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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유의 대학총장 열전] 외유내강 리더십 덕성여대 강수경 총장 

스스로 깨쳐 역사 이끈 ‘덕부심(덕성의 자부심)’ 세계를 향한 새로운 100년 시작 

올해 창학 100주년, ‘자생·자립·자각’ 3대 창학이념 맞춰 대학 대혁신
단과대 통합 선발, 학생 주도 전공 선택… 융복합·문제해결 능력 배양


▎강수경 총장이 덕성학원 설립자인 차미리사(1879~1955) 여사의 기념관을 찾았다. “살되, 네 생명을 살아라. 생각하되, 네 생각으로 하여라. 알되, 네가 깨달아 알아라”라는 설립자의 창학이념은 덕성 100년의 정신적 기둥이었다.
서울시 도봉구 삼양로에 있는 덕성여자대학교는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삼각산으로 둘러싸인 캠퍼스는 계절마다 색다른 정취를 풍기고 인수봉도 한눈에 보인다. 도서관과 예술대학, 자연과학대학 건물 등은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조형미가 빼어나다. 캠퍼스 전체가 드라마 촬영지로도 주목받는다.

도봉구와 강북구의 유일한 4년제 대학인 덕성여대는 4월 19일 창학 100주년을 맞는다. 1920년 독립운동가이자 여성교육운동가인 차미리사(車美理士, 1879~1955) 여사가 3·1운동의 독립정신을 이어받아 설립한 조선여자교육회를 모태로 한다. 차미리사 여사는 조선여자교육회를 설립한 후, 전국순회강연에서 모은 기금으로 덕성학원의 뿌리인 근화학원을 세웠다. “살되, 네 생명을 살아라. 생각하되, 네 생각으로 하여라. 알되, 네가 깨달아 알아라.” 차미리사 여사가 직접 지은 창학이념이다. 대학본부와 도서관을 지나 ‘차미리사 기념관’에 들어서니 1층 벽면에 창학이념과 함께 미국 유학시절(1905~1912) 사진이 있다.

순간, 전율이 느껴졌다. 100년 전 선생이 자주·독립·민족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만든 ‘자생(自生)·자립(自立)·자각(自覺)’의 창학이념이 인공지능(AI)으로 상징되는 4차 산업혁명시대 교육 방향과도 일맥상통한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설립자께서 미래 사회에 대한 예지가 있었던 같아요. 100년 전에 자주 역량과 주체적인 앎의 교육을 강조하셨잖아요.”

기념관을 함께 둘러보던 강수경(52) 총장의 설명이었다. 2020년 창학 100주년이라는 한국 교육사에서 보기 드문 역사를 쓰는 소임을 맡는다는 건 총장으로서도 큰 영광이다. 강 총장은 담대하면서도 차분했다. 인터뷰는 총장실에서, 또 캠퍼스를 거닐며 진행했다.

2020년 100주년, 정말 의미가 남다릅니다.

“올해는 덕성 역사에 중대한 전환점입니다. 코로나19 여파로 대학들이 어려움을 겪고 고등교육 환경이 녹록지 않지만, 뚜벅뚜벅 새로운 100년을 향해 걸어 나아가렵니다. 올해 신입생 1100여 명과 새로 부임한 교수님, 교직원들 모두 ‘백년둥이’입니다. 동문과 힘을 모아 달려야지요.”

백년둥이 신입생 1100여 명, 새로운 100년의 주인공


▎덕성여대 제11대 강수경 총장 취임식이 2019년 4월 18일 열렸다. 강 총장은 “덕성을 잘 가르치는 대학, 구성원이 행복한 대학, 구성원과 소통을 중시하는 대학으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 사진:덕성여대
백년둥이, 참 살가운 말입니다. 새로운 자부심이 될 수 있겠네요.

“‘덕성여대에는 ‘덕부심’이란 말이 있어요. ‘덕성의 자부심’이란 뜻이지요. 100년 전 차미리사 여사가 3·1 독립운동 정신을 바탕으로 순수 민족자본으로 세운 유일한 여성교육기관이라는 자부심입니다. 설립자는 구성원의 정신적 지주입니다. 어려운 일에 부닥치면 창학 정신으로 돌아가 해결하려는 역사적 자부심, 학내 의사 결정이 민주적이고 투명하다는 자부심, 그리고 인문학·사회학·자연과학 등 기초학문을 튼실히 키워왔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그런 자부심이 덕부심이고 자존감입니다.”

99주년에 총장이 되셔서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학교 운영을 해보니 어떻습니까?

“학교가 발전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해요. 혜안을 가진 총장, 움직이는 교수, 유능한 직원, 동기부여가 충만한 학생입니다. 교수들이 가장 중요해요. 움직여야 앞으로 나갈 수 있어요. 지난해 혁신지원 사업을 진행하면서 다양한 융합 프로그램을 개발했어요. ‘교수님들을 어떻게 하면 진심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을까’하는 게 가장 큰 고민입니다. 그게 총장의 책임이자 능력이고요. 자주 뵙고 공감대를 넓혀야지요.”

덕성 최초의 직선제 총장, 위기 돌파 큰 소임 맡아


▎2019년 9월 2일 캠퍼스에서 열린 개강 이벤트에서 강수경 총장과 보직교수들이 대학의 다양한 기념품이 담긴 ‘럭키 박스’를 나눠주며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는 장면. / 사진:덕성여대
사실 덕성여대는 부침이 많았다. 한때 관선 이사가 파견됐고 교육부 평가에서도 시련을 겪었다. 2014년에는 재정지원 제한 대학으로 지정돼 10개월 만에 극복했지만, 2018년에 다시 대학 기본역량진단 평가에서 역량강화 대학(정원조정 대상)으로 미끄러졌다. 서울권 종합대학 중 유일해 충격에 빠졌다. 당시 총장이 사임하면서 학교가 혼란에 빠졌다. 강당에서 교수·학생·처장 등이 모여 간담회를 했는데 학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학생들이 울며 호소하는데 부끄럽더군요. 제가 총장 선거에 나선 계기였지요.” 재정지원 제한 대학 1차 위기 때와 2016년, 2018년에도 평가처장을 맡았던 강 총장은 원인을 꿰뚫고 있었다. “시대 흐름에 맞춰야 하는 포맷이 있었는데 그걸 못 맞췄었어요. 새 시스템을 구축해야 덕성이 다시 달릴 수 있다고 설득했어요.” 덕성 역사상 최초로 진행된 총장 직선제에서 강 총장은 학생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위기돌파 소신과 책임을 위임받은 것이다.

학생들의 기대가 큰 것 같습니다. 소통을 많이 하시나요?

“총장이 되고 나서도 두 학기 동안 강의했어요. 학생과의 소통 방법으로 수업했는데 총장으로서 적절한 처신이냐는 지적도 있었죠. 저는 개혁 조치가 맞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장이 수업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올해는 강의를 안 해요. 전체 강의의 질을 더 높이는 게 더 좋은 소통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100주년 총장으로서 덕성의 어제를 말씀해 주시죠.

“총장으로 1년간 일하면서 100년의 역사를 살펴보다가 세 가지 키워드를 정리했어요. 첫 번째는 3·1운동에 기반을 둔 유일한 대학이라는 점입니다. 민족자본과 독립운동가를 내세우는 학교는 많아도 실제 독립운동가가 3·1운동을 기반으로 설립한 대학은 우리뿐입니다. 설립자께서 독립유공자 훈장도 받았고요. 두 번째 키워드는 여성의 자립을 추구하는 창학이념입니다. 역사가 화려하지도 규모가 크지도 않지만, 사회 구성원을 안정적으로 길러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릅니다. 세 번째 키워드는 소규모 대학에서 다양한 전공을 탄탄하게 운영한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4차 산업혁명 트렌드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는데, 우리 대학은 국립대나 운영할 법한 다양한 39개 전공(올해 2개 추가)을 갖고 있어요. ‘사립대가 이런 학과까지 운영할 수 있는가’라고 할 정도입니다. 소규모 학과를 소규모 학생으로 운영하면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강점이 있어요. 요약하면 독립운동가, 여성 자립, 다양한 전공이 핵심입니다.”

세 가지 키워드에 그런 의미가 있군요. 그러면 미래 100년은 어떤 키워드일까요?

“법인은 ‘민족을 품고 세계로’를, 대학은 ‘Design your Story, Lead your Future’를 슬로건으로 내걸었습니다. 영어 슬로건은 굳이 우리말로 하자면 ‘여러분의 인생을 디자인하고, 미래를 이끌라’는 뜻인데 우리말로 따로 정하지는 않았어요. 덕성 100년의 키워드에 세 가지 의미를 확장하는 개념입니다. 첫 번째는 민족을 기반으로 창학했어도 앞으로는 세계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 두 번째는 여성성을 뛰어넘는 교육기관의 모습을 찾아가자는 것이죠. 인간에 대한 관점을 가진 교육기관으로 외연을 넓혀가자는 취지입니다. 세 번째는 다양한 전공 간 벽이 두터워 교류·융합이 잘 이뤄지지 않았던 것을 융합하고 혁신하자는 것입니다. 그 첫걸음이 이번 신입생부터 시행한 통합선발입니다.”

‘민족을 품고 세계로’라는 비전은 글로벌화를 의미하나요?

“덕성은 내실이 원칙입니다. 중국인 유학생도 10여 명 정도이고, 전체 외국인 학생도 많지 않아요. 우리 대학은 외국인 학생을 많이 받는 게 글로벌화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총장 취임 후 대외협력처에 국제교류과를 신설하고, 언어교육원을 글로벌교육원으로 변경했어요. 또 대만의 성오대학엔 한국어센터를, 베트남엔 덕성하노이센터를 개설했어요. 두 국가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덕성으로 공부하러 오게 하려는 계획이지요. 우리의 글로벌 정책은 외국 학생 확충이 아닙니다. 한국어와 한국문화 교육을 해 한국 문화 전도사를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그게 민족을 넘어 세계로 가는 여정입니다.”

“디자인 유어 스토리, 리드 유어 퓨처”가 핵심


▎올해 1월 2일 학생회관에서 ‘2020년 구성원과 함께하는 백년둥이 떡국’ 행사가 열렸다. 강 총장과 교무위원들이 떡국을 배식하며 구성원과 새해 인사를 나눴다. / 사진:덕성여대
강 총장은 2012년 있었던 행사를 소개했다. 글로벌 파트너십 프로그램의 하나로 제3 세계 여성을 덕성여대로 초청한 행사였다. “당시 반기문 UN사무총장도 방문했어요. 우리가 무상 교육을 제공했는데 그 마지막 학생들이(9명) 올 8월에 졸업합니다. 하노이를 방문했더니 그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국문과 출신의 베트남 학생이 베트남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더군요. 교육기관의 역할이 바로 이거구나, 이거야말로 글로벌 정책이구나 생각했어요. 가슴이 벅찼어요.”

‘Design your Story, Lead your Future’는 1학년 때 다양한 기회를 열어주자는 시도지요?

“그렇습니다. 그간의 교육은 정해진 툴에 갇혀 있었어요. 가령 법학과 학생들은 법을 배우며 진로를 탐색하는 게 일반적이었죠. 하지만 이제는 다양한 비교과와 교과 활동을 경험하면서 여러 전공을 탐색해 자신의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이후에 전공을 선택하는 게 중요해요. 그래야 창의적인 활동이 왕성해집니다. 단과대 통합선발의 취지입니다.”

‘백년둥이’ 신입생 통합선발은 큰 변화입니다.

“39개 학과 중 유아교육과와 약학과를 제외한 신입생 전원을 학과제 선발에서 단과대 통합선발로 전환했어요. 올해 신입생들은 1년 동안 각 단과대 소속으로 공부하면서 자신을 들여다보며 전공을 탐색할 수 있어요. 스스로 도전하고 꿈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요.”

덕성의 과거가 곧 혁신, 창학이념에 충실

강 총장은 단과대 간 통합도 단행했다. 인문과학대학과 사회과학대학을 글로벌융합대학으로, 공과대학과 자연과학대학을 과학기술대학으로 통합·개편한 것이다. 인위적 결합이 아닌 화학적 결합으로 발전시키자는 전략이다. “수강신청 결과를 봤는데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처음에는 ‘인기 학과 과목에 쏠리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30여 개 학과에 골고루 배치됐더군요.” 1학년 때 듣고 싶은 수업,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게 하는 전환점이 되었다는 설명이었다.

학과는 그대로 두면서 단과대를 통합해 이름만 바꾼 게 아닌가요?

“그렇지 않아요. 1전공, 2전공으로 나눈 게 특징입니다. 1전공은 제한이 있고, 2전공은 무제한으로 선택할 수 있게 했어요. 예컨대 1전공 정원 제한은 2019학년도 입학정원 대비 1.1배수까지로 했습니다. 1전공 정원이 30명인데 33명이 몰리면 33명까지는 받는 시스템입니다. 그게 어렵게 돼도 2전공을 통해 해당 전공을 공부할 수 있게 하고 있어요. 1학년 때는 전공 교육을 하지 않고 교양필수·교양선택·전공탐색 세 가지 틀로 교양대학에서 공부를 시켜요. 2학년 때 전공을 택하는데 1전공은 단과대 안에서, 2전공은 다른 단과대까지 할 수 있게 열어놨어요. 이전과는 확 다른 시스템입니다. 백년둥이 신입생의 특징이죠.”

교수와 직원도 백년둥이 컨셉에 맞춰 선발했습니까?

“4차 산업혁명 흐름에 맞춰 교육부 혁신지원 사업을 신청할 때 과학기술대학을 육성하겠다는 기치를 내걸었어요. 그 목적으로 소프트웨어 전공과 사이버보안 전공을 신설했어요. 새로 부임한 교수들은 공학 강화 원년 멤버가 될 겁니다. 교직원 채용 때는 AI 면접을 도입했어요. 제가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라 조심스럽지만 시도했어요. 학생·교수·직원 선발 방식 모두 변화가 있었습니다.”

백년둥이를 시작으로 덕성의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그러나 강 총장은 뜻밖의 말을 했다.

“덕성에서의 혁신은 새로운 게 아니라 과거가 혁신이었다”는 것이다. 100년 전 창학이념이 미래 100년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더 절실하게 와 닿는 것이다. “총장으로서 감동한 건 창학이념 자체가 자기주도·문제해결능력·창의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초심을 잃지 않으면 문명사적 전환기를 앞서가는 덕성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좋은 말씀입니다. 하지만 덕성의 브랜드가 선뜻 떠오르지는 않네요.

“다양한 전공이 있는 데 대표적인 게 뭐냐, 아니면 어떤 인물을 배출했냐는 질문 같습니다. 저희는 약학대학과 유아교육과를 꼽을 수 있겠지만, 그것만을 브랜드로 내세우기엔 충분하지 않지요. 규모가 큰 여대보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탄탄하게 여성사회 구성원을 배출하는 데 집중해온 학풍이 강점입니다. 신설 전공과 다양한 융합형 커리큘럼을 통해 학생들이 역량을 쌓아 나가면 브랜드 파워가 강해질 겁니다.”

학생 성공지원 체계 강화로 덕성 학풍 이어갈 것


▎덕성여대 학생들이 세미나룸에서 자유롭게 토론하고 있다. / 사진:덕성여대
강 총장은 내면의 강인함이 덕성인의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기업 인사 담당자들을 만나면 “덕성인은 티를 내지 않고 일을 잘한다”는 칭찬을 듣는다고 했다. 소박함 속의 강인함과 참여 의식이 덕성인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강 총장의 말대로 덕성여대는 시끌벅적한 학풍은 아니다. ‘동문이 누구다’라고 자랑도 하지 않는다. 굳이 예로 들자면 세림화이버 김옥희 회장(약학 64), 가수 현미(가정학 55), 탤런트 박정수(경영학 71), 한국여약사회 조덕원(약학 72) 전 회장, 정암재단 최미리 이사장(경영학 85), 대통령비서실 김제남 기후환경비서관(사학 83), 그리고 신세대인 대한민국 패러글라이딩 정밀착륙 국가대표 조은영(생활체육학 13) 선수가 동문이다.

100주년을 맞아 5가지 전략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덕성학풍 교육체계 강화, 학생성공 지원체계 강화, 성과 중심 산학연 협력 강화, 미래덕성 성장동력 강화, 수요자 중심 운영체계 강화가 5대 목표입니다. ‘기본을 중시하는 혁신·융합 교육 중심대학’, ‘신뢰를 바탕으로 배움이 즐겁고 가르침이 소중한 잘 가르치는 대학’을 만들기 위한 비전입니다. 특히 입학부터 졸업, 사회 진출까지 모든 학생이 어떻게 발전하는지를 관리하는 덕성 지수(DSI, Duksung Index) 6가지를 개발하고 있어요. 창의성·공감능력·진취성·전문성·협업능력·시민정신입니다. 그게 덕성의 성장동력이 되고 수요자 중심의 학사 운영입니다. 차근차근 구체화할 겁니다.”

정보통신기술(ICT)과 바이오(BT) 분야를 강화한 것도 눈에 띕니다.

“신설한 소프트웨어 전공은 AI를 염두에 둔 것입니다. 소프트웨어 전공이 AI 관련 인재를 중점 육성하는 학과가 될 겁니다. 바이오 공학은 원래 있었는데 이번에는 방향성을 잡는데 주력하고 있어요. 바이오 공학은 스펙트럼이 넓잖아요. 방향성을 잡아서 다른 인프라와 접목하려 합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AI 얘기가 전혀 없어요. 왜 그럴까요?

“제 전공이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빅 데이터 기반의 바이오가 뜰 거라는 얘기는 많았잖아요. 사태가 워낙 급박해서 그런지 접근을 못 하는 것 같아요. ‘결국 이런 상황에서 AI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하는 숙제를 던진 거라고 생각되네요.”

고등교육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스타트업이 강조되는데 덕성은 어떤가요?

“실제 여대총장협의회에 가 봐도 여대 창업이 열악하다는데 모두 공감하더군요. 저희도 벗어날 수 없는 분위기고요. 다행히 서울시 캠퍼스타운 조성 사업에 선정돼 캠퍼스타운 조성단장을 중심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이번 사업은 창업 지원이 포인트로 특히 다문화 여성 창업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나름대로 창업교육은 활발하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창업센터에서 창업경진대회를 열고, 한국여성기업가정신센터를 통해서도 지원을 강화하고 있어요.”

5대 목표 중 산학연 강화도 있는데 지역사회와의 연계가 중요합니다. 학령인구 감소로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워요.

“캠퍼스타운 사업이 바로 도봉구와의 협력사업입니다. 도봉구 내 다문화 여성 취업 활성화와 한류와 K팝 확산도 꾀하고 있어요. 시너지 효과가 클 겁니다. 유아교육과 아동보육 강점을 살려 육아종합지원센터 등에 인력 파견도 협력하고 있어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강 총장은 부드러우면서도 소신이 강건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보는 미래 고등교육의 방향은 어떨까? 세계가 학습혁명 중인데 우리는 아직 입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인데 궁금했다.

지식 민주화 시대, 문제해결 능력이 중요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도서관 전경.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해 1984년 준공됐으며 덕성여대의 상징이다. / 사진:덕성여대
미래 고등교육은 어떻게 변화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교수 입장에서 보면 지식 민주화는 이뤄졌다고 봅니다. 지식을 섭렵할 수 있는 기관은 무척 많아요. 제가 법학을 공부할 때는 법조문이나 판례 하나를 찾아보기가 어려웠어요. 요즘은 인터넷으로 다 해결할 수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기존처럼 형법·민법을 똑같이 가르치는 게 바람직할까요? 다양한 루트를 통해 필요한 정보나 기초지식을 얻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런 기초 정보 습득은 학생에게 맡기고 문제해결과 혁신 교육, 플립러닝 교수법으로 바꿔야 합니다. 물론 양날의 칼이 될 수 있어요. 문제해결 능력과 실용교육을 강화했을 때 어느 것이 온전한 실용인지 알 수 있는 ‘가치관’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기초 학문과 기초 분야는 알아서 습득하고 학교는 해결능력과 실용을 가르치겠다고 하지만, 이 실용이 올바른 실용인지 알려줄 수 있는 가치관 교육이 병행돼야 합니다. 기존의 교육이 기초-전공-심화로 이뤄졌다면 기초는 이제 대학 차원이 아니라 학생 자율에 맡겨야지요. 대학은 전문·심화 과정을 ‘문제 해결 능력’ 중심으로 바꿔야 합니다. 이에 더해 선택하는 가치관을 길러주는 게 중요합니다.”

덕성여대는 패러다임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요?

“플립러닝 등 다양한 교수법을 독려하고 있어요. 오스카인 재개발학부가 대표적인데 이번 학기에 시작합니다. 전공 능력을 고도화하고 전문성을 강화하는 나노 디그리(Nano Degree)과정은 6학점 이상, 학문 간 융복합 사고력을 키워주는 마이크로 디그리(Micro Degree) 과정은 12학점 이상 취득하면 각각 디그리를 발급합니다. 명칭이 디그리지만 일종의 심화과정 수료증이죠. 학생들이 교수에게 요청할 수도, 교수들이 모여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도 있어요. 푸드디렉터 양성, 실감형 콘텐츠 제작, 아동영어교육, 유니버설디자인, 미디어콘텐츠제작, 레포츠산업정보 등의 과정이 있어요. 교수와 학생이 함께 호흡하는 장을 열어 준 거죠.”

법학 전공 인권 전문가, 교육정책 자주 바꾸지 말아야

강 총장의 전공은 법학이다. 연세대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고 2005년 덕성여대에 법학과를 만들 때 부임했다. 특히 인권에 관심이 많아 국가인권위원회 행정심판위원과 도봉구 인권위원장을 맡고 있다. 여성·아동 친화를 표방한 도봉구의 인권조례 제정에 참여하고 인권센터를 여는 데도 적극 나섰다. 그런 만큼 인권 교육을 강조한다. “총장 선거에 나섰을 때 내건 ‘인권을 꿈꾸다’, ‘인권을 보다’, ‘인권을 품다’라는 세 가지 의제를 실천할 생각입니다. 인권 특성화 교양교육과 현장 연계 교육과정 개발과 특화를 중심으로 인권을 품은 캠퍼스를 구현하는 게 목표입니다.”

개인적인 질문을 하겠습니다. 원래 교수가 꿈이었나요?

“(웃으며) 아니요. 원래는 법조인이었어요. 사법시험도 봤었고요. 전환점이 있었죠. 대학 2학년 때부터 2년 동안 야학을 했어요. 건국대 뒤쪽 공단 지역이었는데 ‘배움을 갈망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그분들이 어느 날 ‘선생님은 어떻게 그렇게 많은 걸 알고 있느냐’고 묻더군요. 제가 받은 교육과 경험은 순전히 학교에서 얻은 것뿐인데 깜짝 놀랐죠. 그때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았죠.”

강 총장은 야학을 다닌 분이 명문대에 진학하는 걸 보면서 뿌듯함을 느꼈다고 했다. 검정고시 자격증 하나가 꿈과 희망이었던 이들에 대한 기억이 강렬하다고도 했다. “사실 아버지가 법대 진학을 원하셔서 법대에 가 사시도 준비했는데 야학 경험이 인생 진로를 바꿔놓았어요. 다시 교대를 가기는 어려우니 4학년 때 사시는 안 보겠다고 선언하고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강 총장은 부모님께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수동적인 스타일이어서 특히 아버지 말씀을 그대로 따랐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강 총장에게는 법학을, 남동생에게는 경영학을 권하셨는데 그렇게 했다는 거였다.

착한 모범생이었네요. 총장 이전에 학부모로서 교육정책을 어떻게 보시나요?

“학생 개성을 잘 살릴 수 있는 교육이 제일 중요해요. 제가 대원외고 출신이어서가 아니라 외고와 자사고는 필요합니다. 학생들이 그런 학교를 원하면 놔둬야지요. 학부모와 학생의 선택권은 소중합니다. 그걸 막는 게 바람직할까요? 정책을 자주 바꾸는 건 좋지 않아요. 신뢰를 잃잖아요. 다양한 정책을 일관성 있게 펼쳐야 합니다.”

강 총장은 학생들이 학점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도전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청년 시절 세세한 것에 연연하면 큰 미래를 놓칠 수 있다는 얘기였다. “대학 생활을 ‘학점’ 모자이크에 맞추려는 경향이 있어요. 전체 그림을 봤을 때 모자이크 조각에 집착하면 시각이 좁아지죠. 더 큰 미래를 보고 대학 생활을 하면 좋겠어요. 그래야 도전·창조 정신이 생깁니다.” 강 총장의 교육론이다.

※ 덕성여대 100년의 숨결


▎‘덕(德)이 있는 벗들이 모이는 곳’이란 의미를 담고 있는 덕우당 앞마당을 학생들이 산책하고 있다. 덕우당은 여러 채의 한옥이 ‘ㅁ’자로 둘러져 있으며, 1930년 종로 관훈동에 지은 것을 1998년 쌍문동 캠퍼스로 옮겨 복원했다. / 사진:덕성여대
■ 1920년 조선여자교육회 산하 부인야학강습소(덕성여대 전신)
■ 1923년 부인야학강습소 근화학원으로 명명
■ 1934년 재단법인 근화학원 설립, 초대 차미리사 이사장 취임
■ 1938년 덕성학원 및 덕성여자실업학교
■ 1947년 덕성여자중학교
■ 1950년 덕성여자초급대학(4년제) 개편 인가
■ 1952년 덕성여자대학으로 개편
■ 1956년 제1회 학위 수여식
■ 1964년 4년제 주간대학으로 개편
■ 2004년 ‘덕성을 갖춘 창의적 지식인 육성’ 교육이념 재정립
■ 2013년 약학대학 BK21 플러스 사업 선정
■ 2018년 총장 직선제 최초 실시
■ 2019년 단과대학 통합선발 도입, 성오-덕성 한국어교육센터 개소, 덕성 하노이센터 개소

※ 강수경 총장 약력


■ 서울 출생(1968년)
■ 연세대 법학과 졸업
■ 연세대 대학원 법학 석사·박사
■ 덕성여대 법학과 교수(2005년)
■ 덕성여대 대학평의원회 위원
■ 덕성여대 평가처 처장
■ 덕성여대 제11대 총장(2019년 2월~)

[주요 활동]
■ 국가평생교육진흥원 법학분과 위원
■ 국가인권위원회 정보공개 심의위원
■ 도봉구 인권위원회 위원장(2015년~)
■ 서울지방경찰청 징계위원회 민간징계위원(2015년~)
■ 국가인권위원회 행정심판위원회 위원(2015년~)

※ 양영유 교육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 고려대 영어교육학과를 나와 한국외국어대에서 교육저널리즘으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부터 중앙일보 기자로 활동하며 교육데스크, 정책사회데스크, 사회1데스크, 행정국장, 사회에디터를 거쳐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마음은 따뜻하고 시선은 엄정해야 한다는 저널리즘 소신을 갖고 있다. 공저 [한국의 파워 엘리트]와 역서 [멀티미디어 조직혁명]이 있다.

202004호 (2020.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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