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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눈앞 이 여성, 사람이 아니다? 

 

이화랑 월간중앙 인턴기자
■ 기업 모델 꿰차는 가상 인간, ‘광고계 블루칩’으로
■ “메시지 진정성 의문, 노동자 일자리 뺏겨” 우려도


▎래아는 LG전자가 CES 2022에서 진행한 ‘LG 월드 프리미어’에서 뮤직비디오 티저를 공개하며 뮤지션 데뷔를 예고했다. / 사진:래아킴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마케팅계에 ‘가상 인간’ 열풍이 불고 있다. 메타버스(Metaverse·가상공간과 현실세계가 융합된 세계) 시장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가상 인간을 간판 모델로 내세우는 기업들이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 윤종신의 프로듀싱 아래 가수로 데뷔한다고 밝혀 이목을 끈 ‘래아킴(래아)’은 LG전자가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구현한 ‘가상 인플루언서’다. ‘미래에서 온 아이’라는 뜻을 가진 래아는 2021년 1월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 2021’에서 LG전자의 연설자로 등장해 얼굴을 알렸다. ‘23세 싱어송라이터 겸 DJ’라는 설정에 맞춰 운영 중인 래아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현재 1만4800여 명이 팔로우하고 있다.

래아의 등장 이후 싸이더스스튜디오X의 ‘로지’, 롯데홈쇼핑의 ‘루시’ 등 여러 가상 인플루언서가 잇따라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로지는 지난 1년간 신한라이프, GS25, 정관장 등 100여개 광고에 모델로 출연하며 광고계 대형 신인으로 자리 잡았고, 루시는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29세 디자인 연구원이자 모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롯데홈쇼핑 쇼호스트 등으로 활동 중이다. 로지와 루시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각각 11만3000여 명, 6만8900여 명에 달한다.

이미 해외에서는 가상 인플루언서가 연예인급 인기를 누리고 있다. 가장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 가상 인간은 2016년 미국 AI 스타트업 브러드에서 선보인 릴 미켈라다. 릴 미켈라는 ‘19세 브라질계 미국인 팝 가수’로, 디올과 프라다 등 여러 명품 브랜드 모델로 활동 중이며 약 300만 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가상 인플루언서 시장은 2025년에 14조원까지 성장해 실제 인간 인플루언서 시장 규모(13조원)를 뛰어넘을 전망이다.

가상 인간을 모델로 기용하는 기업이 늘어나는 이유는 효율성과 생산성 측면에서 실제 인간보다 가상 인간의 상업적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가상 인간은 범죄나 스캔들 등 사생활 논란에 대한 리스크가 적고, 시공간적 제약을 받지 않아 동시다발적 활동도 가능하다. 실제 인간을 모델로 삼을 때보다 비용이 저렴하며 기업이 추구하는 이미지를 거의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온라인에서의 다양하고 감각적인 표현 방식으로 MZ세대(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 출생한 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점도 매력으로 꼽힌다.


▎신한라이프 광고에 출연한 22세 여성 모델 로지는 가상 인간이다. / 사진:유튜브 캡처
전방위로 영역 넓혀가는 가상 인간, 현실적 한계 주의해야

다만 가상 인간은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현실적인 한계도 가진다. 기업이 가상 인간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장점은 문제 상황이 발생할 경우 모든 걸 기업이 책임져야 한다는 단점으로 바뀐다. 소비자들이 진짜 사람이 아닌 가상 인간의 메시지를 진정성 있게 받아들일 수 있냐는 의문도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월간중앙 전화 통화에서 “가상 인간은 디지털 비즈니스나 디지털 스페이스 등 온라인에서 굉장히 효율성이 높은 반면 오프라인 활동에 있어서는 취약점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사람들은 대중문화를 온라인으로만 소비하는 게 아니라 오프라인으로도 소비한다. 그러나 가상 인간이 실제 대중을 만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가상 인간은 대중의 목소리를 수용하기 쉽지 않고, 그걸 가상 인간에게 요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가상 인간이 기존의 인력을 대체하면서 일자리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김상균 강원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자본주의 경제학에서는 투자 비용 대비 효율성을 먼저 따지다 보니 앞으로도 (가상 인간이) 많이 쓰이리라 예상하지만,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다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조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사회적 논의나 법적 제도가 미비한 상태에서 기술이 앞서 나가게 되면 문제점이 강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어린이나 청소년들은 가상 인간과의 소통을 재미있는 현상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다”며 “아이들이 인간에 대한 감정을 제대로 읽고 인간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온전하게 이해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가상 인간은 광고·홍보를 넘어 엔터테인먼트까지 영역을 점차 넓혀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상 인간이 향후 메타버스로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인터페이스(interface·서로 다른 두 시스템을 연결해주는 장치)로서 기능할 것으로 예상한다. 정 평론가는 가상 인간의 모델 및 연예 활동을 ‘또 다른 세계’를 맞이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현상으로 해석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얼굴을 대신할 아바타를 갖는 시대가 올 거다. 가상 인간은 그 시대를 불러오는 기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이화랑 월간중앙 인턴기자 hwarang_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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