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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부동산시장이 버블이라고 경고하며 부동산에 유입되는 자금을 차단하기 위해 초강도 대책을 잇달아 내놓았다. 투기과열지구 내 아파트 분양권 전매 금지 ·재건축 아파트의 후분양제 ·양도소득세를 실거래로 부과하는 투기지역 확대 지정 등이 그것이다. 정부는 지금 부동산시장이 공급 부족보다는 가수요가 몰려 거품이 생긴 것으로 보고 이같은 제도를 통해 수요관리만 잘 하면 부동산시장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시장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금리가 사상 최저치로 곤두박질치고 있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400조원의 부동자금이 부동산시장을 넘보고 있기 때문이다. 저금리가 계속되는 한 부동자금은 언제든지 게릴라처럼 몰려다니며 시장을 들쑤셔 놓을 수 있다.
흔히 부동산 투자자금은 고액이며 중 ·장기적 보수성을 띠고 있다고 말한다. 투자자들도 50, 60대가 많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분양권 전매를 허용하면서 부동산 자금의 성격이 크게 달라졌다. 치고 빠지는 단타성 자금으로 바뀌었다. 김영진 내집마련정보사 사장은 “분양권 전매 자유화 조치 이후 분양권은 당첨 후 곧바로 현금화가 가능해 3개월짜리 예금보다 유동성이 더 좋아졌다”고 말했다. 이러다보니 고액자산가들은 물론 샐러리맨들까지 ‘한탕’을 노리고 정부가 만들어 놓은 합법적인 투기장, 즉 분양권 전매시장으로 뛰어들어 과열양상을 빚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좀 달라졌다. 분양권 당첨자들은 투기과열지구에서는 등기한 이후에나 아파트를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투자자금의 현금화가 2∼3년 뒤로 늦춰졌다. 실제로 회사원 박모(40)씨는 이달 초 서울 5차 동시분양에서 당첨된 30평형대 아파트가 분양권 전매 금지 대상에 오르자 투자기간을 길게 잡았다. 박씨는 “‘5·23조치’ 이후 단타는 힘들게 됐지만 장기적으로는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으면 돈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도권이나 행정수도 이전 후보지인 충청권에선 토지도 대부분 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자금 회전이 쉽지 않게 됐다. 서울 강남권을 비롯한 인기지역은 투기지역으로 지정돼 양도세 부담도 만만치 않아졌다.분양권 전매 제한을 받지 않는 300가구 미만의 주상복합 아파트나 오피스텔에 단기 전매차익을 노리는 자금이 몰릴 수 있다. 하지만 청약자금 2조7,000억원이 몰린 서울 자양동 주상복합건물 ‘더# 스타시티’(1,177가구)의 기록을 깨기는 어려울 듯하다.정요한 텐커뮤니티 사장은 “정부가 자금 회전율을 떨어뜨리는 조치를 내놓자, 앞으로는 2∼3년을 내다보고 묻어두겠다는 투자자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당분간 틈새 상품으로 자금 유입
서울 강남권에서 큰손으로 알려진 김모(59)씨는 요즘 40억∼50억원대 상가건물을 찾고 있다. 상가 임대 수익률이 예전보다 못하다곤 하지만 은행 예금보다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정부나 민간경제연구소가 부동산시장에 거품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지만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상가건물이 현재로선 차선의 투자처인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강남 일대 상가건물의 수익률은 연 4∼5% 수준에 그친다. 지난해 상가임대차보호법의 시행을 앞두고 상가 임대료가 많이 올랐지만 매매가가 이보다 더 많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고종완 RE멤버스 사장은 “최근 지표금리인 3년만기 국고채 유통수익률이 한때 3%대로 떨어지면서 큰손들이 2차 ‘저금리 쇼크’를 받은 것 같다”며 “상가건물에 큰손들의 관심이 부쩍 늘었다”고 밝혔다. 심지어 지난해 상가건물을 팔아 은행 예금에 예치했다가 다시 상가건물을 매입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강남의 한 빌딩전문거래업체 관계자는 “‘수익률이 낮으면 임대료를 올리면 되지 않느냐, 역세권 상가면 아무것이나 잡아달라’고 요구하는 투자자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5 · 23조치 이후 시중자금이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시장에서 토지와 상가, 사무실로 몰리고 있다. 토지는 규제가 덜한 강원도나 수도권 외곽지역, 충청권이 인기다.
진명기 돌공인 사장은 “1억∼2억원 정도에 2∼3년 간 묻어둘 만한 토지가 없느냐는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고 말했다. 강원도 평창군은 동계올림픽 유치 기대감과 펜션 수요가 몰리면서 올 초에 비해 땅값이 2∼3배로 뛰었다. 동계올림픽 선수촌이 예정된 횡계리 일대 논밭은 평당 30만원으로 올 초에 비해 약 2배로 올랐다.택지개발지구 내 단독주택 청약열기는 5?3조치 이후 더욱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 5월 28일 접수를 마감한 경기도 남양주시 평내지구 단독택지 49개 필지에는 1,960명이 몰려 평균 4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상가시장에도 자금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 아파트 상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일반 ·테마상가는 올 상반기엔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으나 분양권 전매 금지 이후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솔렉스플래닝의 김재윤 마케팅사업본부장은 “5?3조치 이후 상가투자자들이 확실히 늘어났다”며 “투자처가 넓어지지 않는 한 시중 여윳돈이 부동산시장을 맴돌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대도시의 아파트 분양시장 역시 활기를 띠고 있다. 이달 초 청약 접수를 한 대구 수성구 사월동 태왕리더스(527가구)의 경우 1순위에선 미달됐으나 2순위에선 9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지난달 21일 한꺼번에 1∼3순위 청약을 받은 경남 김해 장유지구 내 대우푸르지오 7∼8차도 경쟁률이 6∼16대 1에 달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지방은 투기과열지구가 아니어서 전매가 자유롭다”며 “그래서 단기 차익을 겨냥한 투자자들이 몰려들었다”고 말했다.
서울 아파트시장은 숨고르기
서울이나 수도권 일대 아파트시장은 당분간 정체를 벗어나지 못할 전망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분양권 전매 금지 이후 분양가가 높은 아파트나 입지가 떨어지는 수도권 외곽지역이 고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분양권 전매 금지 조치가 처음으로 적용된 서울 5차동시분양에선 올 들어 미달가구 수가 가장 많았는데 서초구 고급아파트 ‘더 미켈란’의 경우 수도권 3순위에서도 미달됐다. 금강종건이 수원 장안구 정자동에 내놓은 ‘금강에스뿌아’는 수도권 1순위에서 미달됐다.
재건축 아파트도 후분양제도 도입으로 당분간 약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재건축시장에선 큰손들이 빠져 나갔다는 관측도 들린다. 특히 7월부터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 시행돼 재건축 요건이 강화되면 그동안 재건축 기대심리로 값이 급등한 중층아파트는 조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나 강남권의 경우 값이 빠지면 매수하겠다는 수요층이 많은 데다 여전히 수급불안에 시달리고 있어 급락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삼성경제연구소 박재룡 수석연구원은 “정부가 올 들어 내놓은 대책은 부동산으로의 자금 유입 속도를 늦추는 미봉책일 뿐”이라며 “지금 서울 아파트시장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휴화산과 같은 존재”라고 지적했다.
지금 일부 부동산 가격이 경제성장률이나 소비자물가, 소득수준에 비해 높아 버블 가능성이 있으므로 신규 투자는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투자를 하더라도 기대수익률을 낮추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이다.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지금 투자자들이 부동산 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 있다”며 “부동산 투자기간을 2∼3년으로 잡을 때, 매각 시점에 상황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부동산시장의 큰 변수인 정부의 정책도 어떻게 달라질지 알 수 없다. 부동산은 투자의 불확실성이 큰 만큼 은행 빚을 많이 내 투자하는 것은 위험하다. 요즘 같은 때는 냉철하게 시장을 바라보는 게 좋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가 제시하는 투자 유망지 | ||
아파트 분양시장은 5 ·23조치 이후 가수요가 많이 자취를 감추면서 실수요 위주로 재편될 전망이다. 돈이 될 만한 지역은 대부분 분양권 전매가 금지됐다. 이른바 ‘묻지마 청약’도 많이 줄어들 것 같다. 분양가가 높은 곳은 아예 웃돈이 붙지 않는 경우도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서두르기보다 알짜 지역을 골라 선별 청약하는 게 필요하다. 서울 상암 ·파주교하 ·화성 동탄 ·성남 판교지구와 서울 5대 저밀도지구 일반분양 물량을 노려볼 만하다. | ||
7월부터는 투기과열지구에 있는 300가구 이상의 주상복합아파트는 분양권 전매가 제한된다. 때문에 건설업체들은 300가구 미만의 주상복합 아파트를 많이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시중자금도 상대적으로 전매제한이 없는 쪽으로 유입될 것이다. 그러나 프리미엄이 예전처럼 많이 붙을 것 같지는 않다. 단지 규모가 작아 투자 메리트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 ||
상가는 5 ·23 대책 이후 투자자들이 더 늘었다. 아파트와는 달리 규제가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경기부진에도 불구하고 상가는 당분간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인다. 매달 생기는 월세가 은행 금리보다 높기 때문에 노후대책용이나 명예퇴직자들이 생계용으로 상가를 사는 투자자들이 많다. | ||
저금리가 장기화하면서 땅에 관심을 갖는 투자자가 부쩍 늘었다. 정부가 수도권과 개발예정지를 토지거래 허가구역으로 묶었지만 자금 유입은 계속될 듯하다. 요즘 경기도 남양주 수동면과 가평군 지역은 실버전원주택이나 펜션 부지로 관심을 끌고 있다. 충청권의 진천군 문백 ·백고면은 천안의 배후지역이면서 행정수도 후보지로 거론된 오송지역에서 불과 30분거리에 위치해 유망해 보인다. 충남 태안 등 서해안 땅을 찾는 이들은 많으나 단기간에 급등해 추가 수익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