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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검찰 출신들, 왜 총선 출마할까 

86세대 물러난 자리, 전관예우로 수십억 챙긴 검사들이 채운다?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배출로 요직 꿰찬 검찰, 정치권력에 눈독
“총선이 운동권이냐 검찰이냐? 누가 더 싫은가의 싸움판 됐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86세대 운동권 정치인 퇴진론을 강조, 4·10 총선 프레임 구도를 쏘아올렸다. / 사진:연합뉴스
4월 10일 총선을 앞두고 검찰 출신 인사들이 앞다투어 출마를 선언하거나 출마 준비를 하고 있다. 과거에도 검찰 출신 국회의원들은 많았지만 이번처럼 주목 받는 경우는 없었다. 검찰청 안팎에서는 정부 부처나 대통령실, 공공기관 등 요직에 검사들이 대거 발탁되면서 지금이 국회의원 되기 가장 좋은 시기라는 말이 나온다. 바야흐로 윤석열 검찰정부에서 검찰 전성시대다.

현재 검찰 출신 정치인의 대표주자는 한동훈(51)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다. 그는 법무부 장관 시절부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등 더불어민주당 86세대 운동권 정치인들과의 날 선 논쟁을 벌일 때 특유의 받아치는 화법으로 주목 받았다.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취임사에선 “386이 486, 586, 686이 되도록 대대손손 국민 위에 군림하고 가르치려 드는 운동권 특권정치를 청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야권과 맞설 총선 프레임 구도를 86세대 운동권 청산으로 잡은 것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이를 두고 “민주화운동 세력에 대한 국민적인 비토 심리를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최근 중앙일보·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권력 특권층이 된 80년대 운동권 출신 정치인을 청산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한다’(52%)는 답변이 ‘공감하지 않는다’(38%)보다 높게 나온 바 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검찰 출신 인사들이 86세대를 대체할 정치세력으로 부상하는 양상이다.

4·10 총선을 앞두고 공직 사퇴 기간(1월 11일)이 지난 가운데 월간중앙이 파악한 검찰 출신 출마 예정자는 42명이다. 이 가운데 정치권 입성 도전이 처음인 인사는 18명이다. 국민의힘 소속이 11명, 민주당 소속이 7명이다.

정치권 입성 도전 처음인 검사 출신만 18명


▎야권에서 출마 의사를 밝힌 검찰 출신들은 사법리스크로 바람 잘 날 없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호위무사 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소속 출마 예정자를 살펴보면 윤석열 대통령과 인연 있는 전직 검사들이 단연 눈에 띈다. 대표적으로 대통령실 참모 출신인 주진우 전 법률비서관, 이원모 전 대통령실 인사비서관이다. 이들은 윤 대통령의 정치 참여 초반부터 함께해 왔다. 주 전 비서관은 대선 초반 네거티브 대응부터 인수위 인사 검증 등 주요 임무를 수행해 ‘왕(王)비서관’으로 불렸다. 현재는 부산 수영 또는 해운대구 출마를 저울질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 비서관은 윤 대통령 중매로 결혼까지 한 인사로, ‘윤석열 사단’의 막내라인이다. 지난 대선 당시 윤 대통령 선거대책위 법률팀을 총괄했다. 박진 전 외교부 장관의 지역구인 강남을 출마가 거론된다.

윤 대통령의 연수원 동기도 있다. 국무총리 비서실장을 지낸 박성근 전 광주지검 순천지청장이다. 그는 부산 중·영도 지역구 출마를 선언했다. 윤 대통령의 연수원 1년 후배 심재돈 전 서울중앙지검 특수 2부장은 인천 동구·미추홀구갑 지역구에 예비후보로 등록을 마쳤다. 심 전 부장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윤 대통령과 함께 론스타 사건 등을 수사한 인연이 있다.

실제 국민의힘 소속으로 출마하는 검찰 출신 대다수는 윤 대통령과의 근무 연을 강조한다. 대구 중·남구 출마를 선언한 노승권 전 대구지검장은 “윤 대통령과 네 번 같이 근무했다”고 밝혔다. 의왕·과천당협위원장으로 출사표를 던진 최기식 전 서울고검부장은 2009년 대검 검찰연구관 재직 당시 윤 대통령을 만났다고 강조했다. 포항남·울릉 지역에 출사표를 던진 최용규 전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김진모 충북 청주 서원 당협위원장 등은 각각 윤 대통령, 한 비대위원장과 인연이 있다고 한다. 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에 출마하는 박용호 전 마산지청장, 대전 대덕구에 출마하는 박경호 전 대전지검 특수부장 등도 윤 대통령과의 교감을 역설한다.

현 정부 들어 검사 출신이 요직에 대거 기용된 데다, 한동훈 전 법무부장관이 비대위원장을 맡고 있기에 공천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장관의 인기를 체감한 일부 검사 출신 후보자 사이에서는 지금이 출마 적기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김상민 대전고검 검사의 경우 현직 신분임에도 총선 출마 의사를 밝혀 물의를 빚었다. 김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형사9부장이던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고향 주민들에게 “지역사회에 큰 희망과 목표를 드리는 사람이 되겠다”, “저는 뼛속까지 창원 사람” 등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대검 감찰위원회가 김 검사에게 ‘검사장 경고’ 조치를 권고하자 그 직후 법무부에 사직서를 냈다. 그는 지난 9일 국민의힘 소속 창원·의창 선거구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현직 신분인 박대범 창원지검 마산지청장도 총선과 관련해 외부인사와 부적절한 접촉을 했다는 의혹으로 인사 조치를 받기도 했다.

현직 검사가 법적으로 출마할 수 있는지 따져보는 과정에 ‘황운하 판례’가 재소환되기도 했다. 현직 경찰이던 황운하 민주당 의원은 지난 21대 총선에서 당선됐다. 당시 재판이 진행 중이었기에 당선 무효 소송이 제기됐지만 대법원은 총선 90일 전 사직 의사를 밝히면 출마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이후 황운하 판례를 근거로 검찰뿐 아니라 법원·수사기관 등에서도 고위 간부들의 총선 출마가 잇따랐다.

야권에서도 국회 입성을 노리는 검찰 출신 인사들이 많다. 문재인 정부 시절 요직으로 영전했다가 이번 정권에서 한직으로 물러난 이성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고검장), 신성식 연구위원(검사장)이 대표적이다. 전북 전주 출마를 희망하는 이 연구위원은 문재인 정부 시절 대표적인 ‘친문(親文) 검사’로 꼽혔다.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중앙지검장, 서울고검장 등 요직을 두루 지냈다. 지난 4월 사표를 냈지만 아직 수리되지 않아 ‘현직’ 신분이다. 신 연구위원도 전남 순천 지역구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 ‘추미애 사단’으로 분류됐던 그는 ‘한동훈 녹취록 오보’ 사건으로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최근 이들은 각기 출판기념회를 열며 정치 행보를 본격화했다.

여권은 윤심 업고, 야권은 이 대표 방탄 자처


▎이성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문재인 정부 시절 요직으로 영전했다가 이번 정권에서 한직으로 물러났다. 그는 4·10 총선 출마 결심을 굳힌 것으로 전해진다. /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검찰 출신들도 있다. 대장동 사건을 비롯해 이 대표가 연루된 각종 사건의 변호사로 활동한 인사들이다. 광주 광산구갑을 노리는 박균택 전 법무연수원장은 이 대표의 법률특보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등의 변호를 지휘했다. 광주 서구을 출마를 준비하는 양부남 전 광주지검장은 2021년부터 민주당 법률위원장을 맡아 ‘이재명 호위무사’라고도 불린다. 이 대표의 최측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변호를 맡은 김기표 변호사도 검찰 출신이다. 최근 ‘그 여름의 결실’ 출판기념회를 열고 공천 경쟁에 뛰어들었다.

신현성 전 전주지검 부장검사는 이 대표와 특별한 접점은 없지만 최근 피습 사건이 터지자 “대한민국의 우수한 민주주의 발전에 찬물을 붓는 용서할 수 없는 범죄행위”라고 입장문을 냈다. 한편 성남에서 출사표를 던진 안성욱 전 대구지검 형사4부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국민권익위 부위원장을 지내 ‘친문’으로 분류된다.

검찰 출신의 총선 출마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있다. 여권의 검찰 출신에게서는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인 ‘윤심(尹心)’을 업고 국회에 무혈 입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엿보인다. 실제 김상민 검사는 자신을 겨냥한 대검의 감찰을 비판하며 지인들에게 “용산의 기류는 다르다”며 윤심을 거론했다고 한다. 아울러 한 비대위원장의 성공 신화 재현을 기대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평생 검사로 살아온 한 비대위원장은 장관직을 사임한 뒤 곧바로 여당 사령탑에 등극했다. 전례 없는 일이다.

이에 비해 야권의 경우 사법리스크로 바람 잘 날 없는 이 대표의 ‘방탄’ 역할을 자처하는 기류가 강하다. 이전까지 이 대표와 관련이 없던 신성식 연구위원이 출마 의사를 밝힘과 동시에 이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 사건이 검찰의 부당한 수사였다고 비판한 것이 대표적이다. 법정에서 검사를 상대하기 위해 전관 변호사를 쓰는 구조가 정치권으로 옮겨 온 듯한 모양새다.

검찰의 정치권 ‘세력화’를 놓고 국민들은 어떻게 바라볼까? 중앙일보·한국갤럽 여론조사(지난달 28~29일)에서는 검찰공화국에 ‘공감한다’는 답변이 58%로, ‘공감하지 않는다’(37%)를 앞섰다. 검사 집단의 조직화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여론이 높다. 김성회 정치평론가는 “여론은 분명 검찰의 세력화에 부정적이다. 과거에도 검찰 출신 국회의원들은 많았으나 지금처럼 정치인과 검사가 함께 협력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현재 검찰의 여러 수사 상황을 보면 정치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기 충분하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검찰이 가진 ‘힘의 크기’에 대한 국민적인 우려가 뒤섞인 결과라는 해석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검사의 직업적 위상은 대단히 높다. 과거에는 사법시험을 통과해 검사로 임용되면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기도 했다. 검사는 초임 시절부터 피의자를 수사해 그를 판사 앞에 세울지를 결정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강력한 기수(期數)문화로 후배나 동기가 승진하면 ‘용퇴’라는 이름으로 줄줄이 조직을 떠나는 게 관행이었다. 검사복을 벗고 난 뒤에는 전관예우를 받으며 대형 로펌에 들어가 1년에 사건 수임료 수십억원을 챙기는 사례도 허다했다. 이들이 이제 정치권력까지 쥐는 것에 국민은 불안을 느낀다는 설명이다.

“86세대도 문제지만 검찰이 더 문제?”

이 때문에 86세대 운동권 정치인의 퇴진은 시대적 소명으로 이해되지만, 그 자리를 검찰 출신이 차지해 하나의 세력화를 이루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기류도 읽힌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민주화 운동했던 사람들이 공익을 위해 몸을 던지고 피흘릴 때 사익을 위해 고시 공부해 합격한 사람들은 큰 사회적인 경험 없이 오늘날까지 잘 살아왔다. 한 비대위원장이 86세대를 비판하는 건 자신의 한계를 보이는 것에 불과하다는 말도 있다”고 지적했다.

홍준일 전 조원씨앤아이 정치여론연구소 소장은 “86세대 운동권 퇴진론이 등장한 지는 꽤 됐다. 이들이 민주당에서 줄곧 큰 세력을 차지한 데 대해 국민들의 불만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검사들의 출마와 세력화에도 국민들은 비판적이다. 그들 또한 각종 요직을 대거 꿰차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준일 뉴스톱 대표는 “검찰 정권에서 한 비대위원장이 86세대 운동권을 대놓고 비판하면 중도층에서는 ‘86세대도 문제지만 검찰이 더 문제’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정권 심판론’이 여전히 다른 프레임보다 높다”라며 “결국 총선이 운동권이냐 검찰이냐? ‘누가 더 싫은가’라는 싸움판이 됐다”고 지적했다.

-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ahn.deokkwan@joongang.co.kr

202402호 (2024.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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