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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미국 ‘INF(미·러 중거리 핵전력 조약)’ 파기의 일석삼조 노림수 

러 겨냥하면서 북·중 때리는 미국식 성동격서(聲東擊西) 

미·일 등 서방은 러시아·중국 참여하는 새 다자간 INF 조약 체결 모색… 옛 소련 군축협상에 나서게 한 무력 압박 모델로 북한에 비핵화 압력 행사

▎2015년 카스피아해에 진출한 러시아 구축함이 시리아 내 목표물을 향해 크루즈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1986년 10월 12일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 이곳에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정상회담을 갖고 전략무기 감축 문제를 논의했다. 당시 레이건 대통령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전략폭격기를 5년 내 절반으로 줄이고 10년 후 ICBM 전부를 없애자고 제의했다.

이에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아예 10년 내에 모든 전략 핵무기를 폐기하자면서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이른바 ‘스타워즈(Star Wars)’로 불리는 미국의 ‘전략방위구상(SDI, Strategic Defense Initiative)’의 실전배치를 포기하라는 것이었다. SDI는 핵미사일을 우주에서 요격하는 방어체계를 말한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이런 제의를 단호하게 거절했고, 결국 협상은 결렬됐다. 역사적인 합의가 될 뻔했던 레이캬비크 미·소 정상회담이 실패로 끝난 것은 이처럼 SDI 때문이었다.

하지만 두 정상은 레이캬비크 회담에서 서로의 군비 축소 의지를 확인하게 됐고, 이를 바탕으로 1987년 12월 8일 워싱턴에서 다시 만나 중거리 핵전력(INF: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조약에 서명했다. 이 때문에 레이캬비크 회담은 ‘실패했지만 성공한 회담’으로 평가된다.

INF 조약의 정식 명칭은 ‘미국과 소련의 중·단거리미사일의 폐기에 관한 조약’이다. 이 조약은 미국과 소련이 냉전시대를 종식시키기 위한 첫 단계 조치로 합의한 상징적인 핵 군축 협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조약은 핵무기를 장착할 수 있는 사거리 500∼5500㎞인 중·단거리 탄도 및 순항미사일의 생산·실험·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88년 6월 1일 발효됐다. 이 조약에서 규정한 중거리미사일은 사거리 1000∼5500㎞의 미사일로, 미국의 탄도미사일 퍼싱투(Pershing II)와 지상발사 순항미사일(GLCM)인 그리폰과 소련의 SS-20, SS-4, SS-5를 말한다. 단거리미사일은 사거리 500∼1000㎞의 미사일로 미국의 퍼싱 IA와 소련의 SS-12와 SS-23 등을 말한다. 이 조약에 따라 미국은 미사일 846기, 소련은 미사일 1846기 등 양국이 미사일 2692기를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1991년 5월 모두 폐기했다.

양국은 또 10년간에 걸쳐 미사일 폐기 여부를 상호 사찰하고 검증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전 서기장은 역사적인 조약에 서명할 때 사용한 파카 만년필을 서로 교환하기도 했다. 당시 미국이나 소련의 중·단거리미사일 사용 대상은 당연히 상대국이 아니라 유럽이었다. 때문에 양국의 첫 핵 군축으로 유럽은 핵 공포의 우려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충격에 빠진 유럽의 절규


▎1985년 11월 제네바에서 열린 미·소 정상회담에 참석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왼쪽)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그런데 30년 만에 유럽이 다시 핵 공포에 떨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월 20일 “모스크바(러시아 정부)가 INF 조약을 위반했다”면서 “우리는 이 협정을 폐기하고 탈퇴하려고 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는 여러 해 동안 조약을 위반해 왔다”면서 “미국은 러시아가 핵 합의를 위반하고 우리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무기를 만들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월 22일에도 “러시아가 조약을 준수하지 않고 있다”면서 “그들이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협정을 끝내려 한다”고 밝혔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협정 당사국인 러시아에 파견했다. 볼턴 보좌관은 10월 22일과 23일 모스크바를 방문해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국가안보회의 서기와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 장관 등 러시아 외교·안보 담당 책임자들을 만났다. 특히 볼턴 보좌관은 10월 23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예방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INF 조약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볼턴 보좌관은 푸틴 대통령을 면담한 이후 기자회견에서 “INF 탈퇴에 관한 미국의 공식 통보가 적절한 때에 이루어질 것”이라면서 “미국은 러시아가 2013년부터 INF 조약을 위반해 오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이것이 트럼프 대통령이 조약을 폐기하기로 한 주요 이유”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향후 수 주 내에 조약 파기에 공식 서명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조약을 파기하려면 상대국에 공식 통보한 뒤 6개월 후 적용된다. 이 조약의 15조 2항에 따르면 당사국은 이 조약을 파기하려면 자국의 최고 이익을 침해하는 사유를 적시한 입장을 상대국에게 6개월 전에 통보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볼턴 보좌관은 “냉전 시대와 달리 현재는 많은 국가가 중거리 핵미사일을 개발하고 있기 때문에 양자 협정인 INF 조약은 더 이상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면서 “INF 조약은 중국이나 북한과 같은 국가들의 활동을 통제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중국의 핵 개발에 대응하기 위해 INF 조약에서 탈퇴하려고 한다”면서 “러시아와 중국이 정신을 차릴 때까지 우리(미국)도 핵무기를 늘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1986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회담을 위해 아이슬란드에 도착한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왼쪽).
트럼프 대통령과 볼턴 보좌관이 INF 조약 파기 의사를 분명하게 밝히자 국제사회가 상당한 충격을 받고 있다. 특히 유럽 국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EU 외교·안보정책을 총괄하는 대외관계청(EEAS)은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통해 “INF는 30년 전 발효된 이후 유럽에서 냉전을 끝내는 데 기여했고, 유럽 안보체제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면서 “러시아가 INF 조약 준수 우려에 대해 실질적이고 투명한 방식으로 대응하기를 기대하고, 미국도 조약을 탈퇴할 경우 자국과 동맹국, 전 세계 안보에 몰고 올 엄청난 파장을 고려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INF 조약을 준수해 줄 것을 요청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INF 조약이 유럽 안보의 기둥임을 강조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에 재고해 줄 것을 강하게 촉구했다.

그렇다면 트럼프 정부가 INF 조약을 파기하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무엇보다 러시아의 INF 조약 위반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문제는 이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재임할 당시에도 제기됐다. 러시아 정부는 2013년부터 새로운 지상 발사 순항미사일을 개발해 2014년 시험 발사를 두 차례나 실시했다. 당시 오바마 미국 정부는 러시아 정부에 INF 조약 위반 문제를 강하게 제기했다. 오바마 정부는 또 나토 회원국들에 러시아가 새로운 지상 발사 순항미사일을 개발하고 있으며, 이는 INF 조약 위반이라는 정보를 통보했다.

새로운 지상 발사 순항이 미사일은 나토에선 SSC-8. 러시아에선 노바토르(Novator)9M729이라고 불린다. 이 미사일은 이동식이며 직경 0.533m, 길이 6~8m, 탄두는 1개이며 450kg의 폭탄을 장착할 수 있다. 사거리는 500~5500㎞, 평균 사거리는 2500㎞다. 오바마 정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정부는 2015년에도 이 미사일의 시험발사를 실시하는 등 개발을 중단하지 않았다.

갓 취임한 트럼프 겨냥한 러시아의 강공책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왼쪽)이 10월 22일(현지시간)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NI F 탈퇴 등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회담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오바마 정부는 2016년 러시아 정부에 이 미사일 개발이 INF 조약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특별검증위원회를 설치하자고 제의했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는 이를 거부하고 이 미사일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러시아 정부는 2017년 2월 이 미사일 2개 대대를 남서부와 중부 기지에 실전 배치했다. 이 미사일 1개 대대는 발사대 4기와 6개의 미사일로 구성됐다. 러시아는 이 미사일을 실전 배치함으로써 유럽 전역을 타격할 수 있게 됐다.


▎러시아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이스칸다르.
러시아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에 맞서 이 미사일을 실전 배치한 의도는 트럼프 정부가 어떤 입장을 보이는지를 떠 보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바마 정부는 그동안 러시아 정부에 수 차례 경고를 해왔지만 강경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는 오바마 정부와는 달리 러시아 정부의 INF 조약 위반에 대해 강경 대응한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지난 2월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러시아가 INF 조약을 위반하고 있기 때문에 해상 발사 순항미사일이 필요하다”면서 “현 상황은 그대로 넘길 수 없는 단계”라고 강조했다. 폴 셀바 합참 차장도 지난 3월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러시아가 INF 조약을 위반하고 유럽 전역을 위협할 수 있는 새로운 순항 미사일을 배치했다”면서 “미국도 러시아를 압박할 수 있는 지렛대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군부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단호하게 대응 조치를 할 것이라고 경고하지 않을 경우 자칫하면 유럽 국가들은 물론 유럽 주둔 미군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또 백악관의 외교·안보 참모들도 군부의 입장을 적극 지지했다. 특히 볼턴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이 INF 조약에서 탈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볼턴 보좌관은 2011년 미국기업연구소(AEI) 선임연구원이던 시절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INF를 확대·강화할 수 없다면 폐기해야 한다”면서 “미국이 러시아와의 INF 조약에 묶여있는 동안 중국·북한·이란 등의 미사일 전력은 눈에 띄게 강해지고 있다”고 지적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군부와 백악관 외교·안보 참모들의 이런 건의를 받아들여 INF 조약 파기를 결심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중국이 INF 가입했었다면 90%가 협정 위반”


▎2015년 9월 천안문광장 열병식 때 선보인 중국의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DF-26.
또 다른 이유는 중국의 중·단거리 핵미사일 전력이 눈에 띠게 강화됐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이른바 ‘반(反)접근·지역거부 전략(A2/AD, Anti Access/Area Denial)’에 따라 둥펑(DF)-21D 등 중·단거리미사일들을 중국 동·남해안에 대거 배치해 왔다. 둥펑-21D는 중국이 2013년 미 해군 항공모함에 대응하기 위해 실전 배치한 세계 최초의 대함탄도미사일(ASBM)이다. ‘항공모함 킬러’라 부르는 이 미사일의 제원을 보면 전장 10.7m, 무게 14.7t, 속도 마하 10, 사거리 1800~3000㎞에 달하고 200~500kt(TNT 폭약 20만~50만t 위력)의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다. 더욱이 이 미사일은 바다뿐 아니라 지상 목표도 공격할 수 있다. 일본 열도 전역은 물론 오키나와 등에 있는 주일 미군기지와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 거점인 괌까지 타격할 수 있다. 특히 DF-21D는 수직으로 대기권을 뚫고 날아 올라갔다 마하 10 속도로 항모를 향해 떨어진다. 비행 마지막 단계에서 궤도를 바꿔 목표물을 정확히 공격할 수 있으므로 요격이 매우 어렵다.

중국 정부의 A2/AD 전략은 미군 항모 전단이 자국 연안은 물론 동·남중국해에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다오롄(島鍊, Island Chain)이란 가상의 선을 설정하고 이 선을 방어한다는 것이다. 제1 다오롄은 일본 열도~난세이 제도~대만~필리핀~인도네시아~베트남으로 이어지며, 중국 연안에서 1000㎞ 떨어졌다. 제2 다오롄은 중국 연안에서 2000㎞ 거리인 오가사와라 제도~이오지마 제도~마리아나 제도~괌~팔라우 제도~할마헤라 섬으로 이어진다. 중국 전략의 핵심 목표는 제1 다오롄을 내해화(內海化)하고, 제2 다오롄의 제해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미국은 그동안 항모 전단을 동원해 중국의 A2/AD 전략을 무력화하는 전술을 구사해왔다. 이에 맞서 중국은 눈엣가시인 미군 항모와 괌 기지를 모두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을 개발해 실전 배치해 왔다. 중국 정부의 의도는 남중국해는 물론 동중국해와 대만 및 한반도까지 군사적으로 자국의 영향권에 두겠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INF 조약을 체결한 당사국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먹은 대로 중·단거리미사일을 개발해 왔다. 실제로 중국은 DF-21D에 이어 개량형인 DF-26까지 개발해 실전 배치했다. 사거리 3000~4000㎞로 추정되는 DF-26은 미군 항모는 물론 일본열도 전역과 오키나와 등에 있는 주일 미군기지, 괌까지 충분하게 타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DF-26은 ‘괌 킬러’라고 불린다. 중국 정부는 최근 들어 산둥 반도에 사거리가 1000㎞인 DF-16 미사일도 실전 배치했다. 오키나와의 주일 미군 기지를 타격할 수 있는 DF-16은 핵무기를 포함한 1000kg의 탄두를 장착할 수 있으며 목표물 10m 이내에 착탄이 가능할 정도로 정밀도가 높다. 중국 정부는 또 대만을 겨냥해 사거리가 600~1000㎞인 DF-15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실전 배치하고 있다. DF-15는 90kt급 전술 핵탄두 1기의 탑재가 가능해 대만을 핵 공격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중국의 중·단거리미사일은 자국은 물론 동맹국들의 안보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이 INF 체결 당사국이 아니란 이유로 핵미사일을 마음대로 개발하는 상황을 두고 볼 수는 없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볼턴 보좌관도 “INF 조약은 중국, 북한과 같은 국가들의 활동을 통제하지 못한다”면서 “중국이 중·단거리미사일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핵미사일이 더 이상 양자 이슈가 아닌 전략적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볼턴 보좌관은 이어 “일본·한국·대만·호주와 같은 나라들이 중국의 위협에 불안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도 인도·태평양 사령관 재직 당시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크고, 다양한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해 왔고, 중국이 INF에 가입했다면 이중의 90%가 협정 위반이다”고 지적했었다. 해리스 대사는 “INF 조약이 태평양에서 미국의 우위를 잠식하고 있다”면서 “미국은 INF 조약을 엄격히 준수하는 바람에 지상배치 전력이 전혀 없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中 외교부, “미국 일방적으로 탈퇴하면서 중국에 시비”


▎2017년 남중국해 해상에 진출한 미국 항공모함 칼빈슨함의 승조원들.
중국은 아시아 지역에서 중·단거리미사일을 대거 배치해 놓고 있지만 미국은 INF에 묶여 이런 미사일을 배치하지 못해 유사시에 중국을 공격하려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 정부가 INF 조약에서 탈퇴할 경우 괌과 일본에 중·단거리미사일을 대거 배치하면 중국의 공격 위협을 견제할 수 있다. 미군은 현재 태평양의 전쟁 억지력 확보를 위해 해군 함정과 공군 폭격기에 의존하고 있다. 군사 전문가들은 중국에 대항하려면 강력하고 정확한 타격 무기인 지상 전력의 보강이 더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미국 정부의 INF 조약 파기 의도의 진짜 목적은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미국 정부가 러시아와 연대해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을 추진하려는 것이다. 미국 정부의 INF 조약 파기 의사 표명은 중국의 고대 병법 중 하나인 이른바 ‘성동격서(聲東擊西)’라고 볼 수 있다. 동쪽을 공격한다고 떠든 뒤 서쪽을 친다는 뜻이다. 미국 정부는 중국의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도발이 심화되자 중국의 주력 핵전력인 중거리미사일을 무력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보고 INF 조약을 문제삼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정부가 러시아의 INF 조약 위반을 비판하면서도 중국을 새로운 다자적 방식의 INF 조약에 가입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볼턴 보좌관은 “중국의 미사일 능력은 러시아의 심장부를 위협한다”고 지적하면서 “중국의 적대적 활동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와 전략 협의에 나서기를 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 정부로선 러시아와 협력을 통해 중국을 다자간 INF 조약에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또 이런 전략이 실패하더라도 INF 조약을 파기했기 때문에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중·단거리미사일을 배치하는데 더 이상 제약이 없을 것이란 입장이다. 일본 정부도 중국을 다자간 INF 조약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INF 조약이 파기될 경우 미국과 러시아가 중국을 참여시킨 새로운 조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도 “앞으로 INF 관련 합의에는 중국이 참가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강조했다.

중국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INF 조약 파기 의사를 밝히자 상당히 충격을 받고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화춘잉 외교부 대변인은 “INF 조약은 미국과 소련의 양자조약으로 미국이 일방적으로 조약을 탈퇴하면서 중국을 거론하며 시비를 거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면서 불만을 토로했다. 화 대변인은 “중국은 미국의 일방적인 INF 조약 탈퇴에 반대하고 INF 조약의 다변화에도 반대한다”면서 “중국은 방어적인 국방정책을 추구하고 있으며 어떤 국가에도 위협을 가할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는 “미국의 INF 조약 파기는 격렬하고 위험한 군비경쟁의 막을 올리게 한다”면서 “미국의 의도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푸멍쯔 중국 현대국제관계연구원 부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INF 조약 파기 계획은 미국이 중국과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전투를 준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면서 “미국은 INF 조약 파기 후 새로운 무기 개발과 배치를 추진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담 니 호주 국립대 교수는 “미국이 INF 조약을 파기하면, 특히 충돌이 발생했을 때, 미·중 간 군사적 균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미국이 일본에 지상에서 발사하는 중·단거리미사일을 배치하게 되면 중국이 아시아 지역에서 수십 년간 누려온 우위를 잠식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엘브리지 콜비 전 미국 국방부 부차관보는 “중국의 군사력 증강 규모가 매우 중대하고 진전된 만큼 우리도 모든 가능한 수단을 쓸 필요가 있다”면서 “역내 지상군에 중거리 지상 발사 무기를 배치할 경우 중국의 군사력 증강을 상쇄할 수 있는 보다 다목적의 생존 가능한 전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美, 북한 겨냥한 중·장거리미사일 아·태 지역 배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0월 7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과 회담하기 위해 백화원 영빈관에 들어서고 있다. / 사진캡처·Opendprk 트위터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INF 조약 파기 의사 표명은 북한을 압박하려는 경고의 메시지로 볼 수도 있다. 마크 씨센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는 지난 10월 25일자 기고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INF 조약을 파기하려는 데는 또 하나의 목적이 있을 것”이라며 “이것은 미묘하지만 의심의 여지가 없는 북한에 보내는 메시지”라고 지적했다. 씨센 칼럼니스트는 “만약 북한이 비핵화를 거부하면 우리가 중·단거리미사일로 북한을 포위할 것이고, 이를 통해 사전 경고 없이 북한 정권을 타격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씨센 칼럼니스트는 “현재 트럼프 정부가 북한과의 핵협상에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겠다는 위협은 이 협상의 역학 관계를 바꿔 놓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소련이 1975∼76년 중거리 탄도미사일인 SS-20 650기를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일원인 동독을 비롯해 동유럽 국가들에 배치하자 미국은 이에 맞서 서독에 중거리 탄도 미사일인 퍼싱투 108기를, 영국·이탈리아·네덜란드 등 나토 회원국들에 중거리 지상 발사 순항미사일인 그리폰 460기를 배치했다. 미국의 이런 대규모 핵미사일 배치는 유럽에서 반핵 시위 등 거센 반발이 있었지만, 소련에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했다. 특히 퍼싱투는 발사 7분 만에 모스크바를 타격할 수 있기 때문에 소련이 상당히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퍼싱투는 1800㎞ 떨어진 모스크바와 너무 가깝기 때문에 조기경보레이더로 탐지할 수 없었다. 당시에는 또 미사일 방어체계가 없었다.

이에 따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레이건 대통령과 군축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두 정상이 INF 조약을 체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 비롯됐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트럼프 정부의 의도는 INF 탈퇴를 통해 과거 미국이 소련에 압박한 것처럼 비슷한 압력을 북한에 가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할 수도 있다.

미국 정부가 INF 조약의 제약에서 벗어날 경우 괌과 주일 미군 기지에 중·단거리 핵미사일을 집중적으로 실전 배치할 수 있다. 북한에서 괌은 3379㎞, 일본은 1046㎞ 떨어져 있다. 미국 정부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 도발을 할 때마다 대북 무력시위를 위해 항공모함 등 전략 자산을 한반도 인근에 투입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략 자산 투입에 필요한 비용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 비용을 한국이 대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중·단거리미사일을 괌과 일본에 배치하면 북한을 겨냥해 전략 자산을 투입할 필요가 없다. 트럼프 정부의 INF 파기는 향후 북한과의 협상에서 중대한 카드가 될 수 있다. 중국으로서도 북한에 비핵화를 종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무튼 트럼프 대통령의 INF 파기 의도는 러시아와 중국은 물론 북한까지 염두에 둔 ‘일석삼조(一石三鳥)’ 노림수라고 볼 수 있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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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호 (2018.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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