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단독 인터뷰] 김원기 前 국회의장이 말하는 21대 국회의 길 

“의석수 앞세워 일방통행한다면 국민이 용서 안 한다” 

“나라 위한다면 협치 아니라 그보다 더한 일도 못하랴”
“野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정치 주체로서 역할 다해야”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여야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21대 국회를 이끌어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21대 국회가 5월 30일 개원한다. 177석의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모든 법안·예산·정책을 정부·여당의 뜻대로 추진할 수 있고, 단독으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 처리도 가능해졌다. 개헌만 빼고 뭐든 가능한 무소불위의 위치에 올라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당에서는 “야당이 발목잡기 하면 법대로 하겠다”는 얘기가 자연스레 흘러나온다. 야당은 우려의 목소리만 낼 뿐 실제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의 원로는 협치(協治)를 강조한다. 김원기(83) 전 국회의장(재임 2004~2006년)은 1988년 협치를 꽃피운 ‘명 원내총무(지금의 원내대표)’로 이름을 날렸다. 여소야대 4당 체제 시절 김 전 의장은 제1야당인 평화민주당 원내총무를 맡으면서 당시 김윤환 민주정의당(민정당) 원내총무와 여러 차례 협상을 이끌었다.

당시 협상을 통해 해결한 사안은 5공 비리 청문회 개최와 전두환 전 대통령 증인 출석, 언론 통폐합 관련 책임자 처벌,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책임자 처벌 등이었다. 김 전 의장은 “원내대표가 4명일 때도 복잡한 문제들을 대화와 협상으로 풀었는데, 양당 체제에서 나라와 국민을 위한다면 뭘 못하겠는가”라고 반문한다.

현재 민주당 상임고문인 김 전 의장은 “이번 21대 총선 결과에 놀라면서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여당의 압승은 코로나19 위기를 제대로 극복하라는 국민의 요구가 담긴 결과라는 것이다. 김 전 의장은 “국민의 명령을 따를 의무가 있는 집권여당은 굳은 각오로 의정활동에 임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김 전 의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국민통합에 나설 것을 주문한다. 그는 “북핵문제, 코로나19 등 위기에 대응하느라 국민통합에 다소 소홀했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며 “대통령은 특정 정파의 수장이 아니라 국민 통합의 상징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레임덕이 없는 대통령으로 마무리하는 선례를 남기기 바란다”고 정치 원로로서 덕담을 전하기도 했다.

월간중앙이 ‘노무현의 정치적 스승’이자 진보 진영 원로인 김 전 의장과 만나 21대 국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물었다. 인터뷰는 5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의 한 사무실에서 2시간가량 진행됐다.

“코로나19 위기 해결은 정치권이 주도해야”


▎1989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만난 4당 원내 사령탑. 왼쪽부터 당시 김용채 공화당, 김원기 평민당, 김윤환 민정당, 이기택 민주당 원내총무.
21대 총선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나?

“1987년 민주화 이후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역대 최대 의석을 얻었다. 당의 고문으로서 기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책임감이 더 무겁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152석을 얻었으나 많은 의석에도 불구하고 당이 지리멸렬하다 보니 국민을 실망하게 했던 잘못이 떠오른다. 이번 총선 결과는 코로나19 위기를 잘 극복해 위축된 경제를 살리라는 국민의 뜻이다. 집권여당은 국민의 명령을 따를 의무가 있다. 선거 승리에 자만하지 말고 국민의 요구를 실현하겠다는 굳은 각오로 의정활동에 임해야 한다. 국민이 야당에는 회초리를 크게 들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로도 야당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데 대해 또다시 강하게 질책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당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은 누구라 보는가?

“(집권 중후반의) 총선은 대체로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야당에 유리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번 총선은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코로나19 대응을 비교적 잘하고 있다고 국민이 판단했던 것 같다. 한국의 방역에 대한 국제적인 호평도 국민이 여당에 힘을 실어주는 원인이 됐다. 문 대통령의 공이 가장 크다고 봐야 한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 이낙연 전 국무총리 등 당 지도부도 대책을 세우고, 겸손한 자세로 지친 국민을 위로하는 데 애를 많이 썼다.”

이해찬 대표는 “열린우리당의 아픔을 반성해야 한다”며 경거망동을 경계하고 나섰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국회의장을 지내면서 당 사정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의장실 바로 아래층에 당대표·원내대표실이 있었지만 의장을 그만두기 전에는 차도 마시러 가지 않았다. 다만 당시 보고 들었던 내용을 종합하면 초선의원이 108명이 되다 보니 당이 활기를 띠었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수습하는 과정에서 지도부가 잘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당에 질서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번 총선을 통해 180석이라는 의석을 갖게 됐지만, 열린우리당 때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예전처럼 혼란은 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의석수가 많을수록 질서 안에서 조직이 잘 굴러가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열린우리당의 전철을 다시는 밟으면 안 된다.”

여당은 코로나19 사태로 촉발된 경제 위축과 고용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동시에 국회·권력기관 개혁 등 개혁입법에도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 여당 지도부에 주문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전 세계가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위기를 겪고 있다. 사실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위기 해결은 정치권이 주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여야 간 대화와 타협·협치(協治)가 이뤄져야 한다. 협치·상생의 정치는 여당의 책임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오늘의 여당이 내일은 야당이 될 수도”


▎2018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에서 전현직 국회의장 출신의 여권 원로 정치인들과 오찬하고 있다. 문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는 김원기 전 국회의장(왼쪽 둘째).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협치에 왕도는 뭘까?

“나는 이전부터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를 강조하고 있다. 상대방 처지에서 생각해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 자신의 입장에만 갇혀 있으면 대화와 토론의 장이 서지 않는다. 뭔가를 받으려 하면 하나를 내주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여당과 야당은 영원불변의 관계가 아니다. 오늘의 여당이 내일은 야당이 될 수 있다.”

정치권에서는 1988년이 협치의 꽃이 피었던 시기라고 말하기도 한다.

“87년 민주화 이후 첫 국회인 13대 국회는 민정당·평민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으로 구성된 4당 체제였다. 당시 나는 지금의 원내대표인 평민당 원내총무를 맡고 있었다. 4당 체제에서도 5공 청산, 광주 민주화운동 등 구체제 문제를 해결했다. 국회에서 ‘정치 행위자’가 4명일 때도 복잡한 문제들을 대화와 협상으로 풀었는데, 양당 체제에서 나라와 국민을 위한다면 뭘 못하겠는가.”

1988년 제13대 4·26 총선에서 여당인 민정당은 전체 299석 중 125석을 얻는 데 그쳐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이어 DJ(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민당이 70석, YS(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통일민주당이 59석, JP(고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신민주공화당이 35석을 얻었다. 3개 야당이 모두 원내교섭단체 지위를 확보하며 13대 국회는 여소야대로 출발했다.

여당 일각에서는 의석수를 앞세워 국회를 주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 주장이 있을 수 있고 기분이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여당이든 야당이든 책임 있는 정치를 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유혹에 빠지면 안 된다. 정당이 의석수를 충분히 확보하는 것은 중요하고, 주장을 정책으로 실현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국회의 모든 일은 정당 간의 협상을 통해 해결해나가는 것이 의회민주주의의 정도(正道)다. 그것을 벗어나지 않는 선을 지켜야 한다. 의석수를 앞세워 일방통행한다면 국민이 용서 안 한다.”

여권 일각에서는 오는 7월 출범을 앞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1호 수사 대상자로 윤석열 검찰총장을 공개적으로 지목하고 있다.

“민주당과 국민이 오랫동안 주장해온 끝에 공수처법이 통과됐다. 그런 공수처가 요즘 여권과 검찰의 대결로 비치고 있다. 이는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다. 고위공직자 누구든 잘못을 저질렀으면 공수처의 수사를 받는 것이다. 공수처란 제도를 특정 조직인 검찰과 검찰총장과 연결하는 태도 자체가 옳지 못하다.”

새도 한쪽 날개가 부러지면 날 수 없듯이 정치도 진보와 보수가 적절한 균형과 견제가 이뤄져야 한다. 보수의 현 상황에 대해 조언한다면.

“특정 정파의 독주는 바람직하지 않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 전체의 장래를 보더라도 경계해야 할 상황이라고 본다. 그러나 현재 한국 보수의 현실을 보면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든다. 보수의 위기가 한국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과거 영국·독일 등의 보수 정당들은 진보적 전환(progressive turns)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 복지 증대, 노조 권리 보호 등의 정책을 포용한 것이다. 어떠한 변화도 거부한 채 과거에 머물러 있는 ‘수구’와는 차별되는, 품격 있는 보수가 돼야 한다. 보수는 평화 통일, 복지 증진, 경제민주화 추진을 적시한 우리 헌법의 가치를 상기해줄 것을 당부한다. 아울러 보수는 진보적 전환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기 바란다. 처절하게 반성하고 다시 태어나서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생명력을 갖고 정치 주체로서 적극적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 10일로 취임 3주년을 맞았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각종 지지율 조사에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서는 ‘데드크로스’ 현상이 이어졌지만, 코로나19 위기대응에 비교적 선방하면서 지지율은 반등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5월 15일 발표한 문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도 긍정평가는 65%, 부정평가는 27%였다.

“대통령은 국민 통합의 상징이 돼야”


▎1989년 당시 김대중 평민당 총재와 김원기 원내총무(오른쪽)가 함께 길을 나서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지난 3년을 평가해 달라. 남은 과제 무엇이라 생각하나?

“문재인 정부는 정권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했지만 비교적 안정감 있게 국정을 이끌어왔다고 생각한다. 물론 취임 직후 터진 북핵문제를 비롯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최근에는 코로나19 대응에 이르기까지 위기 극복하느라 촛불민심을 제대로 받들지 못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취임 3주년 연설에서 ‘우리의 목표는 세계를 선도하는 대한민국’이라고 자신 있게 밝혔다. 코로나19 극복과 경계회복이 가장 시급하지만 복지 증대, 고용 문제, 4차 산업, 남북관계, 국민 통합 등의 과제도 차분히 풀어나갈 것으로 기대한다.”

야당은 문재인 정부에 대해 ‘독재’라고 비판해왔다.

“정부에 대한 비판과 견제가 야당의 소임이라 하지만 60%가 넘는 지지를 받는 대통령에게 ‘독재’라는 표현은 과하다고 본다. 과거 군사독재 정권 때 반대 입장에서 외치던 상투적 구호는 시대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득력도 없다. 국민이 이에 호응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번 선거 결과 아니겠는가. 생각이 다르기에 비판은 할 수 있지만 독재와 같은 식의 주장은 지양해야 한다.”

소득주도 성장, 주 52시간제, 최저임금 인상, 탈원전 등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보수층의 반감이 상당하다.

“특정 정책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민주주의는 원래 좀 시끄럽고, 그 과정도 시간이 걸리고 혼란스러운 것이다. 서로 다른 생각이나 정책을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해나가는 것이 민주정치의 요체다. 대통령도 반대세력을 청와대로 초청해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국민이 보다 안심할 것이다. 또한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반대 세력의 주장이 마땅치 않아도 대화와 설득을 통해 노력하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인내력을 갖고 접근하는 노력을 하면 반대 측 주장에도 변화가 올 수 있다고 본다.”

남은 2년 동안 문 대통령이 어떻게 국정을 이끌어가야 한다고 보나?

“앞서 얘기했듯이 북핵문제, 코로나19 등 위기에 대응하느라 국민통합에 다소 소홀했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대통령은 특정 정파의 수장이 아니라 국민 통합의 상징이 돼야 한다. 코로나19 위기 대응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리더십을 보여줄 것으로 믿는다.”

김원기 전 의장은 김대중 대통령이 총재를 겸하던 새천년민주당의 최고위원이었던 2001년, ‘분권형 개헌’을 주장한 바 있다. 김대중 정부 4년 차였던 시점이었다. 김 전 의장은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용어를 내가 처음 썼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김원기가 대통령을 치받았다’는 식으로 크게 다뤘다”고 회고했다. 김 전 의장은 “개헌 발언은 순수한 뜻이었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국의 대통령제는 권력이 너무 대통령에게 집중돼 있다. 미국의 경우 예산편성권은 국회가 갖고 있고 대통령의 인사권 권한도 상당히 적다. 현 대통령제가 의회민주주의 발전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은 일찍부터 했다.”

“여당의 일방적 개헌 추진은 부담스러울 것”


▎2005년 6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김원기 국회의장(왼쪽), 여야 정당 대표들과 함께 오찬장으로 향하고 있다.
21대 총선 이후 여권을 중심으로 개헌 논의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한 마당에 당장 개헌 문제를 주장하는 건 시기적으로 썩 좋지는 않다고 본다. 그러나 개헌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고 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회에는 2008년과 2014년 국회의장 자문기구로 ‘헌법연구자문위원회’가 있었고, 2017년에는 나를 포함해 전직 국회의장과 원로들이 참여한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통해 헌법개정안을 논의한 바가 있다. 개정 방향과 내용은 충분히 준비돼 있다는 뜻이다. 이제 시대 흐름에 맞는 개헌을 하겠다는 여야 정당의 의지와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이 남은 셈이다. 그 때문에 21대 국회에서는 개헌을 충분히 논의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2018년 4월 중임제 개헌안을 띄웠다 흐지부지된 경험이 있기에 (여당의) 일방적 개헌 추진은 부담이 될 것이다.”

2018년 3월, 문재인 대통령은 5·18 정신을 전문에 넣고, 대통령 중임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발의했지만, 국회에서 표결 불성립으로 폐기됐다. 문 대통령은 올해 1월 신년 기자 회견에서는 “개헌이 필요하다면 개헌 추진 동력을 되살리는 것은 이제 국회의 몫”이라고 공을 국회로 넘겼다.

남북 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최근 ‘김정은 사망설’로 전 세계가 들썩였다. 특히 올해는 미국 대선이 예정돼 있어 어느 해보다 한반도의 변동성이 커 보인다.

“북한 문제는 한반도 문제인 동시에 국제적 문제다. 현재 북·미 비핵화 협상 교착 국면이 장기화하면서 남북관계도 풀리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최근 문 대통령은 국제사회가 합의한 제재의 틀을 존중하면서 5대 남북 협력 사업을 제안하는 등 여러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북 문제는 특성상 북·미 대화 진전이 남북관계를 추동할 수 있고, 거꾸로 남북 교류가 북미대화의 촉매제로 작용할 수 있다. 정부의 역할만 바라볼 순 없다. 그런 면에서 21대 국회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발한 논의를 해야 한다.”

김 전 의장은 ‘김정은 사망설’에 대해서도 꼭 짚고 넘어가야겠다며 말끝에 힘을 실었다. 그는 “주로 보수매체를 통해 전파되는 북한 지도자 사망설에는 ‘사망설=북한체제 붕괴’라는 일부 보수세력의 바람이 깔렸다고 본다”며 “이들 가짜 뉴스에 따르면 김일성·김정일은 몇 번이나 죽었다 살아난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북문제는 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냉철한 분석이 필요한 영역이다.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도자의 덕목은 열정·책임감·균형감각·공감능력

집권 4년 차에 접어들면 자연스레 레임덕 얘기가 흘러나온다. 그런데 최근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60%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레임덕이 없는 최초의 대통령이 될 거라는 전망도 하던데.

“문 대통령이 지금까지 해온 것을 보면 국민 신뢰를 근본적으로 잃는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라 본다. 정치적 주장에 따라 뜻을 달리할지라도 인간적인 평가에서는 국민 다수가 인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야당이든 일반 시민사회든 국민과의 소통에 더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문 대통령이 국민 상당수의 신뢰를 잃지 않는 분위기에서 국정을 마무리하는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여권에서는 이낙연 전 총리,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지사,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 대권 예비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여당 잠룡들이 갖춰야 할 자세는 무엇이라 보는가?

“막스 베버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지도자가 가져야 할 덕목으로 열정·책임감·균형감각을 들었다. 여기에 시대정신을 읽는 혜안과 국민과의 공감능력을 겸비하면 금상첨화라 할 수 있지 않겠나.”

지도자의 덕목을 얘기하면서 김 전 의장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언급했다. “13대 국회 당시 지방자치제 부활을 놓고 고민이 있었다. 지방자치제를 부활하면 자치단체장 선거를 치러야 했는데 우리의 참패가 예상됐다. 그때 김대중 총재가 하신 말씀이 있다. ‘민정당이 이길지라도 임명된 사람보다 선거를 통해 당선된 사람이 훨씬 낫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공약이었던 ‘행정수도 이전’ 추진에 대해 무수한 반대가 있었다. 그때 ‘표가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라는 말이 돌았을 정도였다. 그러나 ‘수도권 집중화’ 타파를 위해 끝까지 밀어붙이더라. 눈앞의 정치적 이익보다 역사적 안목을 갖고 시대적 소명 의식을 실천하는 모습이 지도자의 자세다.”

현재 야권에는 딱히 잠룡이라 할 만한 인물들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야권이 불리하게 보이지만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앞으로 2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군주민수(君舟民水)라는 말처럼 강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뒤집기도 한다. 국민 여론도 이와 같다. 시대정신을 잘 읽고, 겸손한 자세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누가 더 잘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지 않겠나.”

김 전 의장은 인터뷰 말미에 문 대통령과의 일화를 공개했다. 그는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 문 대통령의 언행을 보고 ‘나중에 대선후보로 나가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이후 2010년 지방선거 부산시장 선거 때 직접 문 대통령을 만나 출마를 권유했으나 실패했고, 18대 대선을 앞둔 2011년에도 이해찬 대표를 통해 대선 출마를 제의했으나 역시 대답은 ‘NO’였다고 했다.

“손사래만 치던 문 대통령이 [운명]이란 책을 내고 북콘서트를 하며 전국을 돌아다니더니 결국 대선에 나가더라. 정치 할 생각이 전혀 없던 사람이었는데 결국 운명적으로 정치를 하게 된 것이다. 대통령이라고 하는 자리는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하기 싫다고 안 되는 것도 아니더라.”

- 글 허인회 월간중앙 기자 heo.inhoe@joongang.co.kr / 사진 신인섭 선임기자 shinis@joongang.co.kr / 녹취 정리 심민규 인턴기자

202006호 (2020.05.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