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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련의 지구촌 인문기행(3)] 잉카제국의 찬란한 고도(古都), 페루 마추픽추 

신비함으로 둘러싸인 잃어버린 ‘공중도시’를 찾아서 

안데스 문명 최후의 국가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 잉카와 스페인 문화 혼재
‘잉카레일’로 마추픽추 닿아… 산꼭대기에 숨겨져 있어서 후대의 훼손 모면해


▎페루 마추픽추는 여행자들의 로망이다. 구름에 덮여있을 때가 잦아 온전한 모습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기에 더욱 신비롭다.
일상의 문을 박차고 길 위로 나서는 일은 설렘에 발동을 거는 행위다. 가슴 뜨겁게 살고 싶은 인간 욕구의 발현인 것이다. 남아메리카의 척추, 안데스 산맥의 산꼭대기에서 600여 년 동안 죽은 듯이 숨어있었다는 ‘비밀의 도시’인 마추픽추(MACHUPICCHU)를 만나러 가는 길은 그야말로 설렘으로 가득했다. 가뜩이나 산소 포화도가 낮은 고산지대여서인지 두근거림은 더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정글 속의 좁고 거칠고 길게 내닫는 강물 위 자욱한 안개와 구름을 헤치며 비행기·기차·버스를 번갈아 타고 달렸다.

안데스 산맥은 지구 반대편, 북반구에 위치한 우리나라 땅에서는 아득하게 먼 곳 같고 무언가 풀리지 않는 비밀과 비경을 가득 품은 전설의 땅과 같은 기분이 든다. 지구 남반구의 남태평양 연안을 따라 척추처럼 남북으로 7000㎞나 길게 뻗은 세계 최장의 산맥은 늘 반쯤은 뭉게구름에 덮여 있다. 그래선지 높은 산자락 군락들은 신비한 위용을 뽐낸다.

이 산맥의 품 안에 들어있는 나라만 페루·아르헨티나·칠레·볼리비아·베네수엘라·콜롬비아·에콰도르 등 7개국이다. 대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절로 우러나오는 이 산맥에는 해발고도 6962m에 달하는 아콩카과산을 위시한 고봉 준령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산맥 폭은 평균 300㎞. 지구의 지각운동이 아직도 곳곳에 지진과 화산 활동을 유발하고 있다.

세계의 ‘배꼽’ 쿠스코


▎마추픽추 산등성이에 조성된 계단식 밭. / 사진:고혜련
이런 험준한 곳에서 약 700년 전인 1240년 무렵 인디언 부족의 잉카문명이 탄생했다. 잉카는 안데스 문명 최후의 국가 이름이며 그 지배계층을 일컫는다. 기원전 1000여 년 전에 시작한 안데스 문명이란 에스파냐(현재의 스페인)가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하기 전,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지대에 번성한 문명이다. 안데스 문명 최후의 국가, 잉카제국은 15세기 중엽부터 주변 민족을 정복하며 15세기 말에는 남북으로 4000㎞에 이르는 영역을 지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 가장 핵심이 됐던 지역이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페루 쿠스코(CUSCO)다. 이 지역 일대가 유럽인들이 그토록 찾아 헤맸던 황금의 땅, 즉 전설의 이상향인 ‘엘도라도’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필자는 한국에서 곧장 가는 게 버거워 일단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워밍업을 끝내고 LA 공항에서 곧장 페루의 수도 리마로 향했다. 리마를 한 바퀴 둘러보고 다시 쿠스코 행 비행기를 탈 계획이었다. 리마에서 잉카 문명의 핵심지인 쿠스코까지는 비행기로 1시간 20여분 거리. 버스로 가면 산맥을 돌고 돌아 22시간 정도 걸린다.

잉카제국의 수도이자 세계의 중심지라고 여겼던 이유에선지 쿠스코는 세상의 한가운데, ‘배꼽’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해발 3450m의 고원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높이 얘기만 들어도 호흡조절을 잘 해야겠다는 마음에서 의도적으로 들숨, 날숨을 반복하게 된다.

낮게 하강하는 비행기 안에서 쿠스코를 내려다보면 유럽 남부나 동부의 소도시에 와 있다는 착각이 일어난다. 그쪽 도시처럼 약속이나 한 듯 온통 붉은색 지붕들과 낮은 건물들이 빈틈없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500여 년 전 스페인 정복자들이 옛 마을들을 파괴하고 유럽식 건물을 지었기 때문이다. 잉카의 흔적을 모조리 지울 수는 없었는지 거리 구석구석을 둘러보면 잉카와 스페인식의 공존이 불러온 색다른 맛이 여행객들을 들뜨게 한다.

쿠스코 골목을 거닐면 잉카의 흔적이 거리 곳곳 가옥이나 건물에서 엿보인다. 돌을 그냥 포개 쌓은 담벼락이나 기둥들은 축조용 돌과 돌 사이를 시멘트나 접착제를 이용해 연결한 것처럼 착 들어맞는 것이 놀랍다. 12각을 내면서 반들반들 연마한 돌을 마치 퍼즐 조각 맞추듯 정교하게 조합해 오랜 세월, 지진에도 전혀 흔들림이 없도록 하는 기술력을 발휘했다니 그저 감탄사 연발이다. 지금 기술에 비해서도 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자동차들이 달리는 시내 도로 주변에는 2~3층짜리 시멘트 상가건물들이 곳곳에 신축 중이어서 그 분위기가 딱 우리나라 1960년대 말 변두리 주택가를 떠올리게 했다.

전 세계 여행객들이 천리를 마다하지 않고 쿠스코를 거쳐 달려오는 곳이 있으니 바로 그 유명한 마추픽추다. ‘잃어버린 공중 도시’는 쿠스코에서 불과 80㎞ 떨어진 곳에 있다. 높은 계곡 공중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듯 숨어있는 마추픽추는 1911년 미국의 한 탐험가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기까지 무려 6세기 동안 아무도 그 존재를 모르는 비밀의 공중도시였다. 전 세계 비행기가 종횡무진 하늘을 훑고 다니는 요즘, 그 긴 세월 동안 도시 하나가 감쪽같이 산꼭대기에 숨어있었다니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고고학자 하이럼 빙엄의 ‘발견’


▎해발 3200m 고원지대에 형성된 살리네라스 마라스 염전지대. / 사진:고혜련
탐험가이자 고고학자였던 하이럼 빙엄은 잉카제국이 멸망할 당시 스페인의 정복자들과 전투를 벌였던 빌카밤바를 찾아내기 위해 당시 안데스 정글 지역을 뒤지고 있었다. 한동안 정글 탐색에 나선 그가 오두막에 살던 어느 소년을 만났고, 소년이 이끄는 데로 찾아가 발견한 곳이 마추픽추였다. 현재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손꼽히는 마추픽추는 그렇게 우연한 기회에 온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보통 여행객들은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비행기로 쿠스코에 도착한 후 버스를 타고 일단 오얀타이 탐보(Ollantaytambo)까지 온다. 거기서 다시 ‘잉카레일’ 기차를 이용, 아구아스칼리엔테스(Aguas Calientas) 마을에서 내린다. 그 다음 다시 버스를 타고 산길을 빙빙 돌아 마추픽추로 가는 여정을 택하고 있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기차역 부근에서는 그들의 발길을 붙잡으려는 길거리 악단들이 전통악기로 신명 나고 독특한 음색을 쏟아낸다.

세 칸으로 이루어진 잉카레일 기차는 우리나라 옛 시골기차를 연상케 한다. 소박하고 넷이 마주 보고 앉아 다른 여행객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정겹다. 높은 산 사이로 우루밤바 강물이 우당탕 세차게 흘러 깊은 계곡을 드러내준다. 이 강이 여기저기서 합쳐져 달리면 아마존강까지 닿는단다. 총 길이 6300㎞인 아마존강은 페루 안데스산맥의 발원지로 처음에는 북쪽으로, 다음에는 동쪽으로 흘러 결국 브라질 북부를 관통한 후 대서양에 합류한다. 기차 창가에 앉아 파도치듯 요란한 거센 강물과 정글 숲의 파노라마를 보면 경외심에 다른 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젊은 여행객들은 마추픽추 발견자인 하이럼 빙엄이 헤맸던 47㎞ 산길을 3박 4일 여정으로 걷는 트래킹을 즐긴다. 따라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몇 달 먼저 예약하는 게 필수다. 페루 정부가 환경 문제를 고려해 입산 인원을 제한하는 데다 현지 가이드와 동행해야 한다는 규칙을 따라야 한다. 더구나 해발 4200m의 고지 등 몇 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니 겁이 났던 것도 사실이다.

‘짜잔!’ 하면서 나타나는 듯 까마득한 산 정상에 펼쳐진 ‘공중 도시’를 마주하면서 다시 호흡을 가다듬는다. 감탄이 극에 달하면 말이 끊어지고 신음에 가까운 소리를 내뱉게 된다. 잉카인의 공중 요새, 마추픽추의 대문 역할을 하는 인티푼쿠(intipuncu)는 찬탄과 경이의 시발점이다. 태양신을 위한 제사를 지내기 위해 독립적으로 건축한 태양의 신전, 잉카 민족이 섬겼던 신 중에서 하늘과 제사를 담당하는 아푸쿤투르를 상징하는 콘도르(Condor) 신전, 마추픽추 가장 높은 곳에 동서남북 방향을 확실하게 알려주는 커다란 돌 하나를 배치한, 신성한 기운이 도는 인티후아타나 스톤(Intihuatana Stone), 제사장급들의 거주 장소로 보이는 건축물, 커다란 제례용 돌 등이 눈길을 끈다.

뭉게구름이 뭉실뭉실 피어나는 천상의 세계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지어진 듯한 고색창연한 건축물들의 돌무더기와 잔재 위에 마치 시간과 모든 움직임은 정지된 듯 보였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햇살은 더할 수 없이 맑고 투명했다. 인간의 유한한 삶은 결국 한 줌 흙으로 돌아가 자연의 품에 안기고, 묵묵히 그걸 포용하는 자연은 그 자리에서 여전히 다양한 모습으로 영구히 존재한다.

석축 기둥들과 기반들은 멋스럽고 견고하게 짓는 현대 석조건물과 비교해도 별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중기와 운반 트럭 등 철제 건축 장비들이 없었을 그 까마득한 시기에 수십만 개에 이르는 돌덩이들을 어디서 어떻게 운반해 아찔한 산 정상에다 쌓았는지 도무지 헤아리기 힘들다.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잉카의 비밀


▎우리의 옛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페루 원주민 여성들의 순수한 눈동자.
대부분의 돌은 20t 정도, 가장 큰 돌은 높이 8.53m에 무게가 300여t에 이른다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문명이 발달하기 전에도 인간의 의지와 지력은 불가사의한 경지였던 모양이다. 그보다 훨씬 오래전인 4000여 년 전, 이집트에서 사막에 거대하게 쌓아 올린 기자의 피라미드를 보면서도 혀를 내 둘렀던 기억이 있지만 이렇게 산 정상은 아니었다. 최대 피라미드인 쿠푸의 대피라미드는 146m 높이에 2.5t 무게의 사각 돌 300만개를 사용했다고 하니 물론 두 곳 다 경이의 대상이다.

‘신(新) 세계 7대 불가사의’ 재단이 2000년 새천년을 기념하기 위해 6년간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인터넷과 전화 투표를 진행한 결과 마추픽추는 중국의 만리장성, 멕시코의 마야 유적지, 인도 타지마할 등과 함께 선정됐다. 일부 고고학자들은 현재의 마추픽추가 원래의 구조물 그대로의 형상을 오랜 세월 동안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애당초 이곳의 존재를 스페인 정복자들이 발견하지 못해 파괴와 약탈을 피할 수 있었던 덕분이라고 추정한다. 특히 고원지대에 매달려있는 데다 늘 구름이 산봉우리를 가려 일부러 산꼭대기를 올라가지 않는 한 발견이 어렵다.

또 다른 설도 있다. 이곳이 에스파냐의 공격으로 몰락할 위기에 놓이자 1000여 명의 잉카인은 노인과 처녀들을 한구석에 생매장하고 전투에 필요한 남자들은 더 깊은 곳으로 사라져버렸다는 설이 그것이다. 생존자들이 어느 산꼭대기에서 무엇을 먹고 어떻게 생존했으며 그 후 어디로 가서 어떻게 죽었는지 역사는 아직도 명확한 단서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산 정상에서 100여 구의 여성과 어린이 시신이 발견된 것은 단지 신에 바쳐진 제물이었다는 말도 있다. 또는 이곳에서 하산한 원주민 남성들이, 전쟁 당시 페스트가 유행하던 유럽에서 건너온 침입자들에게 전염돼 몰살됐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그래서 ‘잃어버린 공중 도시’, ‘태양의 도시’라는 이름은 비밀스러움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더해준다.

경사도가 50도는 족히 넘어 보이는 산비탈 여기저기에 마치 대평원처럼 펼쳐진 계단식 밭은 상상을 불허한다. 인간의 지혜가 어디까지 육신의 힘을 능가하는 초능력을 발휘하도록 하는지 조물주의 위대함을 새삼 느끼게 한다. 축대를 쌓아 평지를 조성한 계단식 밭에,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지하수로로 이동시키는 관개수로를 만들어 옥수수와 감자 등의 식량을 얻었다니 놀라울 뿐이다. 게다가 천문학적 사고와 기술로 동서남북을 알려주는 해시계를 산꼭대기 최고점 돌기둥에 설치했다니 과연 호모 사피엔스의 능력은 어디까지일까 생각하게 된다.

이렇듯 대단했던 잉카인들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을까? 1911년 발견 후 110여년이 지나도 별다른 증거물이 없는 마추픽추는 향후에도 계속 신비의 공중도시로 남아 후손들의 호기심만 계속 유발할 것으로 보인다. 문득 비밀에 싸여 신비감을 갖게 하는 곳으로 남는 것, 꼭 정답을 밝혀내야 좋은 건 아니라는 감정도 들었다. 부지불식간에 모든 것이 샅샅이 드러나는 현세에 살면서 호기심과 안타까운 마음으로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펴보게 하는 어느 한구석이 지구 위에 존재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추픽추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 관문인 오얀타이 탐보(OllANTAYTAMBO) 역시 마을 전체가 유적지 같아 시간을 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면 ‘느린 여행’의 편안한 진면목을 느끼게 된다. 아주 까마득한 시절에 우리가 시골 마을에서 겪었던 풍경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아마 다시는 이런 과거로의 여행은 힘들 것 같다.

알파카와 페루 원주민 여인


▎쿠스코 대성당을 배경으로 결혼식을 올린 원주민들. / 사진:고혜련
먼지가 뽀얗게 일어나는 길거리를 달리는 낡고 촌스럽지만 정다운 세 바퀴의 작은 자동차는 금방 고장 나 멈춰 설 것 같다. 아마 수십 년간 수십만 킬로미터 이상을 달리지 않았을까. 자동차 박물관에 있으면 딱 어울릴 것 같은 모습이다. 그 힘들고 바쁜 와중에 멋 부린 듯 알록달록한 오색 두건과 망토 등을 차려입은 할머니들이 손수 뜨개질한 투박한 가방 모자 등을 팔려고 요란한 손짓과 몸짓을 한다.

오색으로 염색한 알파카의 털을 섞어 기계로 짠 스웨터는 여행객 행색에 맞춰 부르는 게 값이지만 차가 떠날 때면 얼마든지 싸게 던져준다. 아무 상표도 없고 조악한 맛은 나지만 귀국 후 한겨울에 입어보니 보온성이 좋았다. 알파카의 털 부스러기를 꽤 많이 넣었나 보다. 어느 나라든 백화점 등에서 파는 알파카 제품은 꽤 고가인데 말이다. 잉카 흔적의 마을을 오가면서 만난 나이든 페루 원주민 여인들의 모습은 한결같다. 중절모양의 모자, 뚱뚱해 뒤뚱거리는 몸매에 마치 패티 코트를 안에 입은 듯한 벙벙한 치마, 작은 키에 양 갈래로 땋은 머리 등이 그렇다.

시간을 초월한 공간

마추픽추에서 돌아오는 길에 쿠스코에서 북쪽으로 50㎞ 정도 떨어진 곳, 역시 높은 산 위에 형성된 논밭처럼 보이는 하얀 염전지대가 눈길을 붙잡는다. 해발 3200m 고원지대를 덮고 있는 소금밭은 살리네라스 마라스(Salineras de Maras). 지하에 형성된 나트륨광의 소금 온천수가 물줄기로 솟아 흘러 이를 받아들인 것이 거대한 염전이 됐다고 한다. 지진이나 화산 폭발, 침식 등으로 지구 표면이 뒤집혀 산이 바다가 되고 바다가 산이 되는 그 영겁의 세월 속에서 우리는 한순간, 한 점으로 살다 사라지는 미물임을 깨우친다.

이곳에서 내려와 다시 리마 공항으로 스며들었더니 까마득한 세월을 거슬러 다른 시간대에 살다 온 느낌이 한동안 지속됐다. 우리의 현재도 언젠가는 후손들에게 까마득한 과거의 한 시절 유물로 비치리라.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현재를 잘 살아내는 것이 결국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잘 사는 길이라는 걸 알려주는 듯하다. 여행은 결국 되돌아오는 것이다. 여행은 현존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다시 재무장해 주어진 삶에 정진하게 하는 활력소이자 청량제임이 틀림없다.

※ 고혜련 - 칼럼니스트. 자연과 함께하기, 온 세상 여행하기가 요즘 주요 관심사다. 중앙일보 등 국내외 주요 일간지에서 기자·문화부장·런던특파원을 지냈다. [어머니, 당신은 내 운명], [힘내! 이제 다시 시작이야] 등 7권의 저서가 있다. 이화여대를 거쳐 미국 뉴저지주립대, 영국 런던대에서 국제정치·저널리즘을 전공했다. 현재 출판사 (주)제이커뮤니케이션 대표로 일한다.

202309호 (2023.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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