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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의 K컬처 톺아보기(8)] OTT 시리즈라는 새로운 드라마의 탄생 

영화-드라마 경계 허무는 감독들… K콘텐트 새 텃밭 일궈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OTT 초청작 수 예년 대비 3배 증가
인력·콘텐트·유통·소비 등 전방위적 경계 해체 흐름 보여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수리남]은 영화 못지않게 긴장감 넘치는 액션 누아르 연출로 호평받고 있다. / 사진:넷플릭스
최근 K드라마들을 보면 이것이 영화인지, 드라마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계가 흐려져 있다. 영화 인력들이 드라마로 유입되면서 생겨난 이 흐름은 현재 K콘텐트에 어떤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 걸까?

지난해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온 스크린(On Screen)’이라는 새로운 섹션이 생겼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리즈를 대상으로 하는 이 섹션에는 ‘넷플릭스’를 통해 소개된 바 있는 연상호 감독의 [지옥], 김진민 감독의 [마이 네임], 그리고 아누차 분야와타나 & 조쉬 킴 감독의 HBO 아시아 오리지널 시리즈 [포비든] 세 편이 초청작으로 선정됐다. 올해 열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온 스크린’ 섹션 초청작은 아홉 편으로 늘어났다. 이준익 감독의 [욘더](티빙), 미이케 타카시 감독의 [커넥트](디즈니+), 정지우 감독의 [썸바디](넷플릭스), 라스 폰트리에 감독의 [킹덤 엑소더스], 노덕 감독의 [글리치](넷플릭스), 키모 스탐보엘 감독의 [피의 저주](디즈니+), 유수민 감독의 [약한 영웅](웨이브), 이호재 감독의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왓챠), 전우성 감독의 [몸값](티빙)이 그 초청작들이다. 10월에 공개된 [글리치], [욘더] 그리고 [몸값]은 사실상 부산국제영화제의 온 스크린을 통해 시리즈를 소개하는 셈이다.

실제로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넷플릭스는 물론이고 웨이브, 티빙 같은 OTT들이 저마다 홍보부스를 마련해 방문객들을 맞이하는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영화인들 사이에는 OTT 시리즈물이 영화제에 들어오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존재했지만, 올해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허문영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이에 대해 “OTT 시리즈가 영화산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우려도 있지만, 또 다른 영화의 영역으로 끌어안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점차 바뀌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말은 극장을 중심으로 해온 영화산업이 OTT라는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에 위기감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또 하나의 기회 요소라는 양면적 입장을 갖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코로나19를 겪으며 많은 영화가 극장의 대안으로 OTT를 선택했다. 그런데 OTT가 흡수한 건 영화만이 아니었다. 우리에게는 드라마라고 여겨져 온 OTT 시리즈물에 영화감독이나 작가, 스텝 같은 영화 인력들도 끌어들였다. 이준익 같은 스타 영화감독이 [욘더] 같은 OTT 시리즈를 내놓고, 지금껏 영화만 고집해온 배우 송강호가 32년 만에 신연식 감독과 함께 [삼식이 삼촌]으로 첫 드라마에 출연한다고 발표한 대목은 이러한 영화 인력의 이동이 본격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산국제영화제서 몸값 높아진 OTT 시리즈


▎웨이브, 티빙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 (OTT)가 부산국제영화제에 부스를 설치해 자사의 새 OTT 시리즈들을 홍보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마샬 맥루한(캐나다 미디어 이론가이자 문화비평가)의 “미디어는 메시지”라는 명언을 굳이 거론하지 않아도, 새로운 미디어가 그 안에 담아내는 콘텐트를 변화시킨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예를 들어 웹툰은 만화를 디지털 버전으로 옮겨놓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스크롤 방식으로 보는 웹툰은 그 형식적 차이 때문에 콘텐트의 표현 방식도 변화시키고, 연재물은 댓글 소통을 통해 영향을 받는다. 무엇보다 웹툰은 하나의 콘텐트 장르를 지칭하는 차원을 넘어 새로운 디지털 방식의 생산시스템이다. 만화 제작 시스템이 도제 방식이라면, 웹툰은 누구나 도전하고 대중들의 호응을 얻어 스타 작가가 될 수 있는 새로운 콘텐트 제작 시스템이다. 일본의 ‘망가’가 단순히 디지털 버전으로 만화를 옮겨놓는 차원에 머물며 정체됐다면, 우리의 웹툰이 글로벌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소재·미장센·연출 제한 없는 환경이 장점


▎[오징어 게임]을 연출해 올해 에미상 6관왕을 차지한 황동혁 감독은 앞서 [도가니], [수상한 그녀], [남한산성] 등 극장용 영화를 주로 연출했던 감독이다. / 사진:연합뉴스
마찬가지로 OTT라는 새로운 플랫폼은 그 안에 담기는 콘텐트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제작된 [킹덤], [인간수업] 같은 작품들은 OTT 초창기 드라마가 이 새로운 플랫폼에서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가를 잘 보여준 사례였다. 전통적으로 TV 드라마로서는 다뤄지기 어려웠던 ‘좀비물’이나 ‘청소년 성매매’라는 소재를 파격적으로 다뤘다는 점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모호해진 제작인력의 작품이라는 점이 그랬다. [킹덤]은 스타 드라마작가인 김은희 작가의 대본을 [끝까지 간다], [터널] 같은 영화를 연출했던 김성훈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었다. 또 진한새 작가의 데뷔작인 [인간수업]은 MBC 드라마국 PD로 TV 드라마 연출을 해왔지만, [로드 넘버원] 같은 작품을 통해 장르물 연출에도 정평이 나 있던 김진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김진민 감독은 후속작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이 네임]에서도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액션 누아르 연출을 선보였다.

이후 영화감독들의 OTT 시리즈 도전은 보다 본격화됐다. 올해 에미상 6관왕을 차지한 [오징어 게임]의 감독은 다름 아닌 [도가니], [수상한 그녀], [남한산성] 같은 영화를 연출했던 황동혁 감독이었고,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수리남] 역시 [범죄와의 전쟁], [군도], [공작]을 연출한 윤종빈 감독이었다. 영화감독들이 만든 OTT 시리즈는 편수는 길지만, 한 편 한 편의 연출이나 완성도는 영화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오징어 게임]이 보여주는 미장센이나 미술적인 공간 연출이 그렇고, [수리남]의 긴장감 넘치는 액션 누아르 연출이 그렇다. 이 작품들을 보면 이것이 드라마인지 영화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 OTT 시리즈만의 색다른 영역이 느껴진다.

OTT 시리즈가 기존 드라마와 다를 수 있었던 건, 그 특유의 플랫폼 특징에서 비롯됐다. 지상파나 케이블, 종편의 드라마들은 플랫폼의 성격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보편적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다. 여전히 시청률을 성적표로 받아들이고, 방통위의 제재를 받는다. ‘선택적 시청’이 아니라 누구나 시청할 수 있는 플랫폼이라는 전제가 깔리고, 따라서 여기에 콘텐트가 맞춰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OTT는 다르다. 글로벌 디지털 플랫폼으로서 ‘선택적 시청’을 전제로 하는 이 플랫폼들은 제재 바깥에 놓일 수 있었고 따라서 소재나 수위 등에 있어서 훨씬 더 자유롭다. 기존 드라마업계에서 소재나 수위 때문에 만들 수 없었던 작품들에 갈증을 느끼던 제작자들에게는 당연히 OTT가 매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김은희 작가가 예전에 웹툰 스토리로 쓴 [킹덤] 같은 작품이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제작된 이유다.

K콘텐트 저변에 경계 해체의 에너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은 영화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미장센을 자랑한다. / 사진:넷플릭스
하지만 이러한 소재나 표현의 자유도를 넘어서 OTT 시리즈를 기존 드라마와 차별되게 한 더 큰 요인은 제작방식의 변화다. 글로벌 플랫폼인 OTT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사전에 각국의 번역 작업이 필수적이다. 이것은 ‘쪽대본’으로 상징되던 기존의 TV 드라마 제작방식과는 다른 ‘완전 사전제작’이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로써 OTT 시리즈는 보다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고, 영화감독들도 뛰어들고 싶은 영역으로 조금씩 자리 잡아갔다.

또한 편성과 시청률 전쟁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OTT 시리즈는 제작 편수나 회당 분량에서도 훨씬 자유도가 높아졌다. 작품이 가진 스토리에 따라 짧게는 6부작에서 길게는 10부작으로 제작 편수가 자유로워졌고, 회당 방영시간도 길게는 60분에서 짧게는 45분에 이를 정도로 탄력성 있게 채워졌다. 편성 시간과 분량이라는 틀에 억지로 꿰어 맞춰져 밀도가 떨어지던 기존 TV 드라마의 문제가 OTT 시리즈에서는 사라지게 됐다.

OTT 시리즈는 그간 분명했던 영화와 드라마 사이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 경계의 해체는 이를 넘나드는 창작자들에 의해 가속화되고 있다.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시작해 영화 [부산행]으로 큰 성공을 거둔 후 드라마 [방법]의 대본을 쓰고 OTT 시리즈 [지옥]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 같은 인물이나, [베토벤 바이러스] 같은 TV 드라마로 시작해 영화 [완벽한 타인]을 연출하고 [지금 우리 학교는] 같은 OTT 시리즈를 연출한 이재규 감독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다. 또 정서경 작가처럼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아가씨], [헤어질 결심] 같은 작품을 쓰고 [마더]에 이어 [작은 아씨들] 같은 드라마 대본을 쓰는,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드는 작가들도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오징어 게임]은 영화인가? 드라마인가? 이 질문은 사실 질문 자체에 해답이 있다. [오징어 게임] 같은 OTT 시리즈들은 OTT에 의해 드라마와 영화의 경계가 무너져가고 있는 현 상황을 징후적으로 보여준다. 이제 OTT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통한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 해체는 인력에서부터 콘텐트·유통·소비에 이르기까지 전 방위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이 경계 해체의 에너지가 글로벌한 위상을 떨치고 있는 K콘텐트의 밑바탕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OTT 시리즈라는 새로운 지대는 그래서 K콘텐트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텃밭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정덕현 - 대중문화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MBC 시청자 평가원, JTBC 시청자 위원으로 활동했다. 또 백상예술대상, 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이며 SBS [열린TV 시청자 세상], KBS [연예가중계]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했다. 저서로 [숨은 마흔 찾기],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웃기는 레볼루션] 등이 있다.

202211호 (2022.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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