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커버스토리 | 도전 인터뷰] ‘86세계관’ 혁파 주장하는 여선웅 전 문재인 청와대 행정관 

“민주 대 반민주 진영구도, 더 이상 안 통한다”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혁신의 길은 주류 세력의 교체… 과거에 갇힌 정당에서 벗어나야”
“내로남불·온정주의는 국민 신뢰 못받아… 정치적 소명 제시해야”


▎여선웅 전 청와대 행정관은 “86세계관은 70~80년대 산업화·민주화 시기에는 적합했을지 모르지만, 산업대전환기의 시대정신으론 부족하다”고 했다.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발(發) 세대교체 바람이 거세다. ‘한동훈 비대위’가 들어서면서 70~80년생들이 비대위원으로 부각되는 형국이다. 비대위원 대부분 비정치인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변화의 동력이 좀처럼 보이질 않는다. 민주당 내 ‘7080’ 정치인은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청년소통정책관을 지낸 여선웅(41) 전 행정관을 만났다. 여 전 행정관은 지난해 “낡은 86운동권 방식으로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며 송영길 전 대표 등을 저격해 눈길을 끌었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현상이지만, 세대교체가 화두다.

“세대교체는 곧 인물교체를 의미한다. 정치에 대한 불신이 심화하면서 새 인물이 새 정치를 하길 바라는 국민의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최근 보면 국민의힘은 한동훈의 등장만으로 세대교체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국힘은 전에도 이준석 당대표를 앞세워 올드한 이미지 대신 젊고 역동적 정당으로 이미지 메이킹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표면적 세대교체 시도와 성과가 없었다. 민주당을 향해 세대교체 요구가 분출하는 이유다. 국힘도 하는데 민주당은 왜 못 하느냐는 지적이 많다.”

민주당이 세대교체에 실패한 원인은?

“민주당의 세대교체는 그 성격이 국힘과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국힘의 세대교체는 대표 인물을 바꾸는 것만으로 가능하지만, 민주당은 ‘86운동권 유니버스(세계관)’를 바꿔야 하는 문제다. 민주당은 주류 세력인 ‘86(80년대 학번·60년대생)운동권’ 그룹이 세대성을 띠고 있다. 민주당의 세대교체는 곧 주류 세력의 교체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쉽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디지털 정치인이 산업대전환기 이끌어야”


총선에 도전하는 70~80년대생 원외 인사만 봐도 국민의힘이 수적 우위다.

“민주당의 현실이다. 국힘은 과거 30대 당대표가 등장하면서 젊은 정치인이 대거 유입됐다. 천하람, 김병민, 김용태, 김재섭, 장예찬 등 전당대회 출마로 중앙무대에 입성한 정치인부터 용산 대통령실 출신 김기흥, 김인규, 이승환 등 3040 정치인이 몰려오고 있다. 최고위원은 물론 당협위원장이 즐비하다. 반면 민주당은 장경태, 오영환, 이소영 등 현역 의원을 제외하곤 80년대생 원외 지역위원장을 좀처럼 찾기 힘들다.”

‘86 용퇴론’의 근거가 궁금하다.

“세상을 선악으로 구분해 민주 대 반민주 구도로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극단의 진영주의를 앞세운 내로남불과 온정주의 세계관은 더 이상 국민에게 신뢰받지 못한다. 특히 86세계관은 70~80년대 산업화·민주화 시기에는 적합했을지 모르지만, 4차 산업혁명 즉, 산업대전환기의 시대정신으론 부족하다. 산업화 시기에는 산업화를 잘 이끄는 정치인, 민주화 시기에는 민주화를 잘 이끌 정치인이 필요하다. 디지털화를 잘 이끌 디지털 정치인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 용퇴론보다는 세계관 교체, 노선 교체로 혁신해야 한다.”

비판 여론에도 여야 모두 올드보이(OB)들까지 재도전에 나서는 모양새인데…

“시대적 소명이 있는 정치인이라면 올드해도 상관없다. 내가 86운동권 정치인을 비판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들의 새로운 소명이 무엇인지 보이지 않아서다. 86운동권의 공천 전략은 국민적 정권 심판론이 높고, 정권 비호감도가 높으니 세상을 80년대처럼 ‘민주 대 반민주의 진영구도’로 단순화시키는 것이다. 신인보다는 ‘인지도 경쟁력’이 높은 자신들이 여당 후보를 이길 수 있는 만큼, 반드시 공천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모호한 주장보다는 자신이 왜 정치를 해야 하는지, 정치적 소명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히고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송영길 전 대표를 직격한 이유는?

“송 전 대표는 민주당에서 아홉 번이나 공천을 받은 86세대 맏형이다. 국회의원부터 광역단체장을 거쳐 당 대표까지 지내고, 총선 불출마까지 선언한 당 고문이 민주당을 곤경에 빠뜨리는 새로운 비례신당을 만들겠다고 공언하는 모습을 보고선 비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화제를 바꿔보자. 기초의원을 지낸 뒤 쏘카에 몸담았다. 스타트업에 합류한 계기는?

“이재웅 다음 창업자가 쏘카 CEO로 10여 년 만에 경영 일선에 복귀할 때였는데, 함께 하자는 제안이 왔다. ‘새로운 규칙그룹’이라는 CEO 직속 팀이었는데, 당시 타다와 같은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습관에 맞는 우리 사회의 새로운 규칙을 언론과 정부, 국회에 제안하는 역할이었다. 2019년 6월 청와대 청년소통정책관으로 일하게 되면서 쏘카를 떠났다. 이후 2020년 3월 ‘타다금지법’이 통과돼 타다가 사라지면서 결과적으로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일에 실패하게 됐다. 타다금지법 통과는 지금의 국회가 미래의 대한민국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청와대 행정관 뒤에는 ‘직방’ 부사장으로 갔다.

“직방에 합류할 때 두 가지를 고려했다. 첫째는 부동산 현장을 알고 싶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할 무렵 지지율은 ‘역대급’이었지만, 정권 재창출에는 실패했다. 부동산 정책 패착 탓이었다. 국내 최고의 프롭테크(부동산 기술) 기업에서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둘째는 혁신의 최전선에서 산업대전환기를 준비하고 싶었다. 직방도 타다처럼 IT를 무기로 기존 산업의 디지털 전환을 이끄는 기업이었다. 타다 실패를 경험 삼아 부동산 산업의 디지털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싶었다.”

“86세대, 부동산 조차 이념적으로만 접근해”


▎여선웅 전 청와대 행정관이 2020년 1월 문재인 전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 사진:여선웅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 실패의 원인은 무엇이었다고 보나?

“부동산에 이념적으로만 접근했다. 민주당 86세대는 부동산은 사는(Buying) 것이 아니라 사는(Living) 곳이라고 아직도 굳게 믿고 있다. 그러나 부동산은 전 국민의 거의 유일한 재산과 다름없다. 대다수 국민은 여전히 내 집 마련이 평생의 꿈이다. 부동산에 대한 욕망을 터부시한 게 패착 원인이다. 대표적 실책이 실거주 의무제다. 현금 부자만 청약받을 수 있도록 해 서민들의 내 집 마련 사다리를 걷어찬 정책이다. 이제라도 주택을 재산으로, 재화로, 상품으로 인식하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 주도 주택공급론은 맞지 않는다. 자동차가 부족하다고 해서 정부가 현대자동차그룹 대신 차를 직접 만들어 팔고, 스마트폰이 부족하면 삼성전자 대신 제조해 팔겠다는 식인데, 가능한 일인가?”

요즘 건설업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윤석열 정부 초기에 부동산 시장이 꽁꽁 얼어붙었었다. 미국발 금리인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였다. 거기에 더해 2022년 김진태 강원지사의 레고랜드 사태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이 폭발 직전이었다. 지난해 초에는 ‘둔촌주공 사태’로 1군 건설사들이 휘청였다. 윤석열 정부가 이른바 ‘둔촌주공 구하기’로 불린 1·3부동산 정책을 발표한 이유다. 거의 모든 규제를 다 풀었다. 보금자리로 40조원을 풀었다. 그러자 2030 ‘영끌족’이 부활했다. 정부는 부실 건설사, 시행사, 금융사에 대한 솎아내기 대신 회피에 급급했다. 결국, 태영건설이 무너졌다. 태영건설 워크아웃을 계기로 중소 건설사의 연쇄 부도 가능성이 나온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2014년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서울 당선자 중 최연소로 당선했고, 제7대 강남구의회 의원을 지냈다.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초등학생 때부터 정치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정치가 세상을 바꿀 도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경기 성남시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했다. 강남엔 특별한 연고가 없었다. 하지만, 2012년 대선에 패배하고 나서 민주당 지지층이 아닌 중도층을 끌어와야 당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험지인 강남에서 첫 공직 출마를 결심했다. 강남에도 민주당을 지지하는 젊은 세대가 많이 살고 있다. 중도층도 많다. 강남 주민들에게 민주당 정치를 알리고 싶었다. 강남구의회 의원 4년 동안 정말 열심히 일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출신 강남구청장의 실정과 부정부패를 끈질기게 파헤쳤다.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지방의원이라는 별칭을 들었던 비결이다.”

“성남 분당에서 안철수와 세게 붙어보겠다”

이번 총선에서 어디에 출마하나?

“진보적 실용주의 민주당을 추구하는 ‘여선웅 정치’에 맞고, 여의도 기득권 정치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지역에 출마하기 위해 오랫동안 고민했다. 민주당 텃밭을 선호하는 86세대와는 다른 선택을 하고도 싶었다. 그 결과 내 고향이기도 한 성남시 분당갑 지역구에 출마하기로 했다. 분당갑 현역은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다. 쉽지 않은 도전이만, 험지에서 거물급 정치인과 세게 붙겠다.”

국회의원이 되고자 하는 이유는?

“올해는 생성형 AI 시대의 원년이 될 것이다. 앞으로 몇 년을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AI 시대의 주도국가가 되느냐, 종속국가가 되느냐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와 현대차그룹의 미래차 등이 대한민국의 향후 10년 먹거리를 보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엔 새로운 먹거리가 필요하고, 그것이 AI로 대표되는 IT산업이다. 전 세계에 K콘텐트 열풍이 거세다. BTS와 블랙핑크는 국내를 뛰어넘어 글로벌 지적재산권(IP)이 됐다. 그런데 K콘텐트를 담는 K플랫폼은 전무하다. 콘텐트와 플랫폼은 불가분의 관계다. 콘텐트 없이는 플랫폼도 없다. 우리나라는 플랫폼 산업에 인색하다. 별다른 혁신 없이 기존 산업을 온라인으로 연결해주는 매개체로 인식한다. 그래서 우버도 쫓아냈고, 타다도 금지시켰다. 정치권은 플랫폼경쟁촉진법을 만들어 디지털경제를 초토화하려고 하고 있다. 콘텐트와 플랫폼을 막는 건 AI시대를 막는 것과 같다. 정치권의 판단 미스를 바로잡기 위해 국회에 들어가려 한다.”

향후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우리 정치가 극단의 정치, 증오의 정치, 상대방 악마화 정치의 길로 가고 있다. 증오 정치가 창궐하는 이유는 눈앞의 표에만 매몰됐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서서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이 증오의 정치를 끝내야 한다. 대화와 설득, 협력의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상대방 깎아내리기 경쟁이 아닌 잘하기 경쟁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화와 설득, 협력의 정치를 앞세워 잘하기 경쟁으로 국민들에게 선택받는 승리의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 제가 그 길에 앞장서고 싶다. 아울러 과거에 갇힌 민주당을 깨고 AI 시대와 기후위기, 인구절벽 등에 대비하는 젊은 민주당으로 만드는 것이 정치적 목표다.”

- 글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choi.eunseok@joongang.co.kr / 사진 박종근 비주얼실장 park.jongkeun@joongang.co.kr

202402호 (2024.01.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