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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유럽포퓰리즘연구센터 의장이 묻고 한상진 교수가 답하다 

“포퓰리즘 정당 등장, 한국 민주주의에 잠재적 위협 될 수도” 

“과거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은 포퓰리즘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에서 온 것”
“4월 총선서 나타난 격렬한 대립, 미래 한국 민주주의가 퇴보하는 발판 될 수도”


▎한국 사회과학계의 원로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 5월 6일 셀추크 굴타슬리 유럽포퓰리즘연구센터 (ECPS) 의장과 온라인 앱을 통해 나눈 인터뷰 내용을 보내왔다.
한국 사회과학계의 원로 한상진(79)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난 5월 6일 셀추크 굴타슬리(Selcuk Gultasli) 유럽포퓰리즘연구센터(ECPS, 벨기에 뷔르셀 소재) 의장과 인터뷰한 내용을 요약해 싣는다. 한 교수는 최근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포퓰리즘 문제와 관련, 한국은 그동안 포퓰리즘이 사회변동 국면에서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순기능이 있었다면서도 지난 4월 총선에서 등장한 조국혁신당 등 일련의 포퓰리즘은 한국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인터뷰 영상 전체는 5월 9일 ECPS 유튜브 계정에 공개됐다. [편집자 주]

한국 정치에서는 포퓰리즘을 어떻게 정의하며, 포퓰리즘을 식별하는 데 사용하는 주된 기준은 무엇인가요?

“저는 포퓰리즘 이론을 크게 두 가지 기준으로 봅니다. 하나는 ‘정치 엘리트에 대한 높은 불신’이며, 두 번째는 ‘정치적 정당성의 원천은 국민이란 사실을 적극 옹호하는 것’입니다.”

데리다의 ‘유령학’론이 서유럽이나 라틴아메리카뿐 아니라 세계적인 포퓰리즘 연구에 유용한 이유가 있을까요? 교수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자크 데리다(1930~2004, 프랑스의 철학자)의 유령학론에 심취됐습니다. 그 이유는 과거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848년 ‘유럽을 괴롭히는 공산주의 유령’을 언급한 것과 매우 유사하게 포퓰리즘의 유령이 오늘날 세계를 괴롭히고 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동아시아에서는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그 영혼이 편히 쉬기를 기원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귀신들은 편히 쉬지 못하고 다시금 현세로 돌아와 생전 자신들의 슬픔, 한탄, 괴로움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이럴 때 동아시아에선 유령이 편히 잠들 수 있도록 유령이 겪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와 유사하게 데리다도 마르크스주의의 망령이 자신의 절박하지만 실현되지 못한 미래에 대한 희망을 표현하기 위해 다시 나타난다고 설파합니다. 데리다는 지난 1994년 출간한 [마르크스의 유령]을 통해 ‘마르크스주의’를 ‘비평’의 형태로 묘사합니다. 민주주의에 기여할 것이란 믿음에서 말입니다. 동시에 그는 정통 마르크스주의나 역사적 유물론에서 비롯된 다른 망령들은 부정했습니다. 나는 이 접근 방식이 매우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포퓰리즘, 민주주의 촉매제 될 수도, 훼손할 수도”


▎한상진(오른쪽) 서울대 명예교수와 셀추크 굴타슬리 유럽포퓰리즘연구센터 (ECPS) 의장이 온라인 앱 ‘줌’을 활용해 인터뷰하고 있다. / 사진:ECPS 유튜브 캡처
교수님의 저작 ‘포퓰리즘에 대한 유령학적 접근’에는 “다수의 국가들에서 포퓰리즘은 현대 민주주의 제도가 뿌리내릴 때까지 민주주의로 가는 길을 닦아왔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포퓰리즘이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은 아니라는 사례를 들어주실 수 있나요?

“우선, 민주주의는 국민이 정치권력 정당성의 원천이라는 원칙에 따라 작동됩니다. 그간 경험에 따르면 현실은 이런 원칙이나 규범적 이상에서 벗어나 포퓰리즘으로 이어집니다. 쉽게 말해 포퓰리즘은 이러한 현실과 이상의 차이에 따라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포퓰리즘은 결코 실현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갈망을 나타내면서도 이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아울러 포퓰리즘은 국민의 우선권을 옹호할 때 민주주의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증오를 낳는다면 위험을 낳을 수도 있습니다. 1940년대와 1950년대 라틴 아메리카와 지난 1980년대 남유럽과 한국의 사례는 포퓰리즘이 어떻게 표현되느냐 하는 방식에 따라 민주주의를 촉진하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도 있고, 동시에 민주주의를 훼손할 수도 있는 지를 보여줍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포퓰리즘적 상상력’의 중요한 계보로 기록되는 역사적인 사실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우선 지난 1980년대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 중 하나가 한국의 정치적 민주주의로의 전환입니다. 당시 대학생과 해방신학을 옹호하는 개신교 교회가 한국 포퓰리즘의 역사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운동의 중심에는 풀뿌리 ‘민중’이 있었습니다. 당시 학생들은 민중 문화를 부흥시키기 위해 미술, 전통춤, 팝음악 등 다양한 방식의 표현법을 통해 노력했고, 이는 자연스레 민주화를 촉진시켰습니다. 그들은 군사 독재에서 소외되고 억압받는 이들을 잊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은 도시의 판자촌과 농촌, 공장으로 투신해 노동자들과 협력하여 노동조합 형성을 돕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포퓰리즘 운동을 통해 그들은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교수님은 한국의 경우 ‘촛불집회’ 등 친민주주의 세력이 ‘증오포퓰리즘’ 등 반민주주의 세력보다 훨씬 강하다고 언급했습니다.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해외 분석가들이 본 바와 같이 한국은 군사 통치나 권위주의 정부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민주주의의 모범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특히 약 40년 전인 1988년 선거를 통한 평화로운 권력 교체를 이룬 것은 매우 중요한 이정표입니다. 사실 강력한 양당체제, 활발한 정치 문화, 강력한 시민사회를 갖춘 한국은 소위 말하는 ‘포퓰리즘 국가’의 모델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한국의 시민, 연예인, 대중운동가 사이에는 포퓰리즘 경향이 분명 존재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16년과 2017년 초 진행된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입니다. 이는 포퓰리즘 운동의 단적인 사례입니다. 몇 달 동안 서울 도심에서, 그것도 같은 거리에서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가 진행됐습니다. 이들의 행진은 충돌이나 폭력 없이 놀라울 정도로 평화롭게 진행됐습니다. 흥미롭게도 촛불집회 지지자들은 국민의 우선권을 강조한 반면, 태극기집회 지지자들은 정치인에 대한 불신에 기반을 두었습니다. 이러한 이분화된 현상은 지난 2016년 탄핵정국 때 한국에서 잘 나타났듯이 국민을 옹호하는 포퓰리즘 운동이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경향이 있음을 시사합니다.”

교수님의 연구는 촛불과 태극기를 구분합니다. 이 두 운동의 차이점과 함께 두 운동이 각각 한국 민주주의에 미친 영향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촛불시위는 한국에서 뿌리 깊은 역사를 갖고 있으며, 민주화 퇴행기에 포퓰리즘의 한 형태로 종종 나타납니다. 지난 2016년 박근혜 정부는 잘 조직된 관료제를 통해 시민사회에 대한 통제력을 행사함으로써 ‘관료주의 권위주의 체제’로 복귀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민주화운동 이후 한국사회는 크게 변해 있었습니다. 시민사회의 핵심층은 보다 젊고 역동적인 세대로 변모했습니다. 아울러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민주적 통치의 원칙을 더욱 중시하는 이들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정치와 시민 사이의 점점 커지는 격차는 결국 충돌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충돌은 사실 반복성을 띠기도 합니다. 한국 민주주의가 퇴보할 위험에 직면할 때마다 시민사회의 에너지가 커지면서 촛불운동이 나타나곤 합니다. 결국 국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했고, 헌법재판소도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이 평화로우면서도 진보적인 과정은 민주주의 퇴보 위협에 맞서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는 사람들의 힘을 보여줬습니다.”

“촛불 vs 태극기집회, 놀라울 정도로 평화롭게 진행”


▎한상진 교수에 따르면 2016년과 2017년 초 진행된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는 포퓰리즘 운동의 단적인 사례로, 이들의 행진은 충돌이나 폭력 없이 놀라울 정도로 평화롭게 진행됐다. 사진은 2017년 3월 11일 서울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에서 각각 열린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
오늘날 한국이 민주적으로 후퇴하는 동시에 민주주의 위기에 처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오늘날 한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후퇴를 암시하는 우려스런 징후가 포착되긴 합니다. 지난 4월 치러진 총선에서 양당은 물론, 양당 지도부는 서로에 대한 반감으로 포퓰리즘 수사(修辭)에 크게 의존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는 정치 지도자들이 이전 선거와는 달리 반대 측을 단순히 정치적 경쟁자가 아니라 처벌, 심지어 징역형을 선고받아야 할 이들로 묘사했습니다. 포퓰리즘적 정서를 적극적으로 사용, 옹호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선거는 끝없는 대결로 이어졌으며, 감정적으로 격앙됐습니다. 이러한 고조된 감정, 갈등과 선거 기간 동안 전례 없는 수준의 대립은 잠재적으로 미래 민주주의 퇴보의 발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4월 총선이 한국의 정치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우파 포퓰리즘’과 ‘좌파 포퓰리즘’ 측면에서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다시 말해 여야 간 양극화와 악마화 현상이 한국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시나요?

“우선 저는 한국 정치에서 ‘좌파 포퓰리즘’과 ‘우파 포퓰리즘’을 논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포퓰리즘은 본질적으로 특정 이념적 입장을 띤다기보다는 감정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가장 우려스러워하는 것은 지난 총선 때 널리 번졌던 ‘증오심 조성’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주목할 만한 대목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측근이자 서울대 로스쿨 조국 교수가 포퓰리스트 지도자로 등장한 것입니다. 수년에 걸쳐 조국은 정치적 억압과 분노의 상징으로 대중의 공감을 얻어왔습니다. 선거 직전에 그는 놀랍게도 원내 제3당을 창당했고, 지속적으로 공격적인 수사를 사용하여 상대방을 처벌받아야 할 적으로 간주했습니다. 이런 포퓰리즘 지도자와 정당의 등장은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잠재적인 위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 동료이자 친구인 조국 대표가 포퓰리즘 지도자로 변한 것은 한국 정치에 중대한 변화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한국 포퓰리즘, 서구와 다른 고유한 길 걷고 있어”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와 22대 총선 당선인들이 4월 12일 국립서울현충원 현충탑 참배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한상진 교수는 “내 동료이자 친구인 조국 대표가 포퓰리즘 지도자로 변한 것은 한국 정치에 중대한 변화가 있음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유럽과 미국에서 포퓰리즘이 급증하는 것이 한국의 포퓰리즘에도 영향을 미칠까요?

“한국 포퓰리즘의 계보를 살펴보면 유럽이나 미국의 영향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한국만의 독특한 역사에 영향을 받아 독창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포퓰리즘은 더 이상 좌파와 우파로 나뉘지 않습니다. 대신, SNS 시대에는 ‘이미지에 바탕한 감정의 흐름’이 포퓰리즘을 이끕니다. 한국 사회는 감정적으로 심하게 분열되어 있으며, 정치인들이 이를 활용합니다. 구체적으로 이들은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해 상대방에 대해 특정 이미지를 낙인찍고, 이를 전파합니다. 한국의 첨단 디지털 기술은 효과적으로 이미지 제작 및 전파를 가능하게 합니다. 대중의 인식과 담론을 형성하기도 합니다. 해외에선 이를 두고 ‘좌파 포퓰리즘’이나 ‘우파 포퓰리즘’과 같은 꼬리표를 붙이려 할 수 있지만, 이러한 이분법은 정치적 슬로건에 불과할 뿐 한국 포퓰리즘을 제대로 설명하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서구 모델과는 다른 고유한 길을 걷고 있습니다. 즉, 한국 포퓰리즘은 한국만의 독특한 맥락을 반영하고 있다고 봅니다.”

-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중민재단이사장 hansjin@snu.ac.kr

202406호 (202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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