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이 요즘 조용하다. 이유는 두 가지다. 정부의 세무 압박과 자산 가치 하락이다. 최근 세금 부과 기준이 더욱 엄격해진데다 미국 출구 전략 소동 이후 투자할 곳이 없어졌다. PB(Private Banker) 10인 중 6명이 ‘현금 보유’를 제안했다. 마땅한 투자처를 잃은 자산가들의 유동성 자금 비중이 커졌다. 시장상황을 봐가며 천천히 투자 기회를 노려보겠다는 얘기다.세무 강화는 새정부 출범 이후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다. 연초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 금액이 4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낮아졌다. 이자와 배당 등 금융소득이 2000만원을 넘으면 원천징수와 별개로 다른 소득과 합산해 6~38%의 누진세율로 소득세를 부과한다. 차명계좌 증여 추정 시기와 방식도 바뀌었다. 차명계좌임을 입증하지 못하면 증여로 추정한다. 차명계좌가 확인된 순간 증여세를 물어야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최근 차명계좌가 대기업 오너와 자산가들이 재산 은닉 수단으로 쓰인 점이 부각되면서 ‘차명계좌 금지법’이 제기되고 있다. 해외 계좌 단속도 강화됐다. 내년부터 10억원 넘는 해외 계좌를 신고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8월 19일 정부는 해외 소득·재산에 대한 정보 파악을 강화하기 위해 해외 금융계좌 신고 제도를 보완하는 방안을 세법 개정안에 담았다. 계좌를 신고하지 않거나 적게 신고할 경우 과태료가 10% 부과된다. 세무당국 요청에도 응하지 않으면 불이행 금액의 10%가 과태료로 추가된다.원종훈 KB국민은행 세무사는 “세무당국의 세무 조사가 강화되면서 자산가들의 절세 전략에 영향을 주고 있다”며 “상당수가 세금 관련 의사 결정을 미루고 있다”고 얘기했다. 김근호 하나은행 세무팀장도 비슷한 의견이다. 고객의 세무 상담은 여전히 많지만 절세 플랜으로 이어지는 횟수가 줄었다고 덧붙였다. 특히 상속·증여 상담이 줄었다. 세무 압박이 강화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누락된 재산이 밝혀져 추가로 세금을 낼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이다.그동안 부자들은 증여나 상속으로 다이아몬드나 골드바를 사용했다. 귀금속은 증여세가 붙지 않은데다 개인끼리 사고 팔 때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국세청이 서울 종로 일대 귀금속 상가에 세무조사를 했다. 자산가들이 귀금속을 통해 소득이나 재산을 숨기는 사례가 많다고 봤기 때문이다. 세무 조사의 강도가 높아질 경우 금을 대량으로 구입한 개인이나 법인의 거래 내역이 나올 수 있다.투자 발목 잡는 미국 출구전략투자 시장도 사정이 어렵긴 마찬가지다. 미국 출구전략이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어서다. 그동안 양적완화 축소를 늦춘 복병으로 평가 받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연방준비제도 목표치에 가까워졌다. 출구전략이 임박했다는 신호다. 미국 노동부는 8월 15일 지난 7월 CPI가 0.2%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시장 예상치에 부합하는 수치로 지난해 동월 대비 CPI 증가률은 2.0%를 기록했다. 이 소식에 미국의 10년물 국채금리는 장중 2.82%까지 치솟았다. 2년 만에 최고치다.