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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연구 | ‘현캐’ 배구단 스토리 (1)] ‘창조적 파괴’ 감행한 초보감독 최태웅의 혁신 

우승이 목표가 아닌 세상 하나뿐인 배구팀을 꿈꾸다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코치 경험 없이 바로 감독 직행한 최태웅, 국가대표 세터 내보내며 스피드배구 실험
‘패배수당’ 도입하며 원팀 컨센서스 확보, 부임 첫해 18연승 거두고, 다음해 우승까지


▎최태웅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감독은 구성원의 컨센서스를 확보한 토대 위에서 자신의 고유한 비전을 실행으로 옮겼다. / 사진:연합뉴스
2015년 3월의 어느 날, 김호철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감독(현 IBK기업은행 감독)은 여의도 현대카드 사옥으로 들어갔다. 그를 호출한 이는 정태영 구단주였다. 계약 기간이 남았음에도 김 감독은 사퇴를 결심한 상태였다. 2014~2015시즌 현대캐피탈은 7개 팀 중 5등(15승 21패, 승점 52)을 했다. 2005년 V리그 출범 후 처음으로 봄배구에 나가지 못했다.

리그 최고의 세터(최태웅·권영민), 최고의 국내 공격수(문성민), 최고의 리베로(여오현), 최고의 외국인선수(아가메즈)를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실적은 처참했다. ‘흘러간 물에 다시 발을 담글 수 없다’는 스포츠계의 불문율을 거스르며, 스카이워커스에 V리그 2회 우승을 안겨준 김 감독을 재영입했건만 효험이 없었다. 아가메즈가 부상으로 시즌 아웃됐을 때에는 불과 8시간 만에 외국인선수 교체(케빈 영입)를 승인해줄 정도로 정 구단주는 필사적이었지만 반전은 없었다.

1승당 투입 비용을 추산하면 극악의 효율이었다. 어느 신문은 그해 스카이워커스를 ‘부도수표’에 비유했다. 배구단이 기업이었다면, 망했거나 흡수합병 당했을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열심히만 하는 것은 소용없다”


▎2015년 4월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는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그들은 기존 한국 배구의 패러다임에 구애받지 않는 독자적인 운영 체계를 갈망했고, 최적의 리더를 찾아내 관철했다. / 사진:현대캐피탈
당시 팀의 구단주였던 정태영 부회장은 2003년 현대카드 CEO로 부임했다. 그 시점에 현대카드의 시장 점유율은 불과 1.7%였다. 빚만 2조원이었다. 회생 불능처럼 여겨지던 회사를 맡았을 때, 정 부회장은 아내인 정명이(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의 차녀) 현대커머셜 사장에게 “신난다”라고 말했다.

정 부회장의 취임 시점 1.7%였던 점유율은 16%(2022년 12월 기준)까지 확대됐다. 재무구조의 건전성을 훼손하지 않으며 카드업계 2위권으로 진입했다. 현대카드의 실적 턴어라운드를 이끌어낸 솔루션은 ‘브랜드 경영’이었다. 그는 “브랜딩은 기업의 철학이자 페르소나”라고 규정했다. “브랜딩을 위한 단어마저도 수식어나 미사여구가 아닌, 특질을 잡아주는 것이어야 한다”며 타협 없는 완결성을 추구했다.

현대카드에서 ‘브랜드’가 차지하는 위상은 ‘조직원 전체가 추구하는 가치·원칙·철학·문화를 포괄하는 존재 그 자체’에 해당한다. 정 부회장은 “자기업(業)에 대해 정의하지 않고, 열심히만 하는 것은 소용없다. 자신의 롤을 시기에 맞춰 전환하지 않으면, 자꾸 엉뚱한 일만 하게 된다”고 조직 전체를 몰아붙였다.

2015년 3월 시점에서,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배구단은 CEO 정태영이 편집광적으로 집착한 ‘브랜드’의 통일성을 깨는 존재였다. “현대카드 사옥에서 내려다보이는 여의도 주변 모든 가게들의 간판이 ‘현대카드 서체’였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디테일을 중시하는 그의 기준에서 배구단은 용납할 수 없는 ‘문제 조직’이었다.

현대카드는 ‘Cool(엄정함), Pride(자부심), Reason(논리), Simplification(단순함), Speed(과감함)라는 다섯 단어에 따라 결정하고, 움직인다’고 대내외에 선언한 회사다. 이 가운데 단순함은 “관습을 버리고 백지에서부터 새로움을 상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2015년 3월, 정 부회장이 사퇴를 앞둔 김호철 감독을 따로 불러 ‘컨설팅’을 받은 것은 백지에서 새로움을 설계하는 ‘창조적 파괴’의 첫머리에 해당했다.

훗날 김 감독은 그 자리에서 “눈앞의 경기를 이기는 데 급급했다”, “회사가 많은 돈을 썼으니, 우승만을 바라는 줄 알았다”, “조급증을 선수단이 털어버리지 않는 한, 누가 감독으로 와도 힘겨울 것” 등의 직언을 전했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독대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3월 23일, 김 감독 사임이 공식 발표됐다. 독특하게도 보도자료에 물러나는 감독의 소회가 실렸다.

나이키 창업주 필 나이트는 자서전 [슈독]에서 “단순한 제품을 넘어 우리는 아이디어, 정신을 판매한다”고 적시했다. “현대카드는 단순히 카드를 파는 것이 아니라 물건의 정신, 스토리를 판다”는 정 부회장의 경영 철학과 거의 정확히 일치한다. 이 관점을 배구단 재생에 적용하려면, 우선 ‘왜 스카이워커스 배구단은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업(業, 필연성)부터 찾아내야 했다. 그 바탕 위에서 사람들을 매혹시킬 스토리라인의 골격을 현대카드의 ‘문법’으로 세우겠다는 전략이다.

현대카드가 한창 약진을 거듭하던 시절, 업계 1위인 신한카드의 당시 CEO는 “1등과 2등의 격차는 엄정한 것”이라며 견제구를 날렸다. 그러자 정 부회장은 페이스북에 “진부한 1등을 할 바에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2등이 낫다”는 요지의 글을 올리며 맞받았다.

그런 맥락에서 2015년 3월,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의 환부는 5등이라는 성적 자체가 아니었다. 배구단 관계자는 “지는 것은 참아줄 수 있어도, 목적 없이 1등(삼성화재)을 모방하는 것은 인내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애플은 나스닥 시가총액 3조 달러(약 4000조원)를 넘나드는 글로벌 1위 기업이다. 그럼에도 충성고객들은 이 회사를 골리앗이 아닌 다윗의 이미지로 받아들인다. 애플이 축적하고 전파하는 혁신적 스토리와 세련된 브랜드의 위력에 매혹된 덕분이다.

언더독 효과


▎2023년 6월 미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애플 파크에서 팀 쿡 애플 CEO가 나타나자 이 회사의 충성 고객들이 집결했다. 세계 시총 1위 애플의 위력은 혁신의 이미지를 선점한 데서 나온다. / 사진:연합뉴스
현대카드 역시 업계에서 결코 작은 회사가 아니지만, 과거 IBM과의 이미지 전쟁 당시 애플이 해냈던 것처럼, ‘언더독(underdog) 효과(사람들이 약자라고 믿는 존재를 더 응원하는 심리 현상)’를 원했다. 현대캐피탈은 엄연히 V리그의 빅클럽이지만, V리그 8회 우승에 빛나는 ‘무적함대’ 삼성화재와 대척점에 서는 팀으로 각인돼야 했다. 삼성화재 블루팡스가 뉴욕 양키스나 레알 마드리드처럼 비친다면,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는 보스턴 레드삭스나 FC 바르셀로나와 같은 위상을 확보해야 했다.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는 “여정 자체가 보상”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 문장을 변주하면, 2015년 3월 시점의 스카이워커스는 우승 자체가 아니라 우승까지 도달하는 프로세스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리셋될 전환점에 있었다. “세상에 이런 배구단 하나쯤은 있어도 되잖아”가 정 부회장이 원한 종착지였다.

정 부회장은 평소 회사 중역들을 향해 “우리는 이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내년에도 관성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최적의 인물이라 내년에도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배구단의 변화에도 그를 대신할 합목적적(合目的的) 리더가 필요했다.

종전까지 스카이워커스는 여느 팀들처럼 단장 중심의 프런트와 현장의 감독 사이의 권력 분할로 운영됐다. 하지만 구단주는 이 관례부터 파기했다. 극한의 효율성을 추구하려면, 권한을 한 명의 리더(감독)에게 집중시켜야 한다고 판단했다.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는 리스크를 피해가려면 새로 선임될 감독은 사심 없이 ‘배구에 미친’ 괴짜(nerd)여야 했다.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영화 [인터스텔라]의 대사처럼 그들은 답을 찾아냈다.

2015년 4월 2일 팀은 ‘현대캐피탈스럽게(실제로 구단은 보도자료에 이 단어를 사용했다)’ 새 감독 선임을 발표했다. 파격적으로 발탁된 새 감독은 “구단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다. 현대캐피탈 배구단만의 스타일을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짤막한 취임 소감을 밝혔다.

꽤 시간이 흘렀어도 최태웅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감독은 그날의 일을 온전히 떠올리지 못했다. 2015년 3월 말의 어느 봄날, 그는 갓 결혼한 문성민의 집들이 모임 중에 “현대캐피탈 새 감독이 됐다”는 벼락같은 기별을 접했다. 최 감독은 훗날 “경기도 분당에서 여의도까지 어떻게 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왜 나일까?’, 운전하며 그 생각만 머릿속을 맴돌았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변화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최태웅 감독 부임 이래 훈련 중인 코트는 코치와 선수들만의 공간이 됐다. 여기에는 프런트는 현장을 존중한다는 묵시적 표시와 함께 선수들은 오직 감독에게만 충실하면 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 사진:현대캐피탈
현대캐피탈에서 현역 은퇴를 앞둔 39살 세터가 일약 감독으로 발탁된 것이다. 4월 2일 공식발표가 나오자 중학교 코치 경험조차 없었던 그의 이력을 두고 세상은 불안한 시선을 감추지 않았다. 게다가 초보감독은 기질적으로 비(非)정치적이었다. 외풍(外風)으로부터 새 리더십을 지켜주기 위한 방편으로, 팀은 파격적 권한을 신임 감독에게 몰아줬다. ‘현장 인사권=감독, 연봉 협상권=프런트’라는 프로스포츠계의 오랜 불문율을 깨며, 연봉 협상권까지 일임했다. 언젠가 그가 웃으며 꺼낸 표현을 빌리면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사용자 겸 노동자 감독”의 탄생이었다.

심지어 팀은 내부적으로 ‘프런트’라는 용어도 폐기했다. ‘배구지원팀’으로 네이밍을 변경했다. 프런트는 감독을 보조하는 존재일 뿐이라고 서열을 정리한 것이다. 팀은 감독과 단장을 거의 동시에 교체했는데, 새로 임명된 신현석 단장은 배구 문외한이었다. 퇴직 후 복직한 신 단장은 “권한과 책임을 넘겨주려는 마음을 정하고 왔다. 그래서 배구에 관해 아무 것도 몰라도 불안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 감독과 신 단장 부임 직후 누구나 감지할 수 있는 두 가지 변화가 목격됐다. 먼저 최 감독의 요청으로, 훈련 중 단장을 포함한 프런트 누구도 코트에 발을 들이지 않게 됐다. 사진 찍는 직원만 예외로 ‘성역’에 출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신 단장 지시로 ‘캐슬(충남 천안에 소재한 현대캐피탈의 훈련·재활·숙소 기능을 겸비한 복합 베이스캠프의 명칭)’의 방 배치가 바뀌었다. 종전까지 코치실이 따로 없었는데, 단장실을 비워 코치들한테 내줬다. 그 대신 신 단장은 배구지원팀 사무실 구석자리로 옮겼다. 공간은 권력을 상징한다. ‘힘은 현장에 있다’는 암묵적 합의는 현재의 이교창 단장 체제에서도 계승되고 있다.

존 코터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석좌교수는 [변화관리 8단계 모델]을 이론화했다. ▷1단계 : 위기감 조성 ▷2단계 : 변화추진 주체세력 결집 ▷3단계 : 비전 설정 ▷4단계 : 비전 전파 ▷5단계 :구성원 임파워먼트(impowerment) ▷6단계 : 단기적 성과 개선방안 탐색과 실행 ▷7단계 : 전반적인 경영방식의 변경 ▷8단계 : 새로운 경영방식의 제도화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1~4단계는 조직 혁신의 초기 단계에서 실행된다. 5~8단계는 개혁이 궤도에 진입한 다음에 발현된다.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의 개선 프로세스는 이 모델에 부합한다. 장기 침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팀은 리모델링(점진적 개선)이 아니라 골조까지 다 갈아엎는 재건축(속도전) 경로를 채택했다. 그 실행자로 낙점된 최 감독은 원팀(one team)이라는 목적을 위해 인적 쇄신(변화 주체세력 결집)을 감행했다. 스피드배구라는 비전(3단계)을 위한 토대 쌓기였다.

혁명에 준하는 개선을 달성하기 위해 팀은 최 감독에게 독특한 위상을 부여했다. 그의 표면적 신분은 봉급을 받는 노동자였지만, 실상은 구단주를 대리하는 오너 경영인처럼 처신했다. 여느 감독들과 달리 그의 임기 내내 현대캐피탈이 단기성과에 함몰되지 않고, 지속가능한 플랜을 추구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혁신과 팀워크는 같이 움직인다”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는 현대자동차그룹의 금융회사인 현대캐피탈을 모기업으로 두고 있다. 금융회사의 특징인 숫자에 의한 검증과 엄격한 정보 보안은 이 팀에도 작동하는 키워드다. / 사진:현대캐피탈
최 감독 선임 후 불과 1주일 만인 4월 7일, 배구계 전체가 경악할 일대사건이 터졌다. 현대캐피탈이 35살의 국가대표 세터 권영민(현 한국전력 감독)을 KB손해보험으로 트레이드한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 대가로 현대캐피탈이 받아온 선수가 23살의 무명 세터 노재욱(현 삼성화재)이라는 점이었다. 여론은 “최태웅이 현금을 주고, 어음을 받아왔다”며 싸늘하게 반응했다. 트레이드가 워낙 비대칭이어서 최 감독과 권영민의 불화설마저 돌았다.

오래지 않아 이 트레이드는 최 감독의 업적으로 반전되지만, 정작 그는 “다시 돌아가라면 그렇게 못할 것 같다. 그때는 몰랐으니까 무모할 수 있었다”고 떠올린다. 권영민의 실력이나 인성에 하자가 있어서 내보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최 감독은 두 가지 필연성을 품고, 독하게 읍참마속을 결행했다. 무엇보다 스피드배구(토털배구)를 현실로 옮기기 위해선 피지컬(키 191㎝)이 출중하고, 아직 자기 색깔이 없는 세터가 절실했다. 노재욱은 고질적 허리 부상이 있었고 디테일이 약했지만, 스피디한 토스를 쏠 줄 아는 강점이 뚜렷했다. 이런 단점 때문에 노재욱은 이전 팀에서 후보였지만, 최 감독이 중시한 것은 선수의 장점이었다.

그리고 원팀이 성립하려면 리더는 오직 한 명이어야 했다. 최 감독이 간택한 뉴 리더는 29살의 아포짓 문성민이었다. 문성민 중심으로 팀을 재편하기 위해선 ‘기득권’을 배제해야 했다. 이를 위해 최 감독은 권영민을 트레이드하고, 33살 센터 윤봉우를 은퇴시켰으며, 37살 리베로 여오현의 보직을 플레잉코치로 바꾸는 ‘악역’을 마다하지 않았다.

인적 쇄신의 마지막 퍼즐에 해당한 외국인선수 영입에서도 현대캐피탈은 배구계의 관례를 역행했다. 2015년 6월 25일, 29살의 쿠바 출신 아웃사이드 히터 오레올 영입을 발표한 것이다. 오레올이 V리그에서 이미 실패한 선수였기에 여론은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는 2012~2013시즌 LIG손해보험(KB손해보험의 전신)에서 뛰었지만, 팀은 5위에 그쳤고 1년 만에 팀을 떠났다.

당시 배구계에서는 최 감독이 러시아 출신의 당대 최강 센터 겸 아포짓 드미트리 무셜스키를 뽑을 것으로 예상했다. 당시 OK저축은행(현 OK금융그룹)김세진 감독과 석진욱 수석코치는 2014~2015시즌 V리그 우승 당시, 브라질 출신 시몬을 멀티 포지션(전위에서 센터, 후위에서 아포짓)으로 활용하는 전술을 들고 나와 삼성화재 전성시대를 마감시켰다.

배구팬들 사이에서 시몬은 “팀보다 위대한 선수”라는 찬사를 들었다. 현대캐피탈이 무셜스키를 영입한다면 시몬과 맞설 수 있었다. 그러나 최 감독은 경쟁자의 성공 방식을 답습하지 않았다. 어떤 형태가 됐든 특정선수 1인에게 의존하는 배구는 현대캐피탈이 지향하는 길이 아니었다.

그 대안으로 최 감독이 택한 ‘제3의 길’은 토털 패키지형 아웃사이드 히터였다. 후위에서 서브 리시브와 파이프 공격에 두루 능한 자원을 골랐다. 최 감독은 외국인선수의 ‘몰빵’ 공격보다 리시브 효율에 가중치를 뒀다. ‘전원 공격·전원 수비’를 표방하는 토털배구의 포석은 이렇게 완성됐다. 그리고 최 감독 임기 첫해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는 V리그 역사상 가장 완벽한 배구를 보여줬다. 그것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로. 마치 구글의 안드로이드 동맹을 거부하고 독자적 운영체계(iOS)를 구축한 애플처럼.

V리그 역사상 가장 완벽한 팀


▎V리그에서 현대캐피탈은 관중 흡인력이 가장 강력한 팀으로 꼽힌다. 또한 팬이 팀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유대감도 농밀하다. / 사진:현대캐피탈
최태웅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감독의 첫 시즌이 얼마나 압도적이었는지는 숫자로 입증된다. 이 팀은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열린 후반기 18경기를 전부 이겼다. 특히 최종 6라운드 6경기는 모조리 세트스코어 3-0 셧아웃 승리였다. 현대캐피탈은 이듬해 개막 첫 3경기까지 승리를 이어가며 정규리그 21연승 기록을 작성했다. 이 모든 것은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2015~2016시즌 현대캐피탈은 28승 8패(승점 81)를 거뒀다. V리그 역사상 단일시즌 최다승·최다 승점 기록이다. 하지만 과정을 들여다보면 마냥 순탄치만은 않았다. 팀은 전반기를 7개 팀 중 4위(10승 8패, 승점 31)로 마쳤다. 특히 전반기 마지막 3경기에서 당시 1~3위를 달리던 OK저축은행, 대한항공, 삼성화재를 만나 잇따라 패했다.

이 타이밍에서 최 감독은 뜻밖의 행동을 취했다. 선수들에게 소위 ‘패배수당’을 지급한 것이다. 3연패를 한 팀에게 ‘잘 졌다’고 상을 준 것이다. 혁신적 품질경영 기법인 ‘6시그마’를 전파한 GE의 전설적 CEO 잭 웰치는 “칭찬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지갑으로 하는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비슷한 맥락에서 최 감독도 ‘이유 없는 승리보다 의미 있는 시행착오가 낫다’는 결의를 구성원들에게 보여준 셈이다.

돌이켜보면 ‘패배수당’이 나온 그 순간이 이 팀의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였다. 맬컴 글래드웰의 책 제목 덕분에 유명해진 이 용어는 ‘작은 변화들이 어느 정도 기간을 두고 쌓여서 이제 하나만 더 일어나면 갑자기 큰 영향을 일으킬 수 있는 상태’를 지칭한다.

‘K-스피드배구’의 탄생

최태웅 감독이 설정한 스피드배구(토털배구)가 궤도에 진입하기까지 비교적 오랜 시간이 소요된 이유는 그 스타일의 독특성 때문이었다. 스피드배구는 리시브의 불완전성을 전제로 성립한다. 상대팀 서브가 코트로 날아오는 순간, 리베로와 두 명의 아웃사이드 히터, 심지어 센터까지 리시브에 가담한다. 그리고 리시브가 세터에게 도달하는 순간, 센터와 전위의 양 날개 공격수 2인 그리고 후위의 아웃사이드 히터 1인까지 (볼을 올려주는 세터와 수비 전담 리베로를 제외한) 총 4명의 플레이어 전원이 공격 채비를 갖춘다. 네 방향에서 옵션이 발생하는 만큼 확률적으로 상대 블로커라인이 예측하기 어렵다. 이렇게 상대 블로킹을 분산시킬 수 있다면, 굳이 외국인 선수에게 공격 점유율을 몰아주지 않아도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스피드배구의 이론은 이렇게 성립했지만, 문제는 현실에 적용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었다. 현대 배구는 갈수록 서브의 강도를 올리는 추세에 있다. 배구 지도자들은 “약하게 서브를 넣을 바에는 차라리 세게 때리다가 실수를 하라”고 권장한다. 리시브 라인을 교란하기 위해 스파이크 서브 외에 플로터 서브까지 추가됐다. 이럴수록 ‘퍼펙트 리시브’나 ‘포지티브 리시브’ 가능성은 떨어진다. 즉, 불완전한 리시브가 올라올 때에도, 세터는 어떻게든 빠르게 볼을 패스해야 하며 코트의 플레이어 전원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여야 스피드배구는 온전히 기능할 수 있다. 한 명이라도 그 스피드를 따라가지 못하면, 시스템 전체가 붕괴되는 것이다.

최태웅 이전에도 V리그에서 스피드배구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 결과 배구인들 사이에서 “한국인의 피지컬에서 스피드배구는 불가능하다”는 관념은 일종의 상식처럼 통했다.

최 감독의 독특한 구석은 ‘스피드배구를 해냈다’는 결과가 아니라 ‘정말 스피드배구가 안 되는 것이 맞는가’라고 기존 상식에 의문을 품은 지점에 있다. 2015년 8월, 그는 해외출장을 떠났다. 목적지는 이란 테헤란이었다. 아시아선수권대회가 열린 체육관에서 최 감독과 송병일 코치(현 한양대 코치), 진순기 전력분석코치(현 현대캐피탈 수석코치)는 손에 스톱워치를 쥐고 있었다. 그들은 이란, 일본 등 아시아 배구 강국의 플레이 속도를 반복적으로 체크했다.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수뇌부는 경험과 감(感)을 최대한 배제했다. 금융회사 소속 배구팀이라는 정체성에 걸맞게 그들은 가설을 세우고 숫자로 검증된 다음에야 비로소 행동했다. 밖에서 보기에는 무모한 짓을 벌이는 것 같아도, 직관이 아니라 숫자를 믿고 결행하는 것이 이 팀의 일관된 방식이다.

반면 적잖은 배구인들은 현대캐피탈의 성취를 마냥 호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태웅의 혁신은 본질적으로 기존의 방식을 부정하는 바탕에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관점에서 현대캐피탈과 최태웅 감독은 ‘이단적’이었다.

게다가 현역 시절 최태웅은 국가대표 세터, 최고연봉선수, V리그 MVP 등을 경험한 스타 중의 스타 출신이었다. “배구는 배구인의 것”이라고 외치는 선봉이어야 마땅했지만, 정작 감독이 되더니 기존의 프레임을 파괴하고 있었다. 전통주의적 배구인들이 추종했던 카리스마·헌신·희생·인내 등의 가치로 점철된 세계관을 최 감독과 현대캐피탈은 거부했다.

배구판의 ‘문명의 충돌’

마이클 루이스는 논픽션 [머니볼] 일본어판에서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빌리 빈 단장(현 오클랜드 수석 고문)이 일으킨 ‘머니볼 혁명’을 공화주의자(오클랜드 빌리 빈 단장)와 봉건주의자(전통적 야구인) 사이의 종교전쟁에 비유했다. [머니볼]에는 ‘그(빈 단장)가 생각하기에 진리의 추구는 결국 성공으로 이끄는 열쇠나 다름없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스포츠에서도 (데이터로 뒷받침되는) 진리의 문법이 존재한다’고 믿는 대목에서 최 감독과 빈은 닮은꼴이라 할 수 있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2312호 (2023.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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