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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단장이 말하는 프로스포츠의 세계(2)] 지역주의는 프로야구의 존립 기반이다 

광주 선동열·부산 최동원·대구 이만수가 ‘국민 스포츠’ KBO리그 토대 쌓았다 

지역 밀착이 초창기 인기 형성에 결정적 기여… 서울 연고지 놓고 SK·현대 경쟁
갈수록 연고지 고교 선수 우대 사라져… 팬들이 한 팀에서 오래 뛴 ‘원클럽맨’ 선호


▎부산·경남의 ‘무쇠팔’ 최동원(왼쪽)과 호남의 ‘폭격기’ 선동열(오른쪽)은 한국 프로야구가 지역에 기반한 국민 스포츠로 성장하도록 이끈 아이콘이었다. 둘의 맞대결은 영화 [퍼펙트게임]으로도 만들어졌다.
한국 프로야구는 1982년 서울(MBC 청룡), 부산·경남(롯데 자이언츠), 대구·경북(삼성 라이온즈), 충남·북(OB 베어스), 전남·북(해태 타이거즈), 인천·경기·강원(삼미 슈퍼스타즈) 등 광역연고제를 기반으로 시작됐다. 초창기인 1980년대만해도 “호남에서 롯데 과자를 안 사고, 부산에서 해태 과자를 안 먹는다”는 말도 있었다. 해태-삼성, 해태-롯데의 영호남 라이벌 대결이 붙으면 관중들끼리 싸우고, 원정팀 선수단 버스가 불타는 사건도 벌어졌다. 당시 야구장에서 오물 투척은 다반사였다. 수도권 구단의 원정 관중석 시설은 지방팀이 아쉽게 패하면 분풀이를 한 것인지 기물이 파손되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특히 광주 무등구장(현재는 신구장인 KIA챔피언스필드로 이동)의 ‘목포의 눈물’과 부산 사직구장의 ‘부산 갈매기’ 응원은 원정팀에게는 전율 그 자체였다.

이처럼 프로스포츠는 지역주의와 상생 관계를 갖는다. 팀이 기존 연고지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는 사유는 경기장 시설 등과 관련한 지자체와의 갈등이 대부분이다. 프로축구, 프로농구, 프로배구의 경우 연고지 이전 사례들을 종종 볼 수 있지만, 프로야구는 출범 이후 43년 동안 연고지 이전 사례가 단 한 차례뿐이었다. 1985년 OB 베어스(충남·북에서 서울로)의 이동은 이미 예정된 수순이라 제외한다면, 2000년 현대 유니콘스(허가를 얻었지만 그나마 실현되지 못함)가 유일하다.

당시 프로야구는 2000년 쌍방울 레이더스의 해체 위기를 맞아 종전까지 유지해 오던 광역연고제를 도시연고제로 전환했다. KBO 차원에서 연고지 이전의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인천광역시가 지금은 서울, 부산에 이어 3대 도시로 성장했지만 당시만 해도 확장성에 한계가 있었다. 홈구장인 도원야구장의 시설도 낙후했고, 입장 관중도 적은 편이었다.

인천과 서울 연고 둘러싼 SK와 현대의 물밑경쟁

2000년 전북 연고의 쌍방울 레이더스가 결국 해체됐다, SK 와이번스가 제8구단으로 창단하며 그 자리를 메웠다. SK그룹은 당초 서울 연고를 희망했으나 기존 7개 구단은 현대 유니콘스에 서울 연고를, 신생 SK에는 현대가 떠나는 인천 연고를 배정했다. 서울 입성을 놓고 현대와 SK가 물밑경쟁을 했는데 재계 라이벌인 LG, 삼성을 제외한 대부분의 구단이 기존 회원사인 현대의 서울 입성에 힘을 실었다. 당시 필자는 LG 트윈스에서 현대의 서울 입성을 저지하고 SK의 서울 연고 추진을 기획했다. 원래 LG는 서울에 3구단을 두는 데 대해 부정적이었지만, 굳이 해야 한다면 신생팀인 SK에게 주자는 쪽으로 선회했다. LG로서는 신흥명문으로 떠오르는 현대와 ‘서울 라이벌’ 구도로 가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차라리 신생 SK가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느껴졌다. 필자는 그로부터 채 2년이 지나지 않아 인천 연고인 SK 와이번스로 이직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아이러니다.

우여곡절 끝에 현대 유니콘스의 서울 이전이 확정됐지만 세상일은 알 수 없다. 현대는 그룹에 재정적 위기가 닥치면서 2007년 구단 해체 때까지 서울로 입성하지 못했다. 한국 프로야구의 유일한 연고지 이전 사례가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셈이다.

반면 현대가 떠난 인천에 터를 잡은 SK는 처음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인천 야구팬들은 현대의 서울 이전으로 인한 상처가 극심했다. “SK 와이번스는 해체한 쌍방울 레이더스가 유니폼만 갈아입은 것 아니냐”며 마음을 쉽게 주지 않았다.

인천 프로야구팀은 홈경기 8회말에 앞서 응원가로 ‘연안부두’를 틀어주고 관중들이 ‘떼창’하는 전통이 있다. SK는 2002년 ‘연안부두’ 응원가를 김트리오 노래 대신에 리믹스 버전으로 바꿔 틀다가 팬들의 심한 반발을 산 적이 있다. 구단에서는 김트리오 노래의 ‘연안부두’가 야구장 분위기에 안 맞게 처진다고 판단하고 나름 공들여 젊은 감각의 리믹스 버전을 선곡한 것이다. 그러나 팬들의 정서는 달랐다. “인천야구의 전통인 ‘연안부두’ 응원가를 돌려달라”며 구단 홈페이지 게시판에 항의가 빗발쳤다. 결국 구단은 오래지 않아 ‘연안부두’ 원곡으로 돌아가야 했다.

초창기 SK 와이번스는 야구장 인근 아파트 주민들을 야구장에 초청하고, 인천 시내 초·중·고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SK 서포터즈 티처(SK Supporters Teacher)를 운영했다. 당시 SK는 홈경기 객단가가 낮아서 타 구단의 질시를 받았다. 야구장은 잘 만들어 놨는데 관중석이 채워지지 않다 보니 구단은 저가 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구단 직원들이 거리에서 홍보 전단지를 나눠주기도 했다. 필자도 부평역 광장에서 개막전 홍보 전단을 배포했는데 시민들의 야구에 대한 관심이 적어 머쓱했던 기억이 있다.

SK 와이번스는 ‘인천 SK’를 공식적인 구단 명칭으로 사용하지 않았지만, 지역에서 마케팅 활동을 할 때는 ‘인천 SK 와이번스’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그리고 야구장에서 ‘인천 SK’ 응원 구호를 줄곧 사용했다. 전국구 구단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인천을 내세우면 다른 지역 팬들이 거부감을 가질 우려가 있어서 잠시 중단하기도 했었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지금도 SSG랜더스필드에서는 ‘인천 SSG’ 응원 구호를 들을 수 있다.

각고의 노력 끝에 SK 와이번스는 인천에서 최장수 구단 역사(21년)와 한국시리즈 최다 우승(4회)을 기록하며 인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오랜 기간 인천 야구팀으로 남을 것으로 기대했던 SK 와이번스는 2021년 갑작스레 신세계그룹에 매각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인천을 제외하곤 구단 매각 사례가 전무하다. 인천만 유독 6번째 구단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과거엔 지역, 지금은 ‘원클럽맨’이 프랜차이즈 스타


▎야구장에서 좋아하는 선수 유니폼을 입고 응원하는 팬들은 어느덧 다수가 됐다. 야구는 팬과 팀과 지역의 일체화를 꾀하며 콘텐트 파워를 갖췄다. / 사진:연합뉴스
프로야구가 타 스포츠와 비교할 때, 연고지역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저변에는 신인 (1차) 지명의 영향이 작용한다는 분석이 있다. 다른 프로스포츠에서는 지역과 상관없이 신인 드래프트를 실시해왔지만, 프로야구만은 1982년 창설 때부터 연고지 고등학교 졸업 선수를 1차지명 신인으로 지명했다. 그다음에 전국 대상으로 드래프트(2차지명)를 실시했다. 이런 전통은 전력평준화를 위해 다른 프로스포츠처럼 전면 드래프트로 바뀐 2023년에야 사라졌다.

만약 다른 프로스포츠처럼 연고 1차지명 없이 전국 단위 전면 드래프트를 시행했다면 광주(해태)의 선동열, 대구(삼성)의 이만수, 부산(롯데)의 최동원이 다른 팀 유니폼을 입을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프로야구가 지역에 빠르게 뿌리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프로야구가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로 자리 잡은 데에는 초창기 스타플레이어들의 공헌이 컸다. 초창기 야구팬들은 고향에서 고교를 졸업한 선수들에 대한 애착이 컸다.

필자가 20년 가까이 몸담은 인천 프로야구단(SK·SSG)의 경우, 인천시 소재 고교 야구팀에서 배출한 스타 선수들이 적었다. 그러다 보니 타 지역 출신 선수들이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 현대 유니콘스와 SK 와이번스에서 12년간 뛰었던 박재홍(현 MBC스포츠+ 해설위원)의 경우 많은 팬은 인천에서 고교를 졸업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 박재홍은 광주일고 출신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역 고교 출신에 대한 팬들의 애착은 희미해져 간다. 현재 인천 야구팀인 SSG 랜더스에는 인천에서 고교를 졸업한 주전 선수가 거의 없다. 이승엽(현 두산 감독)을 넘어 KBO리그 최다 홈런 기록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간판타자 최정은 수원 유신고 출신이고, 에이스 김광현은 안산공고 출신이다.

필자가 FA(Free Agent, 자유계약선수) 선수 가운데 인천고 출신 포수 이재원 계약에 공을 들인 것도 팀에 희소한 인천 소재 고교 출신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팬들은 이제 지역 고교 출신이라고 특별히 관대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이재원의 경우, 2018년 우승 직후 거액의 FA 계약(4년 총액 69억원)을 했는데 FA 계약 기간 동안 기대만큼의 성적을 거두지 못해 팬들의 질타를 받았다. 2023시즌을 마치고 SSG의 원클럽맨이었던 외야수 김강민과 이재원은 대전 연고인 한화 이글스로 이적했다. 다음해 3월 26일 인천 원정경기에 처음 출장했다. 대구 경북고 출신 김강민은 SSG 팬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은 데 반해 인천고 출신 이재원을 향한 팬들의 반응은 상대적으로 강도가 약했다.

이렇듯 프랜차이즈 스타의 의미 역시 과거와 달라졌다. 과거에는 지역 출신에 한정됐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한 팀에서만 선수로 뛴 ‘원클럽맨’ 의미로 넓어졌다. 대표적인 선수가 빙그레·한화의 악바리 타자 이정훈(현 두산 퓨처스 감독)이다. 이정훈은 삼성 연고인 대구상고 출신으로 전국 단위 2차지명에서 빙그레 이글스가 지명한 뒤 신인왕을 차지했다. 이후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 잡았다. 지금도 이정훈은 빙그레와 한화의 프랜차이즈 레전드로 인정받는다. 선수 말년에는 삼성과 OB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지만, 이때를 기억하는 야구팬들은 드물다.

원소속팀에 FA 몸값 할인해주는 ‘낭만 계약’도


▎포수 이재원(왼쪽 앉은 이)과 에이스 류현진(오른쪽)은 인천에서 고교를 졸업했지만, 2024년 충청도 팀 한화에서 배터리를 이루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과거에 비하면 원클럽맨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타 프로스포츠에 비하면 많은 편에 속한다. 프로야구는 아직도 FA 경쟁 상황에서도 원클럽맨 선수가 원소속팀 ‘디스카운트’를 받아들이는 낭만이 있다. 작년 FA로 나온 롯데 전준우(4년 최대 47억원에 잔류 계약)가 대표적이다. ‘Money talks(돈이 말한다)’가 부정되는 기이한 현상이 프로야구판에 가끔 있다.

프로축구 FC서울, 전북현대, 프로농구 창원LG 등 다른 프로스포츠 구단들은 연고지를 구단 명칭에 붙인다. 하지만 프로야구는 모기업만 구단 명칭으로 내세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야구는 지역민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프로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이는 지역 팬들의 사랑을 받는 프랜차이즈 선수들이 있었고, 구단들의 다양한 지역밀착 활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앞으로도 KBO리그가 1000만 관중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연고지와 지역팬들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이를 게을리하며 현재의 인기에 취해 있다면, 모래성처럼 한 번에 무너질 수 있다. 지역연고는 프로야구의 존립 기반이기 때문이다.

※ 류선규 - SK 와이번스의 마지막 단장이자 SSG 랜더스의 초대 단장을 역임했다. 26년간 프로야구단(LG 트윈스·SK 와이번스·SSG 랜더스) 프런트로 근무하며 홍보·마케팅·운영·육성·전략기획 등 거의 모든 부서를 경험했다. 단장으로서 우승 1회(2022년 SSG 와이어 투 와이어 통합 우승)를 포함해 총 다섯 번의 우승을 경험했다.

202405호 (20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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