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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특집]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암호화폐의 미래는? 

“코인, 미국이 없애지도 않고 없앨 수도 없다” 

美, 코인의 탈중앙화는 견제하지만 中의 디지털 위안화 견제 목적으로 암호화폐 활용
엘살바도르 등 비트코인 법정화폐로 채택… 갈수록 암호화폐 가격 양극화 심화할 것


▎단기적으로 미국의 긴축 통화정책, 중장기적으로 달러 패권은 코인 시장의 위협요소다. 다만 미국이 코인의 필요성을 용인하는 한, 차별화 장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비트코인 하세요?”라고 물었을 때 “도대체 그게 무슨 가치가 있느냐”며 정색하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반대로 ‘어떤 코인을 보유하고 있는지’ 묻는 이는 늘어가고 있다. ‘디지털 자산’은 하나의 현실이 됐다. 2021년 9월 말 기준 국내 4대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에서 발급된 실명 가상계좌의 총합은 1100만 개를 넘어섰다. 중복 이용자를 고려해도 대략 900만 명 이상의 내국인이 비트코인 거래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세계적인 투자가이자 헤지펀드 매니저인 레이 달리오의 말처럼 어느덧 비트코인은 “부의 저장을 위한 새로운 선택지”로 자리 잡고 있다.

2022년 2월 14일 기준으로 비트코인을 포함한 암호화폐 전체 시가총액은 1조8724억 달러에 달한다. 전 세계 자산규모 크기로 따지면 금,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사우디 아람코에 이어 5위에 해당한다. 비트코인 단독으로도 시가총액 8000억 달러, 자산순위 9위다.

국내에서도 주식시장보다 암호화폐 시장의 거래 규모가 더 커지고 있다. 2021년 1분기 국내 암호화폐 거래액은 하루 평균 14조2000억원이었다. 같은 시기 주식시장 하루 평균 거래액 8조원을 능가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암호화폐 시장의 변화는 더 빨라지고, 전체 금융 산업의 패러다임마저 바꾸고 있다. 20세기 금융 산업의 중심축이었던 미 달러의 지위를 위협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페이스북의 미완성 ‘금융 민주주의’ 실험


▎페이스북(메타)이 시도한 인터넷 화폐 ‘리브라’는 미국 등 전 세계 중앙은행의 격렬한 반대에 직면해 미완으로 끝났다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비트코인은 은행 없이도 개인 간 금융거래가 가능하며, 화폐적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처음 등장했다. 몇 년 뒤 스마트 콘트랙트(smart contract)라는 새로운 기능을 얹은 이더리움과 다양한 알트코인이 등장했다.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 기술과 경제 생태계(토큰 이코노미)를 갖춘 ‘암호화폐’라는 이름으로 수백, 수천 종류가 쏟아져 나왔다.

2017년 시작된 코인 광풍은 디지털 형태의 화폐가 가진 기술적 장점을 부각시켰다. 오래지 않아 거품은 꺼졌지만, 기존의 아날로그 금융 시스템이 얼마나 불합리한지를 자각하는 계기가 됐다. 우리는 이미 신용카드나 페이와 같은 ‘탭투 페이(tap to pay)’ 방식의 결제에 익숙한 시대에 살고 있다. 다만 지금까지의 금융결제 시스템은 통합된 하나의 시스템으로 운영되지 않았다. 분절화된 금융시스템은 매 단계마다 여러 중계기관을 필요로 했고, 개입되는 기관이 많아질수록 거래가 시작된 시점부터 최종 단계까지 시간과 비용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특히 국경 간 결제에서는 개입되는 중계기관이 훨씬 늘어났다. 돈을 보내는 쪽이나 받는 쪽 어느 한쪽이라도 금융시스템이 열악하거나 신용도가 낮은 국가에 거주할 경우 금융서비스 이용료는 더욱 올라간다. 많은 중계기관과 보증기관을 필요로 하는 국제 송금 시스템의 분절적 구조가 만들어 낸 기형적인 비용이기도 하다. 바로 여기에서 암호화폐는 지갑 간 전송으로 다양한 중계기관 없이 바로 송신자와 수신자 간에 직송금이 가능한 구조를 보여줬다.

그렇다면 문제로 남는 것은 암호화폐의 급격한 가격 변동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스테이블 코인’이다. 스테이블 코인은 미 달러와 같은 법정통화와 1:1로 가격을 고정시켰다. 이로써 일반 현금처럼 안정된 가격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금융거래에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 암호화폐의 가격 변동성을 보완하면서 적은 수수료로 쉽게 송금할 수 있는 장점을 가졌다. 스테이블 코인의 등장으로 암호화폐의 단순 매매와 교환 기능은 금융적으로 더욱 진화됐다.

이런 구조 위에서 2019년 6월 페이스북(메타)은 ‘리브라’라는 자체 통화 발행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페이스북은 “전 세계 성인의 절반인 17억 명이 은행 계좌가 없는 현실에서 이들이 휴대폰과 인터넷을 사용해 싸고 편하게 금융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금융 민주주의(financial democracy)’의 새로운 장이 열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페이스북의 월간 활성 가입자 수 20억 명이 전 세계 어디서나 네트워크 안에서 금융결제를 이용하면, 이는 곧 세계 최대의 화폐 공간이자 전자상거래 시장이 된다.

리브라 프로젝트는 발표되자마자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모든 중앙은행의 격렬한 반대에 직면했다. 만약 이 프로젝트가 실현되면, 각국의 통화정책과 통화주권이 위협받게 될 것으로 경계한 것이다. 리브라의 ‘화폐 인터넷’을 통해 금융, 상품, 서비스, 유통의 모든 헤게모니를 페이스북이 장악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였다. 결국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 금융 산업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힌 리브라 프로젝트는 ‘디엠’으로 이름을 바꾸고 사업내용도 대폭 축소했다. 이후 2022년 1월 31일 실버게이트 캐피털에 해당 사업을 모두 매각하는 것으로 종말을 맞았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각국 정부는 글로벌 플랫폼 통화에 대한 위기감을 갖게 됐다. 제2의 리브라를 막기 위해 주요국들은 법정통화의 디지털화, 즉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발행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가장 빠른 국가는 중국이었다.

글로벌 화폐전쟁에서 암호화폐의 입지 상승


▎2021년 11월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은 비트코인 도시 건설을 공표했다.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금융 분야에서 중국 위안화의 위상은 국력에 비례하지 못하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에서 위안화 비중은 2% 남짓이다. 미 달러가 62%인 것을 고려한다면 글로벌 통화로서 위안화의 위상은 달러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중국은 위안화의 금융적 지위를 강화하기 위해 주요 국가 중 가장 먼저 법정통화의 디지털화를 실행했다. 2020년부터 시범사업을 거쳐 중국 전역에 걸친 CBDC 상용화 사업을 시작했다. ‘일대일로(一帶一路)’ 차이나 경제블록 내에서의 몇몇 시범사업을 거쳐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도 디지털위안화 서비스를 시작했다. 디지털 위안화 발행 초기만 해도 “중국 내 사용이 목표일 뿐 달러의 대체재가 될 생각은 없다”고 누차 밝혔지만, 실제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 국제화 노력은 상당히 다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디지털 화폐는 결제 편의성 때문에 인접 국가의 CBDC는 주변 국가의 화폐 공간을 침범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종이로 된 위안화는 은행에서 원화로 환전해야 사용할 수 있지만, 디지털 형태라면 전자 결제를 통해 환전 없이 바로 쓸 수 있기 때문에 원화의 통화 영향력이 위협받는다. 이런 금융적 위험은 전 세계 모든 국가가 당면한 현실이다. 디지털 유로 발행을 추진하면서도 유럽 각국이 자국 통화의 디지털화를 서두르고 있다.

미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미 엑센추어 주도로 2020년 초 ‘디지털 달러 프로젝트’를 구축해 중국과 EU의 디지털 화폐 도입에 대비하기 위한 정책 및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2021년 초 미 재무부 산하 통화금융청은 미국 내 은행들의 스테이블 코인 사용을 우선적으로 허용했다. 이는 민간은행이 디지털 달러를 발행할 수 있도록 한 것과 동일한 조치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은 “디지털 달러 발행이 연준의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그러나 달러는 기축통화이기 때문에 금융시스템의 안정성 확보와 기술 표준 마련을 비롯해 고려해야 할 사항이 너무 많아 속도를 내기엔 어려움이 있다. 적절한 해법을 찾을 때까지 다른 나라의 CBDC나 플랫폼 통화가 달러의 위상을 넘보지 못하도록 민간은행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임시방편으로 허용한 셈이다.

그러나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지위를 위협하는 것은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나 디지털 유로화만은 아니다. 그동안 ‘디지털 금’으로 인식되며 화폐가 아닌 자산으로 역할이 한정됐던 비트코인이 달러의 대체재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법정통화 채택은 그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엘살바도르는 인구 650만 명에 정치적으로 상당히 불안정한 남미 국가다. 인플레이션이 극심해지자 2000년부터 미달러를 법정화폐로 채택했다. 그 덕에 인플레이션은 어느 정도 해결됐지만 미국의 통화정책 변화나 금리 변동 시 마땅한 대응방안이 없어 통화주권이 없는 국가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200만 명이 넘는 엘살바도르 해외 노동자가 본국으로 송환하는 달러는 엘살바도르 전체 국민총생산(GDP)의 23%에 이를 만큼 큰 규모지만, 송금 수수료로 적잖은 돈을 지불해야 했다. 일례로 2020년 59억 달러 송금에 수수료가 4억 달러 사용됐다.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은 2021년 6월 달러와 함께 비트코인을 법정화폐에 포함하는 이원화된 통화 구조를 발표했다.

비트코인이 법정통화에 포함되면서 비트코인 송금을 통해 수수료를 아낄 수 있게 됐다. 또 엘살바도르의 화산 지열을 이용한 비트코인 채굴산업 육성과 비트코인 ATM 관련 설비산업을 발전시킬 가능성도 마련됐다. 전 국민의 70%가 은행 계좌를 갖지 못한 상황에서 모바일 기반으로 금융서비스 접근성도 높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모바일 지갑의 불안정한 서비스와 취약한 보안성, 관련 인프라 부재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IMF를 비롯한 국제기구는 비트코인의 법정통화 지정 철회를 강력하게 촉구하며 경제적 지원을 중단하기에 이른다.

호재와 악재 공존하는 2022년 코인 시장

엘살바도르의 실험은 주변 남미 국가들과 아프리카에 영향을 주고 있다. 탄자니아와 가나에서도 비트코인 법정통화 도입이 시도된 바 있다. 파라과이, 파나마, 베네수엘라, 멕시코 등에서도 미 달러화로부터의 이탈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흐름을 차단하기 위해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비트코인의 투기성과 변동성을 경고하며 엘살바도르를 향한 우려와 압박을 본격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최종적으로 미국은 암호화폐 시장을 없애버리려 할까. 규제를 통해서 암호화폐 시장의 팽창 속도를 더디게 만들거나 조절하는 방법은 있을 수 있다. 2022년 초 암호화폐 시장의 변동성 장세도 이런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미 연준이 금리 인상과 양적 긴축을 시사하자 코인과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이 가장 강한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미국이 코인 시장을 아예 없애는 것은 결이 다른 얘기다. 탈중앙화된 금융시스템을 일컫는 ‘디파이’는 분산형 금융이다. 미국은 테러 자금이나 돈세탁에 굉장히 예민한 나라지만, 미국 SEC조차도 블록체인 네트워크 안에서 움직이는 디파이를 추적할 수 없다. 결국 미국은 스테이블 코인을 통해 디파이 영역을 견제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중국 암호화폐 시장이 축소되며 미국이 비트코인 등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이런 상황이 오면 미국의 금융기관을 통해 암호화폐 시장이 더 커질 수도 있다.

2022년 코인 시장을 단기적으로 예측하면, 호재는 블록체인 기술이 계속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더리움 외에도 솔라나, 에이다 등 기술 기반 메인넷(자체 네트워크)이 확장할 수 있는 시기가 온 것이다. 반대로 악재는 미국의 금리 인상과 긴축 등 알려진 위협 외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같은 예상치 못한 악재가 발생하면 단기 급락이 올 수 있다.

아울러 코인 시장의 양극화도 필연적이다. 비트코인은 제한적인 폭으로 천천히 움직일 것이고, 알트코인들은 기술코인 혹은 비즈니스 모델로 확장 가능한 코인 중에서 가격 상승이 보일 것이다. 반면 위믹스 같은 기획성 코인이나 홍보에만 치중한 NFT 관련 코인은 단물이 빠지고 나면 가격을 지탱할 만한 실질적 성과를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상승 폭이 미미하거나 오히려 하락할 수 있다.

코인 시장은 기존 자산에 비해 굉장히 급등락 폭이 크다. 상한선, 하한선도 없다. 투기적 성격도 명확하다. 그렇기 때문에 투자자는 많은 학습이 필요하다. 자신이 투자하는 코인의 기술적 특성이나 비즈니스 모델에 관한 정보를 갖고 접근해야 한다. 특히 2030세대 사이에서 암호화폐 선물 투자를 굉장히 도박적으로 하고 있는데, 자산 증식보다 자산 손실을 볼 리스크가 훨씬 더 높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최화인 블록체인 에반젤리스트·금융감독원 블록체인발전포럼 자문위원

202203호 (2022.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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