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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포엠] 눈, 부심 

 

윤성학

▎눈보라 몰아치는 서소문 빌딩숲. / 사진:박종근 비주얼실장
저 하나하나가 다 사람이라니요 당신

저 많은 사람들이 허공 가득 내려앉는 거래요
다 비슷하게 생겼지만 모두 다르고
모두 다르지만 거기서 거기인 게 사람이잖아요
제 갈 길을 가는 거 같지만 휩쓸려 다니고
휩쓸리면서 제 갈 길 가는 게 사람이듯이요

나부끼다가

자동차 번호판에 달라붙어 주차장 자동기계가 번호를 못 읽게 만들기도 하고
누가 훔쳐갔나 안장이 빠진 자전거 체인에 모여 앉기도 해요
다리 하나를 잃고 재활용 분리수거장에 버려진 위자 위에
제본소 앞 멈춰진 지게차 포크 위에
길이 미끄러워 돌아가지 못하고 웅크리고 있는 짬뽕 그릇 위에도 모여 앉았네요

왕조의 기왓장에 앉고 싶다고 해도
예배당 종탑이나 대웅전 뒷뜰을 원한다고 해도
그저 골고루 나부끼네요

고단하시겠어요
골고루,는 참으로 고단한 일
거기 앉아서 좀 쉬기로 해요 당신

※ 윤성학 - 1971년 서울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감성돔을 찾아서] 등이 당선돼 등단. 시집으로 [당랑권 전성시대](창비, 2006), [쌍칼이라 불러다오](문학동네, 2013)가 있음.

202212호 (2022.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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