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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로 망한다던 보수… 이번엔 ‘분열’로 망하나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 이준석·조수진 갈등 빚다 둘 다 사퇴, 윤석열 측은 정치력 부재 노출
■ 대선 채 석 달 안 남은 시점에서 제1야당 자중지란에 비난 여론 쇄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선대위 공보단장인 조수진 최고위원과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21일 국회 당대표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임현동 기자
정치 금언(金言) 중 하나, ‘진보는 분열로 망하고,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

2000년 이후로 시야를 좁혀도 이 같은 금언은 크게 틀리지 않았음이 입증된다.

노무현 대통령 집권 후 탄생한 열린우리당은 내부적으로 ‘108번뇌’라는 자조(自嘲)가 나올 만큼 어수선했다. 문희상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은 2004년 총선 직후 한 언론 인터뷰에서 “’108 번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초선들이 중구난방이었다”고 고백했다. 그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152석을 얻었는데도 공교롭게 그중 108석이 초선이었다.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는 말은 박근혜 정권에서 여실히 증명됐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4년 차이던 2016년 이른바 ‘국정농단 게이트’로 국민 신뢰 추락을 자초하더니 급기야 박 전 대통령은 임기를 11개월 가까이 남긴 2017년 3월 9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認容)으로 권좌에서 물러나야 했다. 당시 여권 내에서조차 “당·청이 썩을 대로 썩었다”는 탄식이 쏟아졌다.

2022년 3·9 대선이 채 석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정권 교체’ 기치를 내건 국민의힘이 자중지란에 빠졌다. 대표와 최고위원이 극한 갈등을 빚더니 둘 다 직(職)을 내놓겠다고 했다. 대선 직전 제1야당에서 역대급 분열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준석-조수진 사태의 요지는 이렇다.

12월 20일 비공개 선대위 회의에서 조수진 최고위원 겸 선대위 공보단장이 “후보의 뜻”이라며 윤석열 대선후보 부인 김건희씨 관련 의혹에 대한 당의 대응을 지적하자 이준석 대표가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과 나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나오니 (먼저) 이를 정리하라”고 반박하면서 목소리가 높아진 것으로 전해진다.

갑론을박 끝에 이 대표가 “내가 상임선대위원장인데 누구 말을 듣느냐”고 일갈하자 조 최고위원은 “나는 후보 말만 듣는다”고 맞불을 놓았다. 이후 조 최고위원은 공개 사과하는 듯하더니 몇몇 언론인에게 이 대표를 비난하는 유튜브 방송 링크를 보냈다고 한다.

이에 발끈한 이 대표가 12월 21일 새벽 페이스북에 “사과 같지도 않은 사과를 해놓은 것을 보니 기가 차다”며 “더 크게 문제 삼기 전에 깔끔하게 거취를 표명하라”는 글을 올린 데 이어 오후 4시에는 선대위직(상임선대위원장, 홍보·미디어총괄본부장)에서 사퇴했다. 조 최고위원의 사과도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자 조 최고위원도 이날 오후 국민의힘 중앙선대위 상임위원장직과 홍보미디어 총괄본부장직에서 사퇴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 대표와 조 최고위원의 정면충돌을 전해들은 윤석열 후보는 “그게 바로 민주주의 아니겠나. 우연히 벌어진 일이니 당사자끼리 오해를 풀면 될 수 있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했다.

그러나 김종인 국민의힘 선거대책위 총괄선대위원장 이날 저녁 CBS라디오 〈한판승부〉 인터뷰에서 “이 대표의 성격상 다시 복귀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지금 상임선대위원장을 그만뒀다고 해도 대선에서 당대표로서 역할은 충실히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진단했다.

정권 교체 의견 49.6%, 윤석열 지지율 39.0% 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갈등을 겪고 있는 조수진 선대위 공보단장이 21일 국회 당 대표실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이어 “윤 후보로서는 이준석 대표와 조수진 의원 사이 오고 간 상황을 제대로 모르는, 그냥 토론하다 무슨 일이 생겼나 하는 정도였을 것”이라며 “주변에서 윤 후보에게 사건의 전말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선대위 개편과 관련해서는 “선대위가 구성돼 벌써 한 달 이상 움직이고 있는데 사람들을 지금 당장 쫓아낼 수 없다. 빨리 선거 (분위기)를 일으킬 수 있는 기동헬기를 띄울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준석-조수진 사태와 관련, 익명을 원한 전직 국민의힘 의원은 윤 후보 측의 안이한 상황 인식과 정치력 부재가 향후 대선 가도에서 큰 리스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권 교체 지지 여론이 정권 유지 지지 여론보다 훨씬 높음에도 불구하고 윤 후보와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박빙 승부를 이어가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곱씹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터넷 매체 〈데일리안〉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여론조사공정㈜에 의뢰해 12월 10~11일 실시한 정례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에 따르면 정권이 교체돼야 한다는 의견이 49.6%, 정권이 연장돼야 한다는 의견이 40.4%였다. 그러나 후보 지지율에서는 윤석열 39.0%, 이재명 38.7%로 오차범위 내 초박빙이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윤석열 캠프 관계자는 사견을 전제로 “‘진보는 분열로 망하고,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는 말도 다 옛말인 모양”이라며 “그간 여러 차례 대선을 치렀지만, 이번처럼 적전분열(敵前分裂)이 심한 경우는 처음”이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202201호 (2021.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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