들이 ‘자유한국당 해체하라’는 내용의 5행시를 내걸었다.
문재인 대통령 리더십의 한계인가?

“그게 대통령 리더십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참모 진용의 부실에서 온 것인지 제가 일일이 원인을 분석할 수는 없다. 다만 그런 나보다 국익을 우선시하는 그런 게 안 보인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현 정부를 이끄는 핵심적 인물을 꼽자면?

“청와대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밖에서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대통령의 힘을 능가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과거 누가 1인자이고 대통령은 2인자, 3인자라는 말이 있었지만 그건 그야말로 하기 좋은 말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힘의 중심은 대통령이고 대통령만이 절대적 위치에 있다. 대통령이 말을 어떻게 하고, 의사결정 체계를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바뀐다. 대통령 의중과 취향에 맞는 보고서가 작성되고 정책이 집행된다. 정책 관계자들은 대통령 구미에 딱 들어맞게끔 데이터를 꿰맞춘다. 우리 정책 과정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따라서 대통령의 생각이 가장 중요하다. 누구를 탓할 필요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과는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같이 근무했다. 그 시절의 문 대통령과 지금 문 대통령을 비교할 수 있나?

“글쎄…. 어떤 게 있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이 유(柔)해 보이고 좋아 보이는 건 비슷하다. 차이점은 음… 텔레비전에 나오는 그의 웃는 모습을 보면 옛날보다 더 크게 웃는 것 같다.”

의도적으로 더 크게 웃는 것이라는 의미인가?

“그게 아니라고 한다면…. 더 말하자면 그게 더 자연스럽게 웃는 것인지도 모른다.”

참여정부 청와대 시절 두 사람의 특별한 인연이랄 게 있다면?

“우리는 서로 한 번도 언쟁하거나 다툰 적도 없다. 그렇다고 허구한 날 같이 밥 먹고 술 먹고 하면서 같이 돌아다닌 적도 없고.”

노무현 대통령을 지척에서 모신 두 사람 사이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건가?

“청와대라는 곳이 원래 그렇다. 청와대 자체가 매일 같이 밥 먹고 그런 거 할 여건이 안 된다. 그게 누구하고든… 제가 이병완 비서실장과도 늘 같이 밥을 먹었나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 시절 대통령의 친구는 문재인이고 대통령의 정책은 김병준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마도 문재인 민정수석이 정책과는 별 관련이 없었을 것이다. 정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고 하겠다. 그건 참여정부 출범 오래전부터 그랬다.”

노무현 적통(嫡統)을 따지자면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묻어 나오는 것 같은데.

“지금 와서 적통에 무슨 의미가 있나. 적통의 의미는 없다. 그리고 세월이 변했다. 세월이 이렇게 바뀌었는데 저인들 안 바뀌었겠나. 노 전 대통령은 돌아가신 분이고 지나간 분이다. 그때의 시대 상황과 지금의 상황은 또 다르다. 제 생각도 그때와 지금이 달라졌고. 다만 그때 누가 어떤 역할을 많이 했느냐고 묻는다면 정책 역할은 내가 많이 했다고 답할 수 있다.”

북한 석탄 밀반입 문제로 한·미 관계가 약간 어색해진 느낌이다.

“정부가 평화를 앞세우지만 거기엔 두 가지 축이 요구된다. 대화·타협이 그것이다. 소통하면서 오해를 풀고 줄 건 주면서 가는 것이다. 또 하나는 대화·타협을 가능케 하는 우리 방어력이다.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어낸 건 유엔과 미국 차원의 글로벌 제재와 한·미의 군사적 힘이었다. 이 정부에서는 뭔가가 빠진 느낌이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다. 군의 사기는 형편없이 떨어져 있고 국방력에도 곳곳에 구멍이 보인다. 이런 상태론 평화 정착은 요원할 따름이다.”

“드루킹 사건, 정권 바뀌면 재수사할지도 몰라”


▎8월 9일 경북 경주 화백컨벤션센터에서 한국수력원자력 노동조합원과 인사를 나누는 김병준 비대위원장. / 사진:연합뉴스
정권 초기에 활동하는 일명 ‘드루킹’ 특검이 진실을 제대로 밝혀낼 수 있을까?

“특검도 과거 비해 많이 달라졌고, 특검이 밝힐 수 있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결국 검찰이 도와주고 증거물도 내주고 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한계가 있지 않나. 지금의 특검에 대해선 달리 할 말이 없고, 다만 여당이 특검을 안 흔들었으면 좋겠다. 특검이 제대로 수사하도록 도와 주라. 지금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미진하다면 또다시 정권이 끝나고 재수사 같은 작업을 하게 된다. 여권 일부에서는 드루킹 특검을 정치 특검이라고 공격한다. 권력의 서슬이 시퍼런 요즘 어느 특검이 감히 정치특검을 할 수 있겠나.”

대통령 국정지지율이 흔들린다. 앞으로 추세를 전망한다면?

“어디까지는 모르겠으되 계속 내려갈 것이다. 정권이 후반기에 접어들면 들수록 내려가는 게 국정지지율이다. 국정을 잘 못해도 내려가는 거지만, 정권 초창기 국가권력에 대한 두려움으로 진실을 얘기하지 않다가 후반기로 갈수록 진실을 얘기하는 분이 늘어나기 때문에도 지지율은 주저앉는다. 이때쯤이면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도 내려가고 숨죽이던 언론도 후반으로 가면서 비판의 강도를 높인다. 정권 출범 초기에는 대통령에게 꼼짝도 못하던 여당도 대통령 구심력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대통령을 헐뜯기 시작한다.”

자유한국당 혁신 강도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람들이 인적 쇄신을 강조하면서 그런 말을 하는데 그건 정말 두 가지 측면에서 잘못된 생각이다. 하나는 제가 의원들을 내칠 권한이 없다. 비대위원장뿐 아니라 어느 누구도 못하는 일이다. 출당 조치도 본인이 나가지 않으면 어찌할 방도가 없다. 당헌·당규에 따라 출당 조치를 강행하면 된다고? 그러자면 엄청난 무리수를 써야 하고 거기에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야 한다. 비대위원장에게 공천 권한은 없다. 다만 당협위원장 교체 권한은 있다. 또 대한민국 정당은 선거때마다 인적 쇄신을 하지 않았나?”

그럼에도 물갈이 요구가 당내에서조차 팽배하다.

“자유한국당 의원 113명 중 초선이 40명 안팎이다. 20대 총선에서 거의 40%에 이르는 물갈이를 한 셈이다. 민주당도 새 피 수혈을 끊임없이 하지만 우리 정치의 후진성은 이 모양 이 꼴이다. 그냥 하는 척하는 인적 쇄신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가치와 기준, 잣대가 분명해야 의미가 있다. 그 잣대에 따라 신진 인사를 불러들이고 기존 인사들을 내치고 해야 하는데 현실은 반대로 돌아갔다. 공천권을 가진 이들 의중에 따라 물갈이가 진행될 뿐이다. 제가 공천의 칼을 갖고 있다고 치자. 마구잡이로 휘두르면 김병준계가 생길 것이고 또다시 계파논쟁의 수렁으로 빠져든다. 공천 제도를 제대로 만들어 놓으면 인적 청산은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이다. 넌 친박계, 넌 친이계니까 다 나가라? 지금 이들을 내보낸다고 당이 잘되는가?”

자유한국당의 궤멸에 책임 있는 정치인들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여론은 있다.

“그들 스스로가 결단을 안 내리니까 문제지. 그렇다고 아무런 기준 없이 ‘당신 나가’라고 할 수도 없다. 국회의원들을 무슨 수로 내보낸다는 말인가.”

보수대통합 구상은 하고 있나?

“보수통합은 하고 싶다고 되거나 하기 싫다고 안 되는 건 아니지 않나. 구태여 인위적으로 이 사람, 저 사람 끌어모을 이유는 없다고 본다. 자유한국당이 혁신을 잘해서 당을 잘 만들어 놓으면, 즉 흡입력이 생기면 통합은 되는 것이다. 서로 간에 흡입력이 없으면 통합은 안 되는 것이고. 자유한국당을 먼저 다듬는 게 우선이다.”

본인의 차기 대선 출마 가능성에 ‘그럴 일 없다’고 못박았다. 왜 그런 언급을 했나?

“대선에 안 나가니까 안 나간다고 한 것이다.”

그 얘기를 공개리에 해야 할 속사정이라도 있었나?

“사람들이 자꾸 물으니까 내 마음에 있는 그대로 대선 안 나간다고 한 것이다. 대통령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대통령직의 무게를 생각해 보라. 내 책([대통령 권력])의 첫 페이지는 ‘권력은 잿빛이다’로 시작된다. 대통령직은 화려하지 않다. 잿빛일 뿐 아니라 어머어마하게 무겁고 험하다. 그 짐을 내가 질 능력이 되느냐? 아니다. 저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함부로 지겠다고 안 나서주면 좋겠다. 그 짐을 지려면 그에 따른 엄청난 내공과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대통령 된 분치고 인생의 마지막을 행복하게 간 분이 없지 않나. 대통령은 그런 자리다. 내가 왜 그 자리를 탐해야 하나?”

“국가 운영체계를 바꾸고 싶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이 7월 2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빨간불 켜진 한국 경제, 해법은 없나’ 토론회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밖에서는 김 위원장의 권력 의지가 강하다고 느끼는 기류도 있더라.

“제가 권력 의지가 강했으면 하다못해 구의원이라도 나갔을 것이다. 그렇게 권력욕 강한 사람이 지난 10여 년 동안 정치권에 숟가락 하나 들여다 놓지 않고 이때까지 이러고 있었겠나. 자기들은 몇 선이나 하는 국회의원들이 공천 신청 한 번 안 한 저를 두고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이다. 저는 이 나이 되도록 대학총장직도 한 번 탐해 본 적 없다. 그런 저를 두고 왜 권력지향적이라고 하는가.”

그런 평을 들으면 억울하지 않나?

“전혀 억울하지 않다.”

당사자의 진심과 다른 얘기를 해대는데도 그런가?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고 하더라.(웃음)”

세상을 한번 확 바꿔보고 싶지 않은가?

“그건 바꿔 보고 싶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다. 권력을 잡아 세상을 바꿀 수도 있고 글을 써서 세상을 바로잡을 수도 있는 것이다. 세탁기를 발명한 사람은 여성들을 가사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켰고, 가수 김민기의 ‘아침이슬’은 그 어떤 민주화 운동가 못지않은 한국 민주주의에 큰 기여를 했다. 미국의 포크 가수 밥 딜런도 ‘블로잉 인더 윈드(Blowin’ In The Wind)’라는 곡으로 많은 미국인에게 사회 변혁의 열망을 불어넣었다. 역대 미국 대통령보다 더 크고 깊게 미국 역사를 바꾼 인물일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건 꼭 정치권력만의 일이 아니다. 말이든 글이든 저는 얼마든지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지난해 박근혜 정부 시절 총리 지명자 기자회견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눈물의 의미는?

“하~. 우리나라 현실이 참으로 딱하더라. 그래서 그랬다. 정말로 세상을 바꿔놓고 싶은 게 많았다. 총리를 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사회담론을 바꾸고 싶었다. 내게 필요한 건 마이크였다.”

김 위원장은 탄핵 국면인 지난해 1월에 펴낸 [대통령 권력]에서 “혁명을 꿈꾼다”면서 정국을 이렇게 조망했다. “대통령을 탄핵하는 정도로 끝낼 일이 아니다. 잘못된 대통령을 만들고, 잘못된 후보와 지도자를 만들고, 잘못된 정당이 살아 움직이게 하는 잘못된 정치와 국가 운영체계를 탄핵해야 한다.” 최소한 그의 꿈은 자유한국당 하나 고치는 선에서 그칠 것 같지 않다. 정치와 국가 운영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라면 그의 향후 행보에도 정치권의 시선이 계속 쏠릴 수 있다.

- 박성현 월간중앙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201809호 (2018.08.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