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글로벌 포커스] 미국과 이란의 ‘치킨게임’ 

‘경제’와 ‘핵무기’에 양쪽 다 올인할까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트럼프의 이란 원유 금수 조치에 하메네이는 핵 개발로 응수
미국의 신정체제 붕괴 도모에 이란은 드론 등 군사 대응 시사


▎올 4월 이란 정예군 혁명수비대를 외국테러조직으로 지정한 미국을 규탄하는 집회가 이란 테헤란에서 대규모로 열렸다. / 사진:연합뉴스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 만과 오만 만을 연결하는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 요충지 중 한 곳이다. 평균 너비 50㎞인 이 해협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이란·쿠웨이트·카타르·아랍에미리트(UAE)·바레인·오만의 중요한 운송로로 세계 원유 공급량의 30%가 통과한다. 이 때문에 호르무즈 해협은 중동 지역의 정세가 악화될 때마다 항상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아왔다. 특히 이란은 그동안 여러 차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위협해왔다. 실제로 호르무즈 해협은 중간의 너비가 3.6㎞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대형 유조선 두세 척을 침몰시키면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을 차단시킬 수 있다. 이 때문에 호르무즈 해협은 숨통을 뜻하는 ‘초크 포인트’(Choke Point)라고도 불린다.

미국 정부는 5월 2일 한국·중국·인도·이탈리아·그리스·일본·대만·터키 등 8개국에 대해 180일간 한시적으로 이란으로부터 원유 수입을 예외적으로 인정한 조치를 취소했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이란의 원유 수출을 전면 차단하는 조치에 들어갔다. 이란에 대한 최대 압박 전략의 고삐를 더욱 죄겠다는 의도다. 미국 백악관은 성명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은 이란의 원유 수출을 제로화(0)하기 위한 목적에 따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자 이란 정부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경고하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관할하는 이란 혁명수비대의 알리레자 탕시리 해군 사령관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이익을 얻지 못한다면 이 전략적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5월 미국이 이란과의 핵 합의를 탈퇴한 데 이어 같은 해 8월과 11월, 2단계에 걸쳐 제재 조치를 복원했을 당시에도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우리의 원유 수출을 막는다면 중동의 어느 나라도 호르무즈 해협으로 원유를 운반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이런 가운데 5월 12일(이하 현지시간) 오만해에서 유조선 피격 사건이 발생해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사건의 발생 지점은 UAE 북부 푸자이라 항구와 가까운 오만해상으로 호르무즈 해협에서 남동쪽으로 약 140㎞ 떨어진 지점이다. 공격당한 상선은 사우디 유조선 2척과 UAE와 노르웨이 선적 유조선 각각 1척 등 모두 4척이다. 미국과 사우디는 이란이 이 공격의 배후라고 의심했지만 이란은 강하게 부인했다.

이란, ‘자살행위’ 호르무즈 해협 봉쇄 꺼내나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중간에 위치한 3개 섬에 지대함 미사일과 대포를 배치해 놓고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매일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가는 50여 척의 대형 유조선 가운데 두세 척을 손쉽게 격침시킬 수 있다. 미국이 바레인에 제5함대를 배치하고 있지만 아무리 빨리 대응하더라도 이란의 군사행동을 물리적으로 저지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미국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에 골머리를 앓아왔다.

이란은 과거 미국과 유럽연합 등 국제사회가 자국의 핵 개발 프로그램을 문제 삼아 제재 조치를 강화할 때마다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맞서곤 했었다. 이 경우 이란도 자국산 석유 수출 길이 막히기 때문에 경제에 치명적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란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 카드를 꺼내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그만큼 결연한 의지를 보이겠다는 제스처라고 볼 수 있다.

이란의 이런 엄포와 위협은 자칫 실제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란 국가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최근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에 초강경파인 호세인 살라미 부사령관을 임명하면서 미국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살라미 신임 사령관은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혁명수비대에 들어왔다. 혁명수비대 공군 사령관 등을 거쳐 지난 9년간 부사령관을 맡아온 살라미 사령관은 이스라엘이 1월 시리아 내 이란 혁명수비대 주둔지를 공습하자 “전쟁이 난다면 이스라엘은 분명히 소멸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살라미 사령관은 2016년에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이란에 대한 위협을 계속하면 이란은 이들의 선박들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도록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위협하기도 했었다.

혁명수비대는 최근 미 해군 핵 항공모함 아이젠하워호를 정찰용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을 공개하면서 군사적으로 대응할 능력이 있다는 점을 과시했다. 이 영상에는 정찰용 드론이 이란 영토 내 활주로에서 이륙하는 모습과 호르무즈 해협을 항해하는 아이젠하워호를 여러 배율로 선명히 찍은 장면이 담겼다. 아이젠하워호에 실린 전투기 기종과 날개에 적힌 일련번호를 그래픽으로 명시하기도 했다.

이란의 드론 제작기술은 미국과 중국에 필적하는 수준인 것으로 평가를 받아왔다. 아이러니컬하게 이란은 2011년 자국 영토에 추락한 미군 RQ-170 드론을 역설계해 제작 기술을 습득했다. 이란은 이미 드론을 실전에 사용하고 있다. 이란은 예멘의 후티 반군이 지난해 7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 인근 정유시설을 기습 공격했을 때 드론을 제공한 바 있다. 후티 반군은 이란제 드론으로 UAE의 아부다비 국제공항을 공습해 트럭 한 대를 파괴하고 공항 기능을 일시 마비시키기도 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최근 페르시아만 해역 상공에서 드론을 동원한 대규모 훈련도 실시했다. 살라미 사령관은 “이란을 겨냥한 미국의 공허하고 악랄한 시도에도 이란은 최신예 드론을 개발했다”며 드론으로 군사적 대응을 하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란의 최신예 군사용 드론이 중동 지역의 미군 함정에 중대한 위협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란의 미군 공격 계획을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이라크·아프가니스탄·쿠웨이트 등 미군이 있는 국가의 친(親)이란 계열 무슬림 전사를 선동해 매복 공격을 가하고, 예멘 인근 밥 엘 만뎁 해협과 페르시아만 등에서는 드론을 동원해 미 해군 함정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신정체제 붕괴 美 의도에 전쟁 불사한 이란


▎오만해에서 공격을 받은 노르웨이 국적의 유조선 MT 안드레아 빅토리호의 아랫부분이 훼손돼 있다. / 사진:AP/연합뉴스
미국 정부도 페르시아만에 군 전력을 대폭 강화하고 나섰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5월 5일 밤 긴급 성명을 통해 “핵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 전단과 B-52 등 폭격기들을 중부사령부 지역에 배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군 중부사령부는 이란을 비롯해 중동 지역을 관할하고 있다. 에이브러햄 링컨호 항모전단은 최근 지중해에서 작전을 벌여왔다. 페르시아만 인근 해역에는 미 해군의 와스프급 강습상륙함인 키어사지호도 배치돼 있다.

볼턴 보좌관은 “미국은 이란 혁명수비대든, 정규군이든, 이란을 대리한 군대든 어떤 공격에도 대응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럽 순방 중 독일 방문 일정을 돌연 취소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5월 7일 이란과 국경을 맞댄 이라크를 전격 방문해 “이란이 미국의 이익을 공격하는 것에 대한 책임을 확실히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군은 바레인·카타르·아프가니스탄 등에 주둔하고 있으며, 이라크와 시리아에선 이슬람국가(IS)를 상대로 군사작전을 벌이고 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 카드를 꺼내들며 전쟁 불사를 외치고 있는 것은 미국 정부의 원유 금수조치가 자국의 신정(神政) 체제 붕괴를 겨냥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원유 수출로 벌어들이는 오일 머니는 이란 경제를 먹여 살리는 생명줄이나 마찬가지다. 미국 정부의 제재로 이란 경제는 이미 엄청난 어려움에 직면해있다. 특히 원유 수출은 이란 전체 수출액의 63%, 세수의 80%를 차지하기 때문에 미국 정부의 조치는 이란 경제에 상당한 타격을 입힐 것이 분명하다.

앞으로 이란 경제는 생활필수품 부족 및 리알화 가치 급락, 물가와 실업률 급등 등으로 최악의 상황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지하드 아주르 국제통화기금(IMF) 중동·중앙아시아 국장은 이란의 올해 소비자물가는 평균 50%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1980년 이후 39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이다. IMF는 또 4월 ‘세계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이란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6%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 중 3위이자 세계 4위 원유수출국인 이란은 하루 38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고 있다. 세계시장 점유율은 5.0%다. 이란은 미국 정부의 원유 금수조치로 조만간 하루 수출량이 250만 배럴에서 140만 배럴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란 정부는 하루 수출량 100만 배럴을 국내 경제를 유지할 수 있는 하한선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이란 정부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원유 수출량을 늘리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미르 호세인 자마니니어 석유부 차관은 “핵합의가 정상적으로 이행됐을 때 하루 평균 250만 배럴을 수출했지만 앞으로 그 정도로 수출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회색시장(Gray Market)’을 통해 원유를 수출하는데 모든 역량을 동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회색시장은 불법적인 암시장과 달리 불법과 합법의 중간 지대를 일컫는 말로, 통상 정상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거래된다.

공식 유통채널을 벗어나 물건이 매매되는 통로인 회색시장을 통해 미국 정부의 제재 조치를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이란은 과거 미국 정부의 제재 대상인 국영석유회사가 아닌 민간 기업을 통해 환적, 원산지 변경 등의 방법으로 국제 유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원유를 수출했었다. 원유 수출권을 독점해온 이란 국영석유회사는 지난해 10월 원유를 민간 회사도 주식처럼 살 수 있는 이란에너지거래소(IRENEX)를 개장했다. 이곳에서 원유를 구매한 민간 회사는 국영석유회사의 승인 없이도 수출할 수 있다.

트럼프 “이란 정권의 40년은 실패의 40년”


▎5월 7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동그라미)이 유럽 순방 중 독일 방문 일정을 돌연 취소한 뒤 미군이 주둔 중인 이라크를 ‘깜짝 방문’ 했다. / 사진:AFP/연합뉴스
이란 정부의 이런 장담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의 강력한 제재 조치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란 정부는 또 지난해 ‘국산품 사용의 해’에 이어 올해를 ‘국내 생산 증대의 해’로 선포하는 등 미국 정부의 제재 조치에 이른바 ‘저항 경제’로 맞서고 있다.

하지만 자칫하면 이란도 과거 북한처럼 ‘고난의 행군’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란 국민들은 미국 등 서방과 유엔 안보리의 제재로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이란 정부가 핵 협상에 나섰던 것도 결국 제재 조치에 따른 경제난을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트럼프 정부는 전임 오바마 정부와는 달리 이란에 대한 제재 조치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혁명수비대를 외국테러조직(FTO)으로 지정해 제재 조치를 내린 것을 들 수 있다. 혁명수비대는 그동안 인프라 산업, 군수 분야, 석유산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심지어 금융·영화·양계·양봉·부동산 등의 사업도 해왔다. 이 때문에 혁명수비대는 이란 경제의 70%를 통제하고 있다는 말을 들어왔다.

트럼프 정부가 혁명수비대를 테러조직으로 지정한 것은 이란을 정상국가로 간주하지 않겠다는 것을 뜻한다. 한 국가의 정규군을 테러조직으로 규정한 것은 정권의 합법성을 부정하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는 또 친 이란 성향의 레바논 무장정파인 헤즈볼라의 재정 시스템을 붕괴시킬 정보에 최대 1000만 달러(약 114억원)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헤즈볼라는 그동안 중동 지역에서 테러와 무력행사 등 이란의 전위조직으로 활동해왔다.

미국 정부는 이란산 석유화학 제품 수출 차단 등을 위해 기업 및 은행에 대한 추가 제재도 검토하고 있다. 원유에 이어 이란의 2대 수출 품목인 석유화학 제품의 해외 판로까지 막힐 경우 이란 정부의 달러 자금줄이 마르고 통화 가치가 급락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이미 싱가포르·말레이시아·인도 정부 등에 이란 제재 회피를 돕는 기업에 대한 제재를 검토하고 있다고 통보했다. 추가 제재가 시행될 경우 이란산 석유화학 제품을 거래하는 외국 기업이나 이를 중개한 금융기관은 미국 금융시스템에 접근하지 못하는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트럼프 정부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란의 신정체제를 붕괴시키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월 11일 이슬람 혁명 40주년을 맞아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 정권의 40년은 실패의 40년”이라면서 “오랫동안 고통받아 온 이란 국민들은 훨씬 더 밝은 미래를 맞이할 자격이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폼페이오 장관도 4월 15일 이란계 미국인 지도자들과 가진 비공개 모임에서 “미국의 가장 큰 관심은 혁명적이지 않은 지도부가 이란을 이끄는 것”이라고 밝혔다. 볼턴 보좌관도 그동안 공공연히 이란의 정권 교체를 주장해왔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올 4월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를 굴복시켜 대화로 끌어내려 하지만 ‘B팀’은 최소한 정권교체를 원한다”고 지적했다. 자리프 장관은 B팀은 볼턴 보좌관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뜻한다면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무함마드 빈 자예드 UAE 왕세자가 B팀에 가담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네타냐후 총리와 무함마드 왕세자는 눈엣가시인 이란의 신정체제가 붕괴되기를 희망해왔다.

美 강경 대응 배경은… 셰일 오일 덕분


▎지난해 5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5년 국제사회 주요국과 이란 사이에 체결됐던 핵 합의(JCPOA)를 탈퇴한다는 뜻을 밝히는 문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 사진:신화통신/연합뉴스
이란의 신정체제는 북한의 수령체제와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독재체제이다. 신정체제는 종교지도자가 국가를 통치하는 정치제도를 말한다. 이란 국가최고지도자 겸 군 최고통수권자는 최고 종교지도자인 아야톨라 하메네이다. 대통령 인준과 해임권을 가진 하메네이는 입법·사법·행정 등 국정 전반의 최후 의사결정권자다. 신정체제는 1979년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을 통해 만들어졌다. 당시 호메이니는 팔레비 왕조를 붕괴시킨 후 이슬람 헌법을 제정했다. 특히 호메이니는 자신이 주도한 이슬람 혁명과 신정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혁명수비대를 만들었다. 혁명수비대는 육·해·공군과 정보 및 특수부대, 미사일부대 등을 보유한 정예 군 조직이다. 이란의 신정체제가 지금까지 지속돼 온 것은 이슬람의 신(神) 알라의 ‘선물’이라는 원유 덕분이다.

미국 정부가 이란의 신정체제 붕괴를 도모하려는 것은 국제유가가 급등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정부의 금수 조치로 이란산 원유가 국제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면서 공급이 줄어 국제유가가 급등할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에 그쳤다. 국제유가는 현재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세계은행은 반기 보고서인 ‘원자재시장전망’에서 국제 유가는 올해 배럴당 66달러, 내년에 배럴당 65달러 선에서 형성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현재 유가보다 조금 낮은 수준이다. 세계은행은 글로벌 경제 성장세가 둔화함에 따라 원유 수요도 느려질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은행은 미국의 지난해 셰일 오일 생산이 예상보다 많이 증가했다는 점도 반영됐다고 밝혔다.

셰일 오일 덕분에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되면서 글로벌 원유 시장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미국의 원유 재고량은 좀처럼 꺾일 줄을 모르고 있다. 미국의 전체 원유 재고는 4월 말 기준으로 547만9000배럴 늘어 시장 예상치를 상회했다. 미국 전략 비축유는 120일분으로 국제에너지기구(IEA)가 회원국에게 권장하는 순수입량(90일분)을 상회한다. 또 사우디의 여유 생산 능력도 220만 배럴에 달하고 있다. 사우디 같은 든든한 우군도 확보해 글로벌 원유 시장까지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산 원유 수출 금지조치가 미국 정부의 에너지 패권을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셰일 오일로 에너지 자립이 가능해진 미국 정부가 이를 활용하고자 중동 정세 불안을 방치하는 동시에 이란의 신정체제 붕괴까지 노린다는 것이다. 미국은 셰일오일을 기반으로 지난해 러시아와 사우디를 제치고 연간 기준으로 45년 만에 세계 최대 산유국 지위를 탈환했다. 미국 에너지 정보국(EIA)은 미국이 내년이면 원유 등 에너지 수출이 수입을 웃도는 순수출국에 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IEA도 미국이 2021년부터 에너지 순수출국이 되고 2024년엔 사우디와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이 된다고 내다봤다.

이란 정부는 트럼프 정부의 정권 교체 또는 신정체제 붕괴 의도에 맞서 ‘최후의 카드’인 핵 개발 재개를 고려하고 있다. 로하니 대통령은 미국의 핵합의 탈퇴 1주년인 5월 8일 국영방송을 통한 대국민 연설에서 “이란은 농축 우라늄의 초과분과 중수를 외부로 반출하지 않고 저장하겠다”면서 핵합의에서 약속한 의무이행을 일부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2015년 주요 6개국(P5+1) 국가들과 체결된 핵 합의에 따르면 이란은 2030년까지 3.67%까지의 저농도로만 우라늄을 시험용으로 농축할 수 있으며, 최대 300㎏만 보유할 수 있다. 3.67%는 경수로의 연료로 쓸 수 있는 우라늄의 농도다. 또 플루토늄 생산이 쉬운 중수로의 감속재·냉각제로 쓰이는 중수의 생산 한도량은 130t이다. 이란 정부는 그동안 핵합의에 따라 이 한도를 벗어난 농축 우라늄과 중수를 러시아와 오만에 각각 반출해왔다.

“이란, 7~12개월 내 핵무기 제조 노하우 보유”


▎이란의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오른쪽)와 하산 로하니 대통령. 가운데는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을 이끈 이맘 호메이니 초상화.
로하니 대통령은 “유럽 국가들(영국·독일·프랑스)이 60일 내 핵합의에서 약속한 금융과 원유 수출을 정상화하지 않으면 우라늄을 더 높은 농도로 농축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안보 정책을 결정하는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도 로하니 대통령의 선언을 담은 문서를 핵합의에 서명한 국가들(영국·독일·프랑스·러시아·중국)에 통보했다. 미국의 강력한 제재 조치를 유럽을 통해 뚫어보되 여의치 않으면 핵 개발을 재개하는 방향으로 나가겠다는 의도다.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경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1968년 체결된 NPT에는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 등 극히 일부 국가들을 제외하고 현재 대부분의 국가들이 가입해있다. 핵 개발을 해온 북한은 2003년 NPT를 탈퇴했다. NPT 탈퇴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거부하고 핵 프로그램을 가동해 핵무기를 개발하겠다는 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란은 핵 합의를 체결하면서 경제적 지원과 제재 해제를 대가로 핵 개발을 전면 중단하고, 핵 시설에 대해 IAEA 사찰을 받기로 약속했었다. 이란 강경파는 지난해 5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핵 합의 탈퇴를 선언했을 때도 NPT 탈퇴를 주장한 적이 있다. 그런데 중도 온건파인 자리프 장관마저 NPT 탈퇴를 경고한 것은 이란 정부가 그만큼 미국 정부의 강력한 제재 조치에 따라 갈수록 궁지에 몰리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란 정부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핵 개발 프로그램을 재가동할 수 있다. 서방 핵 전문가들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은 미국 정보기관이나 IAEA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진전돼 있으며 만약 이란이 미국이 이미 폐기를 선언한 핵 합의와 NPT를 탈퇴할 경우 이른 시일 안에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란의 주요 핵시설 및 우라늄 광산은 나탄즈·포르도·아라크 등 17개 지역에 분포돼 있으며 핵 합의 당시에는 원심분리기를 9000개 가동했으나 현재 가동 가능한 숫자는 3000∼4000개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또 이란의 우라늄 재고분은 900t에 달한다.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은 “이란은 7~12개월 내로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란 정부는 최근 우라늄을 농축하는 데 쓰는 신형 원심분리기(IR-8형)를 대량 생산하는 능력을 보유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란 정부가 IR-8형 원심분리기의 대량 생산을 강조한 것은 언제라도 핵 개발 프로그램을 재개할 수 있다고 미국 정부에 경고한 것과 같다. 아무튼 미국과 이란 정부가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과 하메네이가 ‘치킨게임’에 본격적으로 돌입하면서 페르시아만 해역의 파고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201906호 (2019.05.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