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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풍향] 김기현 대표 체제로 재편된 국민의힘의 행로 

국민의힘에서 ‘尹의힘’ 됐다 

전당대회 ‘안정론’ 확인하며 친윤 일색 당 지도부 구성, 총선 전열 채비
유승민·이준석 등 비주류와 간격 더 벌어져, 민주당도 타협 없는 저항 전선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내년 총선까지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에 충실하면서 중도층을 흡수해야 하는 임무를 떠안았다.
국민의힘 전당대회(전대)가 3월 8일 막을 내렸다. 정치적 공방이 치열했던 만큼, 투표율도 역대 최고치인 55.10%를 기록했다. 2021년 6월 전대의 45.36%보다 10%포인트 정도 높았다. 투표에 참여한 인원수도 46만1313명에 달했다. 투표율이 치솟으면서 이번 전대에 도입된 ‘결선투표’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다. 당내 주류인 친윤계의 조직적 지원을 받는다 해도 김기현 후보가 1차 투표에서 승리를 결정짓기엔 투표인 수가 너무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김 후보는 간신히 절반을 넘긴 52.93%의 득표율로 결선 없이 당선됐다. 당장은 개혁보다는 안정을 바라는 당심이 더 컸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른바 ‘이준석 사태’로 흐트러진 당정관계를 다잡아 윤석열 정부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라는 당원들의 의지로 해석된다.

“대통령이 업어 키운 김기현 당대표”


▎지난해 대선 당시 안철수(왼쪽 두 번째) 의원, 유승민(오른쪽 두 번째) 전 의원, 이준석 전 대표(오른쪽)는 윤석열(가운데) 대통령을 지원했지만, 당대표 선거 과정에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실제 ‘당정일체감’은 아마도 역대 최고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김기현 대표와 함께 선출된 5명의 최고위원 모두가 친윤계의 지지를 받은 인물들이다. 무엇보다 이번 전대의 실질적 승자는 김 대표가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이다. 전대 시작 전부터 끝날 때까지 고비마다 대놓고 그의 뜻대로 판세를 이끌었다. 먼저 대회 직전의 ‘당심 100%’ 룰 개정이 민심을 업은 유승민 전 의원 저지를 겨냥한 대통령의 의지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뒤이어 ‘고령화저출산위원회’ 나경원 위원장이 부상하자, 대통령실은 여러 이유를 들어 해임을 전격 발표했다. 윤심(尹心)을 받들어 당내 초선 40여 명은 ‘나경원 출마 반대’ 연판장으로 나 위원장을 끝내 주저앉혔다.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을 타고 비윤계 표심이 안철수 의원에게 쏠리는 기미가 보이자 이번엔 정무수석이 직접 저격에 나섰다. 이도 모자라 막판엔 시민사회수석실 행정관들의 전대 개입 의혹까지 불거졌다.

이 덕분에 3% 지지율에 불과하던 김 대표는 1차 투표로 승리를 결정지었다. 그래서 “대통령이 업어키운 당대표”라는 말이 나온다. 그만큼 윤 대통령의 당 장악 의지가 컸다는 얘기다. 거꾸로, 선출직 경험 한번 없이 대권을 거머쥔 윤 대통령으로선 정치적 뿌리의 취약성을 나름 우려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아울러 여당 체질을 자신의 생각대로 확 바꾸지 못하면 국정 운영도, 정국 주도권도 위험해질 수 있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따지고 보면, 윤 대통령이 지난 2021년 10월 당내 대선 경선 당시 내뱉은 말 속에 이미 이런 의지가 들어 있었다. 경쟁 상대인 홍준표, 유승민 등 당 선배들의 핍박에 발끈해 “이런 정신머리라면 당이 없어지는 게 맞다”고 일갈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이후 대선 과정에서 몇 차례 이준석 대표와의 공개적 충돌로 당 장악 의지가 더 굳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파워’에 의해 사실상 지도체제가 재편되면서 이제 ‘국민의힘’은 ‘윤석열의힘’이 됐다. 오래전 우리 정치문화에서 사라진 대통령과 당대표의 주례회동 부활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전대 과정에서 나왔다가 시대착오라는 비판에 움찔했던 ‘당정분리 재고론’이 현실화할 가능성도 엿보인다. 과거처럼 대통령이 당 총재를 맡는 방식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1호 당원’보다 훨씬 더 정치적 상징성이 큰 ‘명예 당대표’로의 추대도 예상해볼 수 있다.

어쩌면 형식과 제도의 변경보다 윤 대통령은 더 근본적 변화를 바라고 있을지 모른다. 지도부뿐만 아니라 여당 의원들마저 자기 사람들로 채우는 나름의 ‘인적 쇄신’을 말이다. 사실 대통령실이 노골적 개입을 통해 친윤 지도부를 세운 것도 결국 내년 총선 공천을 위한 노림수였다. 물론 김 대표는 전대 과정에서 경쟁력을 갖춘 후보를 세우는 ‘이기는 시스템 공천’을 약속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공천에 대통령 의견도 들을 것”이라며 상반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적어도 김 대표의 첫 당직 인선만 보면, 향후 공천에서 대통령 의중 중시 입장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 사무총장에 당내 친윤계 주류 ‘윤핵관’ 중 한 사람인 이철규 의원을 임명한 것이다.

당 살림을 책임진 사무총장은 공천 때는 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한다. 공천관리위원회에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해 당의 입장을 전달하고 반영하는 역할을 맡는다. 따라서 이 의원의 발탁은 내년 공천 때 ‘용산의 입김’을 반드시 관철하려는 윤 대통령의 뜻을 김 대표가 적극 떠받든 결정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미 당 안팎에선 “대통령실에서만 30명이 총선 채비를 하고 있다”는 말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을 중용한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감안, 전직 검사들의 대거 전진 배치 얘기도 나온다. 이런 풍문을 타고 당내 세력 판도 역시 재빨리 친윤계의 압도적 우위로 바뀌었다. 전당대회 직전 ‘나경원 연판장’에 이름을 올린 40여 명의 초선 면면 중에는 ‘비윤계’는 물론 ‘이준석계’로 분류된 의원도 있었다. 심지어 친윤계에게 직격탄을 맞은 나 전 의원마저 자존심을 팽개치고 김 대표 당선을 위해 뛰었다.

“대통령실에서만 30명이 총선 채비”


▎지난 3월 13일 윤석열(오른쪽 두 번째) 대통령은 국민의힘 지도부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 사진:대통령실
윤 대통령이 공천에 ‘진심’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내년 총선 승리 때문이다. 집권 후 열 달이 훌쩍 지났지만 ‘윤석열식 개혁’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국회 절대 과반 의석을 가진 민주당에 막혀 고비마다 제동이 걸린 탓이다. 대선공약인 여성가족부 폐지가 민주당의 정부조직법 개정 반대로 사실상 무산된 게 대표적 사례다.

노동·교육·연금의 3대 개혁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으나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주52시간 노동제의 탄력적 운용, 중대재해법 처벌 완화 등 관련법 개정은 사실상 올 스톱이다. 오히려 민주당은 일정량의 벼 수매를 강제한 양곡관리법, 노조 파업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제한을 담은 ‘노란봉투법’ 등을 일방 추진 중이다.

그렇다고 윤 대통령이 나서 야당을 설득하거나 타협할 생각은 없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범죄 피의자’로, 전 정권 실세들은 ‘친북좌파’로 규정해 척결 대상쯤으로 여기는 탓이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내년 총선 승리로 확실한 돌파구를 여는 쪽으로 작정한 것 같다. 이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자기 사람들이 출전해야 한다는 생각일 것이다. 자신의 국정철학을 잘 알거나, 적극 추종하는 사람들이야말로 ‘파이팅’도 좋고, 무엇보다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정권 말 레임덕도 막을 수 있고, 궁극적으론 자기 입맛에 맞는 후계자로 정권 재창출도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내년 총선에 ‘대통령 사람’만으로 모든 후보를 공천할 순 없다. 인재 풀도 충분하지 못한 데다 ‘친윤’ 일색 공천이 가져올 후폭풍이 절대 가볍지 않은 탓이다. 이번 전대에서 비주류는 단 한 명의 당선자도 못 냈지만, 무려 47%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노골적 ‘반윤’을 포함해 대통령 뜻에 무조건 동의하지 않는 비윤 당심이 절반 가까이 된다는 말이다.

선거 과정에서 비윤의 실체를 절감한 탓인지 김 대표의 취임 일성도 ‘연포탕’(연대, 포용, 탕평)이었다. 총선 승리를 위해서라도 김 대표 입장에서 당내 통합은 반드시 필요하다. 집토끼, 보수 지지층 결집만으론 승리를 담보할 수 없다. 당연히 산토끼, 그중에서도 중도층을 끌어와야 한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중도는 민주당도 지지하지 않지만, 현 정권에도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 지지율이 30%대 초반(한국갤럽 기준)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다. 이들은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김 대표는 당정일체감 속에서도 윤심과 적정한 거리를 두며 당의 정치적 자율성 확보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비윤에게도 일정한 정치적 역할을 맡겨 중도층에 대한 소구력을 키워나갈 것이다.

국민의힘 비주류는 각자도생 전망


▎이재명(맨 앞) 대표를 위시한 민주당은 총선 때까지 윤 대통령과의 극한대립을 불사할 태세다.
문제는 비주류가 얼마나 호응할 것이냐는 점이다. 당장 유승민 전 의원은 전대 직후 “마침내 국민의힘을 대통령 1인이 독점하는 ‘윤석열 사당’으로 만들었다”고 직격했다. 대회 직전 갑작스러운 룰 개정으로 출마를 포기해야 했던 억하심정을 격하게 표출한 셈이다. 당 대표에 도전했던 천하람 전 후보 또한 “누군가는 권력에 기생해 한 시절 감투를 얻으면 그만이겠지만”이라는 말로 김 대표를 겨냥했다. 울산역 KTX 역세권 땅 투기 의혹으로 김 대표를 끝까지 물고 늘어졌던 황교안 전 후보 측은 부정 경선 의혹까지 제기했다.

친윤도 가만있지 않았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유 전 의원에 대해 “당에 대한 애정 없이 오로지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려는 것”이라며 깎아내렸다. 나아가 전대 당시 이른바 ‘천아용인’(천하람, 허은아, 김용태, 이기인)의 캠페인을 주도했던 이준석 전 대표를 “훌리건”이라고 지칭하면서 “청산”을 주장했다. 조수진·장예찬 최고위원도 일제히 ‘이준석 때리기’에 가세했다. 김 대표의 연포탕 천명에도 최고위원들이 다퉈 비윤 공격에 나선 것은 윤심을 제대로 읽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전대 축사에서 “나라의 위기, 당의 위기를 정치적 기회로 악용하면 절대 안 된다”면서 “(그런) 부당한 세력과도 (싸우는 걸) 주저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내부총질’이나 하는 세력과의 전면전을 사실상 독려한 것으로 읽혔다. 때문에 향후 비주류 쪽에서 대통령의 뜻에 반하는 목소리가 나올 경우 살벌한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다. 최고위원은 물론 친윤 의원까지 나서 충성 경쟁을 벌일 가능성이 큰 탓이다.

그렇다고 비윤, 특히 유 전 의원과 이 전 대표, 모두 침묵할 것 같진 않다. 대통령과의 대립각을 첨예화해 정치적 존재감을 과시하려 들 것이다. 친윤 역시 눈도 깜짝하지 않은 채 아예 둘을 공천에서 배제할 공산이 짙다. 그만큼 대통령을 비롯한 친윤의 두 사람에 대한 ‘비토 정서’가 강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일각에선 둘이 주축이 된 보수개혁 신당을 전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당장 국회에서 논의 중인 중대선거구제로의 변화가 어려워 보인다. 현행 소선거구제로 가면 제3당이 살아남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과거 바른정당 등 제3지대에서의 보수개혁 실패 전력도 둘이 몸을 사리는 이유다.

반면 대통령실의 선거 개입에 반발, 전대 막판에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을 고발까지 했던 안철수 의원의 행보는 정반대다. “당 화합을 위해 헌신하겠다”며 사실상 꼬리를 내렸다. 그의 이번 성적은 23.37% 득표율로 2위. 하지만 당원들에게 차기 대권 주자로서 눈도장을 확실히 찍은 만큼 권토중래가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 3위인 천 전 후보는 친윤은 물론 이준석계와도 거리를 두며 신중한 행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4위로 꼴찌에 머문 황교안 전 후보는 총선 공천을 겨냥해 일단 자숙 모드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결사적 저항은 불 보듯

당의 화합 못지않게 김 대표로선 야당과의 협치도 만만찮은 과제다. “오직 민생”을 외치고 있지만, 압도적 여소야대 국면에서 민주당의 협조 없인 단 한발도 나갈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윤 대통령의 ‘국회 패싱’과 민주당을 겨냥한 검찰의 전방위 수사로 여야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김 대표 취임 첫날 민주당은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 등을 규명할 특검법을 전격 발의했다. 또 정부가 내놓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방안을 ‘굴욕외교’로 규정, 장외로 뛰쳐나갔다. 김 대표로선 선뜻 야당에 손을 내밀기 쉽지 않은 형국이다.

김 대표의 고민과는 별개로, 친윤 일색의 최고위원회는 물론 이번 전대로 정국 주도권을 쥔 윤 대통령은 야당 압박 강도를 더해갈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사법리스크’로 민주당의 내홍이 격화되는 상황이라 ‘야당 흔들기’의 절호 찬스를 그냥 흘려보낼 생각이 없는 탓이다. 이재명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킨 민주당을 ‘방탄특권’ 프레임으로 계속 몰아붙일 것이다. 또 이 대표에 대한 사퇴 공세를 통해 이에 동조하는 비주류 반명계와 결사옹위에 나선 ‘개딸’과의 갈등을 더욱 부각할 모양새다.

물론 민주당도 당하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김 대표 당선 소식에 당 대변인은 “정당 민주주의 사망이며 역사 퇴행”이라고 비판했다. 전대 과정에서 드러난 대통령의 개입을 강하게 질타한 것이다. 뒤로는 표정관리에 들어갔다는 후문도 들린다. 전대 과정에서 불거진 김 대표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말끔히 해소되지 않아 언제든 공격 타깃으로 삼을 수 있는 호재를 챙겼다. 무엇보다 당을 확실히 장악한 윤 대통령의 자신감이 국회와 야당을 무시한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가속화하는 것도 민주당을 돕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민심 이반, 특히 중도와 무당층의 반발이 커질 수 있다. 이에 따라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면 반대로 국민의힘 내 비윤의 목소리가 커지고, 그게 공천 국면과 맞물리면 민주당으로선 호재다.

-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 jwhn20@naver.com

202304호 (2023.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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