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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석의 19세기 미시사 탐구(10)] 조선시대에도 조직폭력배가 있었을까 

‘왈짜’와 ‘한량’은 지금의 조폭과 달랐다 

서울에서 주로 쓰던 말 ‘왈짜’는 기생과 밀접한 연관 있던 이들 지칭
무과 합격했어도 직책 없으면 ‘한량’… 떼지어 다니며 문제 일으키기도


▎풍속화가 신윤복이 그린 ‘연소답청’. 남녀 세 쌍이 행락길에 나섰다. 한량이 기생에게 담뱃대를 건네고 있다. 조선후기 한량은 무과 시험에 합격했지만, 직책을 받지 못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극장가를 휩쓸던 ‘조폭’ 영화가 요즈음은 좀 뜸해졌지만, 폭력은 영화나 드라마는 말할 것도 없고 만화나 게임 등에서도 여전히 매우 흔한 소재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 허구의 세계에서만이 아니라 실제 세상도 일상적 폭력에 노출된 상태다. 현대인은 문자 그대로 ‘폭력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엄격한 신분 사회인 조선시대보다 민주주의 정치 체제라고 하는 현재가 더 폭력적인지도 모른다. 봉건시대에는 왕을 정점으로 하는 국가의 폭력이 중심이었다면, 현재는 공권력의 폭력만이 아닌 다양한 폭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조폭은 조직폭력배를 줄여서 쓰는 말이다. 사전에서는 ‘조직을 이뤄 폭력으로 불법 행위를 저지르는 무리’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이 조폭이 조선시대에도 있었다는 얘기를 자주 접하게 된다. 어느 시대나 폭력배는 있게 마련이지만, 현재의 조직폭력배처럼 순전히 이익을 위한 폭력조직이 조선시대에도 있었는지는 잘 살펴봐야 할 것이다.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말 중 ‘왈짜’라는 단어가 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왈짜를 조직폭력배와 비슷한 것으로 표현한 글을 볼 수 있다. ‘퍼서 나르는’ 인터넷 속성 때문에 왈짜에 대한 이런 내용은 널리 퍼져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왈짜를 현재의 조폭이나 깡패와 비슷한 의미로 쓰는 사례도 많다. 그런데 19세기 조선에서 쓰던 왈짜라는 단어에 이런 의미가 들어 있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왈짜와 함께 쓰이는 말 중 ‘한량’이라는 단어가 있다. 현재는 본래 의미보다는 일정한 직업이 없이 잘 노는 사람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한량은 고려사나 조선왕조실록 같은 공식적 역사 기록은 물론 과거 기록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단어다. 그런데 현재와 같은 의미로 쓰인 예는 공식 기록에서 보기 어렵고, 소설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한량과 달리 왈짜는 공식 기록에서는 볼 수 없는 단어다. 과거 문헌 중 왈짜를 구체적으로 묘사한 것은 한글 소설뿐인데, 그것도 [춘향전]과 [계우사] 등 몇 작품에만 나온다. 그리고 야담 같은 한문 문헌에 가끔 나타나기는 하나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왈짜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이 단어가 등장하는 소설 내용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선후기 왈짜와 한량이 어떤 의미였는지 소설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소설 '계우사'에 등장하는 왈짜

왈짜가 등장하는 [계우사]는 방탕한 인물인 주인공 김무숙이 평양 기생 의양을 첩으로 삼은 후 벌어지는 여러 가지 내용을 담은 소설이다. 주인공 김무숙은 기생 의양에게 자신의 배포가 크다는 것을 보여주려다 가산을 탕진하고 자살을 생각한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의양의 도움으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계우사(誡友詞)는 친구를 깨우쳐준다는 의미다. 기생 의양이 왈짜 김무숙을 개과천선시키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준다는 뜻으로 보인다.

소설에서 주인공 김무숙을 묘사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김무숙은 “중인 가운데서는 지체가 높고, 돈이 많으며, 인물이 좋고, 옷도 잘 입으며, 친구 사이에 의리도 있고, 호방하고 말 잘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하고, 남의 일도 부탁하는 대로 잘 해주며, 위험을 피하지 않는다.” 또 “과거 답안지를 작성하고 편지를 쓸 정도의 글 솜씨를 갖추었으며, 활쏘기와 무예에 달통했다.” 여기에 더해 그는 “노래 잘하고, 악기에 대해서도 잘 알며, 여자에게 돈 잘 쓰고, 노름과 잡기에도 능한” 사람이다.

김무숙의 이러한 몇 가지 장점은 고소설에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주인공을 묘사하는 일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계우사]에서 주인공에 대한 묘사를 한 방식에는 일반 고소설과 다른 점이 있는데, 주인공의 단점을 적시했다는 것이다. 고소설 주인공은 대체로 결점이 없는데 비해 [계우사]에서는 주인공의 단점을 여러 가지 나열했다.

주인공 김무숙은 “지식이 부족하고 마음은 허랑하며”, “옳은 말에 성을 내며 그른 말은 곧이듣고”, “밤낮없이 색주가 다니기를 일을 삼아, 술집은 사랑방이고 기생집은 본가”처럼 여겼으며, “남이 떠받들어주면 좋아하고 친구가 착한 일을 권하면 싫다고 하는” 인물이다.

소설에서는 주인공 김무숙을 왈짜라고 했는데, 위에서 본 주인공의 장점과 단점이 왈짜의 일반적 면을 보여주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김무숙에만 해당되는 특별한 면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런데 [계우사]는 방탕한 인물이 개과천선한다는 이야기의 한 전형으로, 이와 같은 유형의 고소설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므로 김무숙의 성격을 왈짜의 일반적 성격으로 보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다. 만약 이 작품을 통해 왈짜의 특징을 찾아보려고 한다면 주인공 이외에 다른 여러 왈짜의 행동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왈짜가 등장하는 대목은 대부분 기생과 관련된 내용이고, 다른 대목에는 왈짜가 나타나지 않는다. 왈짜가 등장하는 대목 몇 군데를 보면 기생과 악사 및 가수들을 모아놓고 큰 놀이판을 벌이는 곳, 평양 기생 의양이 서울에 올라와 머물고 있는 집, 김무숙을 의양의 집으로 데려가는 대목 등이다. [계우사]를 통해 알 수 있는 왈짜에 대한 정보는 이들이 기생이 끼어 있는 놀이판과 밀접하게 연관됐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이상 자세한 내용을 보여주는 것은 없다.

옥에 갇힌 기생 춘향 돕던 왈짜


▎한량은 발음이 변해 ‘활량’이라고도 했다. 활터에서 활 쏘는 사람도 활량으로 불렸다.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 미국 대표단이 8월 8일 충남 아산 현충사에서 전통 활쏘기 체험을 하고 있다. / 사진:문화재청
여러 버전의 [춘향전] 가운데 왈짜가 등장하는 것은 서울 도서대여점에서 빌려주던 세책이다. 전주에서 나온 [열녀춘향수절가]에는 왈짜가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면 왈짜는 주로 서울에서 쓰이던 말로 보인다.

서울 [춘향전]에서 왈짜라는 말이 처음 나오는 대목은 이도령이 광한루에서 그네 타는 춘향의 모습을 보고 반해서 방자에게 춘향을 불러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이다. 이도령의 부탁을 들은 방자는 기생과 어울릴 때 주고받는 정해진 말을 아느냐고 이도령에게 묻는다. 방자가 이렇게 묻는 까닭은 기생집에 가서 놀기 위해서는 기생이나 다른 손님과 주고받는 정해진 말투를 잘 알고 있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 정해진 격식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기생집에서 쫓겨나거나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됐다.

기생방의 격식을 아느냐는 말을 들은 이도령은 방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세상 사람이 남는 것 하나는 있느니라. 왈짜가 망해도 왼다릿길 하나는 남고, 부자가 망해도 청동화로 하나는 남고, 종가가 망해도 신주보 하나, 향로와 향합은 남고, 남산골 생원이 망해도 걸음 걷는 보수 하나는 남고, 노는 계집이 망해도 엉덩이 흔드는 장단 하나는 남는다 하니,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내가 설마 계집 말 부를 줄이야 모르랴?”

이도령의 이 말은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지더라도 누구나 한두 가지는 남는 것이 있다는 말이다. 자신이 서울에서 자랐으니 기생집 출입하는 격식 정도는 안다는 의미다. 이 대목에서 나오는 부잣집의 청동화로, 종가에서 제사 지낼 때 필요한 도구, 남산골 생원의 걸음걸이, 기생의 엉덩이짓은 모두 각각을 대표하는 특징이다. 그리고 왈짜에게는 왼다릿길이 남는다고 했는데, 청동화로나 걸음걸이와 달리 왼다릿길의 뜻은 알 수 없다. 왼다릿길의 의미를 알 수 있으면 왈짜의 뜻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텐데, 그 의미를 알 수 없으니 왈짜를 이해하는 데 이 대목은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둘째로 왈짜가 등장하는 장면은 춘향이 감옥에 갇히는 대목이다. 춘향이 변사또의 수청을 거절해 매를 맞았다는 말을 듣고 남원의 왈짜들이 모여드는데, 왈짜들은 춘향을 부축해 둘러메고 감옥까지 데려다준다. 그리고 감옥 앞에서 노래도 하고 여러가지 놀이도 하면서 떠들썩하게 놀자, 감옥을 지키는 옥사장이 왈짜들에게 그만 놀고 돌아가 달라고 부탁한다. 이 말을 들은 왈짜 하나가 “기생이 감옥에 갇히면 우리들이 출입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말한다. [춘향전]의 이 대목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왈짜가 기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 정도다.

[춘향전]에서 왈짜는 한 번 더 나온다. 암행어사가 돼 전라도 민정을 살피던 이도령이 시골 농부들에게 봉변을 당하는 대목에서다. 농부 중 어떤 사람은 이도령을 쿡쿡 찌르면서 놀리기도 하고, 어떤 농부는 허름한 복색의 이도령을 보고 “보아하니 당초에는 외입하고 잘 놀던 왈짜로구나”라고 하며 놀려댄다. 이 대목에서도 왈짜는 술집이나 기생집이나 다니면서 잘 노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왈짜와 비슷한 의미로 쓰인 한량

앞에서 본 것처럼 왈짜는 공식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는 단어다. 한글 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비속어 같은 용어였다. 왈짜와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 것으로 한량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단어는 역사 용어로 고려시대부터 쓴 말이다. 조선후기 한량은 무과 시험에는 합격했지만, 직책을 받지 못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됐다. 여기서 변해 일정한 직업 없이 놀고 먹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 된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돈 잘 쓰고 잘 노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 되기도 했다. 한량은 발음이 변해 ‘활량’이라고도 했다. 활터에서 활 쏘는 사람도 활량으로 불렸다.

조선시대에는 후기로 갈수록 과거 시험에서 선발하는 인원이 많았다. 특히 문과보다 무과 합격자가 많았다. 숙종 때는 한 번에 1만5000명 정도를 뽑은 일이 있었다. 정조나 고종 때도 한 번에 2500명 정도를 뽑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인원을 무과 시험에서 합격시켰으므로, 이들 모두에게 관직을 주기가 어려운 면이 있었다. 문과 합격자는 거의 벼슬자리를 받은 반면, 무과 합격자는 직책을 받지 못한 이가 많았다.

서울에 한량이 많아지면서 이들이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존재가 되기도 했다. 정조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병조판서 정창성이 모화관 근처에서 무인들의 활쏘기를 시험했는데, 한량들이 시험장 옆에서 시끄럽게 떠들었다. 그러자 심공작이라는 장교가 이들을 꾸짖으며 떠드는 것을 금했다. 활쏘기가 끝나고 돌아갈 무렵 한 무리 한량들이 병조판서 정창성의 가는 길을 막았다. 그러면서 심공작이 말을 무례하게 해 그 분풀이를 하려고 하니 그를 자신들에게 넘기라고 했다. 병조판서는 이들의 위세에 눌려 심공작을 넘겼다. 심공작은 한량들에게 심한 구타를 당했다.

병조판서는 이 일을 정조 임금에게 보고했다. 정조는 이 일을 다음처럼 처리했다. 먼저 장교를 구타한 한량들을 체포해 처벌했다. 병조판서 정창성은 파직시켰다. 정조의 논리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병조판서는 한 나라 군정을 총괄하는 자리이고, 병조판서가 대동한 장교는 병조판서와 마찬가지 권위를 갖는다. 한량은 무인으로 거친 기질이 있다고 하나, 병조판서가 대동한 장교를 폭행한 것은 병조판서를 때린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이들에게는 군법을 시행하지 않을 수 없다. 임금의 지시에 따라 이 사건에서 폭행에 가담한 한량들은 모두 자세히 조사를 받은 후, 주범은 곤장 100대를 맞고 귀양을 가고, 그 나머지 한량도 모두 곤장을 맞고 귀양을 갔다.

정조가 한량들만 처벌하지 않고 병조판서도 파직시킨 이유는 우선 병조판서가 한량들을 꾸짖어 물리치지 못한 것을 잘못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대동한 장교를 보호하지 못한 것도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19세기 한량들이 무리를 이뤄 여러 가지 폐단을 일으키는 일이 자주 일어났는데, 혈기왕성한 무인들이 아무 할 일이 없으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특히 서울 한량들 가운데는 유복한 집 자제도 많았다. 이들은 당시 시정의 유흥을 주도하던 계층의 인물이었으므로, 자연히 기생을 중심으로 하는 유흥문화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병조판서를 위협해 병조판서를 수행하는 장교를 구타할 정도였다면 조선후기 한량이라는 존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어떠했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한량은 무인이었으므로, 이들과 관련된 사건은 주로 폭력과 연관된 것이었다. 한량은 국가 공식 기록에서 무과 시험과 관련된 사람이지만, 19세기 조선 일반인들에게 한량은 왈짜와 별 차이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식인의 글에서 왈짜와 한량을 같이 다루는 일을 보기 어렵지만, 소설 속에서는 왈짜와 한량은 같은 부류의 인물로 등장한다.

춘향이 남원부사의 수청을 거절해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힐 때 왈짜들이 모여드는데, 이 소식을 들은 활터의 한량들도 함께 모인다. 그리고 “여러 한량 왈짜들이 칼머리를 받아들고 구름같이 둘러싸고 부축하여” 춘향을 감옥으로 데리고 간다. 이 장면에서 왈짜나 한량은 일정한 직업이 없이 노는 사람이고, 기생의 일에는 앞장서서 나서는 사람들이다. [춘향전]에서 왈짜와 한량이 함께 기생 춘향을 둘러메고 감옥으로 가는 장면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면 19세기 조선에서는 이 둘을 거의 같은 부류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기생을 ‘관리하는’ 조직 일원은 야냐


▎왈짜와 한량을 같은 부류로 보는 시각은 홍명희 소설 [임꺽정]에서도 볼 수 있다. 사진은 만화가 이두호가 그린 ‘임꺽정과 차손이’. / 사진:한국콘텐츠진흥원
왈짜와 한량을 같은 부류의 인간으로 보는 시각은 홍명희의 [임꺽정]에서도 볼 수 있다. 식민지 시기 일간신문에 연재한 이 소설은 조선시대 관습과 서민의 생활상을 잘 그려냈다고 평가받는 작품이다. [임꺽정]에는 왈짜나 ‘왈짜패’가 많이 등장한다. 이들과 함께 한량(활량)도 나타난다. 소설의 등장인물인 한온이 임꺽정에게 자신이 기생방에서 봉변을 당한 일의 분풀이를 해달라는 부탁을 하는 대목을 보자.

“마침 밤이 조용해서 기생을 데리고 허튼 수작을 하는 중에 노인정 활량패들이 우 몰려들어옵디다. 전에도 더러 마주친 일이 있어서 안면들은 대개 짐작하는 터이지요. 노인정 활량패에는 무장 대가의 자제가 많이 끼어서 세력 있고 재물 있고 힘꼴 쓰는 장사까지 있어서, 서울 안 기생방을 주름잡고 돌아다니는 왈짜패인 까닭에 저희는 이런 패하고 시비를 내지 않으려고 처음부터 조심을 했습니다. 기생방에서 다른 패 사람하고 같이 합석할 때는 일언일동을 맘대로 하는 법이 없이 반드시 말을 먼저 좌중에 돌려야 합니다. 이것이 기생방 격식입니다.”

이 대목에서 ‘노인정 활량패’를 ‘왈짜패’라고 한 것으로 보면 홍명희가 한량(활량)과 왈짜를 같은 의미로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임꺽정]에서도 왈짜가 등장하는 대목은 대체로 기생과 관련 있는 내용인데, 왈짜와 한량은 기생집 손님으로 등장한다.

한량과 왈짜는 더 이상 쓰이지 않는, 사라져가는 단어다. 이제는 이 말이 19세기 어떤 뜻으로 쓰였는지 정확하게 알기도 어렵다. 여러 기록을 통해 볼 때 왈짜나 한량이 기생집 고객이기는 했어도 기생을 ‘관리하는’ 조직의 일원이라고 볼 근거는 별로 없다. 이와 같이 왈짜나 한량이 현재의 조직폭력배와 같은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서는 이런 내용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과거 사실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 과거는 이처럼 적당히 바꿀 수 있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 이윤석 - 한국 고전문학 연구자다. 연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2016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정년 퇴임했다. [홍길동전]과 [춘향전] 같은 고전소설을 연구해서 기존의 잘못을 바로잡았다. [홍길동전] 이본(異本) 30여 종 가운데 원본의 흔적을 찾아내 복원했을 뿐만 아니라 작품 해석 방법을 서술했다. 고전소설과 관련된 저서 30여 권과 논문 80여 편이 있다. 최근에는 [홍길동전의 작자는 허균이 아니다]와 같은 대중서적도 썼다.

202312호 (2023.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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