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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한국에 반면교사 될 미·일 정상회담의 속살 

타이틀은 일본이 얻고 열매는 미국이 챙겼다? 

스가 총리 ‘첫 회담’ 성사시켰지만 실속 없는 만남 그쳐
‘올림픽 외교’ 실현되면 한·미·일 공조 가능해질 수 있어


▎4월 16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미국 워싱턴 D.C. 소재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한 후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1월 3일 미 대선에서 조 바이든 후보가 승리했을 때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쾌재를 불렀다. 일본 내에서 ‘외교에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스가 총리 입장에서는 미·일 관계에서 전임 아베 총리의 후광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전임인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에서 친구라고 불릴 만한 정상이 두 명밖에 없다는 말이 있었다. 그 둘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아베 신조 전 총리다. 아베 전 총리는 2016년 11월 8일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의 당선이 결정되자, 9일 뒤 도쿄역 앞에서 구입한 50만 엔짜리 황금빛 골프채를 들고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축하를 위해 뉴욕 트럼프타워로 달려갔다.

바이든 당선에 안도감에 휩싸였던 스가 총리


▎4월 16일(현지시간) ‘햄버거 오찬’을 하면서 대화하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왼쪽)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 사진:조 바이든 트위터 캡처
그때부터 도널드-신조의 밀월 시대가 열렸다. 많게는 일주일에 세 차례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아베 전 총리에게 전화를 걸었으며, 2019년 4~6월에는 3개월 연속으로 미·일 정상회담을 열었다. 만약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됐다면 스가 총리는 아베 전 총리 시절과 같은 특별한 미·일 관계를 유지해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난해 9월 취임할 때부터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외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그런데 일본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신정권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더구나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이 전면에 나서는 외교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국무부에 맡기는 외교 스타일을 취하겠다고 했다. 스가 총리의 입장에서 보면 태평양 건너편에 또 다른 자신이 태어난 것 같은 안도감에 휩싸인 것이다.

그래서 무조건 바이든 신임 대통령과 가장 먼저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줄 것을 외무부에 주문했다. 스기야마 신스케 주미대사보다 도미타 고지 주한대사가 미국 민주당에 ‘파이프’를 갖고 있다는 말을 듣자 지난해 말 주저 없이 스기야마 대사를 버리고 도미타 대사를 주미대사로 발탁했다.

새 대통령과 가장 먼저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한다는 대목은 일본 총리들에게는 귀문(鬼門, 귀성이 있어 꺼려진다는 방위로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2001년 1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 일본은 세계 첫 정상회담에 실패했다.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이 모리 요시로 총리보다 11일 빨리 정상회담을 하게 된 것이다. 실의에 빠진 모리 총리는 미국에서 귀국한 다음 달 사임했다.

이후 ‘미국의 새 대통령과 세계에서 첫 번째로 정상회담을 하는 것’은 일본 외무성의 중요한 임무가 돼왔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는 아소 다로(麻生太郞) 정권이 필사적인 노력으로 1등을 차지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때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플라잉’으로 1등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번 스가 정권도 필사적인 노력을 펼친 끝에 가까스로 세계 1등 티켓을 받아낸 것이었다. 하긴 코로나19 팬더믹 속에서 별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없는 한판 싸움을 벌일 경쟁 상대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4월 15~18일 스가 총리가 방미했다. 바이든 대통령과의 대망의 미·일 정상회담이 열린 것은 4월 16일 금요일(일본 시각) 오후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일본은 ‘세계 첫 번째’라는 ‘타이틀’을 얻는 대가로 미국에 ‘열매’를 빼앗기고 말았다. 예컨대 정상회담 직후 발표된 미·일 공동성명의 다음과 같은 대목이다.

“(두 정상은) 2021년 3월 미·일 안전보장 협의 위원회의 공동 발표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일본은 동맹 및 지역의 안전보장을 한층 강화하기 위해서 자신의 방위력을 강화할 것을 결의했다. 미국은 핵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능력을 사용해 미·일 안전보장조약하에서 일본 방위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재차 표명했다.”

美 정부, 센카쿠 열도 주권 日에 있다고 보지 않아


▎북한의 도쿄올림픽 불참 결정 소식이 알려진 4월 6일 일본 총리관저에서 각의(국무회의)가 열리고 있다. 오른쪽 둘째는 마루카와 다마요 올림픽담당상. / 사진:연합뉴스
미군은 올 3월 1일, 부상하는 중국 인민해방군에 맞서기 위해 PDI(태평양억제구상) 방침을 제시하고 향후 6년간 270억 달러의 예산을 의회에 요구했다. 이 PDI의 핵심은 일본~대만~필리핀~대순다열도로 이어지는 제1열도선을 따라 중국을 사정권으로 하는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배치하는 것이다. 그리고 미사일의 배치 장소(제1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것이 일본이다.

3월 16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일본을 방문하고, ‘미·일 2+2 안전보장협의위원회’ 회의가 도쿄에서 열렸다. 이때도 스가 정권은 미국의 신임 국무장관과 신임 국방장관이 첫 순방국으로 일본을 선택해줬다고 강조했고, 일본 언론들도 일본이 미국에 특별한 존재인 것처럼 보도했다. 그러나 사실은 중국의 위협을 앞두고 ‘일본에 미사일을 배치한다’는 중요한 미션을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두 장관이 일본에 온 것이다. 외무성 간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3월의 2+2에서는 당연히 PDI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일본 측은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올가을까지는 도쿄올림픽과 총선 등을 앞두고 있으니 미사일 이야기는 총선 이후로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총선 이후 연말 즈음에 다시 한번 미·일 간의 2+2를 열기로 했다.”

미·일 공동성명은 이렇게 계속된다. “미국은 또 미·일 안보조약 제5조가 센카쿠 열도에 적용되는 것을 재확인했다. 미·일 양국은 함께 센카쿠 열도에 대한 일본의 시정(施政)을 해치는 어떠한 일방적인 행동도 반대한다.”

이는 이른바 ‘센카쿠 조항’으로 불리는 것이지만, 2014년 4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방일했을 때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이 기초가 되고 있다. 얼핏 들으면 가까운 미래에 중국의 인민해방군이 센카쿠 열도 탈취를 시도한다면 세계 최강의 든든한 미국군이 지켜줄 것 같다.

하지만 미국 측의 해석을 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미국 정부는 센카쿠 열도의 주권이 일본에 있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미·일 안보조약 제5조 해당 부분의 조문은 다음과 같다. “각 조약국은 일본의 시정 아래에 있는 영역의 어느 일방에 대한 무력 공격이 자국의 평화 및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임을 인정하고, 자국 헌법상의 규정 및 절차에 따라 공동의 위험에 대처하도록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

즉, 미국은 센카쿠 열도의 주권이 일본에 있다고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센카쿠 열도를 중국 측이 탈취해서 ‘일본의 시정 아래’에서 이탈하게 돼도 미국 측은 무력시위를 벌일 의무가 없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에는 ‘무인도(센카쿠 열도) 정도는 자위대의 힘으로 지키라’며 미국이 일본을 책망하고 있는 듯 느껴지는 대목이다.

실제로 올해 2월 바이든 행정부의 태도를 상징하는 일이 벌어졌다. 2월 23일 미 국방성의 존 커비 대변인이 회견에서 “센카쿠의 주권에 대해서 우리는 일본의 입장을 분명히 지지한다”는 과감한 발언을 했다. 이 발언에 일본 정부는 반색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사흘 뒤인 2월 26일, 커비 대변인은 말을 바꿔 일본에 매우 애석한 발표를 했다. “나의 실수로 혼란을 야기했다. 그 점에 대해 사과하고 싶다. 센카쿠에 관해서 미국 정부의 기존 정책에 변함이 없다.” 미 행정부에 대한 중국 정부의 맹렬한 항의에 따라 일본의 ‘삼일천하’로 끝난 것이다.

공동성명에서는 센카쿠 열도의 북쪽에 있는 대만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이 역시 스가 정권의 교묘한 유도에 따라 일본 언론들은 52년 만에 미·일 공동성명에서 대만을 명기했다고 호들갑스럽게 보도했다. 미·일 공동성명에 대만이 명기된 것은 1969년 사토 에이사쿠 총리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미·일 정상회담 이후 나온 공동성명 이후 처음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기술은 다음과 같다. “미·일 양국은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양안(중국과 대만)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한다.”

이 기술에서 언급된 건 대만이 아니라 대만해협이다. 게다가 미군도 자위대도, ‘대만을 방위한다’고 선언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강조하는 것일 뿐이고, 양안 관계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한다는 말일 뿐이다.

대만해협의 기술 뒤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미·일 양국은 홍콩 및 신장웨이우얼 자치구의 인권 상황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공유한다.”

이 문장에 대해 앞서 외무성 간부에게 확인하자 이렇게 대답했다. “일본 측으로서는 가능하면 홍콩과 신장웨이우얼 자치구의 인권 문제에 대해 공동선언에서 명기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일본이 중국에 직접 말하면 되는 것이며, 또 홍콩과 신장웨이우얼 자치구에서 활동하는 많은 일본계 기업에 악영향을 끼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미국과 제3국이 모두 중국에 손해를 끼쳤을 때, 미국이 아닌 제3국을 강하게 때리는 특징이 있다. 2016년 사드를 배치한 한국, 2018년 말 멍완저우(孟晩舟) 화웨이 부회장 겸 글로벌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체포한 캐나다, 지난해 중국의 코로나 은폐를 비판한 호주 등 여러 전례가 있다.

“바이든 대통령 ‘한국과 잘 지내달라’고 日 설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부인 리설주 여사와 함께 5월 5일 군인가족 예술소조 공연을 관람했다고 조선중앙TV가 6일 보도했다. / 사진:조선중앙TV 화면 캡처
그래서 일본 측은 인권 문제로 중국을 자극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바이든 정권은 이렇게 주장했다. “일본이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북한의 납치 문제는 인권 문제가 아닌가? 일본은 납치 문제에 관해서만 분노하고 미국에도 동참을 구하고 중국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눈감아줄 것인가?”

결국 일본도 홍콩과 신장웨이우얼 자치구의 인권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총선을 눈앞에 두고 공동성명에 납치 문제를 명기하지 않은 데 따른 일본 내 여론의 반발이 두렵기 때문이다. 단, 이 문장 뒤에 중국 측을 고려해 “미·일 양국은 중국과의 솔직한 대화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동시에 직접 우려를 전달해나갈 의도를 재천명하고 공통의 이익을 가진 분야에 관해 중국과 협동할 필요성을 인식했다”는 문장을 삽입했다.

이어 한국에 대해서는 공동성명에 이런 구절이 들어 있다. “미·일 양국은 또한 한국과의 3국 협력이 우리 공동의 안전과 번영에 필수불가결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에 대해서도 외무성 간부는 이렇게 설명했다. “바이든 대통령 및 그 측근들은 ‘지금의 문재인 정권이 문제가 많다는 건 인정하지만, 우리의 적은 한국이 아니라 중국이다. 제발 한국하고 잘 지내달라’고 침이 마르도록 우리를 설득하고 있다. 그 점을 보여주기 위해 미국 측 요청에 따라 이 구절을 넣은 것이다.”

2월 1일 군사 쿠데타가 발발해 대혼란에 빠진 미얀마에 대해서도 공동성명에서 언급했다. “미·일 양국은 미얀마 군부 및 경찰의 시민 폭력 행위를 단호히 비난하고, 폭력 행위의 즉시 정지, 피구금자의 석방 및 민주주의로의 조속한 회복을 강력히 촉구하기 위해 계속 행동을 할 것을 약속한다.”

일단 “단호히 비난한다”는 말은 했지만, 미얀마 군부를 설득할 만한 문장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일본은 지금까지 오랫동안, “NLD(아웅 산 수치 국가 고문이 이끄는 국민 민주연맹)에도, 군부에도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강한 파이프가 있다”고 자랑해왔다. 하지만 2월 1일 이후 ‘무위무책’이 계속되고 있다.

양대 민주국가를 자처하는 미·일의 공동성명이 미얀마 국민의 마음을 위로하지 못하는 현실은 슬프기 짝이 없다. 미·일의 지원에 기대했던 5700만 미얀마 국민은 ‘미·일은 더는 의지가 되지 않는다’며 충격을 받은 건 아닐까.

“바이든 정권은 수치 정권이 2017년 이후, 로힝야족 난민을 박해한 것은 인권침해 문제라고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NLD나 군부나 거기서 거기다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군부에 대해 경제 제재를 들고 나왔지만 내심 미얀마 문제에 제대로 개입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 그 결과 이런 표현을 받아들이게 됐다.”(외무성 간부)

마지막은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의 개최 문제다. 이는 공동성명의 마지막에, 상투적인 문구를 늘어놓으며 다음과 같이 명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올여름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올림픽·패럴림픽 대회를 개최하기 위한 스가 총리의 노력을 지지한다. 양국 정상은 도쿄 대회를 향해 연습에 힘써 올림픽 정신을 가장 잘 계승하는 형태로 경기에 참여하는 미·일 양국의 선수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뜻을 표명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관방장관이 “스가 총리가 4월 상반기 방미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대면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라고 발표한 것은 3월 12일이었다. 그 회견을 보고, 외무성 간부에게 물었을 당시, 이런 대답을 들었다.

“스가 총리의 이번 방미의 최대 목표가 미국의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참가를 끌어내는 것이다. 중국의 참가는 이미 받아냈고 이제 미국만 참가한다고 밝혀준다면 7월 개최는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공동성명에서 바이든이 지지한 것은 ‘미국의 참가’가 아니라 ‘스가 총리의 노력’이었다. 그리고 덧붙이듯이, “미·일 양국의 선수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적고 있다.

미국이 올림픽에 참가하려면 먼저 각 종목의 미국 대표 선발대회가 열려야 한다. 2016년 8월 5일 개막한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는 전미수영선수권대회가 그해 6월 26일부터, 전미육상선수권대회가 같은 해 7월 3일부터 열려 각각 대표선수를 선발했다.

“바이든, 올림픽 참여 약속 없었다” 주장도


▎2020년 도쿄올림픽·패럴림픽 메인스타디움인 도쿄 국립경기장. / 사진:교도통신 연합뉴스
올해 도쿄올림픽 개회식은 7월 23일에 하기로 했으니 6월에는 미국 대표 선발전을 열어야 한다. 전미육상선수권은 지난해 중단된 뒤 올해 6월 18일 개최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실제로 열릴지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다.

스가 총리는 미·일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교도통신] 기자가 ‘도쿄올림픽 개최를 위해 미국의 참가를 끌어냈는가’라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제가 올여름 지구촌의 단결의 상징으로 도쿄 올림픽과 패럴림픽 대회를 개최하겠다는 결의를 밝혔고,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는 다시 한번 지지를 받았습니다. 우리로서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올해 여름의 도쿄 대회를 실현할 수 있도록 확실히 준비를 진행해나가겠습니다.”

즉, ‘내가 개최 결의를 밝혔고 그에 대해 지지를 받았다’는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일관한 것이다. 일본 정부 관계자로부터 전해져오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도쿄올림픽에 참여하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았다. 최종적으로는 개개인이 판단해야지 강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확실하게 말한 것은 ‘나는 개회식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일본 측은 해리스 부통령에게 개회식 참석을 요청했다. 해리스 부통령도 확약은 하지 않은 채 그때 상황을 보고 판단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일본은 타이틀을 얻고 미국이 열매를 따먹은 미·일 정상회담이었던 것이다. 이를 상징했던 것이 정상회담 후 저녁 시간에 백악관 안뜰에서 열린 스가 총리와 바이든 대통령의 공동 기자회견이었다. 28분간의 회견은 바이든 대통령의 모두발언, 스가 총리의 모두발언, 미국 기자의 질문, 일본 기자의 질문, 미국 기자의 질문, 일본 기자의 질문 순으로 진행됐다.

그런데 첫 번째로 지명된 미국(AP통신) 기자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미국 내 총기 규제의 문제를 물었다. 두 번째로 지명된 미국(로이터통신) 기자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이란 핵 합의 문제를 물었다. 두 질문에 바이든 대통령은 유창하게 지론을 폈다. 이 두 문답 사이 스가 총리는 멍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결국 대단히 화가 난 듯, 일본 수상관저 홈페이지에 올린 기자회견 문자메시지에서는 이 내용을 삭제해버렸다.

미·일 정상회담 직전 [CNN]은 조지 플로이드 재판(지난해 5월 미니애폴리스에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경관에게 살해당한 사건의 재판) 일색이었다. 스가 총리의 방미 소식은 없었다. 결론적으로 일본이 범정부적인 필사의 노력으로 ‘세계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낸 회담’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정작 미국에는 그다지 중요한 회담이 아니었다. 덧붙여 미·일 관계는 미국에 이미 미·중 관계의 일부로 포함돼버렸다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스가 총리와의 면담 후 약 1개월 뒤 5월 21일에는 문재인 한국 대통령이 백악관을 방문해서 한·미 정상회담을 했다. 필자가 조언하고 싶은 것들을 정상회담 이후로도 한국 측이 교훈으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첫째, 미국 측은 “순수한 한·미 관계란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미·중 관계의 한 부분으로서, 그리고 미-한반도 관계의 일부로서 한·미 관계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과의 관계를 경쟁-대결-공조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과 한국은 이 세 가지 측면의 대중 패러다임에 포함해야 할 ‘장기판의 말’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스가 정권도 문재인 정권도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그것이 미·중 신냉전 시대의 현실이다. 그러나 한국이 일본과 다른 점은 ‘미-한반도 관계의 일부분’이라는 원 쿠션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즉 북한 문제다.

미국은 ‘순수한 한·미 관계란 없다’는 인식 있어


▎지난해 11월 12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전화통화를 하는 문재인 대통령. / 사진:청와대
두 번째, 바이든 행정부는 아마도 문재인 정권 이상으로 북한에 대해 강한 관심을 가진 듯하다. 북한 체육성 기관지인 [조선체육]이 4월 5일, 7월 23일에 개막하는 도쿄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스가 정권이 보도를 분석한 결과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북한이 정말 불참한다면 왜 [조선중앙통신]이나 [노동신문]이 보도하지 않는가? 왜 IOC(국제올림픽위원회)에 불참 통보를 하지 않는가?” 즉 북한이 올림픽에 참가하고 김정은 국방위원장과 여동생인 김여정 선전선동부 부부장 등이 개회식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본 것이다.

도쿄올림픽에서의 대북 외교 전개는 문재인 정권이 구상하고 있는 것이다. 7월 도쿄올림픽 외교가 실현된다면 바이든 정권이 강조하는 ‘미·일·한’ 공조를 상징하는 그림이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의 참가에 앞서 일본이 한시라도 빨리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잠재우고 올림픽을 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 글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특별편집위원 / 번역 김경철

202106호 (202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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