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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 제11회 ‘홍진기 창조인상’] 과학기술부문 장혜식 서울대 교수 

매뉴얼 탐독하던 소년 코로나19 설명서 첫 장을 열다 

코로나19 유전자 지도 완성에 혁혁한 공… 우연 아닌 준비의 산물
어린 시절부터 프로그래밍에 일가견… 파이썬(Python) 확산에 지대한 역할


▎장혜식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코로나19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RNA전사체 정보를 공개했다.
국내외 연구진이 코로나19 퇴치를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낭보가 전해졌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의 RNA 연구단을 이끌고 있는 김빛내리(51)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와 장혜식(40) 생명과학부 교수(IBS 연구위원 겸임) 연구팀이 질병관리본부와 공동 연구로 코로나19의 원인인 사스코로나바이러스-2(SARS-CoV-2)의 고해상도 유전자 지도를 세계 최초로 완성한 것이다. 연구 결과는 4월 9일 세계적 국제학술지 [셀(Cell)] 온라인판에 우선 게재됐다. 논문 게재 신청을 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이례적인 빠른 심사 과정이었다. 연구를 이끈 김 교수는 “유전체 염기서열을 바탕으로 DNA 진단키트가 나와 98%의 정확도를 보여주긴 했지만, 음성에서 양성으로 판정하는 등 개선의 여지가 있다”며 “RNA전사체 유전자 정보를 바탕으로 더 정확한 장비와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DNA가 아니라 RNA 형태의 유전자를 가진 코로나19는 숙주 세포에 침투해 유전정보가 담긴 RNA(유전체 RNA)를 복제한다. 이와 함께 다양한 하위 유전체 RNA를 전사(생산)한다. 이들 하위 유전체는 바이러스 표면의 스파이크 단백질 합성을 통해 세포를 감염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이처럼 숙주세포 안에서 생산된 유전체 RNA와 하위 유전체 RNA 등을 모두 합쳐 ‘전사체’라 부른다.

연구팀은 두 종류의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법(나노포어 직접 RNA 시퀀싱, 나노볼 DNA 시퀀싱)을 활용해 사스코로나바이러스-2가 숙주세포 내에서 생산되는 리보핵산(RNA) 전사체를 모두 분석했다. 이 분석에서 바이러스 유전자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내는 한편, 기존 분석법으로는 확인되지 않았던 RNA들을 찾고, 바이러스의 RNA에 화학적 변형(최소 41곳)이 일어남을 발견했다.

이번 연구 성과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과학자인 IBS의 RNA 연구단장 김빛내리 교수와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 바이러스를 분리 배양해 연구팀에 제공한 질병관리본부의 역할이 컸다. 여기에 계산생물학자인 장혜식 교수의 기여가 결정적이었다는 평가다.

장 교수는 올 3월 16일, 생명공학 논문 사전 게재 사이트인 [바이오 아카이브(BioRxiv)]에 완벽한 전사체와 후성전 사체 지도를 올린 학자다. 장 교수의 성과는 연구단이 코로나19 유전자 지도를 완성하는 데 밑바탕이 됐다. 이는 한국보다 바이러스 분리주 분양이 2주일가량 빨랐던 호주의 연구팀과 비슷한 시기에 결과를 발표하면서도 뚜렷하게 더 깊이 있는 분석을 내놓은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같은 성과를 인정받아 제11회 홍진기 창조인상 과학기술 부문 수상자로 결정되기도 했다.

통상 6개월 걸리는 분석, 집안일도 제쳐놓고 3주 만에


▎사스코로나바이러스- 2가 세포에 침입한 뒤 만들어낸 RNA중합효소는 바이러스 증식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 사진:기초과학연구원(IBS)
장 교수의 연구 결과가 눈에 띄는 이유는 통상 6개월이 걸리는 RNA 전사체 분석을 3주 만에 끝냈기 때문이다. 이에 장 교수는 “시기적으로 잘 맞아떨어졌을 뿐”이라고 자세를 낮췄지만, 이는 오랜 준비의 결과물이었다. 장 교수는 최근 3년간 나노포어 RNA 직접 서열 분석법(nanopore direct RNA sequencing)을 활용해 여러 기법을 다른 용도로 개발하고 있었다. 마침 이 방법들은 유전체와 전사체가 모두 RNA로 이루어진 코로나바이러스를 분석하기에 최적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 이해에 꼭 필요한 기술을 준비하고 있었던 셈이다.

장 교수는 “비슷한 연구를 하고 있어 연구 준비 기간 없이 시료만 코로나19로 교체하면 되는 상황이라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며 “긴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바로 연구에 투입 가능한 팀원들로만 구성해 RNA전사체 분석에만 매달렸다”고 밝혔다.

장 교수는 연구실 업무는 물론 일상적인 생활조차 제쳐놓고 몰두했다. 그는 “설거지나 빨래 같은 집안일은 물론 육아도 뒤로한 채 연구실에 있었다”며 “시간이 더 걸렸다면 큰일 날 뻔했다”고 웃어 보였다.

장 교수팀의 연구 속도는 해외 연구팀과 비교해봤을 때도 상당히 빠른 편이었다. 영국의 연구팀은 장 교수팀보다 2주일 늦게 연구 결과를 발표했고 지금도 독일과 캐나다 등 4~5곳의 연구팀에서 비슷한 결과가 나오고 있다.

이번 연구 성과는 해외에서도 이목을 끌고 있다. 미국의 한 백신 개발업체에서는 연구팀이 발견한 특이한 단백질을 백신 후보물질로 실험하자고 제안했고, 멀리 남미의 진단키트 업체도 연구팀에 SOS를 요청했다. 장 교수는 “연구 분야가 워낙 기초과학이라 평소엔 관련 연구자가 아니면 연락이 오는 경우는 드물다”며 “이번 발견 이후 해외에서 꾸준히 연구 성과에 대해 문의가 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장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밝혀진 코로나19에서 일어난 RNA 변형에 의미를 뒀다. 코로나19에 일어난 RNA 변형이 숙주(인체)의 선천적 면역 체계를 회피하기 위해 일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 교수는 “RNA 변형이 어디에, 얼마나 존재하는지 발견한 상황에서 변형의 의미를 확인하고 있다”며 “RNA 변형에 관여하는 효소를 발견하게 되면 코로나19의 병세 악화를 늦추고 전염력을 낮추는 치료제 개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장 교수는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는 “이번 발견 이후 연구팀 규모가 늘어나면서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한꺼번에 나눠 진행하고 있다”며 “발견한 내용을 검증해보고 왜 RNA 변형이 생기는지, 어떤 조건에서 RNA 변형이 사라지는지 등의 후속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래 컴퓨터 공학도… 파이썬 도입 선구적 역할


▎장혜식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다양한 기반기술 개발을 통해 생물학적 발견의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아쉬운 부분도 있다. 실험을 위한 공간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코로나19를 실험하자면 생물안전 3등급 실험실이 필요하다. 생물안전 3등급 실험실은 사람에게 감염되거나 환경에 유출될 경우 증세가 심하고 큰 피해를 주는 조류인플루엔자(AI), 아프리카돼지열병 등 고위험 병원체를 다루는 실험시설로 외부와 완전히 밀폐돼 있다. 안타깝게도 장 교수가 소속된 서울대 관악캠퍼스에는 해당 시설이 없다. 장 교수는 “전국적으로 생물안전 3등급 실험실이 많지 않아 학교에서 연말 건립을 추진하고 있지만, 외부 시설을 빌려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터라 진척이 다소 느린 편”이라고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장 교수는 이번 성과에 대해 “기초과학이 사회에 직접 기여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면서도 “평소에 연구하던 분야가 사회적인 문제 해결에 기여했다는 점을 인정받아 감사하게 느낀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도 과도한 기대는 경계했다. 백신 개발 등 현 상황을 금방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 직접적인 영향은 주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전쟁을 한다면 단기전에는 군대와 무기가 중요하지만, 장기전으로 갈 경우 해당 국가의 문화나 사회 구조나 주변국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지 않나. 이번 연구도 비슷하다. 코로나19 해결에 당장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점차 변이를 일으키는 등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장기전으로 갈수록 코로나19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이 바이러스를 물리치거나 혹은 공생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장 교수가 처음부터 생물학도의 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다. 학부 전공이 컴퓨터공과학(연세대 기계전자공학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한 컴퓨터 전공자는 아니었다. 현재 데이터 분석에 가장 많이 쓰이는 프로그래밍 언어인 파이썬(Python)의 국내 도입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장 교수이기 때문이다. 파이썬은 현재 빅데이터 및 AI의 기초가 되는 프로그래밍 언어로 활용도가 넓다. 2016년 말,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파이썬 등의 프로그램을 활용해 개인용 인공지능 비서 ‘자비스’를 개발하기도 했다.

장 교수가 파이썬에 관심을 갖게 된 시기는 한국에 ‘닷컴 버블’이 일어났던 2000년대 초반.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컴퓨터 성능이 점점 좋아지면서 컴퓨터 속도보다 프로그램 개발 속도가 조금씩 중요해지던 시대였다. 이런 이유로 단시간에 개발할 수 있는 프로그래밍 언어가 주목받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활성화되지 않았다. 그 가운데서 가장 많이 쓰이던 컴퓨터 언어가 펄(Perl)이었다. 하지만 주변에 잘하는 사람이 많아 재미가 없겠다 싶어 다른 언어로 눈을 돌렸다.”

그렇게 해서 선택한 것이 당시 한국에서 많이 다루지 않았던 파이썬이었다. 공부하면 할수록 사람들이 쉽게 배우고 적용할 수 있는 장점에 매력을 느낀 장 교수는 파이썬을 한국에 널리 알리기로 결심한다. 뜻이 맞는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만들어 관련 홈페이지도 직접 운영했다. 또 세미나 개최와 잡지 기고도 하면서 파이썬을 백방으로 알렸다.

진로 바꾼 버스 뒷자리에서의 80분

그러나 국내 도입에 벽이 있었다. 원래 파이썬은 미국 지역에서 개발되었기 때문에, 한글이나 한자와 같은 2바이트 문자를 지원하지 않았다. 장 교수는 “당시에는 컴퓨터 성능이 지금처럼 좋지 않아서 CPU, 메모리 등 컴퓨터 자원을 최소한으로 이용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했다”며 “서양 사람들은 영어 알파벳보다 한글 글자 수가 많아 메모리가 낭비된다며 한글 버전을 배포하는 데 반발이 심했고 중국어, 일본어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한다.

반발에 부딪힌 그가 선택한 일은 “서양인의 입맛에 맞게 한·중·일 언어를 모두 한 틀로 압축해서 줄여보자”였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동아시아 5개 국가표준(한국, 중국, 일본, 대만, 홍콩) 문자 체계 변환기(CJKCodecs)다. 이때 당시 대학교 2학년이었다. 이를 통해 파이썬에서 동아시아 문자의 국가표준을 대부분 지원하기 시작했다. 장 교수는 “기술적으로는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고 말하지만,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애플의 mac OS와 대다수의 인터넷 서버가 채택하는 리눅스 운영체계에는 장 교수의 코드가 담겨 있다. 이후에도 정부 기관과 IT 대기업들이 참여한 다수의 대회와 행사를 개최했다. 한국에 오픈소스 소프트웨어가 도입되고 개발자들에게 확산하는 데에 산파 역할을 한 셈이다.

중학생 때부터 프로그래밍을 했던 그가 생물학자가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장 교수는 IT 회사에서 병역특례로 군복무를 마쳤다. 이 기간이 그의 진로를 바꾼 운명의 시기였다. 그는 “1시간 20분 걸리는 통근 시간 동안 버스 맨 뒷자리에서 잡다한 책을 읽었다. 그러다 생명공학 관련 책을 접하게 됐다”고 말한다. 당시 읽은 생명공학 서적을 통해 그는 미래에는 인간 복제가 가능해질 듯했고, 생명공학적으로 만든 무기나 해킹 기술이 위협이 될 것 같이 느꼈다고 한다. 특히 누군가가 생명공학 기술을 악용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 같아 생물학을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그의 습관도 생물학으로 전향하는 데 한몫했다. 장 교수는 “어릴 적부터 장난감이나 기기들을 사면 매뉴얼을 열심히 정독하는 편이었고 설명서에 숨어 있는 기능을 찾아낼 때 쾌감을 느끼곤 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생각해보니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가진 인체에 대해서는 제대로 모른다는 사실에 호기심이 생긴 것도 생물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 가운데 하나였다”고 말했다.

복학 후 그는 자연스레 생물학 전공과목들을 집중적으로 수강했고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에서 석사과정으로 생물정보학을 공부했다. 이후 서울대 생명과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과정 당시 지도교수가 이번 연구를 함께한 김빛내리 교수다.

장 교수의 궁극적인 목표는 크게 두 가지다. 그는 “유전자가 어떤 방식으로 기능하며 유전자 발현 회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내는 것이 목표”라며 “유전자에 대해 잘 분석하고 이해한다면 유전자 회로 설계도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한다.

장 교수는 기반기술 개발에도 의욕을 드러낸다. 보통 신기술이 발명되면 그 기술로 인해 새로운 과학적 사실이 발견된다. 이로 인해 새로운 분야가 열리거나 기존의 학설이 뒤집히는 경우가 흔하다. 장 교수는 “여러 기반기술을 많이 개발해 기존 생물학적 발견의 지평을 넓히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 허인회 월간중앙 기자 heo.inhoe@joongang.co.kr

202006호 (2020.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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