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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이종화 전 대구 경제부시장 

“서구를 다시 위대하게… 염색산업단지 이전해 악취 문제 해결하고 싶다” 

김태욱 월간중앙 기자
“대구 서구, 혐오시설 이전하면 과거의 영광 재연 가능”
“30만 평 염색산업단지 부지, 관광특구로 바꿀 복안 있다


▎이종화 전 대구 경제부시장은 “대구를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사는 도시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월간중앙이 이종화(55) 전 대구 경제부시장을 주목한 건 다름 아닌 깜짝 퇴임 발표 때문이었다. 문득 머릿속에 대구 부시장 수락 당시 홍준표 대구시장 휴대전화 번호가 없어 망설이던 그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홍 시장, 혹은 ‘홍핵관(홍준표 측 핵심 관계자)’과의 갈등으로 부시장직을 내려놓은 것이 아닐까 미뤄 짐작했다. 하지만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소식은 뜻밖이었다. 이 전 부시장은 “22대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부시장직을 내려놓았다”며 “대구 서구를 파격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출마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1월 4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빌딩에서 그를 만났다.

부시장직을 갑자기 내려놓았다. 홍준표 시장과 무슨 갈등이라도 있었나?

“전혀 아니다. 홍 시장은 내가 그만둔다고 하니 아쉬워하셨다. 마지막 출근 날엔 ‘건승을 빈다’고 덕담을 건네셨다. 최소 1~2년은 부시장직을 더 수행할 수 있었으나, 새로운 도전을 위해서는 퇴임하는 게 맞다고 봤다. 부시장으로 올 때만 해도 정계에 입문할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다.”

“7시간 동안 각기 다른 악취가 코끝 찔러”


▎지난 2022년 12월 이종화 당시 대구 경제부시장(왼쪽). / 사진:연합뉴스
갑작스런 퇴임을 결정하게 된 이유는?

“퇴임 한 달 전쯤이다. ‘이렇게 부시장직을 계속 수행하는 게 맞나’라는 고민을 깊게 했다. 당초 부시장직을 수락한 이유도 고향인 대구의 발전을 위해서였다. 제가 기획재정부에서 28년 근무했다. 그 경험을 토대로 대구를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사는 도시로 만들고 싶다. 실제로 올해 국비 사상 첫 8조원 시대의 문을 연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자부한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는 대구 시민들께 죄송한 마음이 있었다. 특히 대구의 아픈 손가락인 서구 주민들께 한없이 죄송했다. 발전이 가장 더딘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대구 서구는 대구를 대표하는 부촌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다. 제 부친께서 서구에 위치한 서부초등학교에 다니실 때만 해도 서구는 대구에서 ‘제일 잘나가는’ 동네였다. 지금은 동네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악취 문제 때문이다. 서구에는 염색산업단지 외에도 하수처리장, 상리음식물폐기장 같은 소위 ‘혐오시설’이 밀집돼 있다. 물론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아직 해결의 단초도 마련되지 않았다. 제가 국회 입성을 결심한 이유다.”

무엇이 대구 서구의 쇠락을 불러왔다고 보는가?

“시대가 변했다. 염색산업단지는 과거 70~80년대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었다. 섬유 등 경공업은 대한민국 경제개발의 핵심이었다. 과거 통행금지 시대에도 ‘서대구로’는 예외였다. 경제발전을 위해 서대구로만큼은 통행금지 예외 지역으로 두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서구는 번화가였다. 예전과 같이 서구를 살기 좋은 곳으로, 또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 그레서 제 슬로건이 ‘서구를 다시 위대하게’다. 현재 처가와 여동생 내외 등 친척이 서구에서 활동한다. 서구의 문제가 남의 일 같지 않은 이유다. 그 누구보다 악취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다.”

악취가 얼마나 심각한가?

“기억에 남는 실화가 있다. 어떤 주민이 제게 찾아와 ‘7시간 동안 각기 다른 악취가 코끝을 찌릅니다’라고 토로했다. 정말 심각하다. 대구시가 사상 첫 국비 8조원 시대의 문을 열어도 악취가 이렇게 풍기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미련 없이 부시장직을 내려놓은 이유다.“

대구 서구 출신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으로 읽힌다.

“그렇다. 난 여의도 문법을 모른다. 보고 느낀 대로 직설적으로 이야기할 뿐이다. 정치인들에게 공개적으로 묻겠다. 지난 10여 년 동안 서구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아니라고 본다. 오죽하면 제가 부시장직을 내려놓고 서구 출마를 시도하겠는가? 염색산업단지를 이전하자는 얘기가 나온 지 벌써 20년 가까이 됐다. 안타깝다.”

“대구 서구를 제2의 성수동으로 탈바꿈시켜야”


▎지난해 6월 대구 서구 중리동의 한 재활용 공장에서 불이 나 소방당국이 진화에 나선 모습. / 사진:연합뉴스
서구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셈법이 있는가?

“결국 모든 건 예산이다. 국회와 대구시, 기재부의 긴밀한 협력이 중요하다. 부시장 재직 당시 대구시와 기재부 사이 긴밀한 협력을 훌륭히 수행했다고 자부한다. 당선되면 삼위일체, 즉 국회와 대구시, 기재부의 협력을 성공적으로 이끌 자신이 있다. 대구시는 쓰레기 매립장을 오는 2060년쯤 이전하겠다는 방침이다. 앞으로도 30년이 남은 셈이다. 혐오시설 이전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매립·복토 작업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 28년간 기재부에서 주요 보직을 거치고 경제부시장을 역임한 제가 그 일을 해낼 적임자라고 자부한다.”

왜 그러한가?

“서구지역 악취 민원은 지난해 초 신축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면서 급증했다. 서구에 처음 이사 오신 분들이 민원을 많이 제기하셨기 때문이다. 서구에 처음 오신 분들은 오래 거주하신 분들에 비해 악취 문제에 민감했다. 이 문제는 저 같은 외부인만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배경이다. 악취는 단순히 ‘냄새’가 난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건강에 무척 해롭다. 하루빨리 해결돼야 하는 이유다. 고질적인 악취 문제를 경험하고 인요한 전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의 ‘험지 출마’ 주장에 적극 동의하게 됐다. 대구 서구는 악취 문제만 해결된다면 거대한 잠재력을 품고 있다. 대구의 대표 관광 지구로 탈바꿈할 수 있다. 오늘날 서울의 대표 핫플레이스로 부상한 성수동도 과거엔 낙후된 공장지대였다. 서구의 30만 평 염색산업단지 부지를 관광특구로 바꾸면 된다.”

대구 서구를 ‘제2의 성수동’으로 만들겠다는 말로 들린다.

“성수동은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홍준표 시장의 핵심 프로젝트인 ‘금호강 르네상스’에서 많이 배웠다. 서구 주민들을 위한 문화 공간이자 휴식처가 필요하다. 서구 인근 금호강에는 수중 보(洑)가 있어 배도 띄울 수 있을 것이다. 관광지구가 되기 위한 여건은 충분하다. 금호강이 서구와 동구를 관통한다는 점에서 서구의 관광 발전은 대구 전체의 발전이기도 하다.”

“대구·경북통합신공항법 통과, 재임 중 최대 성과”


관료 생활만 해왔다.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데 어려움도 많을 것 같다.

“솔직히 말해 어렵다(웃음). 조금 경험해 보니 국회의원 예비후보는 자영업자와 비슷하다. 조직의 도움 없이 혼자 알아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한다. ‘광야에 서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피부로 실감하고 있다. 제가 부시장 재직 당시 ‘예산 확보’ 등 큰 성과를 남겼다고 자부하지만,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는 건 또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저는 가진 게 없다. 오직 지역 주민을 위해 봉사해야겠다는 사명감 하나로 시작했다.”

부시장으로 재직할 때 가장 큰 성과를 꼽는다면?

“대구·경북통합신공항법 통과가 최대 성과라고 자부한다. 신공항법 통과를 위해 발이 닳도록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기재부를 설득했다. 기재부 예산실, 세제실, 국고국, 재정관리국, 공공정책국 등 5개 국·실의 동의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기재부 실장·국장들이 다 제 친구·후배여서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본다.”

지역에서는 이 부시장을 ‘홍준표 사람’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부시장으로서 근거리에서 홍 시장을 보좌한 데 큰 자부심을 품고 있다. 보람도 많이 느꼈다. 특히 홍 시장의 놀라운 추진력을 많이 배웠다. 대구·경북통합신공항 프로젝트는 대선 후보급의 거물급 정치인만이 추진할 수 있는 큰 사업이다. 다만 저를 ‘홍준표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제가 YES라고 해도 홍 시장이 NO라고 말할 것이다. 부시장 취임 전에 저는 홍 시장의 전화번호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홍 시장은 계파정치를 배격하는 정치를 해 왔다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

기재부는 소위 ‘엘리트의 본산’으로 여겨진다. 이 전 부시장도 엘리트주의자인가?

“저는 운 좋게 행정고시에 합격해 관료생활을 했다. 저는 자녀들에게 단 한 번도 공부를 강요한 적이 없다. 제 아들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마술을 배웠다. 나름 그 분야에서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부모로서 뿌듯하다. 자기에게 각자 맞는 옷을 입어야 성공한다고 본다. 대구 서구도 마찬가지다. 과거 70~80년대 염색 산업단지와는 거리를 두고 과감히 탈바꿈하면 예전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다.”

- 글 김태욱 월간중앙 기자 kim.taewook@joongang.co.kr / 사진 최영재 기자 choi.yeongjae@joongang.co.kr

202402호 (2024.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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