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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UP] 전북 고창 삼보죽염 제조장 

1500도 불과의 사투 끝에 드러내는 자줏빛 죽염의 자태 

최기웅 기자
부안 개암사 노승들의 비법 따라 전통방식 그대로 죽염 제조
질 좋은 천일염 가득 채운 대나무 통 아홉번 구워야 비로소 완성


▎김인석 장인이 황토 가마에 송진 가루를 뿌리고 있다. 질 좋은 죽염 생산을 위해 가마 온도를 900도까지 올려야 한다.
"900 도의 열기를 여덟번, 1500도의 용광로 한 번을 겪어야 비로소 죽염이 됩니다.”

전라북도 고창군에 위치한 ‘삼보죽염’ 제조장에서 김인석 장인이 죽염 제조 과정을 설명했다. 35년째 전통 방법으로 죽염을 제조하는 장인은 전북무형문화재 제23호 죽염제조장 이수자다. 그는 “이 모든 것이 효산 스님이 전수해주신 기술입니다”라고 말한다.

효산 스님은 12세 때부터 전북 부안 개암사 노승들로부터 죽염 제조 방법을 배웠다. 이후 개암사 주지가 된 뒤에도 죽염 만들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가 고안한 죽염 제조법은 대나무에 채운 천일염을 황토 가마에서 소나무 장작불에 아홉 번 구워내는 것이다. “대나무 크기가 다 비슷하죠? 이것도 스님께서 강조한 비법”이라며 대나무 속을 보여준다. 직경 7~8㎝ 굵기의 3~5년생 대나무만 사용한다. 소금에 열이 골고루 전해지고 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가마로 가 봅시다.” 천일염을 담은 대나무와 장작으로 쓸 소나무가 5개의 가마 안을 가득 채웠다. “황토와 소나무, 대나무가 소금과 합쳐진다”고 한다. 불을 지피자 불꽃이 솟아오르며 소나무가 맹렬히 타들어 간다. 매운 연기에 눈조차 뜨기 어려울 지경이지만, 장인은 불꽃의 기운을 그대로 받아 붉게 물든 얼굴로 가마 안을 응시했다.

“온도가 350도 정도 올라가면 대나무가 타기 시작합니다.” 송진을 뿌리며 불꽃을 키우던 장인은 대나무에 불이 붙자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며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나무가 타기 시작하면 가마 안의 온도는 900도까지 올라간다. 이 상태를 8시간 동안 유지해야 좋은 죽염이 탄생한다. 8시간 굽고 8시간 가마를 식히면 비로소 소금기둥이 만들어진다.

다음날 찾아간 가마 앞. 어제와 달리 차가운 겨울 공기 속에서 일꾼들이 바쁘게 소금기둥을 옮기고 있다. 겉에 붙어 있는 대나무 재를 걷어낸 뒤 소금기둥을 잘게 부순다. 부서진 죽염은 가루가 날리지 않도록 황토를 걸러낸 물 ‘지장수’를 뿌린다. 그리고 다시 대나무에 채워 넣고 가마 안으로 옮긴다. 이 과정을 여덟 번 반복한다.

마지막 아홉 번째 굽는 과정은 스테인리스로 된 가마에서 진행된다. 이번에는 1500도 이상의 고온에서 소금을 용융하는 과정이다. 녹는 점에 이르면 죽염은 용암처럼 흐르다가 자줏빛을 띤 죽염이 된다. 뜨겁게 쏟아져 나오는 시뻘건 죽염이 내뿜는 열기에 장인의 옷은 금세 땀으로 젖어갔다.

“요즘은 좋은 천일염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요. 비싸기도 하고요.” 이마에 몽글몽글 맺힌 땀을 닦으며 장인은 천정부지로 솟은 천일염 가격과 죽염에 대한 세간의 오해가 크다고 하소연한다. “좋은 죽염을 위해선 좋은 소금을 쓸 수밖에 없어요. 질 나쁜 소금은 기둥이 만들어지지 않거든요. 구워보는 테스트를 거친 뒤 적합한 소금만 원료로 사용해요.”

“죽염이 불순물 있는 소금이라는 오해도 풀고 싶다”며 말을 덧붙인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도 3%의 불용분을 허용하고 있다고 한다. 장인은 “대나무와 소나무로 불을 때기에 미량 혼입은 불가피하다”며 “이 과정에서 죽염의 영양성분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9번 구운 자죽염 덩어리다. 황 성분 때문에 계란 노른자 같은 독특한 맛이 나며 각종 미네랄 성분이 함유돼 있다.



▎전라북도 고창군에 위치한 ‘삼보죽염’ 제조장에서 베테랑 근로자들이 황토 가마에 소금을 담은 대나무 통들을 굽기 위해 넣고 있다.



▎죽염제조장 근로자가 담양에서 공수해온 대나무 통에 소금을 넣고 있다.



▎8시간 굽고 8시간 식히면 소금 기둥이 만들어진다.



▎소금기둥은 타고 없어진 대나무 모양의 소금 덩어리를 가리킨다.



▎1500도 이상의 고열에 죽염이 용암처럼 흘러내리고 있다.
- 사진·글 최기웅 기자 choi.giung@joongang.co.kr

202401호 (202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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