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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특집Ⅰ| 현지취재] 4·10 총선 명운 쥔 부산 민심의 행로 탐방 

“이재명 대 한동훈 구도가 아니라 지역구 후보자 개인기로 결판 날 것”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현역 8명 물갈이한 국민의힘, 산업은행 이전 등 지역발전론 앞세워 압승 기대
민주당은 낙동강 벨트 위주로 수성 주력, ‘이재명 대표 피습’ 반사효과는 난망


▎부산 민심은 선거 때마다 요동쳤다. 이는 이념보다 민생에 민감한 부산의 절박한 정서를 드러낸다.
"부산진을 공천 보셨지예? 부산 사람들 기질이 참 독특합니더. 서울에서 자꾸 착각하는 거 같은데, 여기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닙니데이.”

5일 부산에서 만난 국민의힘 관계자는 언뜻 해석하기 힘든 웃음과 함께 이런 말을 불쑥 던졌다. 윤석열 대통령이든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든 중앙당의 복심을 품고 내려왔다손 치더라도 당선은 고사하고 공천장조차 장담할 수 없는 곳이 ‘부산 정서’라는 뜻으로 들렸다.

부산진을에서 국민의힘 공천에 도전했던 정연욱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꽤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다. 그런 그가 서울 요지가 아닌 부산을 지역구로 선택한 데 대해 사실 여부를 차치하고 국민의힘 내부에선 “당심이 담긴 배치”라는 해석이 나돌았다. 게다가 그의 상대였던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은 이미 3선을 역임했다. ‘물갈이 프레임’에 걸리기 딱 좋은 구도였다. 그러나 2월 28일 발표된 경선 결과는 ‘동일지역 3선 페널티’ 핸디캡을 딛고 이 의원의 승리로 끝났다.

4·10 총선에서 ‘낙동강 벨트’를 위시한 부산 선거는 ‘한강 벨트’를 낀 서울 선거와 함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의 희비를 가를 격전지로 예상된다. 특히 부산은 민심의 패턴을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특이성을 띠고 있다. 부산 판세에 대한 양당의 예측이 엇갈리는 배경이기도 하다.

국민의힘에선 “최소 기대치가 15석:3석으로 끝난 21대 총선이고, 최대 18석 싹쓸이도 불가능하지 않다”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는 목소리가 비등하다. 반면 민주당은 “적어도 부산 지역만 놓고 말하자면 이번 총선은 거대한 지역 이슈가 없는 상태로 치러질 것”이라며 “문재인, 이재명, 윤석열, 한동훈, 박형준 등의 영향력이 아니라 각 지역구별 후보자들의 개인 역량에 따라 결판날 것”이라고 예측한다. 민주당이 21대 총선 이상의 선전을 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4년 전 부산 총선은 언뜻 국민의힘의 전신인 미래통합당이 완승한 것처럼 비쳐진다. 하지만 여기엔 착시가 있다. 서·동구, 부산진을, 남구갑, 해운대갑, 사하을, 금정, 수영 등 7곳을 제외하면 나머지 11개 선거구에서 전부 10%p 득표율 격차 이내에서 승부가 갈렸다. 특히 부산진갑(민주당 김영춘 45%, 미래통합당 서병수 48.5%), 남구을(민주당 박재호 50.5%, 미래통합당 이언주 48.7%), 북강서갑(민주당 전재 수 50.6%, 미래통합당 박민식 48.6%), 사하갑(민주당 최인호 50%, 미래통합당 김척수 49.1%), 연제(민주당 김해영 47.7%, 이주환 50.9%) 등 5개 지역구는 초박빙이었다. 해운대갑과 사하을을 제외한 민주당 후보들은 16개 지역구에서 전원 40%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결과는 15:3이었지만, 미래통합당의 신승이라고 해야 적확하다.

부산 기질은 쏠림 현상 강한 스윙 보터


비례대표 득표율로 따져 봐도 민주당의 위성정당에 해당하는 더불어시민당 외에 열린민주당, 정의당 등 진보 계열 정당은 42.57%의 지지를 받았다. 2016년 총선 때와 비교하면 무려 9.9%나 더 득표한 셈이다. 반면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 등 보수계열 정당의 득표율은 45.05%로 직전 총선에 비해 3.83% 증가에 그쳤다.

역사적으로 부산은 보수 색채가 짙었지만, 갈수록 스윙 보터의 이미지로 변모하고 있다. 일례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치러진 2017년 대선에서 부산은 문재인 민주당 후보를 가장 많이(38.71%) 지지했다. 이어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민선 최초로 민주당 출신 부산시장(오거돈)이 탄생했다. 부산시의회 47석 중 41석을 휩쓸었으며, 서구와 수영구, 기장군(무소속)을 제외한 13개 지역에서 민주당 구청장이 배출됐다. 정당 득표에서도 민주당은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을 10%p 이상 앞섰다.

하지만 부동산 정책 등 문재인 정부의 실정에 대한 실망감을 부산 민심은 2020년 4월 총선에서 가감 없이 표출했다. 선거 후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오거돈 시장이 성추문으로 낙마하자 민주당 비토 정서는 걷잡을 수 없게 됐다. 부산시장 보궐선거(2021년 4월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 62.67% 득표), 대통령 선거(2022년 3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58.25% 득표), 지방선거(2022년 6월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 66.36% 득표)까지 국민의힘이 세 번 연속 대승을 거뒀다. 기초단체장은 16곳 전부를 국민의힘이 석권했고, 교육감까지 보수로 바뀌었다.

국민의힘이 2024년 4월 총선 공천에서 현역 의원을 최소 8명(자진 사퇴·지역구 이동·컷오프·경선 탈락 포함)이나 교체한 이유다. 그만큼 ‘부산은 자신 있다’는 함의로 읽힌다. 실제 국민의힘의 선거 전략은 민주당이 차지하고 있는 3석을 빼앗아 오는 쪽으로 집중된다.

부산 남구는 선거구 통합에 따라 갑과 을이 하나로 통합됐다. 국민의힘은 남구갑 현역 의원인 친윤 박수영 의원을 공천했다. 남구을 박재호 민주당 의원과의 맞대결을 굳이 피하지 않은 것이다. 반대로 선거구가 분할된 북구갑 지역에는 5선인 서병수 의원을 전략 배치했다. 서 의원은 부산진구갑에서 북구갑으로 이동해 전재수 민주당 의원을 공략한다. 또 최인호 민주당 의원이 버티고 있는 사하갑에는 이성권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을 투입해 맞불을 놨다. 세 지역구 전부 민주당이 승리하긴 했지만, 0.9%p~2.0%p 차 살얼음 승부로 갈렸다. 하지만 “최근 4년 사이 민주당 의원 3인방이 지역을 더 촘촘하게 다져놨다”는 평판이 들린다.

미묘하게 달라지는 부산 東西지역 민심


▎선거구가 합쳐진 민주당 박재호(왼쪽), 국민의힘 박수영 두 현역의원 간 맞대결이 펼쳐지게 된 남구는 부산 총선 최대 격전지로 꼽힌다. / 사진:연합뉴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국민의힘 부산 지역 인사는 “산업은행 부산 이전 이슈를 민주당이 반대하고 있는 한, 우리가 선거에서 질 수가 없다”고 호언했다. 부산은 ‘대한민국 제2도시’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산업도시가 아니다. 매출액 기준 100위 안에 들어가는 부산 기업은 단 하나도 없다. 1000대 기업으로 범위를 넓혀도 28개뿐이다. 지역 매출 1위 기업인 르노코리아자동차㈜가 전국 112등이다. 일자리가 협소하다 보니, 젊은이들이 도시를 떠난다. ‘노인과 바다’만 남고 있고, 인구 2위 도시 위상도 인천에 내줄 판이다.

그렇기에 부산이 사활을 걸고 있는 분야가 물류와 금융, 관광 산업이다. 가덕도 신공항이 물류를 상징한다면, 산업은행 부산 이전은 금융에서의 활로 찾기다. 비록 일단 좌절했지만 2030 엑스포 유치를 위해 부산 시민들이 똘똘 뭉친 배경에는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부산대병원이 아닌 서울대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것보다 산업은행 이전에 대해 부정적 기류를 보이는 것이 민주당에 더 악재일 수 있다는 의미다.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부산 출마자 일각에서 “이재명 대표가 지원 유세를 오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나을 수 있다”고 하소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선거는 프레임 전쟁이다. 국민의힘이 산업은행 이전, 글로벌 허브시티, 지역 재개발 등 거대 담론을 들고나오려는 데 비해 민주당은 나름 경쟁력이 담보된 지역구 출마자들의 개인기로 상황을 타개하려는 흐름이 역력하다. 역설적이게도 민주당은 지난 지방선거 대패로 부산에 오랜 기간 뿌리를 둔 경쟁력 갖춘 자원이 풍부해졌다. “거대 이슈에 휩쓸리지만 않는다면, 의외로 해볼 만한 지역구가 꽤 된다”는 관측이 나오는 근거다.

부산 선거의 또 하나 특이점은 지역마다 민심이 미묘하게 달라지는 지점에 있다. 부산은 좌우로 길다. 이 지도를 4등분하면, 구(원)도심·서부·중부·동부로 나뉜다. 먼저 구도심(중영도구·서구동구)은 부산에서도 가장 보수 지지세가 강한 지역으로 꼽힌다. 그렇기에 유독 국민의힘에서 공천 경쟁이 치열했다. 황보승희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한 중영도구는 친윤으로 통하는 조승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공천을 받았다. 이 지역 터줏대감인 김무성 전 의원이 출마를 저울질했지만, 최종적으로 경선에 나서지 않았다.

낙동강 벨트의 요지인 서부권(북구갑·북구을·강서구·사상구·사하갑·사하을)은 6석 모두 판세를 쉽사리 점치기 어렵다. 사상구의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불출마를 선언한 대신 최측근인 김대식 경남정보대 총장이 공천을 받았다. 민주당 후보인 배재정 전 의원도 지난 총선에서 40%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했었다. 인근 김해와 양산도 오리무중이다. 여야 의견을 종합하면 “김해는 민주당이, 양산은 국민의힘이 박빙 우세”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특히 민주당 김두관, 국민의힘 김태호 두 전직 경남지사의 맞대결이 펼쳐지는 양산을이 예측불허다.

또 하나의 변수는 부산진갑·부산진을·남구·금정구·동래구·연제구가 포함된 중부권 표심이다. 민주당은 김영춘(부산진갑), 김해영(연제) 등 이 지역을 상징하는 인물들이 불출마했다. 국민의힘은 ‘한동훈 영입인재 1호’인 정성국 교총 회장을 부산진갑에 배치했다. 동래의 서지영 전 청와대 행정관, 연제의 김희정 전 여성가족부 장관 등 여성 후보를 2인 넣었다. 특이하게도 민주당은 연제에선 진보당 후보와 최종 경선을 치러 후보를 정했다.

‘찐윤’ 주진우는 해운대갑에 공천

부산의 부촌이 자리한 동부권(해운대갑·해운대을·수영·기장)은 갈수록 민주당에 험지가 되고 있다. 지난 대선 때에도 윤석열 대통령을 가장 열렬하게 지지한 지역이다. 특히 해운대갑과 수영구는 서울의 강남 3구와 비슷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해운대갑만 해도 3선의 하태경 의원이 서울로 이동하고, 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주진우 대통령실 법률비서관이 입성했다. 다크호스 지역인 기장은 현역인 국민의힘 정동만 의원이 공천을 받았지만, 민주당 최택용 후보 외에도 보수 성향의 기장군수 출신 무소속 오규석 후보와 삼파전을 벌여야 한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2404호 (202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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