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자·모더나 백신 선구매 주저하다 실기, 치료제는 ‘게임 체인저’ 어려워거리두기 길어지자 국민 피로감 커지고 생존권 위협, 재난지원금으론 한계
▎2020년 12월 29일 로버트 에이브럼스 사령관(왼쪽)을 비롯한 주한미군 필수 인력은 경기도 평택 험프리스 올굿 병원에서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했다. 그러나 한국 국민은 2021년 2분기에나 모더나 백신을 맞을 수 있다. / 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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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의 전쟁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12월 9일 “긴 터널의 끝이 보인다. 내년 2~3월 접종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희망을 말했지만, 이후 3차 웨이브가 본격화했다. 12월 12일, 1일 환자 수가 1000명을 넘어섰고 12월 25일엔 1241명까지 치솟았다. 1월 5일에는 코로나19 사망자가 1000명을 돌파했다.문 정부가 치적 중 첫손가락에 내세우는 K방역은 검사(Test)·추적(Trace)·치료(Treat) 등 소위 ‘3T’의 결합이다. 지난 1년 동안 검사와 추적을 통해 확진자를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진정한 게임 체인저는 치료(백신)뿐임을 통감한 시간이기도 했다. 겨울철 3차 재확산은 결국 백신 없는 K방역의 한계를 노출했다. 백신을 구하지 못해 내려간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 지분을 복구하는 방법은 명백하다. 안전성과 효능이 검증된 백신을 확보하면 반전이 가능하다. 문 대통령은 11일 신년사에서 또 한 번 “드디어 어두운 터널의 끝이 보인다”고 말했다. 그 근거로 대통령은 “다음 달(2월)부터 전 국민 무료접종”을 들고 나왔다.정부가 확보한 백신은 5600만 명분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 물량이 한꺼번에 국내로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이 “우선순위에 따라 순차적으로 전 국민 무료 접종”이라고 말한 이유다. 일단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75만 명분으로 시작할 것이 유력하다. 이후 2021년 2분기에 모더나와 얀센 백신, 3분기에 화이자 백신이 들어올 예정이다. 아스트라제네카 1000만 명분, 모더나 1000만 명분, 얀센 600만 명분, 화이자 1000만 명분으로 분류된다. 이 중 존슨앤드존슨에서 만든 얀센(1회 접종)을 제외한 백신은 2회 접종을 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1월 15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은 38%로 나타났다. 부정 평가(53%)보다 여전히 낮다. 다만 긍정 평가 이유 압도적 1순위(36%)로 ‘코로나19 대처’가 꼽혔다. 전반적으로 잘한다(9%), 열심히 한다(6%)보다 훨씬 높았다. 반면 지지하지 않는 이유 2위(11%)도 ‘코로나19 대처’로 나타났다. 부동산 정책(29%) 다음으로 높았다. 다만 직전 조사보다 코로나19 대처에 대한 불만은 5%나 줄었다.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백신 공급을 약속한 효과가 어느 정도 나온 셈이다. 이제 코로나19를 둘러싼 대통령 지지율은 ▷백신 확보가 정부 스케줄대로 진행될 것인가 ▷가장 먼저 투입되지만 의구심을 안고 있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안전할 것인가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영업제한이 풀리는 시점은 언제인가 등에 따라 움직일 듯하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부터 접종
▎2020년 10월 18일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오른쪽)은 인천시 연수구 셀트리온 연구소를 방문한 민주당 지도부에게 치료제 개발 상황을 설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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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중요한 백신 확보에 대해 문 정부는 선(先)구매를 소홀히 했다는 ‘원죄’를 안고 있다. 정부는 2020년 6월 말 백신 태스크포스(TF) 팀을 가동했지만, 재정 확보부터 여의치 않았다. 약을 너무 많이 사도, 너무 적게 사도, 너무 비싸게 사도 실무자가 문책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제약이 심했다. 한국 정부가 실행을 망설이는 사이, 화이자 백신은 7월 23일 3상 임상시험에 착수했다. 모더나 백신도 7월 27일 3상 임상시험을 시작했다. 이들은 11월 9일과 16일 중간 결과를 공개했는데, 이때까지도 한국 정부는 선구매에 미온적이었다. 그렇게 ‘골든타임’이 지나간 뒤에야 문 대통령은 11월 30일 “과하다고 할 정도로 물량을 확보하라”고 지시했다. 12월 8일에는 기획재정부 수장인 홍남기 경제부총리에게 “재정 부담이 커도 백신 물량 추가확보를 지원하라”고 지시했다.일찌감치 백신 TF까지 구성했는데도 정부가 모더나, 화이자 백신 확보를 위해 신속하게 움직이지 않았던 이면에는 ‘두 가지 오판’이 있었다는 정황증거가 나오고 있다. 첫째, 화이자·모더나 백신보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더 믿었다. 영국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바이러스 전달체 백신’에 속한다. 전통적 방식이다. 게다가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3~5달러)하고, 보관과 유통 방식(2~8도 6개월 보관)이 용이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이 백신의 위탁생산을 맡은 것도 플러스 요인이었다.그러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가장 중요한 예방 효과(약 70%)에서 물음표가 붙었다.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도 취득하지 못한 상태였다. 반면 한국 정부가 초기에 저평가했던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은 전 세계가 놀랄 만한 초스피드로 진보했다. 전례가 없는 mRNA 방식으로 백신을 만들어낸 것이다. 가격이 비싼 편(화이자 19.5달러, 모더나 15~25달러)이고 보관·유통(화이자 -75도 6개월 보관, 모더나 -20도 6개월 보관)이 까다롭지만, 두 백신의 예방 효과는 95% 안팎에 달한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2020년 12월 21일 “지난 7월 확진자 수가 100명 수준이어서 백신 의존도를 높일 생각을 하지 않았던 측면이 있다”고 백신 조기 확보 실패를 인정했다.둘째, 백신보다 치료제를 더 믿었다. 코로나19 치료제가 2009년 신종플루를 진압한 항바이러스제 타미플루처럼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고 기대한 듯하다. 그러나 의사들은 코로나19 치료제는 한계가 명백하다고 지적하다. 왜냐하면 치료제는 경증환자에게 효험이 있을 뿐, 중증 진행도를 줄이거나 위중한 환자를 완치시키는 효능은 현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그런데도 지난해 12월 청와대가 공개한 문 대통령 백신 관련 발언을 살펴보면, 문 대통령은 2020년 4월부터 7월까지 백신과 치료제를 거의 항상 동렬 선상에 놓고 언급했다. 이에 관해 익명을 요청한 의학 전문가는 ‘문 정부와 셀트리온 간의 밀월관계가 빚은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이 정부는 화이자, 모더나의 백신 개발 가능성을 안 본 것이다. 대신 셀트리온 치료제를 믿은 것이다. 서정진(셀트리온 명예회장)이 하도 말을 하니까. 대통령 곁의 누군가가 ‘서정진 회장이 그러는데 치료제로 된답니다’라며 백신 선구매를 막은 것이라고 본다.” 지난해 9월 15일 임인택 보건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장의 “성급한 (백신) 선구매 계약은 우를 범할 수 있다”는 발언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의료계와 정치권 일각에서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서정진 명예회장이 동향(충북 청주) 관계인 사실에 주목하는 시선도 있다.
셀트리온 치료제의 허와 실
▎2020년 12월 29일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 수용자가 생명의 위험을 호소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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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셀트리온은 2021년 1월 13일 항체치료제 ‘렉키로나주’의 임상 2상 결과를 공표했다. 발표자로 나선 엄중식 가천의대 교수는 “경증이지만 50대 이상으로 나이가 많거나, 기저질환이 있어 위험한 환자가 중증으로 번지는 것을 막아 줄 수 있다”며 “20~30대의 건강한 경증 환자도 치료제 투여로 격리 기간을 3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렉키로 나주에는 미처 해소되지 않은 불확실성도 상존한다. 일단 서정진 회장의 공언대로 원가에 제공한다고 해도 약값이 40만원에 달한다. 임상 3상을 통과하지 않은 단계에서 이 약이 미국 릴리, 리네제론의 항체치료제보다 효험이 뛰어난지도 아직 단언할 수 없다. 경증환자 중 약 80%는 굳이 치료제를 쓰지 않아도 그냥 회복한다. 따라서 이 비싼 약을 투여할 기준을 어떻게 정할지도 난제다.공교롭게도 2상 발표 직후 셀트리온 관련 주가는 하락세다. 셀트리온은 14일 하루에만 7.6%가 떨어졌고, 15일에도 6.67% 더 내려갔다. 그 이유에 대해 실망 매물이라는 시각도 있다. 렉키로나주에 부정적인 이들은 “(비싸고 주로 경증에만 효험이 있으면) 치료제가 아니라 치료호소제”라고 공격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계 관계자는 “셀트리온 주가가 떨어진 이유가 치료제에 실망한 탓인지는 단정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셀트리온 치료제와 관련해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11일 “코로나19 치료제는 백신과 마찬가지로 무상 공급할 것”이라며 “공급가액이 40만원 정도 할 텐데 치료제를 맞고 일찍 퇴원하는 것이 정부로서는 비용 절감”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 의대 교수는 “무료가 아니다.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로 맞는 것이다. 건강보험 재정이 가뜩이나 어려운데 책임질 수 있는 것인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또 하나 변수는 병상 확보 문제다. 치료제를 접종하면 환자의 추이를 지켜봐야 하고, 이런 의료행위는 의료기관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병원에서 치료제 투여 환자 전부를 수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우회로로 생활치료센터에서 약물 투여를 가능하도록 유권해석을 내려야 현실적 방편이 될 것이다.정부가 백신을 손에 넣고 국민에게 접종하기까지 사회적거리두기는 불가피해졌다. 정부는 1월 2일 “수도권 2.5단계, 비수도권 2단계 조치를 1월 17일까지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가게 문을 못 열어 밥줄이 끊길 위기에 처한 소상공인 업주들은 집단행동을 불사하고 있다. 대한피트니스경영자협회는 “서울·경기·부산 지역 가입 헬스장 300곳이 문을 열었고, 이와 별도로 700곳은 운영하지 않지만 정부 조치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간판에 불을 켰다”고 밝혔다. 정부 영업금지 기준의 모호성에 반발한 소송 움직임도 줄을 잇고 있다. 가령 태권도는 영업 가능 종목으로 분류했지만 킥복싱은 집합금지 업종으로 지정됐다. 스키장·눈썰매장·빙상장·학원·교습소 등은 부분적으로 영업이 가능하지만, 헬스장·실내골프연습장·당구장 등은 불가능하다.
코로나19로 죽거나, 굶어 죽거나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강남대로, 신사역, 종로, 광화문, 홍대·합정 등 서울 시내 주요 상권의 공실률이 2020년 후반기로 갈수록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강남 핵심 상권인 강남대로는 2019년 4분기 3.7%에서 2020년 3분기 16.4%까지 공실률이 급증했다. 서울의 오피스 중심지 광화문도 2019년 4분기 3.7%에서 2020년 3분기 9.3%까지 공실률이 올라갔다. 자영업자 숫자도 감소세에 있음을 통계청 조사는 가리키고 있다. 2020년 11월 552만3000명으로 집계돼 9개월 연속 줄었다. 특히 심각한 대목은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의 감소 추세다. 역대 최장인 24개월 연속 감소를 기록 중이다. 종업원을 두지 않고 창업하거나 있는 종업원도 내보내는 자영업자가 그만큼 많아졌다는 의미다.자영업 종사자는 연말 특수마저도 거의 누리지 못했다. 한국신용데이터 조사에 의하면 2020년 12월 셋째 주 전국 소상공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서울은 43%나 줄어들었다. 노래연습장(-94%), 전자게임장(-93%), 실내체육시설(-76%), 목욕업(-74%)이 치명상을 입었다. PC방(-57%), 독서실(-38%), 학원(-26%), 미용실(-25%)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려움에 부닥쳤다. 영업시간 제한(오후 9시)에 걸린 식당(-48%) 역시 타격이 극심했다.민심 이반이 우려되자 정부여당은 지난해 12월 29일, 자영업자 지원책을 내놓았다. 매출이 감소한 연매출 4억원 이하 소상공인에게 100만원을 지급하고, 식당·카페 등 집합 제한 업종에 추가로 100만원, 노래방 등 집합제한 업종에 추가로 200만원을 얹어주는 ‘소상공인 버팀목 자금’을 책정했다. 이 밖에 임대료를 낮춘 임대인에게 세제 지원을 해주고, 소상공인의 전기요금과 국민연금 등의 납부 유예를 추진했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나 프리랜서 등 고용 취약계층도 3차 재난지원금 대상자로 편성했다. 그 결과 3차 재난지원금 규모는 당초 책정된 3조원을 훌쩍 넘겨 4조1000억원에 달했다.이렇게 국민이 허덕이는 마당에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방역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했다”(2020년 5월 10일), “우리가 이룬 민주주의와 인권의 성장이 K방역의 바탕이 됐다”(2020년 12월 17일) 등의 선언적 수사에 치중했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서울 동부구치소 집단감염까지 터졌다. 백신을 확보하지 못한 자성은 보이지 않고, “백신의 정치화를 중단해달라”(2020년 12월 22일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고 책임을 외부에 돌리려 했다. K방역을 향한 국민의 불신은 곧 ‘이 정부가 잘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냐’는 물음이기도 하다.-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