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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욱의 평양리포트] 김주애 앞세운 김정은의 광장정치 

북한의 관심 끌기 전략일 뿐 후계는 어불성설 

최근까지 4개월간 11차례 등장… 후계 가능성에 국제사회 관심 커져
여성 지도자 가능성 작아… ICBM 도발 예고하는 홍보 마케팅일 뿐


▎2월 17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광명성절(2월 16일)을 기념해 열린 내각과 국방성 직원들의 체육경기를 딸 김주애를 비롯해 주요 간부들과 관람하고 있다. 동생 김여정은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 사진:연합뉴스
계묘년 들어 연초에 37일간 공식 석상에서 사라졌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월 들어 전격 등장했다. 김정은이 한 달 정도 북한 언론에 등장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건강이상설이 흘러나온다. 그의 비만과 골초 수준의 흡연 경력 등은 건강 문제를 제기하는 근거다. 새해 첫날 금수산기념궁전 참배와 소년단 만남 이후 공개 활동이 없어 신변 이상에 대한 궁금증이 고조될 찰나에 전격 등판했다.

우리 언론은 김정은이 한 달 이상 안 보이면 신변 이상설이나 급변 사태 가능성에 관심을 집중한다. 1979년 10·26 사태로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사건을 경험한 우리로서는 최고 권력의 공백 사태를 상상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코로나19 감염 등 김정은의 내부 동향은 파악이 어려워 외견상 올해 대남·대미 정책 수립을 위한 정국 구상의 휴식기로 추정된다.

김정은은 지난 2월 6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열고 ‘전쟁 준비 태세 완비’를 천명했다. 8일 인민군 창건일인 건군절 75주년에는 3만 명의 병력이 참여한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의 야간 열병식을 개최했다. 김정은은 김일성처럼 중절모를 쓰고 나타났다. 무기 행렬의 선두에는 11기에 달하는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이 있고, 중장거리급 미사일을 탑재한 이동식발사차량(TEL)이 2열 종대로 뒤따랐다. 조선중앙통신은 “강위력한 전쟁억제력, 반격 능력을 과시하는 전술핵 운용 부대 종대들의 진군이 이어졌다”고 전했다. 지난해 4월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 당시 4기에 비해 세 배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11기가 미국 내 인구 100만 명을 초과하는 도시 숫자와 일치하는 만큼 미국 본토 타격 능력을 과시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올해 김정은의 대미 전략은 군사 도발을 효율적으로 전개하면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지난해 73발의 미사일을 무더기로 발사했지만 한·미 당국의 강경 대응으로 비용 대비 가성비는 크지 않았다. 김정은이 직접 주관한 중앙군사위는 2023년도 대남·대미 도발 방향과 기본 방침을 확정하는 의미가 있다. 이를 증명하듯 김 위원장은 미사일총국을 새로 공개했다. 확대회의 사진을 보면 김정은 자리 뒤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미싸일총국’이라는 글자와 마크가 새겨진 깃발이 세워져 있다. 해당 조직에 대해 북한 매체가 보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핵탄두 탑재 미사일 등 각종 탄도미사일의 생산 및 관리 등을 전담하는 조직일 것이다.

‘백두혈통 4대’ 김주애 띄우기 노골화


▎2월 9일 조선중앙TV가 녹화 중계한 북한 인민군 창건일(건군절)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김정은이 자신의 얼굴을 만지는 딸 김주애를 보며 흡족해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4월 중순 김일성 생일인 태양절 즈음에는 정찰위성의 정상 각도 발사가 예상된다. 지난해처럼 물량 공세보다는 강한 것 하나로 충격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태평양을 북한의 사격장으로 사용하는 빈도수는 미국의 행동에 달렸다”는 김여정의 엄포에 지난달 20일 존 애퀼리노 미국 인도태평양 사령관은 “북한이 ICBM을 쏘면 즉각 격추시키겠다”고 응수했다. 김여정은 재차 “정말 미친 망발”이라며 “전략무기 시험에 요격을 하면 선전포고로 간주될 것”이라고 맞대응했다. 3월 9일에는 화성포병부대 훈련이라며 6발의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거친 말싸움이 실력 행사로 수위를 높이고 있다.

미사일과 함께 북한은 ‘백두혈통 4대’인 김주애를 작정하고 띄우고 있다. 지난해 11월 처음 등장할 때는 마치 카메오 전략처럼 보였다. 하지만 갈수록 출연 횟수가 증가했다. 관객의 호기심이 증폭했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2월 8일 야간 열병식에 김주애의 손을 잡고 군기 사열을 하며 입장했다. 김주애는 지난해 11월 18일 ICBM ‘화성-17형’ 발사 현장과 11월 26일 ICBM 개발 및 발사 공로자와 기념사진촬영 행사, 건군절 행사 및 3월 9일 화성포병부대 타격 훈련 현장 등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에 내각·국방성 체육경기 관람, 평양 서포지구 새 거리 착공식 등 비군사 행사까지 총 여덟 번이었다. 김주애는 정치·군사 행사에 단골 출연자가 됐으며 점차 비군사 행사에도 출연하기 시작해 카메오가 아니라 주연배우로 역할이 달라졌다.

김주애 등장하자 온라인 검색량 급증


▎김정은의 딸 김주애가 공개된 지난해 11월 15일부터 최근까지 구글 트렌드를 통해 나타난 '북한(north korea)’ 검색량 통계. 김주애에 대한 국제사회의 높은 관심이 반영됐다. / 사진:구글트렌드
조선중앙TV는 지난해 11월 김주애를 최초로 소개할 당시 “사랑하는 자제분”이라고 언급했고 두 번째 화성-17형 공로자 기념 촬영 자리에선 “존귀하신 자제분”이라고 불렀다. 건군절 행사 전날인 2월 7일군 장성 숙소 방문 및 기념 연회에는 “존경하는 자제분”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높아진 위상을 드러냈다. 8일 건군절 75주년 열병식에서는 아예 “사랑·존경하는 자제분”이라고 최상의 표현을 사용했다. 노동신문은 이날 총 150장의 열병식 사진을 게재했는데, 무기 및 열병식 전경을 담은 116장을 제외한 34장의 사진 가운데 김주애가 포함된 사진은 절반에 가까운 15장이었다. 김정은을 제외하고 독사진이 실린 인물은 김주애가 유일했다.

북한 당국은 김주애와 같은 이름을 가진 주민들에게 개명을 강요하더니 건군절 열병식 녹화중계 화면에는 김주애가 타는 것으로 보이는 ‘백마’까지 등장시켰다. 없는 살림에 러시아에서 수입한 고가의 동물까지 동원하는 우상화 작업이 시작됐다. 갑자기 10살 어린 딸을 동원해 우상화 작업을 진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김주애는 과연 4대 세습 후계자가 될 것인가 등이 정보 판단의 핵심이다. 김주애를 4세대 후계자로 연출하는 전략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선전선동부의 보고대로 시행한 신(新) 물망초(new forget-me-not) 전략이다. 사실 북한은 지난해 2억 달러(약 2600억원)를 들여 73발의 미사일을 발사했지만, 성과는 신통치 않았다.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한반도 주변에 발사하면 뉴스는 2일 정도 지속된다. 중거리 미사일은 3일 정도이고 ICBM 발사조차도 일주일 이내 관심이 사라진다. 잊히는 것이 두려운 북한으로서는 관심의 상시화가 필요하다. 홍보 및 마케팅 전문가 그룹인 선전선동부가 외부의 호기심이 가장 강한 인물이라고 판단한 것이 ‘김정은 패밀리’다. 여동생 김여정이 스피커 역할을 하면서 주연배우로 10살 김주애를 선택했다. 홍보 효과는 대성공이었다. 새해 첫날에도 북한은 김정은이 김주애와 함께 미사일 기지를 시찰하는 사진을 내보냈는데, 남측 언론들이 대서특필했다. 2018년 싱가포르, 2019년 하노이 회담 이후 북한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아진 사건이었다.

평양은 트럼프 정부 시절처럼 바이든 행정부와 그럴듯한 대화를 하길 바라지만, 워싱턴은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평양에 대한 워싱턴의 무관심은 바이든 대통령의 확고한 반감에서 도출된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부통령으로 자신이 주도했던 2012년 2월 29일 미·북 간 합의가 45일 만에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휴지 조각이 되는 현실을 경험했다. 당시 그는 북한을 “지긋지긋하다(sick and tired)”고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했던 하향식(top-down) 정상회담은 수용 불가다. 동북아에 대한 워싱턴의 초미의 관심은 대만문제다. 북핵은 순위가 한참 뒤로 밀려 있다. 바이든은 지난 2월 7일 의회 연두교서 연설에서 ‘North Korea’라는 단어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김정은은 싱가포르와 하노이 회담의 관심을 리바이벌하고 싶다. 답답한 국면을 타개할 구원투수가 필요했다. 새로운 주연배우로 등장시킨 김주애가 폭발적인 관심을 부르자 아예 주연배우로 올라섰다.

높은 관심은 온라인 검색에서도 나타난다.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5일부터 22일 사이 구글 검색 추이에서 ‘북한’과 함께 ‘김정은 딸’에 관한 검색이 급증했다. 11월 15일 ‘북한’의 검색량이 약 25%였던 반면,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18일에는 관심도 최대치인 100%를 기록했다. 검색량이 4배가량 늘어났고 김정은 딸에 대한 검색량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15일부터 22일까지 구글에서 ‘북한’을 검색한 사용자가 살펴본 관련 주제에서 ‘딸’에 대한 검색 빈도가 가장 많이 증가했다. ‘북한’을 검색한 사용자의 관련 검색어 통계 추이를 살펴보면 1위가 ‘북한 김정은 딸(north korea kimjongun daughter)’이었으며,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north korea icbm)’이 검색량 2위를 차지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보다 김정은 딸에 대한 관심이 더 컸다는 의미다. 특히 ‘발생(breakout)’으로 표시된 결과는 엄청나게 증가한 검색량을 말하고, 발생한 검색어가 새로운 주제이며 이전 검색이 거의 없었음을 의미하는데, 검색량 0%에 머물러 있던 ‘김정은 딸’은 북한 당국이 사진을 공개하자 검색량이 수직 상승하며 85%가 증가했고, 북한이 추가 사진을 공개한 20일에는 검색량 100%를 기록했다.

둘째, 외부를 향한 메시지를 내포한 연출 드라마다. 어린아이를 등장시킴으로써 미국이 요구하는 비핵화는 불가능하며 세대가 바뀌어도 도발은 계속될 것이란 시그널로 해석할 수 있다. 김정은은 지난해 4월 25일 조선인민군 창설 90주년 기념식에서 핵무기 용도를 방어용에서 공격용으로 전환하는 ‘평양판 핵 독트린’을 발표했다. 이어 9월에는 핵무력 법제화를 선언하고 핵무기 사용 5대 조건을 발표했다. 비핵화의 문턱은 대폭 높이고 핵무기 사용의 조건은 김정은이 자의적으로 결정하는 충격적인 조치였으나 미국 등 국제사회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김정은은 새로운 마케팅 전략이 필요했다. 도발 대신 뉴페이스 홍보 전략을 구사했다. 특히 핵과 미사일이 영원히 후계세대에도 지속한다는 어린아이가 등장하는 비주얼 마케팅 전략은 미국을 움직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북한의 세습은 치열한 권력투쟁의 산물


▎2월 19일 한국과 미국이 한반도 상공에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 도발에 대응해 미국 전략자산을 동원한 연합공중훈련을 하고 있다. 이날 훈련은 한국 공군 F-35A와 F-15K 전투기 및 미 공군 F-16이 한국방공식별구역 (KADIZ·카디즈)으로 진입하는 미국 B-1B 전략폭격기를 호위하면서 연합 편대비행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 사진:합동참모본부
마지막으로 북한 내부의 단합과 충성을 유도하는 ‘극장정치(cinema politics)’ 전략이다. 평양의 순안공항 청사를 비롯한 각종 건물에 가장 많이 게시된 구호는 “김일성, 김정일 동지는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신다”라는 문장이다. 극장국가인 평양 권부는 주민들이 대대손손 충성하고 다른 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세뇌 교육을 지속적으로 시킨다.

북한의 지도자들이 전 세계에서 받은 선물을 전시해 놓은 묘향산 국제친선박람관에 들어가면 김일성과 김정일의 모습을 그대로 형상화한 밀랍 인형이 전시돼 있다. 밀랍 인형은 금방이라도 말을 걸어올 것 같으며 관객들은 에어컨 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듯한 형상에 긴장한다. 우상화하고 신격화하는 상징조작 전략이다. 집권 10년을 맞는 39세의 김정은은 선대들과 같이 수명을 누린다면 최소 30년 이상 통치할 것이다. 참고로 아버지 김정일(1942-2011), 할아버지 김일성(1912-1994) 모두 70세를 넘겼다. 물론 김정은의 ‘서든 대스(sudden death)’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의 나이가 40세 이전인 만큼 후계를 논하기에는 너무도 이르다.

여동생 김여정은 무대 뒤로 밀려나고 김주애가 중앙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그림은 호기심 많은 남한은 물론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어린아이의 일거수일투족에 흥미를 느낀 나머지 미사일 위협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초등생 소녀를 두고 벌써 4세대 후계자로 정해졌다고 단정하는 전문가(?)까지 등장했다. 북한의 권력 투쟁 구조와 선전·선동 기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추측이 마구잡이로 등장해 북한의 의도에 장단을 맞춘 셈이다. 후계자 주장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철저한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 지도자는 어불성설

우선 북한 정권의 가부장제적 특성이다. 후계자 논쟁은 너무나 먼 미래에 대한 가상 스토리다. 사회주의 권력의 후계는 외부적으로는 순조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피바람이 동반된다. 아버지 김정일은 이복동생 김영일, 김평일과 10대부터 권력 세습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했다. 할아버지 김일성이 68세가 된 1980년 6차 당대회에서 김정일이 공식적으로 후계자로 확정되던 순간까지 이복형제 간의 권력 투쟁은 영화보다 드라마틱했다. 이후에도 이들의 긴장은 지속됐고 김영일, 김평일은 체코, 폴란드 대사로 해외를 떠돌다 병사했다. 곁가지를 쳐내는 작업은 독재 권력의 숙명이고 하늘 아래 태양은 두 개일 수 없다는 명제를 절감하게 한다.

김정은은 김정일의 셋째 아들이었지만 장남인 이복형 김정남을 2017년 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독살했다. 둘째 형 김정철은 평양 외곽에서 기타를 치며 숨죽이고 있다. 머리를 드는 순간 동생을 꼬드긴 문고리 권력들에 의해 하루아침에 저승으로 갈 수 있다. 2000년 스위스 베른에서 평양으로 영구 귀국한 후 아버지를 수행하며 황태자 수업을 받고 후계자로 등극하기까지 김정은은 베일에 가려 있었다.

김정은의 첫째 아들은 그가 10대 후반 후계자로 정해질 때까지 얼굴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다. 공개된 어린아이는 후계자가 아니고 후계자가 정해질 때까지 대리인(proxy)에 불과하다. 2017년 국정원은 2010년생 아들의 존재를 밝혔다. 남측에서 북측에 보낸 김정은 선물 품목에 남자아이들 장난감 등이 포함된 것을 고려한 정보 판단이었다. 2013년생 김주애의 존재는 2014년 미국 NBA 농구 스타 데니스 로드먼이 “주애(Ju-ae)를 안아봤다”고 말하면서 알려졌다.

북한에서 여성의 위치는 매우 종속적이다. 가부장제 권위주의 국가에서 여성 지도자는 보조적인 역할에 불과하다. 특히 공산주의는 정도가 심하다. 현재 북한의 최고위직 여성은 김여정 부부장을 제외하면 북한 최초의 여성 외무상인 최선희가 유일하다. 필자는 과거 평양을 방문했을 때 거의 모든 남성이 흡연하지만 여성이 흡연하면 교화소에 가서 4주간 사상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들었다. 여성 수령은 북한 체제의 속성을 간파하지 못한 어림도 없는 시나리오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3월 8일 국제부녀절(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가정의 주부로서, 며느리로서, 안해(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항상 자각하고, 자식을 많이 낳아 훌륭히 키워내자”고 가부장제적인 입장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사회주의 국가에서 여성 지도자는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북한 역시 중국, 러시아 등과 대등한 국제관계를 형성하는 상황에서 여성 최고 영도자는 이론에 불과하다. 21세기 스트롱맨(strong man)들이 패권 싸움을 전개하는 정글의 시대에 여성이 사회주의 독재국가의 지도자가 된다는 발상은 국제정세를 간파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유일 수령체제인 북한 사회의 특수성을 간과한 사고다.

미래세대 등장시켜 핵무장 지속 의지 표현한 연출일 수도

요컨대, 김정은이 기시감(旣視感)을 주는 김일성의 중절모를 쓰고 화려한 조명 속에서 아이를 동반하는 그림은 백두혈통 충성과 미래세대 핵무장 지속을 연출하는 정무적 성격의 극장정치(cinemapolitics)일 뿐이다. 김주애가 김정은보다 높은 곳에 앉았다고 해서 후계자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김정은은 인민들에게 4대 세습을 각인시키고 영원한 충성을 요구하겠지만, 후계자 결정은 수십 년 후에나 알 수 있는 일이다. 최고 권력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쟁취하는 대상이다. 이제 겨우 권좌에 오른 지 만 10년째인, 40세도 안 된 김정은이 자식을 동반하는 그림을 연출하는 것은 ICBM 도발을 예고하는 홍보 마케팅일 뿐이다.

남한을 비롯해 국제사회에서 김주애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갖는 것을 보고 김정은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지난해 사랑하는 딸 주애를 ICBM 발사 현장에 동반해 미래세대에도 핵과 미사일이 함께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사진과 함께 보냈는데 효과가 컸다. ICBM에 대한 관심보다 주애가 리설주와 붕어빵처럼 닮았다, 주애가 4대 후계자가 될 수 있다는 둥 열 살짜리 어린아이를 두고 별소리를 다 하는 자본주의 언론은 역시 말초신경을 건드려야 반응을 보이니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내가 어떤 경로를 거쳐 3세대 지도자에 올랐는지 조금만 연구해도 그런 평가를 하지 않을 텐데. 내가 이제 40세도 안 됐는데 후계 구도를 논하다니 백두혈통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이 알리가 없을 것이다.’

한·미 간 확장억제수단운용연습(DSC TTX)에 이어 한반도에서 3월 13일부터 11일간 대규모 병력이 동원되는 자유의 방패(FS, 프리덤 실드) 훈련이 진행된다. 문재인 정부 시절 대북 유화 기조 속에 중단된 대규모 실기동 한·미 연합연습이 5년 만에 부활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9·19 남북군사합의 이후 연합 FTX(실기동)는 대대급 이하로 축소 시행됐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지난해 하반기 ‘을지 자유의 방패’ 훈련에서 연대급 이상 기동훈련이 재개됐고 이번 FS에서 전구(戰區)급FTX를 되살렸다.

한반도의 긴장 수위는 계속 높아질 것이다. 부인 리설주가 ICBM 미사일 목걸이를 걸고 나타나는 등 평양 선전선동부의 극장정치는 가족오락관 수준이다. 잊히는 것이 두려운 김정은은 어린 딸을 동원해 신파 소설을 쓰고 있을 뿐이다. 신파 드라마에 빠져 있다가 정작 북한의 기습 도발에 허를 찔리지 않도록 예의주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나저나 대중의 호기심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커서 중구난방의 가상 소설이 난무할 것이다. 대북정보의 본산인 국정원의 족집게 정보 판단이 시급한 때다.

※ 남성욱 -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고려대 북한학연구소장을 지냈다. 2013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을 지낸 뒤 후학 양성과 북한 문제 연구에 전념해오고 있다. [김정은의 핵과 경제](2022, 박영사), [북한 여성과 코스메틱](2017, 한울아카데미), [한반도 상생프로젝트](2009, 나남) 등 북한 문제에 관한 다수의 책을 펴냈다.

202304호 (2023.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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