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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평생교육 시행 22년의 성과와 과제 

‘요람에서 무덤까지’ 배움의 길 열려… 학교의 보조수단이라는 편견은 여전 

“만학도(晩學徒)의 ‘만’ 자는 늦을 만(晩) 아닌 ‘가득할 만(滿)’”
성인 10명 중 4명꼴로 평생교육 참여, 교육기관도 4541개로 늘어


▎건양대 평생교육원이 지난해 11월 13일 논산 창의융합캠퍼스에서 진행한 ‘시니어 모델 발표회’에서 시니어 모델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경상북도 김천에서 비영리평생교육시설인 김천희망학교를 운영하는 서명환 대구한의대 겸임교수에게 평생교육은 그의 운명을 바꾼 화두였다. 20대에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그의 최종 학력은 ‘중졸’이었다. 지독한 가난 때문에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생계에 뛰어들어야 했다. 결혼하고 나서 학교 공무직을 얻어 생활은 전보다 안정됐지만, 배움의 열망은 커져만 갔다. 중학생 자녀를 둔 마흔셋의 적지 않은 나이에 배움을 다시 시작했다. 방송통신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교와 대학원에 잇따라 진학했다. 당당히 사회복지학 석·박사 학위를 따냈다.

공직을 은퇴한 뒤에는 대구한의대학교 평생교육융합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그의 경험은 평생교육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였다. 퇴직금으로 한국사회복지평생교육원을 열고, 김천희망학교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문해교육을 시작했다. 서 교수는 “‘만학도(晩學徒)’의 ‘만’ 자는 ‘늦을 만(晩)’ 자가 아니라 ‘가득할 만(滿)’ 자”라고 했다. 학업 의지가 가득 차 있다면 불가능은 없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주관하는 2020년 대한민국 평생학습 대전에서 그는 지속적인 자기 계발과 평생학습을 실천해 학습자에서 교수자로 성장한 공을 인정받아 교육부장관상을 받았다.

논어의 첫 장을 펼치면 배움의 즐거움을 예찬하는 구절이 나온다. 논어 1장 학이(學而)편은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로 시작한다.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에 더해 맹자는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 중 셋째로 ‘가르치는 즐거움(得天下英才 而敎育之 三樂也)’을 꼽는다. 두 성현의 가르침을 종합하면 인생의 즐거움은 배움으로 시작해 가르침으로 완성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은 인생 전반을 교육과 학습의 기쁨으로 채우기가 쉽지 않다. 학교를 둘러싼 담장이 교육을 삶과 단절시켰기 때문이다. 배움은 학생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이 여전히 뿌리 깊게 박혀 있다. 평생교육제도는 이런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있다. 1999년 평생교육법을 제정해 제도를 도입한 이래 22년에 걸친 노력의 결과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공동 조사한 ‘2020년 국가평생교육통계’에 따르면 성인 10명 중 4명꼴로 평생학습에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생교육 기관 수는 4541개로 10년 전(3213개)보다 1300여 개 늘었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사회, 평생교육이 뜬다


▎성인 발달장애인 평생교육센터에서 발달장애인이 온라인으로 진행된 요가 강의를 보고 따라 하고 있다. / 사진:서울시
평생교육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요약된다. 전 생애에 걸친 배움의 기회를 누구에게나 제공하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유네스코 21세기 세계교육위원회가 정립한 평생교육의 지향점은 ▷앎을 위한 학습 ▷일하기 위한 학습 ▷존재하기 위한 학습 ▷살아가기 위한 학습으로 요약된다.

평생교육이 태동할 당시에는 학교의 정규 교육과 별개 개념으로 받아들여졌다. 국제적으로 평생교육 운동이 시작된 1960년대에는 고등교육 기회의 불평등한 근대적 구조를 타파하려고 ‘탈학교 이론’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그러나 의무교육이 확대되고, 세대 간 교육 수준의 차이가 벌어지면서 학교의 확장을 위한 대안 교육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입시 위주로 교육 시스템이 굳어진 우리나라에서 그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지난해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은 평생교육의 필요성을 재확인한 계기가 됐다. 오프라인 학교 중심인 공교육 시스템이 가동을 멈추자 학교 교육 시스템에 대한 절대적 믿음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긴급히 온라인으로 전환된 학교 교육의 질은 이미 여러 온라인 채널을 통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방대한 콘텐트를 따라가지 못했다. [포노 사피엔스]의 저자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앞서 월간중앙을 통해 “세계 일류 대학 석학들의 수준 높은 강의를 유튜브를 통해 누구나 공짜로 접할 수 있는 시대에 비대면으로 진행하는데도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해야 하는 교육 시스템에 동의할 사람이 과연 있겠느냐”고 지적한 바 있다.

정부도 이 같은 사정을 모르지 않는다. 코로나19 이후 일반화할 비대면 사회에 대비해 교육 분야의 한국판 뉴딜에 올해 5035억원을 책정했다. 다만 각론에선 여전히 기존 패러다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새다. 책정된 예산 중 절반 이상은 초·중등 교육인프라 구축 사업(2708억원)에 편성했다. 국립대 노후 전산망 교체와 대학 원격교육지원센터 등 대학 교육환경 개선에 470억원을 책정했다. 누구에게나 개방되는 온라인 공개강좌 및 에듀테크 플랫폼 구축과 한국형 온라인 공개강좌 콘텐트 개발에 대한 지원은 고작 68억원에 불과하다. 사실상 기존 교육제도의 틀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강화하는 쪽에 초점을 맞춘 셈이다.

현재의 평생교육 프로그램도 코로나19의 영향을 피하지는 못했다. 상당수 교육과정이 폐지되거나 기약 없이 중단됐다. 공동체성을 강조하고 오프라인 중심으로 이뤄지는 현행 평생교육 프로그램의 속성 때문이다. 게다가 학습자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고령층은 온라인 환경에 익숙하지 못하다.

그런데도 평생교육에 대한 시민의 갈증은 여전하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했다. 응답자의 78.6%는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사회적 거리 두기 이후 평생교육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 도중 운영이 취소되거나 중단된 경우도 14.8%나 된다. 사회적 거리 두기 이후에도 평생교육 과정을 온전히 마친 수료자는 6.6%에 불과했다. 특히 사회적 거리 두기에 따라 스스로 참여를 포기한 사례(10.6%)보다 교육과정이 취소·중단된 사례가 20.7%로 더 많았다. 진흥원은 코로나19가 평생교육에 끼친 부정적 효과가 30~40%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특히 나이가 많을수록, 도시화가 덜 진행된 곳일수록, 학력과 소득이 낮을수록 코로나19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진흥원은 사회적 거리 두기 시행 이후 평생교육에 참여해 수료한 5명 중 4명은 비대면 교육 방법을 활용한 점을 대안의 근거로 주목했다. 전대미문의 사태에 대응할 준비가 부족했지만, 앞으로는 비대면 교육 방식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도시 공동체 복원의 중심에 평생교육이 있다


▎[포노 사피엔스]의 저자 최재붕(가운데)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가 지난해 8월 19일 ‘대학이 밥 먹여줍니까? 미래사회 변화와 교육혁신 토크콘서트’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진흥원이 지적한 운영 방식에 관한 고민은 뒷순위의 문제다. 그보다 앞서 평생교육의 목적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목적이 뚜렷해야 평생교육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주체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도입 초기의 평생교육은 사회운동 성격이 짙었다. 급격한 도시화에 따른 공동체 붕괴가 가속하면서 일종의 ‘마을 만들기’ 운동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여지곤 했다. 물론 그 자체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운동으로 기울어질 경우 운영에 필요한 행정·재정적 지원은 부차적으로 밀리게 된다. 또 개별 단체에 의해 평생교육이 이뤄질 경우 이를 체계화해 종합적으로 관리하기가 어려워진다.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는 평생교육은 이런 현실을 극복할 대안으로 삼을 만하다. 주민의 삶과 가장 밀접하면서 평생교육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갈 행정·재정적 능력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어서다. 민·관의 협력적 관계 구축은 평생교육의 성공을 가늠하는 열쇠다. 지자체는 이런 거버넌스 환경을 만들기에 적합한 주체다.

특히 평생교육이 도시와 지역 공동체를 회복하는 중요한 수단이란 점을 고려해도 지자체의 역할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2018년 김경년 강원대 교수 등이 춘천시의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주민의 주거 안정성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평생교육 프로그램은 주민들이 지역 문제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의사소통 기능을 회복시켜 지역 여론 형성의 창구가 되며, 주민 간 상호작용을 활성화하는 통로가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도시의 공동체가 사라지고 주민들 사이의 익명성, 즉 서로의 얼굴조차 모르는 현실에 지역사회에서 주관하는 평생교육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상호작용을 끌어내고 조직화할 수 있는 기제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봤다.

이런 중요성을 간파해 정부도 ‘평생학습도시’를 지정해 다양한 지원 정책을 펼쳐왔다. 평생학습도시는 2001년 경기 광명시 등 3곳이 시범 지정된 이래 20년째 접어들었다. 2020년 말 기준으로 전국 226개 기초 지자체 중 175곳이 평생학습 도시로 지정됐다. 이들은 2004년에 출범한 ‘전국평생학습도시협의회’로 뭉쳐 평생교육 진흥에 관한 정보를 교류하고 발전을 모색하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다. 김신일 서울대 명예교수는 “기업이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끊임없이 습득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듯이, 지자체도 풍부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면 주민을 확보할 수 없는 시대”라고 진단했다. 평생교육이 현실화하고 있는 지방의 소멸 위기를 극복할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지자체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한다.

김동근 전 경기도 행정2부지사는 “평생교육은 지역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수단”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독일 뮌헨의 사례를 주목한다. 독일에서 운영되는 938개 시민대학 중 가장 규모가 큰 뮌헨 시민대학은 개설된 강좌 수가 1만4000개에 달하고, 강사 3000여 명과 상근인력 230여 명이 있다. 현직 대학교수, 학교 교사, 변호사, 과학자, IT 전문가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강사로 참여해 일반 정규대학 못지않은 수준을 자랑한다. 김 전 부지사는 “마을 미용사가 미용 선생님이 되고, 파스타 셰프가 요리 선생님, 전문 목수는 목공 선생님이 되는 마을학교 개념이 도입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시민의 직장이 곧 강의실이고, 시민이 학생인 동시에 선생님이 되는 교육공동체가 지자체의 지향점이 돼야 한다는 의미다. 오산시를 비롯한 여러 평생학습도시가 이런 취지로 평생교육 플랫폼이 되려는 시도에 나서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극복해야 할 난관은 여전히 많다. 특히 평생교육에 대한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고영상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연구개발특임센터장은 “학교 밖 교육은 학제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평생교육을 학교 중심 교육제도의 보조적인 수단쯤으로 여기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잘못된 편견이다. 유네스코와 OECD 주요 국가들은 평생교육을 교육분류국제표준의 한 요소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식 교육체제 안에서 평생교육을 다루는 것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평생교육을 그저 개인의 취미나 여가생활을 위한 복지의 개념으로 보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개인의 취미나 여가생활로 보는 편견 버려야


▎코로나19 팬데믹은 대면 수업 중심에서 비대면 중심으로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었고, 이는 평생교육의 필요성을 재확인한 계기가 됐다. / 사진:연합뉴스
학습자를 배움의 주체가 아니라 교육의 대상으로 치부하는 관념도 여전하다. 이는 ‘법정 의무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가르칠 내용과 대상을 먼저 정해두고 학습자를 견인한다. 양성평등교육,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등이 대표적인 예다. 또 ‘맞춤형 교육’이라는 외피도 결국 “일시적인 효과를 위해 교육을 수단화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청년층에는 취업·구직 교육을, 고령층에는 문해·여가 교육을 위주로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식이다. 이는 특정한 시기에 특정 역량을 높이는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그 효과는 단기에 그치고 만다. 총체적 삶에서 평생교육이 스며들지 못하는 ‘학원 교육화’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다.

평생교육의 내용이나 강사와 시설의 전문성 등의 관리가 체계화돼 있지 않다 보니 사회적 신뢰도 낮은 수준이다. 이는 교육 효과를 판단하는 데 필요한 여러 요소에 대한 정보가 충분치 않은 탓이기도 하다. 주체는 정부, 지자체, 민간 등 제각각이고, 평생학습관·학원·민간평생교육시설·직업훈련기관·도서관·문화원 등 시설은 파편화돼 있다. 정부가 큰 밑그림을 그리고, 지자체가 파편화된 인프라를 한데 모으는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교육자치를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도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대안으로 싱가포르의 평생교육제도를 참고할 만하다. 싱가포르는 정부가 운영하는 평생교육 포털(Skills Future)을 통해 관리가 일원화돼 있다. 정부와 전문가, 교육기관, 기업이 참여해 거버넌스를 구성한다. 직장 근로자, 자영업자, 기업인 등 각자의 필요에 따른 교육 과정을 분류했다. 학습자에게는 학습비 500달러를 지원한다. 각종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강사 역량 개발을 위해 별도 교육도 이뤄진다.

- 최현목 월간중앙 기자 choi.hyunmok@joongang.co.kr

202106호 (202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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