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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미래’ 새만금을 가다 

식량안보 매립지가 최첨단산업 터전으로 천지개벽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투자진흥지구 지정 후 땅 부족해 조기 매립 추진할 정도로 산업단지에 기업 입주 활발
10조원 투자 유치 위해 킬러규제 개혁TF팀까지 만들어 지원… ‘동북아 경제 허브’ 추구


▎새만금개발청 너머로 펼쳐진 광활한 새만금의 땅. 아직도 기업이 들어설 토지가 많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 사진:새만금개발청
4월의 마지막 날, 서울에서 차로 4시간 가까이 운전해 새만금개발청에 도착했을 때, 처음 만난 풍경은 짙은 안개였다.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에 묘사된 배경처럼 해무가 지평선과 수평선을 가렸다. 취재에 동행한 송항수 새만금개발청 대변인실 사무관은 “날씨가 좋았다면 고군산군도까지 보였겠지만, 원래 여기는 해무가 자주 낀다”고 아쉬운 듯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만금은 광활했다. 구름과 안개가 시야를 아무리 방해해도 그 스케일 전체를 가릴 순 없었다. 새만금은 일대를 횡으로 가르는 동서도로와 종으로 가르는 남북도로로 나뉘어 있다. 남북도로는 만경대교와 동진대교가 혈관처럼 바다와 땅을 잇는다.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의 무대는 김제와 군산 일대다. 곡창지대인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드문 평야가 펼쳐져 있다. 대규모 매립을 통해 대평원의 느낌을 극대화한 곳이 새만금이다. 실제 새만금이라는 이름은 만경평야의 ‘만(萬)’과 김제평야의 ‘금(金)’을 조합해 작명됐다. 오래전부터 비옥한 토지로 유명한 만경·김제평야와 같은 땅을 새로이 일궈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20년 걸린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간척사업


▎새만금 국가산업단지. 이미 기업이 입주한 공구(오른쪽)와 확장 개발 중인 공구(왼쪽)가 확연히 구분된다. / 사진:새만금개발청
새만금개발청은 “새만금사업은 전북 군산과 부안을 연결하는 33.9㎞의 방조제를 축조하고, 서울 면적의 3분의 2(409㎢)에 달하는 땅을 새롭게 조성한 우리나라 최대 국책사업”이라고 소개한다. 무려 20년에 걸쳐 2010년 4월 완공된 33.9㎞에 달하는 방조제는 그해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네덜란드 쥐더제(Zuiderzee) 방조제의 길이(32.5㎞)를 넘어선 것으로 인정받았다.

왜 그 당시 우리 정부가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간척사업’을 불사했는지를 알아야 새만금이 탄생한 필연성에 접근할 수 있다. 지금이야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1980년대만 해도 쌀이 부족했다. ‘식량안보’라는 용어를 초등학교 교실에서 배웠을 정도였다. 1987년 7월 정부는 새만금 간척 개발을 최초로 발표했다. 이후 노태우 정부가 들어섰고, 당시 제1야당인 민주당의 김대중 총재와 새만금사업에 합의하며 1989년 11월 새만금종합개발사업기업계획이 발표됐다. 이어 1991년 11월 방조제 착공에 돌입했고, 2010년 4월 준공됐다. 환경단체의 반대 탓에 예상보다 공사 기간이 길어졌지만 결국 관철됐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산업 트렌드도 변모했다. 새만금 땅에 채워질 콘텐트도 농업에서 신산업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갔다. 게다가 기후변화 등 환경 요인까지 고려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2012년 12월 ‘새만금사업 추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 후 2013년 9월 12일 출범한 새만금개발청은 “새로운 산업 수요에 대응해 새만금의 목표와 개발 방향을 수정했고, 서해안 중심부라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그린성장을 실현하는 글로벌 신산업 중심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대한민국 재생에너지 중심지’로의 개발을 위해 다양한 산업·관광·문화 시설을 조성하고 있다”고 소명을 밝히고 있다.

새만금의 땅은 지도가 아니라 육안으로 봐야 실감할 수 있는 스케일이다. 2020년까지 1단계 사업이 진행됐고. 2030년 78%, 2040년 87%, 2050년 100% 개발까지 4단계로 나눠 추진 중이다. 현재까지 개발 면적은 전체의 48%에 불과하다. 김경안 새만금개발청장이 “(수요만 있다면) 땅은 충분하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새만금의 용지는 291㎢에 달한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5배에 해당한다. 현장을 둘러보니 저 멀리 바닷가에서 공사가 한창이었다. 해양수산부와 군산지방해양수산청이 관여하는 새만금 신항만은 2009년 착공해 2040년 완공될 예정이다. 총 사업비로 무려 3조698억원이 투입되는 대 사업이다.

하늘에선 이따금 비행기 굉음이 들렸다. 송 사무관은 “인근 군산에 미군이 사용하는 공항이 있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지방항공청은 2020년부터 2029년 개항을 목표로 군산공항 옆 산업영구용지(103만 평)에 국제공항을 짓고 있다. 2019년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 대상에 포함되며 예타 면제를 받았다. 총 사업비는 8077억원이다. 대한민국 지도를 거꾸로 돌려 보면, 이 나라가 운명적으로 해양(항공) 수출(물류)국가가 될 수밖에 없음을 직감할 수 있다. 개발과 성장의 시대 한국은 울산과 거제, 여수 등의 산업 기지가 국민을 먹여 살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다음 백년은 새만금의 차례가 돼야 나라 경제가 영속될 수 있다는 기대는 당위의 영역일지 모른다.

‘기업 중심’ 마인드로 흥행시킨 국가산업단지


▎공사 중인 새만금 신항만. 새만금이 글로벌 허브가 되기 위한 핵심 인프라다. / 사진:새만금개발청
넓디넓은 새만금 땅은 농생명용지, 환경생태용지, 복합개발용지, 관광레저용지, 배후도시용지 등으로 사용 목적에 따라 영역이 구분돼 있다. 각각의 용지는 씨줄과 날줄처럼 도로, 철도 등으로 연결돼 있다. 이 가운데 새만금사업 기본계획의 핵심은 단연 새만금국가산업단지다. 차지하는 면적(18.47㎢)은 결코 크지 않지만, 비중은 가장 높다고 볼 수 있다.

2008년부터 2030년까지 총 사업비 2조6203억원이 들어가는 새만금국가산업단지는 1공구·2공구의 경우, 매립 및 조성공사가 준공됐다. 또 5공구·6공구는 매립공사가 완료됐다. 1공구와 2공구에는 이차전지, 첨단소재, 에너지 업종 중견기업들이 주로 입주했다. 본사를 일본에 두고 있는 도레이첨단 소재도 그중 하나다. 그리고 5공구에는 LS L&F배터리솔루션, LS MnM, SK E&S데이터센터, 두산퓨얼셀 등 대기업 계열사들이 들어왔다. 리튬이온배터리 양극재를 생산하는 중국의 글로벌 회사 룽바이도 위치해 있다. 또 6공구에는 LG화학과 GM코리아 뉴에너지 머티리얼즈 등이 입주했다. 벌써 1·2·5·6공구 총 분양 대상 면적 중 85%가 분양 완료된 상태다.

새만금국가산업단지는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군산 국가산업단지와 이웃해 있다. 북쪽 군산 국가산업단지에는 타타대우상용차㈜, 현대두산인프라코어㈜, 현대건설기계㈜ 정도를 제외하면 상대적으로 중소기업이 밀집해 있었다. 반면 남쪽의 새만금국가산업단지는 상대적으로 구획이 큼직큼직하게 돼 있었다.

새만금개발청은 5공구와 6공구 조성 사업을 마무리하는 한편, 3공구와 7공구, 8공구 매립 공사에도 돌입했다. “2025년 초까지 매립을 완료하겠다”는 목표를 세워 놨다.

2023년 7월 부임한 김경안 새만금개발청장은 ‘기업 중심’이라는 깃발을 내걸었다. 새만금개발청 홈페이지(https://www.saemangeum.go.kr)에서 ‘연간정책추진 방향’을 클릭하면, ‘확실한 기업 지원으로 도약하는 새만금’이라는 구호가 가장 큰 글씨로 뜬다. 그 위에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새만금국가산업단지 투자 유치 10조원 달성!’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맞춤형 기업 지원, 산업용지 확대, 투자진흥지구 지정 확대와 혜택 추가 등 기업친화적 투자환경 조성에 관한 구체적 액션 플랜도 적시돼 있다. 이런 기조에 맞춰 윤석열 정부는 새만금 국가산업단지를 국제투자진흥지구(2023년 6월 28일)와 이차단지 특화단지(2023년 7월 20일)로 지정해줬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2023년 11월 새만금 국가산업단지를 두 번째로 방문했다. 당시 한 총리는 3공구와 7공구 매립 착공식에 참석했고, 새만금 입주기업 현장 간담회를 열어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했다.

“잼버리 아니라 ‘10조 투자 유치’로 기억해 달라”


▎동진대교의 일몰. 새만금은 관광 자원으로도 경쟁력이 충만하다. / 사진:새만금개발청
새만금에 대한 거대한 오해는 ‘새만금=잼버리’로 각인되는 프레임이다. 이런 등식은 새만금에 직접 가본 순간 바로 깨진다. 새만금의 남쪽 땅 일부만이 2023년 8월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터였다. 그보다 훨씬 광활한 면적이 국가산업단지, 수변도시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청장은 “새만금개발청이 투자를 더 많이 유치해서 그런 이미지를 희석시키는 수밖에 없다”며 “실제 10조원 투자 유치 소식이 잘 알려질수록 국민이 새만금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투자 유치를 향한 김 청장의 진심은 새만금개발청 건물 배치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총 6층으로 된 건물은 독특하게도 청장실이 2층에 있다. 가장 전망이 좋은 6층은 전망대와 북카페 용도로 개방돼 있다. 4층 건물 복도에 쭉 걸린 사진들은 새만금개발청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었는데, 투자유치 관련 이벤트가 가장 많았다.

3층에는 ‘킬러규제개혁TF팀’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조직이 존재한다. 식품허브 지원TF팀과 더불어 새만금개발청의 유이한 TF 조직이다. 투자 유치부터 기업 민원까지 새만금개발청이 전담하고 있는 구조다. 새만금 입주 기업이 늘어나는 추세인지라 인력 확충이 절실한 상황이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 본질적 고민과 과제도 자리한다. ‘산업+물류+관광+주거’가 통합되는 공간 모델을 지향하고 있는데, ‘3대 허브’와 달리 마지막 주거 부문이 가장 큰 난제라 할 수 이다.

물론 스마트 수변도시나 배후도시를 짓겠다는 계획은 서 있지만, 실제 사람이 모이는 것은 별개의 영역이다. 사람들이 정주를 결심하려면 주택뿐 아니라 교육과 의료, 레저 등 소프트 인프라가 해결돼야 하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국제학교 유치, 골프장 등을 기획하고 있지만, 시간이 걸리는 사안이다.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미래.’ 새만금개발청의 새만금 홍보 문구 중 하나다. 역설적이게도 새만금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어떤 비전을 내밀어도 오히려 현실감 있게 받아들여진다. 동북아 경제 허브, 메가시티도 새만금이라면 가능할 것 같은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대한민국은 서울이라는 글로벌 슈퍼스타 도시를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서울 등 수도권 편중 현상이 갈수록 극심해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제2도시 부산은 글로벌허브 도시와 부산·울산·경남 메가시티 플랜을 제시하고 있다. 가덕도신공항 건설과 산업은행 부산 이전도 물류와 금융, 관광업을 통해 활로를 개척하려는 절박함이 배어 있다. 여기에 새만금이라는 새로운 땅이 가세하는 그림이 완성된다면, 대한민국 국토는 이상적 삼각형 발전 모델을 장착할 수 있게 된다. 2024년 전북이 특별자치도로 승격된 것도 탄력을 더해줄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와 한국 경제 회생을 위한 구명줄

새만금 취재를 마친 뒤 군산으로 이동했다. 예전에 찾았을 때에 비해 거리가 을씨년스러웠다. 특히 자영업은 몰락 일보직전 같았다. “한국GM 군산 공장이 철수하고 현대중공업 군산 조선소가 폐쇄된 여파”라고 했다. 일자리가 도시의 활력을 좌우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바로 체감할 수 있었다. 이럴수록 새만금사업이 잘 풀려야 군산, 김제, 부안, 익산 등 인근 지역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새만금 1억2000만 평은 어떤 제도로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활용 가치가 달라질 것이다. 실제 새만금 기본계획 전면 재수립 절차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김 청장을 비롯한 새만금개발청 직원들은 의외로 국민의힘, 민주당 등 국회와 관련된 민원 사항을 꺼내지 않았다. 굳이 말로 듣지 않아도 정치 외풍에 휘둘리지 않고, 새만금사업이 일관성 있게 추진될 수 있기를 바라는 무언의 바람으로 읽혔다.

이미 한국 경제는 구조적 저성장 국면에 진입한 것이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진다. 반도체를 제외하면 중국보다 비교우위를 점하는 섹터가 없다. 삼성전자조차 ‘반도체 게임체인저’라는 HBM(고대역폭메모리 반도체) 개발 경쟁에서 밀리는 형국이다. 수출은 아직 기대에 못 미치고, 물가는 진정되지 않고 있다. 금리 인상을 단행할 수 없는 경제 체력임을 간파한 부동산시장은 양극화로 치닫고 있고, 그 여파로 저출산은 심화하고 있다. 지방은 소멸 위기에 빠져 있고, 고령화는 노인 빈곤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연금·교육·노동 개혁이 시급하지만, 진영 논리에 찌든 정치권은 표 계산에 근거한 정쟁에 골몰할 뿐이다.

이렇게 국가경제가 부정적 이슈로 포위될수록 희망과 긍정의 이미지를 줄 수 있는 무언가를 갈구하는 것이 인간 본성이다. 새만금은 상상력의 공간이다. 오늘 무엇이 있느냐보다 내일 무엇이 생길 것인가에 방점이 찍힌다. 지금으로부터 약 80년 전, 미국 라스베이거스 사막에 도시를 설계한 것과 흡사한 기적의 스토리가 2024년 지금 대한민국 새만금에서 펼쳐지고 있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2406호 (202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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